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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본기 (五帝本紀)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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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일(卷一) 본기제일(本紀第一)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 본질: 오제본기는 《사기》 130편 전체의 서막이자, 신화와 전설의 안개를 걷어내고 ‘인간의 덕(德)과 질서’를 역사 서술의 출발점으로 삼은 사마천 사학의 선언문이다. 삼황(복희·여와·신농)의 비현실적 신화를 과감히 버리고,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문명의 시조 황제(黃帝 軒轅)로부터 전욱·제곡·요(堯)·순(舜)으로 이어지는 5대 제왕의 통치 원형을 정립했다. 특히 혈연 세습이 아닌 가장 유능하고 덕망 있는 자에게 천하를 물려준 요순의 선양(禪讓)은 동아시아 정치철학이 지향한 최고봉의 도덕적 이상이자 유가 거버넌스의 영원한 나침반이다.

제왕핵심 정체성 및 통치 업적사마천의 역사적 평가
황제 (軒轅)탁록·판천 대전 승리(치우·염제 정벌), 문자·의약·역법 등 문명 창제“신령스러워 만물을 분별하고 도를 밝힘” (문명의 시조)
전욱 (高陽)절지천통(絶地天通) — 신과 인간의 질서 확립, 천문·역법 정비“고요하고 깊어 계책이 있고, 일을 처리함에 통달함”
제곡 (高辛)만물에 순응하고 백성을 교화, 공평무사한 인사 배치“해와 달처럼 널리 비추고 바람과 비처럼 때를 맞춤”
요 (放勳)사계절 절기 제정, 백성 화합, 아들 단주 대신 순을 발탁하여 선양“그 인자함은 하늘과 같고 그 지혜는 신과 같다”
순 (重華)지극한 효성으로 가정을 감화, 22인 인재 등용, 사흉(四凶) 척결 및 우에게 선양“천하의 밝은 덕(明德)은 모두 우순(虞舜)에게서 시작되었다”

2. 핵심 멘탈 모델 및 정치철학적 교훈

섹션 제목: “2. 핵심 멘탈 모델 및 정치철학적 교훈”

① 천하위공 (天下爲公) — 선양의 정치학

섹션 제목: “① 천하위공 (天下爲公) — 선양의 정치학”
  • 요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3년간 순의 인품과 능력을 혹독하게 시험(섭정)한 뒤 물려줌. “천하의 고통을 대가로 한 사람(아들)을 이롭게 할 수 없다.”
  • 교훈: 공적 조직과 권력의 계승은 사적 혈연이 아니라 오직 역량과 도덕성에 기반해야 지속 가능하다.

② 거현임능 (擧賢任能) — 사흉 처단과 인재 등용

섹션 제목: “② 거현임능 (擧賢任能) — 사흉 처단과 인재 등용”
  • 순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4대 악인(사흉: 혼돈·궁기·도철·도올)을 변경으로 유배해 악을 막고, 우(치수)·후직(농업)·설(교육)·고요(사법)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를 등용함.
  • 교훈: 리더십의 본질은 악을 단호히 척결하여 시스템의 오염을 막고, 적재적소에 최고의 전문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다.

③ 택기언유아자 (擇其言尤雅者) — 사마천의 합리주의 사관

섹션 제목: “③ 택기언유아자 (擇其言尤雅者) — 사마천의 합리주의 사관”
  • 황당무계한 기적이나 신화를 배제하고, 인간의 삶과 도덕에 보탬이 되는 가장 전아(典雅)한 기록만을 엄선하여 역사를 기술함.
  • 교훈: 데이터와 정보를 다룰 때는 자극적인 잡음(Noise)을 걷어내고 실질적인 본질과 가치(Signal)를 추출해야 한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黃帝者,少典之子,姓公孫,名曰軒轅。生而神靈,弱而能言,幼而徇齊,長而敦敏,成而聰明。

번역: 황제는 소전(少典)의 아들로,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령스러워, 어렸을 때 말을 할 수 있었고, 어려서는 민첩하고 고르며, 자라서는 돈후하고 민첩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총명했다.

주석: 황제의 탄생 설화는 전형적인 ‘성인(聖人) 서사’다. 보통 사람과 다른 출생과 조숙함은 그가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한다.


1-2. 천하 통일 — 염제와 치우 정벌

섹션 제목: “1-2. 천하 통일 — 염제와 치우 정벌”

軒轅之時,神農氏世衰。諸侯相侵伐,暴虐百姓,而神農氏弗能征。於是軒轅乃習用干戈,以征不享,諸侯咸來賓從。而蚩尤最為暴,莫能伐。炎帝欲侵陵諸侯,諸侯咸歸軒轅。軒轅乃修德振兵,治五氣,藝五種,撫萬民,度四方,教熊羆貔貅貙虎,以與炎帝戰於阪泉之野。三戰然後得其志。蚩尤作亂,不用帝命。於是黃帝乃徵師諸侯,與蚩尤戰於涿鹿之野,遂禽殺蚩尤。而諸侯咸尊軒轅為天子,代神農氏,是為黃帝。天下有不順者,黃帝從而征之,平者去之,披山通道,未嘗寧居。

번역: 헌원(軒轅) 때에 신농씨(神農氏)의 세력이 쇠퇴했다. 제후들이 서로 침략하고 백성들을 학대했으나 신농씨는 정벌하지 못했다. 이에 헌원이 창과 방패를 익혀 조공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와서 복종했다. 치우(蚩尤)가 가장 포악했으나 정벌할 수 없었다. 염제(炎帝)가 제후들을 침략하려 하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에게 돌아갔다. 헌원이 덕을 닦고 군사를 일으켜 오기(五氣)를 다스리고 오곡(五穀)을 심으며 만민을 어루만지고 사방을 헤아렸으며, 곰·표법·맹수들을 가르쳐 염제와 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싸웠다. 세 번 싸운 후에야 뜻을 이루었다. 치우가 난을 일으켜 제명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황제가 제후들의 군대를 징발하여 치우와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싸워 마침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천자로 받들어 신농씨를 대신하게 하니, 이가 곧 황제다. 천하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황제가 따라가 정벌하고, 평정되면 떠났으며, 산을 헤치고 길을 내느라 편히 쉰 적이 없었다.

주석: 염제-치우-황제의 3자 구도는 중국 고대 부족 연맹의 통일 과정을 상징한다. 특히 ‘맹수를 가르쳐 싸웠다’는 표현은 각 부족의 토템(熊·羆·貔·貅·貙·虎)을 깃발로 삼은 연합군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탁록 전투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통일 전쟁으로 기록된다.


