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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열전 (伍子胥列傳)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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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육십육(卷六十六) 열전제육(列傳第六)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 본질: 이 열전은 “인간의 원한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며, 어떤 에너지를 발휘하는가”에 대한 가장 극적인 실증 기록이다. 오자서는 부형의 죽음을 갚기 위해 16년을 인내했고, 마침내 옛 원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채찍질하는 굴묘편시(掘墓鞭屍)에 도달했다. 그러나 더 깊은 교훈은 복수 이후의 삶이다 — 그는 복수를 마친 후 오나라에 뼈를 묻는 충신으로 살았으나, 결국 또 다른 간신의 참소로 비극적 자결을 맞는다. 사마천이 부당한 궁형의 치욕 속에서 《사기》를 집필하며 자신의 영혼을 가장 깊이 투영한 인물이다.

1. 6단계로 보는 비극의 서사 구조

섹션 제목: “1. 6단계로 보는 비극의 서사 구조”
#단계사건핵심 동력역사적 교훈
1비극의 발단초평왕이 며느리를 빼앗고 충신 오사를 투옥권력자의 탐욕과 간신(비무기)의 참소군주의 사사로운 욕망이 제국 멸망의 씨앗이 됨
2형제의 갈림길형 오상은 죽음을 택하고, 오자서는 탈출효(孝) vs 복수(復讐)의 가치 충돌같은 위기 속 다른 선택: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다
316년의 망명길소관 통과(하룻밤에 백발), 어부와 빨래 처녀의 은혜극한의 인내와 생존원대한 목표 앞에서는 정서적 충동을 전략적 기다림으로 전환해야 함
4복수의 완성오군을 이끌고 초나라 도읍 함락, 굴묘편시(편시삼백)16년간 축적된 분노의 분출복수는 성취되었으나 극단적 카타르시스 뒤에 공허함과 파국의 씨앗이 잉태됨
5충신의 비극월왕 구천의 위험을 경고했으나 간신 백비의 모함으로 자결간언의 무력함과 권력의 맹목충언하는 핵심 참모가 평화 시기에 가장 먼저 제거된다
6인과응보와 파멸오자서 사후 오나라 멸망, 부차의 후회역사의 엄정한 피드백시스템의 경고 신호를 무시한 조직의 필연적 궤멸

① 복수의 시간 지평 (Time Horizon of Strategy)

섹션 제목: “① 복수의 시간 지평 (Time Horizon of Strategy)”
  • 오자서는 부형이 죽은 날 칼을 빼들지 않았다. 그는 16년을 기다리며 오나라의 왕위 계승 구도(공자 광)를 파악하고, 전제·요리를 천거해 정권을 안정시켰으며, 군사 천재 손무(孫武)를 등용해 국력을 극대화했다.
  • 교훈: 압도적 열세에 처했을 때 즉각적인 감정적 반격은 파멸을 부른다.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장기 전략적 인내가 승패를 가른다.

② 일모도원(日暮途遠)과 도행역시(倒行逆施)

섹션 제목: “② 일모도원(日暮途遠)과 도행역시(倒行逆施)”
  • 옛 친구 신포서가 “시체에 매질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라고 비판하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고 답함.
  • 교훈: 극단적 위기나 시간적 한계 상황에서는 상식적이고 정석적인 룰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전략(Asymmetric Strategy)이 불가피하다.

③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다 (棄小義,雪大恥)

섹션 제목: “③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다 (棄小義,雪大恥)”
  • 사마천의 태사공왈: “만약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한낱 미물과 무엇이 달랐겠는가? 그는 작은 의리를 버리고 끝내 이름을 후세에 떨쳤다.”
  • 교훈: 눈앞의 형식적 도덕이나 자존심보다, 궁극적인 대의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④ 원한의 전염성과 세대 간 대물림

섹션 제목: “④ 원한의 전염성과 세대 간 대물림”
  • 오자서가 탈출시킨 태자 건의 아들(백공 승)은 훗날 초나라로 돌아가 또 다른 복수를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영윤 자서를 살해함.
  • 교훈: 해결되지 않은 부당한 폭력과 원한은 세대를 건너뛰어 더 큰 사회적 파괴로 증폭된다.

⑤ 사마천의 발분저서(發憤著書) 정신의 원형

섹션 제목: “⑤ 사마천의 발분저서(發憤著書) 정신의 원형”
  •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다 궁형을 당한 뒤, 죽지 않고 치욕을 견디며 《사기》를 쓴 자신의 심정을 오자서의 삶에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제1절: 충신의 집안, 비극의 시작

섹션 제목: “제1절: 충신의 집안, 비극의 시작”

伍子胥者,楚人也,名员。员父曰伍奢。员兄曰伍尚。其先曰伍举,以直谏事楚庄王,有显,故其后世有名於楚。 楚平王有太子名曰建,使伍奢为太傅,费无忌为少傅。无忌不忠於太子建。平王使无忌为太子取妇於秦,秦女好,无忌驰归报平王曰:“秦女绝美,王可自取,而更为太子取妇。“平王遂自取秦女而绝爱幸之,生子轸。更为太子取妇。 无忌既以秦女自媚於平王,因去太子而事平王。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杀己,乃因谗太子建。建母,蔡女也,无宠於平王。平王稍益疏建,使建守城父,备边兵。 顷之,无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太子以秦女之故,不能无怨望,原王少自备也。自太子居城父,将兵,外交诸侯,且欲入为乱矣。“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问之。伍奢知无忌谗太子於平王,因曰:“王独柰何以谗贼小臣疏骨肉之亲乎?“无忌曰:“王今不制,其事成矣。王且见禽。“於是平王怒,囚伍奢,而使城父司马奋扬往杀太子。行未至,奋扬使人先告太子:“太子急去,不然将诛。“太子建亡奔宋。 无忌言於平王曰:“伍奢有二子,皆贤,不诛且为楚忧。可以其父质而召之,不然且为楚患。“王使使谓伍奢曰:“能致汝二子则生,不能则死。“伍奢曰:“尚为人仁,呼必来。员为人刚戾忍卼,能成大事,彼见来之并禽,其势必不来。“王不听,使人召二子曰:“来,吾生汝父;不来,今杀奢也。“伍尚欲往,员曰:“楚之召我兄弟,非欲以生我父也,恐有脱者后生患,故以父为质,诈召二子。二子到,则父子俱死。何益父之死?往而令雠不得报耳。不如奔他国,借力以雪父之耻,俱灭,无为也。“伍尚曰:“我知往终不能全父命。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后不能雪耻,终为天下笑耳。“谓员:“可去矣!汝能报杀父之雠,我将归死。“尚既就执,使者捕伍胥。伍胥贯弓执矢乡使者,使者不敢进,伍胥遂亡。闻太子建之在宋,往从之。奢闻子胥之亡也,曰:“楚国君臣且苦兵矣。“伍尚至楚,楚并杀奢与尚也。

① 오자서의 가문

원문: 伍子胥者,楚人也,名员。员父曰伍奢。员兄曰伍尚。其先曰伍举,以直谏事楚庄王,有显,故其后世有名於楚。 번역: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원(員)이다. 그의 아버지는 오사(伍奢)이고 형은 오상(伍尚)이다. 선조 오거(伍举)는 직언으로 초장왕을 섬겨 명성을 떨쳤기에 그 후대가 초나라에 이름이 알려졌다.

오자서는 초나라의 명문 충신 가문 출신이다. 선조가 직언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오자서와 형 오상의 선택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② 비극의 발단 — 평왕이 며느리를 빼앗다

원문: 楚平王有太子名曰建,使伍奢为太傅,费无忌为少傅。无忌不忠於太子建。平王使无忌为太子取妇於秦,秦女好,无忌驰归报平王曰:“秦女绝美,王可自取,而更为太子取妇。“平王遂自取秦女而绝爱幸之,生子轸。更为太子取妇。 번역: 초평왕에게 태자 건(建)이 있었는데, 오사를 태부(太傅)로, 비구(費无忌)를 소부(少傅)로 삼았다. 비구는 태자 건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평왕이 비구를 시켜 태자의 아내를 진(秦)나라에서 맞아오게 했는데, 진나라 여자가 아름다웠다. 비구가 달려와 평왕에게 말했다: “진나라 여자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왕께서 친히 취하시고 태자를 위해 다른 여자를 맞아들이소서.” 평왕이 스스로 진나라 여자를 취해 총애하여 아들 진(軫)을 낳았다. 태자를 위해 다른 여자를 맞아들였다.

비구의 아첨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다. 평왕이 며느리를 빼앗는 이 한 사건이 오자서의 복수극을 거쳐 초나라 멸망까지 이어지는 연쇄 반응의 첫 번째 도미노가 된다.


③ 비구의 참소와 오사의 옥중 탄식

원문: 无忌既以秦女自媚於平王,因去太子而事平王。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杀己,乃因谗太子建。建母,蔡女也,无宠於平王。平王稍益疏建,使建守城父,备边兵。 顷之,无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太子以秦女之故,不能无怨望,原王少自备也。自太子居城父,将兵,外交诸侯,且欲入为乱矣。“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问之。伍奢知无忌谗太子於平王,因曰:“王独柰何以谗贼小臣疏骨肉之亲乎?“无忌曰:“王今不制,其事成矣。王且见禽。“於是平王怒,囚伍奢,而使城父司马奋扬往杀太子。 번역: 비구는 이미 진나라 여자로 평왕에게 아첨한 후,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겼다. 평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면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태자 건을 참소했다. 태자의 어머니는 채(蔡)나라 여자로 평왕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평왕은 점점 태자를 소원히 하고 성부(城父)에 주둔시켜 변경을 지키게 했다. 얼마 후, 비구가 또 밤낮으로 태자의 단점을 왕에게 말했다: “태자가 진나라 여자의 일로 원망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원컨대 왕께서 스스로 조금 대비하소서. 태자가 성부에 거주하며 병사를 거느리고 제후들과 외교하며 곧 난을 일으키려 합니다.” 평왕이 태부 오사를 불러 심문했다. 오사는 비구가 태자를 참소한 것을 알고 말했다: “왕께서 어찌 참소하는 소인의 말로 골육지친을 소원하게 하십니까?” 비구가 말했다: “왕께서 지금 제압하지 않으시면 일이 이루어집니다. 왕이 장차 사로잡힐 것입니다.” 이에 평왕이 노하여 오사를 가두고, 성부의 사마 분양(奮揚)을 보내 태자를 죽이려 했다.

분양은 태자를 죽이러 가는 길에 먼저 사람을 보내 태자에게 “급히 떠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라고 알려준다. 태자 건은 송(宋)나라로 도망친다.


④ 형제의 갈림길 — 오상은 죽고, 오자서는 도망치다

원문: 无忌言於平王曰:“伍奢有二子,皆贤,不诛且为楚忧。可以其父质而召之,不然且为楚患。“王使使谓伍奢曰:“能致汝二子则生,不能则死。“伍奢曰:“尚为人仁,呼必来。员为人刚戾忍卼,能成大事,彼见来之并禽,其势必不来。“王不听,使人召二子曰:“来,吾生汝父;不来,今杀奢也。“伍尚欲往,员曰:“楚之召我兄弟,非欲以生我父也,恐有脱者后生患,故以父为质,诈召二子。二子到,则父子俱死。何益父之死?往而令雠不得报耳。不如奔他国,借力以雪父之耻,俱灭,无为也。“伍尚曰:“我知往终不能全父命。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后不能雪耻,终为天下笑耳。“谓员:“可去矣!汝能报杀父之雠,我将归死。“尚既就执,使者捕伍胥。伍胥贯弓执矢乡使者,使者不敢进,伍胥遂亡。闻太子建之在宋,往从之。奢闻子胥之亡也,曰:“楚国君臣且苦兵矣。“伍尚至楚,楚并杀奢与尚也。 번역: 비구가 평왕에게 말했다: “오사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명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초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아버지를 인질삼아 부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초나라의 화가 될 것입니다.” 평왕이 사람을 시켜 오사에게 말했다: “네 두 아들을 데려오면 살려주고, 데려오지 못하면 죽인다.” 오사가 말했다: “오상(伍尚)은 어진 사람이라 부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원(伍員)은 성격이 강직하고 모진 일을 참을 수 있어 큰일을 이룰 사람입니다. 그가 와서 함께 잡힐 것을 알면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평왕이 듣지 않고 두 아들을 불러 말했다: “오면 너희 아버지를 살려주고, 오지 않으면 지금 오사를 죽인다.” 오상이 가려 하자 오원이 말했다: “초나라가 우리 형제를 부른 것은 우리 아버지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도망칠 자가 있을까 두려워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우리를 속여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둘이 가면 아버지와 함께 죽을 뿐입니다. 죽음이 아버지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가면 원수를 갚지도 못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도망쳐 힘을 빌려 아버지의 치욕을 씻읍시다. 함께 죽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상이 말했다: “나도 가면 결국 아버지의 목숨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를 불러 살고자 하는데 가지 않는 것은, 후에 치욕을 씻지 못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오상이 오원에게 말했다: “너는 가라! 네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죽으러 가겠다.” 오상이 이미 잡히고, 사자가 오자서를 체포하려 하자, 오자서가 활을 당겨 화살을 겨누었다. 사자가 감히 나아가지 못했고, 오자서는 도망쳤다.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따라갔다. 오사가 오자서의 도망을 듣고 말했다: “초나라의 군신들은 곧 병란에 시달릴 것이다.” 오상이 초나라에 도착하자 초나라는 오사와 오상을 함께 죽였다.

사기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형제 이별 중 하나다. 아버지를 잘 아는 오사의 예언(“尚为人仁,呼必来。员为人刚戾忍卼,能成大事”)이 정확히 적중한다. 형은 ‘의리’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고, 동생은 ‘복수’를 위해 도망을 선택한다. 이 갈림길에서 사마천은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었다(弃小义,雪大耻)‘는 평가를 통해 오자서의 선택을 옹호한다 — 이는 궁형(腐刑)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 자신의 선택과 겹쳐진다.