東至于海,登丸山,及岱宗。西至于空桐,登雞頭。南至于江,登熊、湘。北逐葷粥,合符釜山,而邑于涿鹿之阿。遷徙往來無常處,以師兵為營衛。官名皆以雲命,為雲師。置左右大監,監于萬國。萬國和,而鬼神山川封禪與為多焉。獲寶鼎,迎日推筴。舉風后、力牧、常先、大鴻以治民。順天地之紀,幽明之占,死生之說,存亡之難。時播百穀草木,淳化鳥獸蟲蛾,旁羅日月星辰水波土石金玉,勞勤心力耳目,節用水火材物。有土德之瑞,故號黃帝。

번역: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환산(丸山)에 오르고 태산(岱宗)에 이르렀다. 서쪽으로 공동(空桐)에 이르러 계두(雞頭)에 올랐다. 남쪽으로 강(江)에 이르러 웅(熊)·상(湘)에 올랐다. 북쪽으로 훈육(葷粥)을 쫓고 부산(釜山)에서 부절을 합쳤으며 탁록의 언덕에 도읍했다. 옮겨 다니며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군대로 진영을 삼아 호위했다. 관직 이름을 모두 구름으로 정해 운사(雲師)라 했다. 좌우 대감(大監)을 두어 만국을 감독했다. 만국이 화목했으며, 귀신과 산천의 봉선(封禪)에 관한 일이 많았다. 보정(寶鼎)을 얻어 해를 맞이하며 점을 쳤다. 풍후(風后)·력목(力牧)·상선(常先)·대홍(大鴻)을 등용하여 백성을 다스렸다. 천지의 법도에 순응하고, 음양의 점을 치며, 죽고 사는 이치를 말하고, 존망의 어려움을 연구했다. 때에 맞춰 백곡과 초목을 심고, 새와 짐승과 벌레를 길들였으며,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물과 흙과 돌과 금과 옥을 두루 살피고, 마음과 힘과 귀와 눈을 수고롭게 하며, 물과 불과 재물을 절약해 사용했다. 토덕(土德)의 상서가 있어 황제라 불렸다.

주석: 황제의 통치는 단순한 정복을 넘어 문명 전반의 기초를 닦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관직 체계, 역법, 농업, 가축 사육, 자원 관리 등 제도적 기초를 모두 황제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은 중국 고대의 ‘문명 기원 서사’다.


黃帝二十五子,其得姓者十四人。

黃帝居于軒轅之丘,而娶于西陵之女,是為嫘祖為黃帝正妃,生二子,其後皆有天下:其一曰玄囂,是為青陽,青陽降居江水;其二曰昌意,降居若水。昌意娶蜀山氏女,曰昌仆,生高陽,高陽有聖德焉。黃帝崩,葬橋山。其孫昌意之子高陽立,是為帝顓頊也。

번역: 황제에게는 2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성(姓)을 받은 자가 14명이었다.

황제는 헌원의 언덕에 살면서 서릉(西陵)의 딸을 맞이했는데, 이가 곧 누조(嫘祖)로 황제의 정비(正妃)가 되었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모두 천하를 얻었다: 첫째는 현효(玄囂)로 청양(青陽)이라 하며 강수(江水)로 내려갔다; 둘째는 창의(昌意)로 약수(若水)로 내려갔다. 창의가 촉산씨의 딸 창복(昌仆)을 맞이하여 고양(高陽)을 낳았는데, 고양에게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황제가 붕어하여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다. 그 손자 창의의 아들 고양이 서니, 이가 곧 전욱(帝顓頊)이다.

주석: 황제의 25자 중 성을 받은 14명은 이후 중국의 주요 씨족(氏族)으로 분화했다는 전승의 근거다. 누조(嫘祖)는 양잠(養蠶)을 발명한 인물로도 유명하며, 황제를 문명의 시조로 만드는 다양한 문화적 공헌 설화가 연결되어 있다.


帝顓頊高陽者,黃帝之孫而昌意之子也。靜淵以有謀,疏通而知事;養材以任地,載時以象天,依鬼神以制義,治氣以教化,絜誠以祭祀。北至于幽陵,南至于交阯,西至于流沙,東至于蟠木。動靜之物,大小之神,日月所照,莫不砥屬。

帝顓頊生子曰窮蟬。顓頊崩,而玄囂之孫高辛立,是為帝嚳。

번역: 전욱고양(帝顓頊高陽)은 황제의 손자이자 창의의 아들이다. 고요하고 깊으며 꾀가 있었고, 통달하며 사리를 알았다. 재목(材木)을 길러 땅에 맞게 하고, 때를 받들어 하늘을 본받았으며, 귀신에 의지하여 의(義)를 제정하고, 기(氣)를 다스려 교화했으며, 정성껏 제사지냈다. 북쪽으로 유릉(幽陵)에 이르고, 남쪽으로 교지(交阯)에 이르고, 서쪽으로 유사(流沙)에 이르고, 동쪽으로 반목(蟠木)에 이르렀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큰 신과 작은 신, 해와 달이 비추는 곳, 모두 안정되어 속했다.

전욱이 아들 빈선(窮蟬)을 낳았다. 전욱이 붕어하자 현효(玄囂)의 손자 고신(高辛)이 서니 이가 곧 제곡(帝嚳)이다.

주석: 전욱은 ‘절지천통(絶地天通, 땅과 하늘의 소통을 끊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즉, 신과 인간이 직접 소통하던 것을 금지하고 제사 권한을 통치자가 독점하게 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정치 권력이 종교 권력을 흡수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帝嚳高辛者,黃帝之曾孫也。高辛父曰蟜極,蟜極父曰玄囂,玄囂父曰黃帝。自玄囂與蟜極皆不得在位,至高辛即帝位。高辛於顓頊為族子。

高辛生而神靈,自言其名。普施利物,不於其身。聰以知遠,明以察微。順天之義,知民之急。仁而威,惠而信,修身而天下服。取地之財而節用之,撫教萬民而利誨之,歷日月而迎送之,明鬼神而敬事之。其色郁郁,其德嶷嶷。其動也時,其服也士。帝嚳溉執中而遍天下,日月所照,風雨所至,莫不從服。

帝嚳娶陳鋒氏女,生放勛。娶娵訾氏女,生摯。帝嚳崩,而摯代立。帝摯立,不善(崩),而弟放勛立,是為帝堯。

번역: 제곡고신(帝嚳高辛)은 황제의 증손자다. 고신의 아버지는 교극(蟜極)이고, 교극의 아버지는 현효(玄囂)이며, 현효의 아버지는 황제다. 현효와 교극은 모두 즉위하지 못했고, 고신에 이르러 제위에 올랐다. 고신은 전욱의 족자(族子, 친척 아들)였다.

고신은 태어나면서 신령스러워 스스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널리 사물에 은혜를 베풀었지만 자신에게는 하지 않았다. 총명하여 먼 것을 알고, 밝아서 미세한 것을 살폈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백성의 급함을 알았다. 어질면서 위엄 있고, 은혜로우면서 미덥고, 몸을 닦아 천하가 복종했다. 땅의 재물을 취하되 절약해 쓰고, 만민을 어루만져 가르치고 이롭게 가르쳤으며, 해와 달을 역법으로 맞이하고 보내며, 귀신을 밝게 알고 공경해 섬겼다. 그 얼굴빛은 윤택하고 그 덕은 높고 컸다. 그의 움직임은 때에 맞았고, 그의 복장은 선비와 같았다. 제곡은 가운데를 잡아 천하에 두루 미쳤으니, 해와 달이 비추고 바람과 비가 미치는 곳마다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제곡이 진봉씨(陳鋒氏)의 딸을 맞이해 방훈(放勛)을 낳았다. 추자씨(娵訾氏)의 딸을 맞이해 지(摯)를 낳았다. 제곡이 붕어하자 지가 대신 즉위했다. 제지(帝摯)가 즉위했으나 잘 다스리지 못하고 죽자, 아우 방훈이 즉위하니 이가 곧 요(帝堯)다.