伍胥既至宋,宋有华氏之乱,乃与太子建俱奔於郑。郑人甚善之。太子建又適晋,晋顷公曰:“太子既善郑,郑信太子。太子能为我内应,而我攻其外,灭郑必矣。灭郑而封太子。“太子乃还郑。事未会,会自私欲杀其从者,从者知其谋,乃告之於郑。郑定公与子产诛杀太子建。建有子名胜。伍胥惧,乃与胜俱奔吴。到昭关,昭关欲执之。伍胥遂与胜独身步走,几不得脱。追者在后。至江,江上有一渔父乘船,知伍胥之急,乃渡伍胥。伍胥既渡,解其剑曰:“此剑直百金,以与父。“父曰:“楚国之法,得伍胥者赐粟五万石,爵执珪,岂徒百金剑邪!“不受。伍胥未至吴而疾,止中道,乞食。

① 송과 정에서의 실패

원문: 伍胥既至宋,宋有华氏之乱,乃与太子建俱奔於郑。郑人甚善之。太子建又適晋,晋顷公曰:“太子既善郑,郑信太子。太子能为我内应,而我攻其外,灭郑必矣。灭郑而封太子。“太子乃还郑。事未会,会自私欲杀其从者,从者知其谋,乃告之於郑。郑定公与子产诛杀太子建。建有子名胜。伍胥惧,乃与胜俱奔吴。 번역: 오자서가 송나라에 도착했으나 송나라에 화씨(華氏)의 난이 있어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도망쳤다. 정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잘 대우했다. 태자 건이 다시 진(晉)나라에 가서 진경공이 말했다: “태자가 정나라와 친하니 정나라가 태자를 신임할 것입니다. 태자가 나를 위해 내응이 되고 내가 밖에서 공격하면 정나라를 멸할 수 있습니다. 정나라를 멸하고 태자를 봉하겠습니다.” 태자가 정나라로 돌아갔다. 일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 마침 사사로이 자기의 수행원을 죽이려 하자 수행원이 그 모의를 알고 정나라에 고했다. 정정공(鄭定公)과 자산(子产)이 태자 건을 죽였다. 건에게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승(勝)이었다. 오자서가 두려워 승과 함께 오(吳)나라로 도망쳤다.

오자서가 간신히 찾아간 태자 건이 또 다른 모략에 빠져 죽는다. 오자서는 태자 건의 아들 승(勝, 훗날 백공)만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② 소관(昭關)과 어부의 은혜

원문: 到昭关,昭关欲执之。伍胥遂与胜独身步走,几不得脱。追者在后。至江,江上有一渔父乘船,知伍胥之急,乃渡伍胥。伍胥既渡,解其剑曰:“此剑直百金,以与父。“父曰:“楚国之法,得伍胥者赐粟五万石,爵执珪,岂徒百金剑邪!“不受。伍胥未至吴而疾,止中道,乞食。 번역: 소관(昭关)에 도착하자 소관에서 그를 잡으려 했다. 오자서는 승과 함께 겨우 도보로 도망쳐 거의 잡힐 뻔했다. 추격자가 뒤에 있었다. 강에 이르자 강 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있었다. 오자서의 급박함을 알고 그를 강을 건네주었다. 오자서가 건넌 후 칼을 풀며 말했다: “이 칼은 백금(百金)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어부가 말했다: “초나라의 법에 따르면 오자서를 잡는 자에게는 곡식 5만 석(石)과 집규(執珪)의 작위를 준다. 어찌 백금의 검뿐이겠는가!” 받지 않았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도착하기 전에 병이 들어 길가에 멈춰 구걸했다.

후일 ‘소관의 백발(昭關白髮)‘이라는 고사로 발전한 유명한 장면이다. 너무 고민한 나머지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얘졌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진다. 어부가 현상금을 포기하고 오자서를 구해준 일화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이었는지를 암시한다.


제3절: 오나라에서 — 때를 기다리는 전략가

섹션 제목: “제3절: 오나라에서 — 때를 기다리는 전략가”

至於吴,吴王僚方用事,公子光为将。伍胥乃因公子光以求见吴王。 久之,楚平王以其边邑锺离与吴边邑卑梁氏俱蚕,两女子争桑相攻,乃大怒,至於两国举兵相伐。吴使公子光伐楚,拔其锺离、居巢而归。伍子胥说吴王僚曰:“楚可破也。原复遣公子光。“公子光谓吴王曰:“彼伍胥父兄为戮於楚,而劝王伐楚者,欲以自报其雠耳。伐楚未可破也。“伍胥知公子光有内志,欲杀王而自立,未可说以外事,乃进专诸於公子光,退而与太子建之子胜耕於野。 五年而楚平王卒。初,平王所夺太子建秦女生子轸,及平王卒,轸竟立为后,是为昭王。吴王僚因楚丧,使二公子将兵往袭楚。楚发兵绝吴兵之后,不得归。吴国内空,而公子光乃令专诸袭刺吴王僚而自立,是为吴王阖庐。阖庐既立,得志,乃召伍员以为行人,而与谋国事。

① 공자 광의 야망을 간파하다

원문: 伍子胥说吴王僚曰:“楚可破也。原复遣公子光。“公子光谓吴王曰:“彼伍胥父兄为戮於楚,而劝王伐楚者,欲以自报其雠耳。伐楚未可破也。“伍胥知公子光有内志,欲杀王而自立,未可说以外事,乃进专诸於公子光,退而与太子建之子胜耕於野。 번역: 오자서가 오왕 요(僚)에게 말했다: “초나라는 격파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다시 공자 광(公子光)을 보내소서.” 공자 광이 오왕에게 말했다: “저 오자서는 부형이 초나라에 살해당해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초나라를 쳐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내부에 야망이 있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서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외부 일로 말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제저(专诸)를 공자 광에게 천거한 후,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다.

오자서의 뛰어난 판단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공자 광의 반대를 단순한 방해로 보지 않고, 그가 왕을 노리고 있음을 간파한 후, 당장의 복수(대외 전쟁)보다 내부 정변(공자 광의 즉위)이 먼저임을 깨닫는다. 전제저를 천거한 후 스스로 물러나 때를 기다린다. 이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라 전략가임을 증명한다.


② 합려의 등장과 기용

원문: 五年而楚平王卒。初,平王所夺太子建秦女生子轸,及平王卒,轸竟立为后,是为昭王。吴王僚因楚丧,使二公子将兵往袭楚。楚发兵绝吴兵之后,不得归。吴国内空,而公子光乃令专诸袭刺吴王僚而自立,是为吴王阖庐。阖庐既立,得志,乃召伍员以为行人,而与谋国事。 번역: 5년 후 초평왕이 죽었다. 처음에 평왕이 빼앗은 태자 건의 진나라 여자가 아들 진(軫)을 낳았는데, 평왕이 죽자 진이 마침내 뒤를 이으니 그가 초소왕(昭王)이다. 오왕 요가 초나라의 상을 틈타 두 공자를 보내 초나라를 습격하게 했다.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오나라 군사의 후방을 차단해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오나라 국내가 비게 되자, 공자 광이 전제저를 시켜 오왕 요를 습격해 죽이고 스스로 서니 그가 오왕 합려(阖庐)다. 합려가 즉위하자, 오자서를 불러 행인(行人, 외교관)으로 삼고 국사를 함께 논의했다.

공자 광의 집권은 오자서의 전략이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합려는 즉시 오자서를 기용하여 국정에 참여시킨다. 오자서의 5년간의 인내가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전제저의 이야기는 #26 자객열전에 자세히 실려 있다.)


제4절: 복수 — 초나라 정벌과 편시삼백

섹션 제목: “제4절: 복수 — 초나라 정벌과 편시삼백”

楚诛其大臣郤宛、伯州犁,伯州犁之孙伯嚭亡奔吴,吴亦以嚭为大夫。前王僚所遣二公子将兵伐楚者,道绝不得归。后闻阖庐弑王僚自立,遂以其兵降楚,楚封之於舒。阖庐立三年,乃兴师与伍胥、伯嚭伐楚,拔舒,遂禽故吴反二将军。因欲至郢,将军孙武曰:“民劳,未可,且待之。“乃归。 四年,吴伐楚,取六与灊。五年,伐越,败之。六年,楚昭王使公子囊瓦将兵伐吴。吴使伍员迎击,大破楚军於豫章,取楚之居巢。 九年,吴王阖庐谓子胥、孙武曰:“始子言郢未可入,今果何如?“二子对曰:“楚将囊瓦贪,而唐、蔡皆怨之。王必欲大伐之,必先得唐、蔡乃可。“阖庐听之,悉兴师与唐、蔡伐楚,与楚夹汉水而陈。吴王之弟夫概将兵请从,王不听,遂以其属五千人击楚将子常。子常败走,奔郑。於是吴乘胜而前,五战,遂至郢。己卯,楚昭王出奔。庚辰,吴王入郢。 昭王出亡,入云梦;盗击王,王走郧。郧公弟怀曰:“平王杀我父,我杀其子,不亦可乎!“郧公恐其弟杀王,与王奔随。吴兵围随,谓随人曰:“周之子孙在汉川者,楚尽灭之。“随人欲杀王,王子綦匿王,己自为王以当之。随人卜与王於吴,不吉,乃谢吴不与王。 始伍员与申包胥为交,员之亡也,谓包胥曰:“我必覆楚。“包胥曰:“我必存之。“及吴兵入郢,伍子胥求昭王。既不得,乃掘楚平王墓,出其尸,鞭之三百,然后已。申包胥亡於山中,使人谓子胥曰:“子之报雠,其以甚乎!吾闻之,人众者胜天,天定亦能破人。今子故平王之臣,亲北面而事之,今至於僇死人,此岂其无天道之极乎!“伍子胥曰:“为我谢申包胥曰,吾日莫途远,吾故倒行而逆施之。“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秦不许。包胥立於秦廷,昼夜哭,七日七夜不绝其声。秦哀公怜之,曰:“楚虽无道,有臣若是,可无存乎!“乃遣车五百乘救楚击吴。六月,败吴兵於稷。会吴王久留楚求昭王,而阖庐弟夫概乃亡归,自立为王。阖庐闻之,乃释楚而归,击其弟夫概。夫概败走,遂奔楚。楚昭王见吴有内乱,乃复入郢。封夫概於堂谿,为堂谿氏。楚复与吴战,败吴,吴王乃归。 后二岁,阖庐使太子夫差将兵伐楚,取番。楚惧吴复大来,乃去郢,徙於鄀。当是时,吴以伍子胥、孙武之谋,西破彊楚,北威齐晋,南服越人。

① 단계적 압박 — 손무와의 협력

원문: 楚诛其大臣郤宛、伯州犁,伯州犁之孙伯嚭亡奔吴,吴亦以嚭为大夫。前王僚所遣二公子将兵伐楚者,道绝不得归。后闻阖庐弑王僚自立,遂以其兵降楚,楚封之於舒。阖庐立三年,乃兴师与伍胥、伯嚭伐楚,拔舒,遂禽故吴反二将军。因欲至郢,将军孙武曰:“民劳,未可,且待之。“乃归。 四年,吴伐楚,取六与灊。五年,伐越,败之。六年,楚昭王使公子囊瓦将兵伐吴。吴使伍员迎击,大破楚军於豫章,取楚之居巢。 번역: 초나라가 대신 극원(郤宛)·백주리(伯州犁)를 죽이자, 백주리의 손자 백비(伯嚭)가 오나라로 도망쳐왔다. 오나라도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전임 오왕 요가 보냈던 두 공자가 초나라를 정벌하러 갔다가 길이 막혀 돌아오지 못했다. 후에 합려가 오왕 요를 시해하고 스스로 섰다는 소식을 듣고, 그 군사로 초나라에 항복했고 초나라는 그들을 서(舒)에 봉했다. 합려가 즉위 3년 만에 오자서·백비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정벌하고 서를 함락시켜, 항복한 오나라 반장군들을 사로잡았다. 나아가 영(郢)까지 가려 하자 장군 손무(孫武)가 말했다: “백성이 피로하니 아직 안 됩니다. 기다리소서.” 이에 돌아갔다. 4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 육(六)과 잠(灊)을 빼앗았다. 5년, 월(越)을 쳐 격파했다. 6년, 초소왕이 공자 낭와(囊瓦)를 보내 오나라를 치게 했다. 오나라가 오원(오자서)을 보내 맞서 싸워 초군을 예장(豫章)에서 크게 격파하고 거소(居巢)를 빼앗았다.

오자서는 손무(孫武)와 함께 단계적으로 초나라를 압박한다. 손무가 “백성이 피로하다”며 신중을 기한 점, 당(唐)·채(蔡)의 원한을 이용한 점은 장기 전략의 전형이다.


② 총공격 — 수도 영 점령

원문: 九年,吴王阖庐谓子胥、孙武曰:“始子言郢未可入,今果何如?“二子对曰:“楚将囊瓦贪,而唐、蔡皆怨之。王必欲大伐之,必先得唐、蔡乃可。“阖庐听之,悉兴师与唐、蔡伐楚,与楚夹汉水而陈。吴王之弟夫概将兵请从,王不听,遂以其属五千人击楚将子常。子常败走,奔郑。於是吴乘胜而前,五战,遂至郢。 번역: 9년, 오왕 합려가 오자서·손무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처음에 영은 아직 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겠는가?” 두 사람이 대답했다: “초나라 장수 낭와(囊瓦)는 탐욕스럽고, 당(唐)·채(蔡)가 모두 그를 원망합니다. 왕께서 반드시 크게 치고자 하신다면 먼저 당·채의 협력을 얻어야 합니다.” 합려가 그 말을 따라 군사를 총동원해 당·채와 함께 초나라를 쳤다. 초나라와 한수(汉水)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합려의 아우 부개(夫概)가 군사를 이끌고 종군하기를 청했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부개가 자신의 부하 5천 명으로 초나라 장수 자상(子常)을 공격했다. 자상이 패주해 정나라로 도망쳤다. 이에 오나라가 승세를 타고 전진해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이기고 마침내 영(郢)에 도착했다.

16년 전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의 수도에 오자서가 드디어 들어선다. 5전 5승의 장면은 극적인 복수의 완성을 예고한다.


③ 편시삼백(鞭尸三百) — 복수의 완성

원문: 始伍员与申包胥为交,员之亡也,谓包胥曰:“我必覆楚。“包胥曰:“我必存之。“及吴兵入郢,伍子胥求昭王。既不得,乃掘楚平王墓,出其尸,鞭之三百,然后已。 번역: 일찍이 오원과 신포서(申包胥)는 벗이었다. 오원이 도망칠 때 신포서에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뒤엎겠다.” 신포서가 말했다: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키겠다.” 오군이 영에 들어오자 오자서는 초소왕을 찾았다. 찾지 못하자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300번 채찍질하고서야 그쳤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복수 장면 중 하나. 죽은 원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형벌을 가하는 이 행위는 ‘편시삼백(鞭尸三百)‘이라는 관용어를 낳았다.