주석: 고신은 사마천의 서사에서 가장 덕망 높은 군주 중 한 명으로 그려진다. 특히 “가운데를 잡아 천하에 두루 미쳤다(溉執中而遍天下)“는 표현은 유가의 중용(中庸) 사상을 예고한다. 제지에 대한 단 한 줄의 평가(“不善”)는 불과(不肖)한 통치자를 간결하게 처리하는 사마천의 문체를 보여준다.


帝堯者,放勛。其仁如天,其知如神。就之如日,望之如雲。富而不驕,貴而不舒。黃收純衣,彤車乘白馬。能明馴德,以親九族。九族既睦,便章百姓。百姓昭明,合和萬國。

번역: 요(帝堯)는 방훈(放勛)이다. 그의 어짐이 하늘과 같고, 그의 지혜가 신과 같았다. 가까이 가면 해와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과 같았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귀하지만 게으르지 않았다. 누런 관에 순수한 옷을 입고, 붉은 수레에 백마를 탔다. 덕을 밝혀 아름답게 하여 구족(九族)을 친애하게 했다. 구족이 이미 화목하자, 백관(百姓)을 밝게 드러냈다. 백관이 밝아지고, 만국이 화합했다.

주석: “그 어짐이 하늘과 같다”는 표현은 요의 통치가 자연의 이치와 합치되었음을 의미한다. 유가 경전에서 요는 최고의 이상 군주로 반복 인용된다.


乃命羲、和,敬順昊天,數法日月星辰,敬授民時。分命羲仲,居郁夷,曰暘谷。敬道日出,便程東作。日中,星鳥,以殷中春。其民析,鳥獸字微。申命羲叔,居南交。便程南為,敬致。日永,星火,以正中夏。其民因,鳥獸希革。申命和仲,居西土,曰昧谷。敬道日入,便程西成。夜中,星虛,以正中秋。其民夷易,鳥獸毛毨。申命和叔;居北方,曰幽都。便在伏物。日短,星昴,以正中冬。其民燠,鳥獸氄毛。歲三百六十六日,以閏月正四時。信飭百官,眾功皆興。

번역: 이에 희(羲)씨와 화(和)씨에게 명하여 공경히 하늘을 따르고, 해와 달과 별의 법을 헤아려 백성에게 때를 가르쳐 주었다. 희중(羲仲)을 욱이(郁夷)의 양곡(暘谷)에 두어 해 뜨는 것을 공경히 인도하고 봄의 농사를 편리하게 하게 했다. 춘분(日中)에 별자리가 새(鳥, 주작)일 때 중춘(中春)을 정했다. 백성들은 흩어지고 새와 짐승은 새끼를 낳았다. 희숙(羲叔)을 남교(南交)에 두어 여름 일을 편리하게 하고 공경히 이루게 했다. 하지(日永)에 별자리가 불(火, 심성)일 때 중하(中夏)를 정했다. 백성들은 서로 인하여 살고 새와 짐승의 털이 드물어졌다. 화중(和仲)을 서토(西土)의 매곡(昧谷)에 두어 해 지는 것을 공경히 인도하고 가을 수확을 편리하게 하게 했다. 추분(夜中)에 별자리가 허(虛)일 때 중추(中秋)를 정했다. 백성들은 평안해지고 새와 짐승의 털이 새로 났다. 화숙(和叔)을 북방 유도(幽都)에 두어 겨울 저장을 편리하게 했다. 동지(日短)에 별자리가 묘(昴)일 때 중동(中冬)을 정했다. 백성들은 따뜻하게 있고 새와 짐승은 솜털이 났다. 1년을 366일로 하고 윤달로 사시(四時)를 바로잡았다. 백관을 믿고 단속하니 모든 공이 일어났다.

주석: 이 구절은 고대 중국의 천문학적 지식과 농업 역법을 상세히 기록한 귀중한 자료다. 사계절의 기준(춘분·하지·추분·동지), 별자리 관측, 그리고 366일+윤월 체계는 기원전 2천년기 중국의 고도로 발달한 달력 시스템을 증언한다. 참고로 오늘날에도 1년은 약 365.25일이므로 366일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계산이다.


堯曰:「誰可順此事?」 放齊曰:「嗣子丹朱開明。」 堯曰:「吁!頑凶,不用。」 堯又曰:「誰可者?」 讙兜曰:「共工旁聚布功,可用。」 堯曰:「共工善言,其用僻,似恭漫天,不可。」 堯又曰:「嗟,四嶽,湯湯洪水滔天,浩浩懷山襄陵,下民其憂,有能使治者?」 皆曰鯀可。堯曰:「鯀負命毀族,不可。」 嶽曰:「異哉,試不可用而已。」 堯於是聽嶽用鯀。九歲,功用不成。

번역: 요가 말했다: “누가 이 일(천하)을 순조롭게 맡을 수 있겠는가?” 방제(放齊)가 말했다: “후사자 단주(丹朱)가 총명합니다.” 요가 말했다: “아니! 완고하고 흉악하여 쓸 수 없다.” 요가 다시 말했다: “누가 적합한가?” 환두(讙兜)가 말했다: “공공(共工)이 두루 모아 공을 펼쳤으니 쓸 수 있습니다.” 요가 말했다: “공공은 말은 잘하지만, 쓰임이 치우쳐 공손한 척하지만 하늘을 업신여기니 쓸 수 없다.” 요가 또 말했다: “아! 사악(四嶽)이여, 넘실넘실 홍수가 하늘에 닿고, 끝없이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덮으니, 백성들이 근심하고 있구나. 다스릴 사람이 있는가?” 모두 곤(鯀)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요가 말했다: “곤은 명을 어기고 족류를 파괴하니 쓸 수 없다.” 사악이 말했다: “색다르긴 하지만 시험해 보고 쓸 수 없으면 그만입니다.” 요가 이에 사악의 말을 따라 곤을 썼다. 9년이 되도록 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석: 요의 후계자 선택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인사 판단의 신중함이다. 아들 단주를 ‘완고하고 흉악하다’고 평가하며 배제하고, 신하들의 추천을 들어보지만 공공과 곤의 결점을 정확히 간파한다. 곤을 임명한 결정은 대중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례다.