④ 신포서의 질책과 오자서의 역행취사(倒行逆施)

원문: 申包胥亡於山中,使人谓子胥曰:“子之报雠,其以甚乎!吾闻之,人众者胜天,天定亦能破人。今子故平王之臣,亲北面而事之,今至於僇死人,此岂其无天道之极乎!“伍子胥曰:“为我谢申包胥曰,吾日莫途远,吾故倒行而逆施之。” 번역: 신포서가 산중에 숨어 있다가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말했다: “그대의 복수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듣건대,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길 수 있지만, 하늘이 정해지면 또한 사람을 부술 수 있다고 한다. 그대는 한때 평왕의 신하였다. 친히 북면하여 섬겼으면서, 지금 죽은 사람에게까지 형벌을 가하다니, 이것이 어찌 천도(天道)가 극에 달한 것이 아니냐!” 오자서가 말했다: “나를 대신해 신포서에게 전해다오 — 나는 해가 저물고 갈 길이 멀어, 도리어 거꾸로 행동하고 있다고(吾日莫途远,吾故倒行而逆施之).”

오자서의 대답은 사기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명언 중 하나다. “해가 저물었는데 갈 길이 멀다” — 시간이 촉박하고 할 일은 산더미인 상황에서는 정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역행취사(倒行逆施)‘는 현대 중국어에서 “어그러진 행동”을 뜻하는 부정적 관용어가 되었지만, 원래 의미는 압도적 불리함 속에서의 생존 전략이었다.


⑤ 신포서의 칠일칠야 — 진나라 구원군

원문: 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秦不许。包胥立於秦廷,昼夜哭,七日七夜不绝其声。秦哀公怜之,曰:“楚虽无道,有臣若是,可无存乎!“乃遣车五百乘救楚击吴。 번역: 이에 신포서가 진(秦)나라로 달려가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했다. 진나라가 허락하지 않았다. 신포서가 진나라 조정에 서서 밤낮으로 울기를 7일 7야를 그치지 않았다. 진애공(秦哀公)이 그를 가엾게 여겨 말했다: “초나라가 비록 무도하지만 이와 같은 신하가 있으니, 어찌 보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전차 500승을 보내 초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신포서의 충성은 오자서의 복수와 대비된다. 한 사람(오자서)은 원한으로 초나라를 멸하려 하고, 다른 한 사람(신포서)은 의리로 초나라를 지키려 한다. 두 친구의 약속이 극적으로 충돌하는 이 장면은 사마천이 가장 좋아하는 ‘운명의 아이러니’다.


⑥ 전쟁의 결과 — 오나라의 패권

원문: 六月,败吴兵於稷。会吴王久留楚求昭王,而阖庐弟夫概乃亡归,自立为王。阖庐闻之,乃释楚而归,击其弟夫概。夫概败走,遂奔楚。楚昭王见吴有内乱,乃复入郢。 后二岁,阖庐使太子夫差将兵伐楚,取番。楚惧吴复大来,乃去郢,徙於鄀。当是时,吴以伍子胥、孙武之谋,西破彊楚,北威齐晋,南服越人。 번역: 6월, 진군이 직(稷)에서 오군을 격파했다. 마침 오왕 합려가 오래 초나라에 머물며 소왕을 찾고 있을 때, 합려의 아우 부개가 도망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합려가 이 소식을 듣고 초나라를 버리고 돌아와 아우 부개를 공격했다. 부개가 패주해 초나라로 도망쳤다. 초소왕은 오나라에 내란이 있음을 보고 다시 영으로 돌아왔다. 2년 후, 합려가 태자 부차를 시켜 초나라를 쳐 번(番)을 빼앗았다.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대규모로 올까 두려워 영을 버리고 약(鄀)으로 천도했다. 이 당시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략으로 서쪽으로 강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 제(齊)·진(晋)을 위협하고, 남쪽으로 월(越)을 복종시켰다.

오자서의 복수는 완성되었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진나라의 개입, 부개의 반란, 초나라의 재기로 인해 오나라는 초나라를 완전히 병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자서와 손무의 전략은 오나라를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제5절: 복수 이후 — 충신의 최후

섹션 제목: “제5절: 복수 이후 — 충신의 최후”

其后四年,孔子相鲁。 后五年,伐越。越王句践迎击,败吴於姑苏,伤阖庐指,军卻。阖庐病创将死,谓太子夫差曰:“尔忘句践杀尔父乎?“夫差对曰:“不敢忘。“是夕,阖庐死。夫差既立为王,以伯嚭为太宰,习战射。二年后伐越,败越於夫湫。越王句践乃以馀兵五千人栖於会稽之上,使大夫种厚币遗吴太宰嚭以请和,求委国为臣妾。吴王将许之。伍子胥谏曰:“越王为人能辛苦。今王不灭,后必悔之。“吴王不听,用太宰嚭计,与越平。 其后五年,而吴王闻齐景公死而大臣争宠,新君弱,乃兴师北伐齐。伍子胥谏曰:“句践食不重味,吊死问疾,且欲有所用之也。此人不死,必为吴患。今吴之有越,犹人之有腹心疾也。而王不先越而乃务齐,不亦谬乎!“吴王不听,伐齐,大败齐师於艾陵,遂威邹鲁之君以归。益疏子胥之谋。 其后四年,吴王将北伐齐,越王句践用子贡之谋,乃率其众以助吴,而重宝以献遗太宰嚭。太宰嚭既数受越赂,其爱信越殊甚,日夜为言於吴王。吴王信用嚭之计。伍子胥谏曰:“夫越,腹心之病,今信其浮辞诈伪而贪齐。破齐,譬犹石田,无所用之。且盘庚之诰曰:‘有颠越不恭,劓殄灭之,俾无遗育,无使易种于兹邑。‘此商之所以兴。原王释齐而先越;若不然,后将悔之无及。“而吴王不听,使子胥於齐。子胥临行,谓其子曰:“吾数谏王,王不用,吾今见吴之亡矣。汝与吴俱亡,无益也。“乃属其子於齐鲍牧,而还报吴。 吴太宰嚭既与子胥有隙,因谗曰:“子胥为人刚暴,少恩,猜贼,其怨望恐为深祸也。前日王欲伐齐,子胥以为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子胥耻其计谋不用,乃反怨望。而今王又复伐齐,子胥专愎彊谏,沮毁用事,徒幸吴之败以自胜其计谋耳。今王自行,悉国中武力以伐齐,而子胥谏不用,因辍谢,详病不行。王不可不备,此起祸不难。且嚭使人微伺之,其使於齐也,乃属其子於齐之鲍氏。夫为人臣,内不得意,外倚诸侯,自以为先王之谋臣,今不见用,常鞅鞅怨望。原王早图之。“吴王曰:“微子之言,吾亦疑之。“乃使使赐伍子胥属镂之剑,曰:“子以此死。“伍子胥仰天叹曰:“嗟乎!谗臣嚭为乱矣,王乃反诛我。我令若父霸。自若未立时,诸公子争立,我以死争之於先王,几不得立。若既得立,欲分吴国予我,我顾不敢望也。然今若听谀臣言以杀长者。“乃告其舍人曰:“必树吾墓上以梓,令可以为器;而抉吾眼县吴东门之上,以观越寇之入灭吴也。“乃自刭死。吴王闻之大怒,乃取子胥尸盛以鸱夷革,浮之江中。吴人怜之,为立祠於江上,因命曰胥山。 吴王既诛伍子胥,遂伐齐。齐鲍氏杀其君悼公而立阳生。吴王欲讨其贼,不胜而去。其后二年,吴王召鲁卫之君会之橐皋。其明年,因北大会诸侯於黄池,以令周室。越王句践袭杀吴太子,破吴兵。吴王闻之,乃归,使使厚币与越平。后九年,越王句践遂灭吴,杀王夫差;而诛太宰嚭,以不忠於其君,而外受重赂,与己比周也。

① 합려의 죽음과 부차의 등장

원문: 后五年,伐越。越王句践迎击,败吴於姑苏,伤阖庐指,军卻。阖庐病创将死,谓太子夫差曰:“尔忘句践杀尔父乎?“夫差对曰:“不敢忘。“是夕,阖庐死。夫差既立为王,以伯嚭为太宰,习战射。二年后伐越,败越於夫湫。 번역: 5년 후 월(越)을 정벌했다. 월왕 구천(句践)이 맞서 싸워 오군을 고소(姑苏)에서 격파하고 합려의 손가락에 부상을 입혔다. 군대가 물러났다. 합려가 상처가 악화되어 죽으려 할 때 태자 부차(夫差)에게 말했다: “네가 구천이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부차가 대답했다: “감히 잊지 못하겠나이다.” 그날 밤 합려가 죽었다. 부차가 즉위하여 왕이 되고, 백비(伯嚭)를 태재(太宰)로 삼고, 전투와 사격을 훈련했다. 2년 후 월나라를 쳐 부추(夫湫)에서 격파했다.

합려의 유언은 아이러니한 복선이 된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하지만, 정작 충신 오자서의 간언을 무시하고 원수 구천을 살려주는가 하면, 나중에는 오자서를 죽인다.


② 첫 번째 간언 — 월과의 화평 반대

원문: 越王句践乃以馀兵五千人栖於会稽之上,使大夫种厚币遗吴太宰嚭以请和,求委国为臣妾。吴王将许之。伍子胥谏曰:“越王为人能辛苦。今王不灭,后必悔之。“吴王不听,用太宰嚭计,与越平。 번역: 월왕 구천이 남은 병사 5천 명으로 회계산(会稽)에 주둔하며, 대부 문종(文种)을 시켜 후한 예물로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 뇌물을 주어 화친을 청하고, 나라를 바쳐 신하와 노비가 되기를 구했다. 오왕이 허락하려 하자 오자서가 간언했다: “월왕 구천은 고생을 견딜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왕께서 그를 멸하지 않으시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오왕이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책을 따라 월과 화평했다.

오자서는 구천의 인물됨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월왕은 고생을 견딜 줄 아는 사람(能辛苦)” — 이 한마디에 구천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부차는 백비의 뇌물에 눈이 멀어 오자서의 간언을 무시한다.


③ 두 번째 간언 — 제나라 원정 반대

원문: 其后五年,而吴王闻齐景公死而大臣争宠,新君弱,乃兴师北伐齐。伍子胥谏曰:“句践食不重味,吊死问疾,且欲有所用之也。此人不死,必为吴患。今吴之有越,犹人之有腹心疾也。而王不先越而乃务齐,不亦谬乎!“吴王不听,伐齐,大败齐师於艾陵,遂威邹鲁之君以归。益疏子胥之谋。 번역: 5년 후 오왕이 제경공(齊景公)이 죽고 대신들이 총애를 다투며 새 군주가 약하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나라를 정벌했다. 오자서가 간언했다: “구천은 음식에 두 가지 맛을 겸하지 않고 초상난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문병하며, 그 뜻은 이들을 쓰려는 데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오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오나라에 있어 월은 마치 사람에게 있어 복심(腹心)의 병과 같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월을 먼저 처리하지 않고 제나라를 서두르시니, 이 또한 잘못이 아닙니까!” 오왕이 듣지 않고 제나라를 정벌하여 애릉(艾陵)에서 제군을 크게 격파하고 추(邹)·노(鲁)의 군주를 위압하며 돌아왔다. 이후로 더욱 오자서의 계책을 멀리했다.

부차는 제나라 정벌의 성공으로 자신만만해진다. 오자서의 경고가 현명했음에도 승리의 기쁨이 귀를 막는다. 이는 전형적인 ‘성공의 함정’이다.


④ 세 번째 간언과 참소

원문: 其后四年,吴王将北伐齐,越王句践用子贡之谋,乃率其众以助吴,而重宝以献遗太宰嚭。太宰嚭既数受越赂,其爱信越殊甚,日夜为言於吴王。吴王信用嚭之计。伍子胥谏曰:“夫越,腹心之病,今信其浮辞诈伪而贪齐。破齐,譬犹石田,无所用之。原王释齐而先越;若不然,后将悔之无及。“而吴王不听,使子胥於齐。子胥临行,谓其子曰:“吾数谏王,王不用,吾今见吴之亡矣。汝与吴俱亡,无益也。“乃属其子於齐鲍牧,而还报吴。 吴太宰嚭既与子胥有隙,因谗曰:“子胥为人刚暴,少恩,猜贼,其怨望恐为深祸也。前日王欲伐齐,子胥以为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子胥耻其计谋不用,乃反怨望。而今王又复伐齐,子胥专愎彊谏,沮毁用事,徒幸吴之败以自胜其计谋耳。今王自行,悉国中武力以伐齐,而子胥谏不用,因辍谢,详病不行。王不可不备,此起祸不难。且嚭使人微伺之,其使於齐也,乃属其子於齐之鲍氏。夫为人臣,内不得意,外倚诸侯,自以为先王之谋臣,今不见用,常鞅鞅怨望。原王早图之。” 번역: 4년 후 오왕이 다시 북쪽으로 제나라를 정벌하려 했다. 월왕 구천이 자공(子贡)의 계략을 써서 그 무리를 이끌고 오나라를 도우면서 중보(重宝)를 태재 백비에게 바쳤다. 백비는 이미 여러 번 월나라의 뇌물을 받아 월나라를 극히 사랑하고 신임하며 밤낮으로 오왕에게 말했다. 오왕은 백비의 계책을 믿고 썼다. 오자서가 간언했다: “월나라는 복심의 병입니다. 지금 그들의 허황된 말과 속임수를 믿고 제나라를 탐내다니, 제나라를 부순들 돌밭(石田)과 같아 쓸데가 없습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제나라를 버리고 먼저 월나라를 처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오왕이 듣지 않고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오자서가 떠나며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여러 번 간언했으나 왕이 쓰지 않으니, 나는 오나라가 망할 것을 보았다. 네가 오나라와 함께 망해봤자 이익이 없다.” 이에 그의 아들을 제나라의 포목(鲍牧)에게 맡기고 돌아와서 오왕에게 보고했다. 오태재 백비가 오자서와 틈이 생기자, 참소했다: “오자서는 성격이 강포하고 은혜가 적으며 의심이 많아, 그의 원망이 큰 화를 불러올까 두렵습니다. 지난번 왕께서 제나라를 치려 할 때 오자서는 불가하다 했으나, 왕이 끝내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오자서는 자기 계책이 쓰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도리어 원망합니다. 지금 왕께서 또 제나라를 치려 하자 오자서는 완강히 간언하며 일을 망치려 합니다. 다만 오나라가 패하기를 바라면서 자기의 계략이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 친히 가셔서 나라 안의 모든 무력을 동원해 제나라를 치려 하시는데, 오자서는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사양하고 병을 핑계로 따르지 않습니다. 왕께서 대비하지 않으시면 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또한 제가 사람을 시켜 은밀히 살펴보니, 그가 제나라에 사신 갔을 때 자기 아들을 제나라의 포씨(鲍氏)에게 맡겼습니다. 신하된 자로서 안으로 뜻을 얻지 못하고 밖으로 제후에게 의탁하며, 스스로 선왕의 모신이라 자처하지만 지금은 쓰이지 않아 항상 불평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왕께서 미리 도모하소서.” 번역 계속: 오왕이 말했다: “그대의 말이 없었더라도 나 또한 의심하고 있었다.” 이에 사자를 시켜 오자서에게 속루(属镂)의 칼을 내리며 말했다: “그대는 이 칼로 죽어라.”