堯曰:「嗟!四嶽:朕在位七十載,汝能庸命,踐朕位?」 嶽應曰:「鄙德忝帝位。」 堯曰:「悉舉貴戚及疏遠隱匿者。」 眾皆言於堯曰:「有矜在民閒,曰虞舜。」 堯曰:「然,朕聞之。其何如?」 嶽曰:「盲者子。父頑,母嚚,弟傲,能和以孝,烝烝治,不至姦。」 堯曰:「吾其試哉。」 於是堯妻之二女,觀其德於二女。舜飭下二女於媯汭,如婦禮。

堯善之,乃使舜慎和五典,五典能從。乃遍入百官,百官時序。賓於四門,四門穆穆,諸侯遠方賓客皆敬。堯使舜入山林川澤,暴風雷雨,舜行不迷。堯以為聖,召舜曰:「女謀事至而言可績,三年矣。女登帝位。」 舜讓於德不懌。正月上日,舜受終於文祖。文祖者,堯大祖也。

번역: 요가 말했다: “아! 사악이여, 내가 재위한 지 70년이다. 너희가 내 명을 이어받아 내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느냐?” 사악이 대답했다: “저희는 덕이 없어 제위를 더럽힐 뿐입니다.” 요가 말했다: “귀척과 소원한 자와 숨은 자까지 모두 천거하라.” 무리가 모두 요에게 말했다: “민간에 홀아비가 있는데 우순(虞舜)이라 합니다.” 요가 말했다: “그래, 나도 들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사악이 말했다: “소경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간사하며, 동생은 거만하지만, 순이 효도로 잘 화목하게 하고 두텁게 다스려 간악에 이르지 않게 합니다.” 요가 말했다: “내가 시험해 보리라.” 이에 요가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아내로 주어 그의 덕을 두 딸을 통해 살폈다. 순이 두 딸을 규예(媯汭)로 보내며 부인의 예절을 갖추게 했다.

요가 이를 좋게 여겨 순에게 오전(五典)을 삼가 화목하게 하게 하니 오전을 잘 따랐다. 이어 백관에 두루 들어가게 하니 백관이 때에 맞춰 질서를 잡았다. 사문(四門)에서 손님을 접대하니 사문이 장엄하고 제후와 먼 곳의 빈객이 모두 공경했다. 요가 순을 산림과 하천과 늪으로 보내 폭풍과 천둥과 비를 만나게 했으나, 순이 걸어도 헤매지 않았다. 요가 순을 성인이라 여겨 순을 불러 말했다: “네가 일을 도모하면 지극하고 말을 하면 공적을 이룰 수 있구나, 3년이 되었다. 네가 제위에 오르라.” 순이 덕이 부족하다고 사양하며 기뻐하지 않았다. 정월 상일(上日)에 순이 문조(文祖)에서 요의 명을 받았다. 문조는 요의 태조(太祖)다.

주석: 요가 순을 시험하는 3단계(가정/관료/자연)는 리더십 검증의 전형을 제시한다: (1) 가정에서의 효(孝)로 인격 검증, (2) 관직 수행으로 능력 검증, (3) 자연의 역경(폭풍·뇌우)으로 인내·지혜 검증. 이 삼중 검증은 이후 중국 인재 등용의 이상적 모델이 되었다.


於是帝堯老,命舜攝行天子之政,以觀天命。舜乃在璿璣玉衡,以齊七政。遂類于上帝,禋于六宗,望于山川,辯于群神。揖五瑞,擇吉月日,見四嶽諸牧,班瑞。歲二月,東巡狩,至於岱宗,祡,望秩於山川。遂見東方君長,合時月正日,同律度量衡,修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為摯,如五器,卒乃復。五月,南巡狩;八月,西巡狩;十一月,北巡狩:皆如初。歸,至于祖禰廟,用特牛禮。五歲一巡狩,群后四朝。遍告以言,明試以功,車服以庸。肇十有二州,決川。象以典刑,流宥五刑,鞭作官刑,撲作教刑,金作贖刑。眚災過,赦;怙終賊,刑。欽哉,欽哉,惟刑之靜哉!

讙兜進言共工,堯曰不可而試之工師,共工果淫辟。四嶽舉鯀治鴻水,堯以為不可,嶽彊請試之,試之而無功,故百姓不便。三苗在江淮、荊州數為亂。於是舜歸而言於帝,請流共工於幽陵,以變北狄;放讙兜於崇山,以變南蠻;遷三苗於三危,以變西戎;殛鯀於羽山,以變東夷:四罪而天下咸服。

번역: 이에 요가 늙어 순에게 천자의 일을 섭행하게 하고 천명을 살피게 했다. 순이 선기옥형(璿璣玉衡, 천문 관측기)을 바르게 하여 칠정(七政)을 정리했다. 마침내 상제(上帝)에게 유(類) 제사를 지내고, 육종(六宗)에게 인(禋) 제사, 산천에 망(望) 제사, 뭇 신에게 변(辯) 제사를 지냈다. 오서(五瑞)를 모아 길한 달과 날을 가려 사악과 제후들을 만나 서(瑞)를 나누어 주었다. 해 2월에 동쪽으로 순수(巡狩)하여 태산(岱宗)에 이르러 시(祡) 제사를 지내고 산천에 망제를 지냈다. 이어 동방의 군장들을 만나 시월(時月)을 맞추고 일(日)을 바르게 하며, 음률과 도량형을 같게 하고, 오례(五禮)·옥(玉)·백(帛)·생(牲)·사(死)의 예물을 정하고, 오기(五器)를 갖추어 마치면 돌려주었다. 5월에 남쪽으로 순수하고, 8월에 서쪽으로, 11월에 북쪽으로 순수하니 모두 처음과 같았다. 돌아와 조상의 사당에 이르러 특우(特牛)의 예를 썼다. 5년마다 순수하고 제후들이 사조(四朝)했다. 두루 말로 알리고 공적을 밝게 시험하며 수레와 옷으로 공을 포상했다. 주천하에 12주를 개척하고 강을 소통시켰다. 법전에 형벌을 그리고 오형(五刑)을 유서(流宥)했으며 채찍을 관리 형벌로, 회초리를 교육 형벌로, 금(金)을 속죄 형벌로 삼았다. 잘못으로 인한 과실은 용서하고, 고집하며 악을 행하는 자는 형벌했다. 공경하라, 공경하라, 오직 형벌이여 고요하라!

환두가 공공을 천거했으나 요가 불가하다 하면서도 공사(工師)로 시험했는데 공공이 과음 난잡했다. 사악이 곤을 들어 홍수를 다스리게 했으나 요가 불가하다 여겼는데, 사악이 강력히 청해 시험하게 했으나 시험해도 공이 없어 백성이 불편했다. 삼묘(三苗)가 강·회수·형주에서 여러 번 난을 일으켰다. 이에 순이 돌아와 요에게 말해, 공공을 유릉(幽陵)으로 유배 보내 북적(北狄)을 변하게 하고, 환두를 숭산(崇山)으로 방귀(放歸)해 남만(南蠻)을 변하게 하고, 삼묘를 삼위(三危)로 옮겨 서융(西戎)을 변하게 하고, 곤을 우산(羽山)에서 주살(殛殺)해 동이(東夷)를 변하게 하니, 네 죄인을 처벌하자 천하가 모두 복종했다.

주석: 순의 섭정 시행 정책은 중국 고대 통치 체계의 청사진이다: (1) 표준화 — 도량형·역법 통일, (2) 순수(巡狩) — 지방 통치 점검, (3) 형벌 체계 — 오형·유형·태형·속죄형의 단계적 구성, (4) 사죄 처단 — 반대파를 변방으로 추방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 특히 ‘사죄(四罪)’ 처리는 정치적 반대파를 효과적으로 무력화하면서도 ‘덕치’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이후 역대 왕조가 반복 사용한 패턴이다.


堯立七十年得舜,二十年而老,令舜攝行天子之政,薦之於天。堯辟位凡二十八年而崩。百姓悲哀,如喪父母。三年,四方莫舉樂,以思堯。堯知子丹朱之不肖,不足授天下,於是乃權授舜。授舜,則天下得其利而丹朱病;授丹朱,則天下病而丹朱得其利。堯曰:「終不以天下之病而利一人」 ,而卒授舜以天下。堯崩,三年之喪畢,舜讓辟丹朱於南河之南。諸侯朝覲者不之丹朱而之舜,獄訟者不之丹朱而之舜,謳歌者不謳歌丹朱而謳歌舜。舜曰:「天也」 ,夫而後之中國踐天子位焉,是為帝舜。

번역: 요가 즉위 70년 만에 순을 얻고 20년 후에 늙어 순에게 천자의 일을 섭행하게 하고 천거했다. 요가 물러난 지 28년 만에 붕어했다. 백성이 슬퍼하기를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했다. 3년 동안 사방에서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며 요를 그리워했다. 요는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不肖)하여 천하를 맡길 수 없음을 알고, 이에 권도(權道)로 순에게 주었다. 순에게 주면 천하가 이익을 얻고 단주가 해를 입고, 단주에게 주면 천하가 해를 입고 단주가 이익을 얻는다. 요가 말했다: “마침내 천하의 병폐로 한 사람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 하고, 마침내 천하를 순에게 주었다. 요가 죽고 3년상을 마친 후, 순이 단주를 피해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제후들이 조근(朝覲)하는 자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왔으며, 송사하는 자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왔으며, 노래하는 자들이 단주를 노래하지 않고 순을 노래했다. 순이 말했다: “하늘의 뜻이구나!” 하고, 그제야 중원(中國)으로 가서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가 곧 순(帝舜)이다.

주석: “마침내 천하의 병폐로 한 사람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終不以天下之病而利一人)” — 이 한마디는 선양(禪讓)의 핵심 철학을 집약한다. 순이 단주에게 양보했다가 민심이 순을 따르자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이는 장면은, 천명(天命)이 민심(民心)에 드러난다는 유가 정치철학의 핵심 교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虞舜者,名曰重華。重華父曰瞽叟,瞽叟父曰橋牛,橋牛父曰句望,句望父曰敬康,敬康父曰窮蟬,窮蟬父曰帝顓頊,顓頊父曰昌意:以至舜七世矣。自從窮蟬以至帝舜,皆微為庶人。

舜父瞽叟盲,而舜母死,瞽叟更娶妻而生象,象傲。瞽叟愛後妻子,常欲殺舜,舜避逃;及有小過,則受罪。順事父及後母與弟,日以篤謹,匪有解。

舜,冀州之人也。舜耕歷山,漁雷澤,陶河濱,作什器於壽丘,就時於負夏。舜父瞽叟頑,母嚚,弟象傲,皆欲殺舜。舜順適不失子道,兄弟孝慈。欲殺,不可得;即求,嘗在側。

번역: 우순(虞舜)의 이름은 중화(重華)다. 중화의 아버지는 고수(瞽叟)이며, 고수의 아버지는 교우(橋牛), 교우의 아버지는 구망(句望), 구망의 아버지는 경강(敬康), 경강의 아버지는 빈선(窮蟬), 빈선의 아버지는 전욱(帝顓頊),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니, 순에 이르기까지 7대다. 빈선으로부터 순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천하여 서민이었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소경이었고, 순의 어머니는 죽었다. 고수가 다시 장가들어 아들 상(象)을 낳았는데, 상이 교만했다. 고수가 후처의 자식을 사랑해 항상 순을 죽이려 했으나, 순은 피해 도망갔다. 작은 허물이 있으면 죄를 받았다. 아버지와 후처와 동생을 순순히 섬기며 날로 독실하고 삼갔으며 게으름이 없었다.

순은 기주(冀州) 사람이다. 순이 역산(歷山)에서 농사짓고, 뇌택(雷澤)에서 고기 잡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며, 수구(壽丘)에서 여러 기구를 만들고, 부하(負夏)에서 장사를 했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간사하며, 동생 상은 교만하여 모두 순을 죽이려 했다. 순이 순순히 맞추어 아들의 도리를 잃지 않고 형제와 효도와 자애로 했다. 죽이려 해도 얻을 수 없었고, 찾으면 항상 곁에 있었다.

주석: 순의 설화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는 ‘죽이려드는 가족’이라는 역설적 설정이다. 부모와 동생이 살해를 시도하지만, 순은 도망치지만 끝까지 효도를 버리지 않는다. 이 ‘완벽한 효자’ 서사는 유가 윤리에서 ‘효(孝)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이다’라는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의도적 설계로 보인다.


5-2. 순의 가족 시험 — 살해 시도와 극복

섹션 제목: “5-2. 순의 가족 시험 — 살해 시도와 극복”

舜年二十以孝聞。三十而帝堯問可用者,四嶽咸薦虞舜,曰可。於是堯乃以二女妻舜以觀其內,使九男與處以觀其外。舜居媯汭,內行彌謹。堯二女不敢以貴驕事舜親戚,甚有婦道。堯九男皆益篤。舜耕歷山,歷山之人皆讓畔;漁雷澤,雷澤上人皆讓居;陶河濱,河濱器皆不苦窳。一年而所居成聚,二年成邑,三年成都。堯乃賜舜絺衣,與琴,為筑倉廩,予牛羊。瞽叟尚復欲殺之,使舜上涂廩,瞽叟從下縱火焚廩。舜乃以兩笠自捍而下,去,得不死。後瞽叟又使舜穿井,舜穿井為匿空旁出。舜既入深,瞽叟與象共下土實井,舜從匿空出,去。瞽叟、象喜,以舜為已死。象曰:「本謀者象。」 象與其父母分,於是曰:「舜妻堯二女,與琴,象取之。牛羊倉廩予父母。」 象乃止舜宮居,鼓其琴。舜往見之。象鄂不懌,曰:「我思舜正郁陶!」 舜曰:「然,爾其庶矣!」 舜復事瞽叟愛弟彌謹。於是堯乃試舜五典百官,皆治。