백비의 참소는 모던 조직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진실(아들을 제나라에 맡긴 것)을 골라내어 왜곡하고, 충성(선왕의 공신)을 역이용하며, 군주의 의심(부차는 이미 오자서를 탐탁찮게 여겼다)을 자극한다.


⑤ 오자서의 최후

원문: 伍子胥仰天叹曰:“嗟乎!谗臣嚭为乱矣,王乃反诛我。我令若父霸。自若未立时,诸公子争立,我以死争之於先王,几不得立。若既得立,欲分吴国予我,我顾不敢望也。然今若听谀臣言以杀长者。“乃告其舍人曰:“必树吾墓上以梓,令可以为器;而抉吾眼县吴东门之上,以观越寇之入灭吴也。“乃自刭死。吴王闻之大怒,乃取子胥尸盛以鸱夷革,浮之江中。吴人怜之,为立祠於江上,因命曰胥山。 번역: 오자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아! 참소하는 신하 백비가 난을 일으켰는데, 왕이 도리어 나를 죽이는구나. 나는 네 아버지(합려)로 하여금 패업을 이루게 했다. 네가 아직 즉위하지 않았을 때 여러 공자들이 왕위를 다툴 때,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선왕께 다투어 간청해 간신히 네가 즉위하게 했다. 네가 즉위한 후에는 오나라를 나누어 나에게 주려 했으나, 내가 감히 바라지 않는다 사양했다. 그런데 지금 네가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늙은 이를 죽이는구나!” 이에 그의 사인(舍人)에게 말했다: “반드시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관재(棺材)를 만들게 하고, 내 두 눈을 뽑아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두어라 — 월나라 도적들이 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겠노라!”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오왕이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가죽 주머니(鸱夷革)에 넣어 강물에 띄워 버렸다. 오나라 사람들이 그를 가엾이 여겨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산 이름을 서산(胥山)이라 불렀다.

오자서의 마지막 말(“두 눈을 뽑아 동문 위에 걸어라”)은 역사상 가장 처절한 유언 중 하나다. 자신이 지켜온 나라가 망하는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이 말은, 부차가 오자서를 죽인 후 월나라에 멸망당하는 아이러니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⑥ 오나라의 멸망 — 인과응보

원문: 吴王既诛伍子胥,遂伐齐。齐鲍氏杀其君悼公而立阳生。吴王欲讨其贼,不胜而去。其后二年,吴王召鲁卫之君会之橐皋。其明年,因北大会诸侯於黄池,以令周室。越王句践袭杀吴太子,破吴兵。吴王闻之,乃归,使使厚币与越平。后九年,越王句践遂灭吴,杀王夫差;而诛太宰嚭,以不忠於其君,而外受重赂,与己比周也。 번역: 오왕이 오자서를 죽인 후 제나라를 정벌했다. 제나라의 포씨가 군주 도공(悼公)을 죽이고 양생(陽生)을 세웠다. 오왕이 그 적을 토벌하려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2년 후 오왕이 노(鲁)·위(卫)의 군주를 불러 탁고(橐皋)에서 회합했다. 그 이듬해 북쪽으로 황지(黄池)에서 제후들과 대규모 회합을 열어 주실(周室)에 명령을 내렸다. 월왕 구천이 오나라 태자를 습격해 죽이고 오군을 격파했다. 오왕이 소식을 듣고 돌아와 사신을 보내 후한 예물로 월나라와 화평했다. 9년 후 월왕 구천이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오왕 부차를 죽였으며, 태재 백비도 죽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밖으로는 많은 뇌물을 받아 그 몸을 남과 비위(比周, 결탁)했기 때문이다.

오자서의 유언은 적중한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는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며 얼굴을 가리고 자결한다. 백비는 부차의 신임을 받았으나 오히려 가장 먼저 처형된다.


제6절: 부록 — 백공승(白公胜)의 난

섹션 제목: “제6절: 부록 — 백공승(白公胜)의 난”

伍子胥初所与俱亡故楚太子建之子胜者,在於吴。吴王夫差之时,楚惠王欲召胜归楚。叶公谏曰:“胜好勇而阴求死士,殆有私乎!“惠王不听。遂召胜,使居楚之边邑鄢,号为白公。白公归楚三年而吴诛子胥。 白公胜既归楚,怨郑之杀其父,乃阴养死士求报郑。归楚五年,请伐郑,楚令尹子西许之。兵未发而晋伐郑,郑请救於楚。楚使子西往救,与盟而还。白公胜怒曰:“非郑之仇,乃子西也。“胜自砺剑,人问曰:“何以为?“胜曰:“欲以杀子西。“子西闻之,笑曰:“胜如卵耳,何能为也。” 其后四岁,白公胜与石乞袭杀楚令尹子西、司马子綦於朝。石乞曰:“不杀王,不可。“乃劫王如高府。石乞从者屈固负楚惠王亡走昭夫人之宫。叶公闻白公为乱,率其国人攻白公。白公之徒败,亡走山中,自杀。而虏石乞,而问白公尸处,不言将亨。石乞曰:“事成为卿,不成而亨,固其职也。“终不肯告其尸处。遂亨石乞,而求惠王复立之。

① 백공승의 복수

원문: 伍子胥初所与俱亡故楚太子建之子胜者,在於吴。吴王夫差之时,楚惠王欲召胜归楚。叶公谏曰:“胜好勇而阴求死士,殆有私乎!“惠王不听。遂召胜,使居楚之边邑鄢,号为白公。白公归楚三年而吴诛子胥。 번역: 오자서가 처음에 함께 망명했던 옛 초나라 태자 건의 아들 승(勝)이 오나라에 있었다. 오왕 부차 때 초혜왕(惠王)이 승을 불러 초나라로 돌아오게 하려 했다. 섭공(叶公)이 간언했다: “승은 용맹을 좋아하고 은밀히 결사대를 구하니, 사사로운 뜻이 있는 듯합니다!” 혜왕이 듣지 않고 승을 불러 초나라의 변경읍 언(鄢)에 살게 하고 백공(白公)이라 칭하게 했다. 백공이 초나라에 돌아온 지 3년 만에 오자서가 죽임을 당했다.