번역: 순이 20세에 효도로 이름이 났다. 30세에 요가 쓸 만한 사람을 물었을 때 사악이 모두 우순을 천거하며 쓸 만하다고 말했다. 이에 요가 두 딸을 순에게 아내로 주어 내면을 살피고, 아홉 아들을 함께 살게 하여 외면을 살폈다. 순이 규예(媯汭)에 살면서 내적 행실이 더욱 삼갔다. 요의 두 딸이 귀함을 믿고 오만하지 않아 순의 친척을 섬기고 부인의 도리가 있었다. 요의 아홉 아들이 더욱 독실해졌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짓자 역산 사람들이 모두 밭두렁을 양보했다. 뇌택에서 고기 잡자 뇌택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양보했다. 하빈에서 질그릇을 구우니 하빈의 그릇이 모두 거칠지 않았다. 1년이면 사는 곳이 취락이 되고, 2년이면 읍이 되고, 3년이면 도시가 되었다. 요가 순에게 베옷을 주고 거문고를 주고 창고를 지어주고 소와 양을 주었다. 고수가 여전히 죽이려 해, 순으로 하여금 창고에 올라가 바르게 하고, 밑에서 불을 질렀다. 순이 두 삿갓으로 몸을 보호하며 뛰어내려 죽음을 면했다. 후에 고수가 또 순으로 하여금 우물을 파게 하고, 순이 우물을 팔 때 옆으로 숨을 굴을 뚫었다. 순이 이미 깊이 들어가자 고수와 상이 함께 흙을 퍼부어 우물을 메웠다. 순이 숨은 굴로 나와 떠났다. 고수와 상이 기뻐하며 순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상이 말했다: “원래 계획은 상(象, 내가)이다.” 상이 부모와 재물을 나누며 말했다: “순의 아내 요의 두 딸과 거문고는 상이 가지겠다. 소와 양과 창고는 부모에게 드린다.” 상이 순의 집에 머물며 거문고를 탔다. 순이 가서 그를 보았다. 상이 깜짝 놀라 기뻐하지 않으며 말했다: “내가 순을 생각하매 정말 우울했네!” 순이 말했다: “그래, 너도 그만하면 된 편이다!” 순이 다시 고수를 섬기고 동생을 사랑함이 더욱 삼갔다. 이에 요가 순을 오전(五典)과 백관으로 시험하니 모두 다스려졌다.

주석: 창고 방화와 우물 매립이라는 두 번의 살해 시도는 순 설화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다. 특히 상(象)이 순의 처와 재물을 차지하고 거문고를 타다가 순이 살아 돌아오자 “내가 순을 생각하매 정말 우울했네”라고 변명하는 장면은 해학적이다. 순은 모든 악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효우(孝友)를 지킴으로써 덕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昔高陽氏有才子八人,世得其利,謂之「八愷」 。高辛氏有才子八人,世謂之「八元」 。此十六族者,世濟其美,不隕其名。至於堯,堯未能舉。舜舉八愷,使主后土,以揆百事,莫不時序。舉八元,使布五教于四方,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內平外成。

昔帝鴻氏有不才子,掩義隱賊,好行凶慝,天下謂之渾沌。少暤氏有不才子,毀信惡忠,崇飾惡言,天下謂之窮奇。顓頊氏有不才子,不可教訓,不知話言,天下謂之梼杌。此三族世憂之。至于堯,堯未能去。縉云氏有不才子,貪于飲食,冒于貨賄,天下謂之饕餮。天下惡之,比之三凶。舜賓於四門,乃流四凶族,遷于四裔,以御螭魅,於是四門辟,言毋凶人也。

번역: 옛날 고양씨(전욱)에게 여덟 명의 재능 있는 아들이 있어 세상이 그 이익을 얻었으니 ‘팔개(八愷)‘라 불렀다. 고신씨(제곡)에게 여덟 명의 재능 있는 아들이 있어 세상이 ‘팔원(八元)‘이라 불렀다. 이 16족은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어 이름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요에 이르러서는 요가 등용하지 못했다. 순이 팔개를 등용해 후토(后土)를 주관하게 하여 백사를 헤아리니 때에 맞춰 질서가 잡히지 않는 것이 없었다. 팔원을 등용해 오교(五教)를 사방에 펴게 하니,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로우며, 형은 우애 있고, 동생은 공손하며, 자식은 효도하여 안으로는 평안하고 밖으로는 이루어졌다.

옛날 제홍씨(帝鴻氏)에게 불초자(不肖者)가 있어 의(義)를 가리고 도적을 숨기며 흉악한 일을 좋아하니 천하가 ‘혼돈(渾沌)‘이라 불렀다. 소호씨(少暤氏)에게 불초자가 있어 믿음을 파괴하고 충성을 미워하며 악한 말을 꾸미니 천하가 ‘궁기(窮奇)‘라 불렀다. 전욱씨에게 불초자가 있어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천하가 ‘도올(檮杌)‘이라 불렀다. 이 세 집안을 세상이 걱정했다. 요에 이르러 요가 제거하지 못했다. 진운씨(縉云氏)에게 불초자가 있어 음식에 탐하고 재물에 욕심을 부리니 천하가 ‘도철(饕餮)‘이라 불렀다. 천하가 미워하여 삼흉(三凶)에 견주었다. 순이 사문(四門)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이 사흉(四凶)의 족속을 유배하여 사방 변방으로 옮겨 나쁜 귀신을 막게 하니, 이에 사문이 열렸다. 흉악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주석: 팔개·팔원 대 사흉·사죄의 구도는 ‘선한 자는 등용하고 악한 자는 축출한다’는 통치의 기본 원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혼돈·궁기·도올·도철이라는 별칭이 본래 고대 신화의 괴물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마천이 민간 신화를 정치적 교훈이 담긴 역사 서사로 전환한 사례다.


5-4. 22인 관료 등용 — 중국 최초의 내각

섹션 제목: “5-4. 22인 관료 등용 — 중국 최초의 내각”

舜入于大麓,烈風雷雨不迷,堯乃知舜之足授天下。堯老,使舜攝行天子政,巡狩。舜得舉用事二十年,而堯使攝政。攝政八年而堯崩。三年喪畢,讓丹朱,天下歸舜。而禹、皋陶、契、后稷、伯夷、夔、龍、倕、益、彭祖自堯時而皆舉用,未有分職。於是舜乃至於文祖,謀于四嶽,辟四門,明通四方耳目,命十二牧論帝德,行厚德,遠佞人,則蠻夷率服。舜謂四嶽曰:「有能奮庸美堯之事者,使居官相事?」 皆曰:「伯禹為司空,可美帝功。」 舜曰:「嗟,然!禹,汝平水土,維是勉哉。」 禹拜稽首,讓於稷、契與皋陶。舜曰:「然,往矣。」 舜曰:「棄,黎民始饑,汝后稷播時百穀。」 舜曰:「契,百姓不親,五品不馴,汝為司徒,而敬敷五教,在寬。」 舜曰:「皋陶,蠻夷猾夏,寇賊姦軌,汝作士,五刑有服,五服三就;五流有度,五度三居:維明能信。」 舜曰:「誰能馴予工?」 皆曰垂可。於是以垂為共工。舜曰:「誰能馴予上下草木鳥獸?」 皆曰益可。於是以益為朕虞。益拜稽首,讓于諸臣朱虎、熊羆。舜曰:「往矣,汝諧。」 遂以朱虎、熊羆為佐。舜曰:「嗟!四嶽,有能典朕三禮?」 皆曰伯夷可。舜曰:「嗟!伯夷,以汝為秩宗,夙夜維敬,直哉維靜絜。」 伯夷讓夔、龍。舜曰:「然。以夔為典樂,教稚子,直而溫,寬而栗,剛而毋虐,簡而毋傲;詩言意,歌長言,聲依永,律和聲,八音能諧,毋相奪倫,神人以和。」 夔曰:「於!予擊石拊石,百獸率舞。」 舜曰:「龍,朕畏忌讒說殄偽,振驚朕眾,命汝為納言,夙夜出入朕命,惟信。」 舜曰:「嗟!女二十有二人,敬哉,惟時相天事。」 三歲一考功,三考絀陟,遠近眾功咸興。分北三苗。

번역: 순이 큰 숲에 들어갔으나 맹렬한 바람과 천둥과 비가 와도 헤매지 않으니, 요가 순이 천하를 맡길 만함을 알았다. 요가 늙어 순으로 하여금 천자의 정치를 섭행하게 하고 순수(巡狩)하게 했다. 순이 등용된 지 20년 만에 요가 섭정을 맡겼다. 섭정 8년 만에 요가 붕어했다. 3년상을 마치고 단주에게 양보했으나 천하가 순에게 돌아갔다.