② 복수의 전염

원문: 白公胜既归楚,怨郑之杀其父,乃阴养死士求报郑。归楚五年,请伐郑,楚令尹子西许之。兵未发而晋伐郑,郑请救於楚。楚使子西往救,与盟而还。白公胜怒曰:“非郑之仇,乃子西也。“胜自砺剑,人问曰:“何以为?“胜曰:“欲以杀子西。“子西闻之,笑曰:“胜如卵耳,何能为也。” 번역: 백공승이 초나라에 돌아온 후, 정나라가 아버지를 죽인 원한을 품고 은밀히 결사대를 길러 정나라에 복수하고자 했다. 초나라에 돌아온 지 5년 만에 정나라 정벌을 청하자 초나라의 영윤 자서(子西)가 허락했다.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진(晋)나라가 정나라를 치자, 정나라가 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초나라가 자서를 보내 구원하게 하고, 정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백공승이 노하여 말했다: “정나라의 원수라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서다.” 승이 스스로 칼을 갈았다. 사람이 묻자 “무엇에 쓰려는가?” 승이 말했다: “자서를 죽이려는 것이다.” 자서가 듣고 웃으며 말했다: “저 알만한 것이 무얼 하겠느냐(胜如卵耳)?”

백공승의 복수는 오자서의 복수를 그대로 반복한다. 오자서가 데리고 다니던 아이가 자라 또 다른 복수를 실행하는 이 구조는 ‘원한은 유전된다’는 주제를 강화한다.

③ 백공의 최후

원문: 其后四岁,白公胜与石乞袭杀楚令尹子西、司马子綦於朝。石乞曰:“不杀王,不可。“乃劫王如高府。石乞从者屈固负楚惠王亡走昭夫人之宫。叶公闻白公为乱,率其国人攻白公。白公之徒败,亡走山中,自杀。而虏石乞,而问白公尸处,不言将亨。石乞曰:“事成为卿,不成而亨,固其职也。“终不肯告其尸处。遂亨石乞,而求惠王复立之。 번역: 4년 후 백공승이 석기(石乞)와 함께 조정에서 초나라의 영윤 자서와 사마 자기(子綦)를 습격해 죽였다. 석기가 말했다: “왕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에 왕을 협박해 고부(高府)로 갔다. 석기의 수행원 굴고(屈固)가 초혜왕을 업고 도망쳐 소부인(昭夫人)의 궁으로 갔다. 섭공이 백공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나라 사람들을 이끌고 백공을 공격했다. 백공의 무리가 패해 산속으로 도망쳐 자살했다. 석기를 사로잡아 백공의 시체 있는 곳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아 삶아 죽이겠다고 했다. 석기가 말했다: “일이 성공하면 경(卿)이 되고 성공하지 못하면 삶겨 죽는 것이 본래의 직분이다.” 끝내 시체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석기를 삶아 죽이고 혜왕을 찾아 다시 왕위에 세웠다.

석기의 충성은 백공에 대한 의리로, 오자서에 대한 신포서와 대비된다. 석기는 “일이 성공하면 경이 되고 성공하지 못하면 삶겨 죽는 것이 본래 직분”이라며 끝까지 말하지 않고 처형당한다.


太史公曰:怨毒之於人甚矣哉!王者尚不能行之於臣下,况同列乎!向令伍子胥从奢俱死,何异蝼蚁。弃小义,雪大耻,名垂於后世,悲夫!方子胥窘於江上,道乞食,志岂尝须臾忘郢邪?故隐忍就功名,非烈丈夫孰能致此哉?白公如不自立为君者,其功谋亦不可胜道者哉!

태사공이 말한다: 원한(怨毒)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실로 지독한 것이다! 왕도 신하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동료 사이에랴! 만약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개미나 벌레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이름을 후세에 드리우니, 슬프도다! 오자서가 강가에서 곤경에 처하고 길에서 구걸할 때에도, 그의 뜻에 어찌 잠시라도 영(郢)을 잊은 때가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참고 견디어(隐忍) 공명을 이룸이니, 열장부(烈丈夫)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에 이를 수 있겠는가? 백공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면 그의 공과 계책 또한 가히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태사공왈’은 사마천 개인의 인생관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구절 중 하나다. 세 가지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

  1. 원한(怨毒)의 힘: “원한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극하다” — 사마천은 이 말을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자신이 궁형(腐刑)을 당한 후 사기를 집필한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규로 썼다. 이 구절은 #7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의 발분저서(发愤著书) 정신과 직접 연결된다.

  2. 은인(隐忍)의 가치: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었다” — 사마천은 부끄러운 형벌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사기를 완성한 자신의 길을 오자서에게서 발견한다. 오자서가 죽음을 택하지 않고 도망친 선택을 ‘열장부(烈丈夫)‘라 부르는 것은, 궁형(腐刑)을 당하고도 죽지 않은 자신을 변호하는 말이기도 하다.

  3. 발분저서(发愤著书)의 전형: 오자서의 복수는 사마천이 태사공자서에서 말한 ‘옛 성현이 분노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는 발분저서 사슬의 고리 중 하나다. 원한을 동력으로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오자서와 사마천은 같은 길을 걷는다.


단계시기중심 사건주제
프롤로그초 평왕 시대평왕이 며느리를 빼앗고 오사를 처형부패한 권력의 시작
갈림길오사 처형 직후오상은 죽고, 오자서는 도망의리 vs 복수
망명~10년소관·어부·구걸 끝에 오나라 도착인내와 고난
준비합려 시대전제저 천거, 손무와 협력, 전략적 전쟁지혜와 인내
복수합려 9년초나라 점령, 편시삼백복수의 완성
충성부차 시대세 차례 간언, 참소로 죽음충신의 비극
여운오 멸망부차의 최후, 오자서 사당인과응보
부록초 혜왕 시대백공승의 난복수의 유전

  1. 복수의 시간 규모(Time Horizon of Revenge): 오자서는 복수에 16년이 걸렸다. 즉각적인 복수가 아니라 기회를 기다릴 줄 알았다. 단기 감정을 참고 전략적으로 기다리면 10년이 지나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

  2. 역행취사(倒行逆施)의 역설: “해가 저물었고 갈 길이 멀기에 거꾸로 행동한다” — 압도적인 불리함 앞에서는 정석 대신 반직관적 행동이 필요하다. 오자서는 상식을 깨는 행동으로 복수를 완성했다.

  3. 원한의 전염성(Revenge Contagion): 오자서는 복수를 완수했지만, 그가 구출한 아이(백공승)는 또 다른 복수를 이어간다. 복수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체계적으로 전염된다.

  4. 충신의 딜레마(Loyalty Trap): 복수를 위해 쌓은 공로와 신뢰는, 충성으로 전환된 후에는 새로운 왕에게 위협으로 인식된다. 오자서는 합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가, 부차에게는 숙청 대상이 된다.

  5. 은인(隐忍)의 힘: “작은 의리(죽음)를 버리고 큰 의리(복수·공명)를 이루었다” — 감정적 즉응보다 전략적 인내가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 사마천이 가장 강조하는 미덕.


  • 종합 척추: 춘추전국의 모사와 전략가들
  • 사기 총론: 사기(史記) 총론
  • 관련 열전: 손자오기열전, 자객열전, 상군열전
  • 관련 인물: 사마천(司馬遷)
  • 오자서열전 × 멍거 오판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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