우(禹)·고요(皋陶)·설(契)·후직(后稷)·백이(伯夷)·해(夔)·용(龍)·수(倕)·익(益)·팽조(彭祖)가 요 때부터 모두 등용되었으나 각각의 직분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에 순이 문조(文祖)에 이르러 사악(四嶽)과 의논하고, 사문(四門)을 열고 사방의耳目을 밝게 통하게 하며, 12목(牧)에게 제왕의 덕을 논하게 하고, 후한 덕을 행하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게 하니, 만이(蠻夷)가 솔선하여 복종했다.

순이 사악에게 말했다: “요의 일을 힘써 아름답게 할 만한 사람이 있어 관직을 주어 정사를 돕게 하라?” 모두 말했다: “백우(伯禹)를 사공(司空)으로 삼으면 제왕의 공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순이 말했다: “좋다! 우야, 너는 땅과 물을 평정하라, 힘써 노력하라.” 우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직·설·고요에게 사양했다. 순이 말했다: “좋다, 가거라.” 순이 말했다: “기(弃)야, 백성이 비로소 굶주리니, 너 후직(后稷)이 되어 때에 맞춰 백곡을 심어라.” 순이 말했다: “설(契)아, 백성이 친밀하지 않고 오품(五品)이 순하지 않으니, 너 사도(司徒)가 되어 공경히 오교(五教)를 펴되 너그러이 하라.” 순이 말했다: “고요(皋陶)야, 만이가 중국을 어지럽히고 도적과 간악한 무리가 횡행하니, 너 사(士)가 되어 오형(五刑)을 집행하라. 오형에 복종하는 자는 세 곳에서 집행하고, 오류(五流)에는 법도가 있으니, 오도(五度)에 세 종류의 거주지가 있다: 오직 밝아야 믿을 수 있다.” 순이 말했다: “누가 나의 공장(工匠) 일을 맡을 수 있겠는가?” 모두 수(垂)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수를 공공(共工)으로 삼았다. 순이 말했다: “누가 나의 위아래 초목과 금수의 일을 맡을 수 있겠는가?” 모두 익(益)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익을 짐우(朕虞)로 삼았다. 익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주호(朱虎)·웅비(熊羆) 등 여러 신하에게 사양했다. 순이 말했다: “가거라, 너는 잘하리라.” 이에 주호와 웅비를 보좌로 삼았다. 순이 말했다: “아! 사악이여, 나의 삼례(三禮)를 맡을 자가 있는가?” 모두 백이가 가능하다고 했다. 순이 말했다: “아! 백이야, 너를 질종(秩宗)으로 삼으니, 밤낮으로 공경하고, 정직하고 고요하며 깨끗하라.” 백이가 해·룡에게 사양했다. 순이 말했다: “좋다. 해를 전악(典樂)으로 삼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라. 곧고도 부드럽고, 너그러우면서도 엄숙하고, 강하면서도 잔혹하지 않으며, 간결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게 하라. 시(詩)는 뜻을 말하고, 노래는 말을 길게 하고, 소리는 노래에 의지하고, 율(律)은 소리를 화하게 한다. 팔음(八音)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질서를 빼앗지 않게 하며, 신과 사람이 화합하게 하라.” 해가 말했다: “아! 내가 돌을 치고 돌을 두드리면, 백성이 춤추리라!” 순이 말했다: “용(龍)아, 나는 참언과 거짓을 두려워하고 꺼려하여 내 무리를 놀라게 한다. 너를 납언(納言)으로 삼으니, 밤낮으로 내 명령을 출납하되 오직 믿음으로 하라.” 순이 말했다: “아! 너희 22인이여, 공경하라. 오직 때에 맞춰 하늘의 일을 도와라.” 3년마다 한 번 공적을 고과(考科)하고, 세 번 고과하여 강등과 승진을 시행하니, 멀고 가까운 모든 공이 일어났다. 삼묘(三苗)를 나누었다.

주석: 이 구절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내각 구성이다. 우(禹)의 치수, 후직의 농업, 설의 교화, 고요의 형벌, 수의 공예, 익의 산림, 백이의 예의, 해의 음악, 용의 명령 전달 — 각 기능별 전문 관료를 두고 3년 고과(考課)로 성과를 평가하는 체계는 후대 중국 관료제의 완전한 청사진이다. 해의 “百獸率舞”라는 말은 시와 음악이 백성을 감화시킨다는 유가의 예악 사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此二十二人咸成厥功:皋陶為大理,平,民各伏得其實;伯夷主禮,上下咸讓;垂主工師,百工致功;益主虞,山澤辟;棄主稷,百穀時茂;契主司徒,百姓親和;龍主賓客,遠人至;十二牧行而九州莫敢辟違;唯禹之功為大,披九山,通九澤,決九河,定九州,各以其職來貢,不失厥宜。方五千里,至于荒服。南撫交阯、北發,西戎、析枝、渠廋、氐、羌,北山戎、發、息慎,東長、鳥夷,四海之內咸戴帝舜之功。於是禹乃興九招之樂,致異物,鳳皇來翔。天下明德皆自虞帝始。

舜年二十以孝聞,年三十堯舉之,年五十攝行天子事,年五十八堯崩,年六十一代堯踐帝位。踐帝位三十九年,南巡狩,崩於蒼梧之野。葬於江南九疑,是為零陵。舜之踐帝位,載天子旗,往朝父瞽叟,夔夔唯謹,如子道。封弟象為諸侯。舜子商均亦不肖,舜乃豫薦禹於天。十七年而崩。三年喪畢,禹亦乃讓舜子,如舜讓堯子。諸侯歸之,然後禹踐天子位。堯子丹朱,舜子商均,皆有疆土,以奉先祀。服其服,禮樂如之。以客見天子,天子弗臣,示不敢專也。

번역: 이 22인이 모두 그 공을 이루었다. 고요(皋陶)가 대리(大理)가 되어 공평하게 하니 백성이 각자 사실에 복종했다. 백이(伯夷)가 예를 주관하니 위아래가 모두 겸양했다. 수(垂)가 공사(工師)를 주관하니 모든 장인이 공을 이루었다. 익(益)이 우(虞)를 주관하니 산택이 개척되었다. 기(弃)가 직(稷)을 주관하니 백곡이 때맞춰 무성했다. 설(契)이 사도(司徒)를 주관하니 백성이 친밀하고 화목했다. 용(龍)이 빈객을 주관하니 먼 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12목(牧)이 일을 행하니 구주(九州)에서 감히 어기고 위반하는 자가 없었다. 오직 우(禹)의 공이 가장 커서, 구산(九山)을 헤치고, 구택(九澤)을 소통하고, 구하(九河)를 터뜨리고, 구주(九州)를 정하여 각각 그 직분에 따라 공물을 바쳐 그 마땅함을 잃지 않게 했다. 지역이 사방 5천 리, 황복(荒服)에까지 미쳤다. 남쪽으로 교지(交阯)·북발(北發)을 어루만지고, 서쪽으로 융(戎)·석지(析枝)·구수(渠廋)·저(氐)·강(羌)을, 북쪽으로 산융(山戎)·발(發)·식신(息慎)을, 동쪽으로 장(長)·오이(鳥夷)를 어루만지니, 사해(四海) 안이 모두 순의 공을 받들었다. 이에 우가 구소(九招)의 음악을 일으켜 이상한 물건을 이르게 하니, 봉황이 와서 날았다. 천하의 밝은 덕이 모두 우순(虞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순이 20세에 효로 이름나고, 30세에 요가 등용했으며, 50세에 천자의 일을 섭행하고, 58세에 요가 붕어했으며, 61세에 요를 대신해 제위에 올랐다. 제위 39년에 남으로 순수하다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했다. 강남 구의(九疑)에 장사지냈으니 이가 영릉(零陵)이다. 순이 제위에 올라 천자의 기를 달고 아버지 고수(瞽叟)를 찾아뵈었는데, 두려워하며 오직 공손히 아들의 도리를 다했다. 동생 상(象)을 제후로 봉했다. 순의 아들 상균(商均) 또한 불초하여 순이 미리 우를 천거했다. 17년 만에 붕어했다. 3년상을 마치고 우가 또한 순의 아들에게 양보하기를 순이 요의 아들에게 양보한 것과 같이 했다. 제후들이 우에게 돌아간 후에 우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요의 아들 단주(丹朱)와 순의 아들 상균(商均)은 모두 강토를 받아 선조의 제사를 받들었다. 그 제복을 입고 예악을 그대로 하였다. 손님으로 천자를 뵈올 뿐 천자가 신하로 부리지 않으니, 감히 사사로이 하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주석: 순의 생애는 ‘역경을 극복한 성공 신화’의 전형으로, 20세에 효행으로 인정받고 30세에 등용되어 61세에 천자가 되기까지 30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천자가 된 후에도 아버지 고수를 공손히 섬겼다는 기록과, 동생 상을 제후로 봉했다는 점이다 — 원한을 품지 않고 가족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덕의 완성을 보여준다. 순의 「天下明德皆自虞帝始」라는 결론은 사마천이 순에게 부여한 역사적 위상을 압축한다.


自黃帝至舜、禹,皆同姓而異其國號,以章明德。故黃帝為有熊,帝顓頊為高陽,帝嚳為高辛,帝堯為陶唐,帝舜為有虞。帝禹為夏后而別氏,姓姒氏。契為商,姓子氏。棄為周,姓姬氏。

번역: 황제로부터 순·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성(同姓)이나 나라 이름(國號)을 달리하여 밝은 덕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황제는 유웅(有熊), 전욱은 고양(高陽), 제곡은 고신(高辛), 요는 도당(陶唐), 순은 유우(有虞)라 했다. 우는 하나라(夏后)가 되면서 씨(氏)를 달리하여 사성(姒氏)이라 했다. 설(契)은 상(商)이 되어 자성(子氏)이라 했다. 기(弃)는 주(周)가 되어 희성(姬氏)이라 했다.

주석: 이 7줄은 오제에서 하나라·상나라·주나라로 이어지는 계통의 핵심 정리다. ‘동성이국호(同姓而異其國號)‘라는 원칙 아래, 각 왕조가 같은 혈통에서 나왔으나 덕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국호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이는 중국 고대 왕조의 ‘정통성’ 개념을 혈통의 연속성 위에 세우려는 사마천의 의도를 보여준다.


6-2. 태사공왈 — 사마천의 방법론

섹션 제목: “6-2. 태사공왈 — 사마천의 방법론”

太史公曰:學者多稱五帝,尚矣。然尚書獨載堯以來;而百家言黃帝,其文不雅馴,薦紳先生難言之。孔子所傳宰予問五帝德及帝系姓,儒者或不傳。余嘗西至空桐,北過涿鹿,東漸於海,南浮江淮矣,至長老皆各往往稱黃帝、堯、舜之處,風教固殊焉,總之不離古文者近是。予觀春秋、國語,其發明五帝德、帝系姓章矣,顧弟弗深考,其所表見皆不虛。書缺有閒矣,其軼乃時時見於他說。非好學深思,心知其意,固難為淺見寡聞道也。余并論次,擇其言尤雅者,故著為本紀書首。

번역: 태사공이 말한다: 학자들이 오제를 많이 말하지만, 아득히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상서》는 요(堯) 이후만 기록했으며, 백가(百家)가 황제를 말하지만 그 문장이 우아하지 않아 사대부(搢紳)들이 말하기 어려워한다. 공자가 전한 재아(宰予)의 「오제덕(五帝德)」과 「제계성(帝系姓)」을 유학자들이 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일찍이 서쪽으로 공동(空桐)에 가보고, 북쪽으로 탁록(涿鹿)을 지나고, 동쪽으로 바닷가에 이르고, 남쪽으로 장강과 회수를 떠돌아다녔다. 장로들을 만날 때마다 각자 황제·요·순의 살던 곳을 칭송했는데, 풍속과 가르침이 진실로 달랐다. 종합하면 고문(古文)의 기록에 가까운 것이 옳았다.

내가 《춘추》와 《국어》를 살펴보니, 그것이 오제덕과 제계성을 밝혀낸 것이 분명하나, 깊이 고찰하지 않아도 그 나타내 보인 바가 모두 허투루 않았다. 글에 빠진 곳이 오래되었으니, 그 남은 일들이 때로 다른 설명에서 나타난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뜻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자가 아니라면, 얕은 소견과 적은 문견으로는 말하기 어렵다.

내가 모두 논하여 차례를 정하고, 그 말 중 가장 우아한 것을 골랐으므로, 여기에 본기의 첫머리로 기록한다.

주석: 오제본기 말미의 이 구절은 사마천의 역사 방법론이 집약된 선언문이다. 그는 신화와 전설이 난무하는 오제에 대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1. 문헌 교차 검증 — 《상서》《춘추》《국어》 등 여러 기록 대조
  2. 현장 조사 — 직접 황제·요·순의 전승지를 답사하고 장로들의 구술 청취
  3. 합리적 선택 — “그 말 중 가장 우아한 것을 골랐다(擇其言尤雅者)” — 신화적·불가사의한 요소를 걸러내고 이성적으로 수용 가능한 내용만 채택

사마천은 오제의 역사성을 완전히 확신하지는 않았지만(“글에 빠진 곳이 오래되었다”), 불완전한 자료 중에서 최선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이 비판적이면서도 건설적인 태도는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전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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