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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리열전 (酷吏列傳)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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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일백이십이(卷一百二十二) 열전제육십이(列傳第六十二)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 본질: 혹리열전은 사마천이 “법령이란 다스림의 도구일 뿐, 맑고 흐림을 만드는 근원이 아니다(法令者 治之具, 而非制治淸濁之源也)“라는 근본적 법철학 테제를 증명하기 위해 쓴 명편이다. 한나라 무제(武帝) 시기 중앙집권과 제국 팽창을 위해 법률을 무기화한 11명의 혹리(질도·장탕·의종·왕온서·두주 등)를 해부하며, 법망이 촘촘해질수록 백성은 부끄러움을 잃고 법을 기술적으로 농락하는 ‘무문교저(舞文巧詆)‘의 괴물들만 양산된다는 역설을 폭로한다.

유형대표 인물주요 특징 및 행동결말 / 역사적 평가
강직·원칙형질도 (郅都)청렴하고 권세가에게도 법을 가차없이 집행 (‘창응(蒼鷹)’ 별명)두태후의 사적인 원한으로 억울하게 처형됨
정치·도구형장탕 (張湯)어린 시절 쥐를 취조하던 천재. 황제의 의중에 맞춰 법전을 자의적으로 해석동료들의 모함으로 자결 (사후 가산은 500금에 불과해 청렴 입증)
광기·살육형왕온서 (王溫舒)“겨울이 한 달만 더 길었다면 죄인들을 더 죽였을 텐데” 탄식5족 멸문지화를 당함
체제·영합형두주 (杜周)“선황제의 뜻이 율(律)이고 현 황제의 뜻이 령(令)이다”라며 법의 사유화 자행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법의 신뢰를 완전히 붕괴시킴

2. 핵심 멘탈 모델 및 법철학적 교훈

섹션 제목: “2. 핵심 멘탈 모델 및 법철학적 교훈”

① 법령자장 도적다유 (法令滋章 盜賊多有) — 규제의 역설

섹션 제목: “① 법령자장 도적다유 (法令滋章 盜賊多有) — 규제의 역설”
  • 노자의 경구를 인용: 법률 조항이 수천 개로 늘어나고 처벌이 극형으로 치달을수록,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간사한 사기꾼과 범죄자가 폭증함.
  • 교훈: 시스템의 결함을 법령과 처벌의 강화로만 덮으려 하면, 컴플라이언스 비용만 폭증하고 조직의 자율적 신뢰와 도덕성은 전멸한다.

② 전주소시저위률 (前主所是著爲律) — 법 실증주의의 타락

섹션 제목: “② 전주소시저위률 (前主所是著爲律) — 법 실증주의의 타락”
  • 두주는 법전의 정의나 보편적 윤리를 무시하고 “황제가 옳다고 한 것이 법이다”라고 공언함.
  • 교훈: 법이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권력자의 기분과 정적 제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때, 사회는 법치(Rule of Law)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의 폭정 상태에 빠진다.

③ 어린 장탕의 쥐 재판 — 형식주의의 알레고리

섹션 제목: “③ 어린 장탕의 쥐 재판 — 형식주의의 알레고리”
  • 고기를 훔쳐먹은 쥐를 잡아 고발장 작성, 심문, 판결, 능지처참까지 완벽한 관료적 절차를 수행함.
  • 교훈: 절차적 정당성과 법률적 형식주의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것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본질적 가치를 상실하면 가장 기괴한 희극이 된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원문:

孔子曰:"导之以政,齐之以刑,民免而无耻。导之以德,齐之以礼,有耻且格。"
老氏称:"上德不德,是以有德;下德不失德,是以无德。法令滋章,盗贼多有。"
太史公曰:信哉是言也!法令者治之具,而非制治清浊之源也。
昔天下之网尝密矣,然奸伪萌起,其极也,上下相遁,至於不振。
当是之时,吏治若救火扬沸,非武健严酷,恶能胜其任而愉快乎!
言道德者,溺其职矣。
汉兴,破觚而为圜,斫雕而为朴,网漏於吞舟之鱼,
而吏治烝烝,不至於奸,黎民艾安。由是观之,在彼不在此。

번역:

공자가 말했다: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죄를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또한 잘하게 된다.” 노자가 말했다: “상덕(上德)은 덕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그렇기에 덕이 있고, 하덕(下德)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니 그렇기에 덕이 없다. 법령이 자세할수록 도둑이 많아진다.” 태사공이 말한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법령은 다스리는 도구일 뿐, 다스림의 청탁(淸濁)의 근원은 아니다. 옛날 천하의 그물이 참으로 촘촘했으나 간사하고 거짓됨이 싹텄고, 그 극에 달해서는 위아래가 서로 숨기고 도망쳐 마침내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 시대에 관리의 다스림은 불을 끄고 끓는 물을 식히는 것 같아서, 건강하고 엄격하며 가혹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임무를 감당하고 유쾌할 수 있겠는가! 도덕을 말하는 자는 그 직분을 저버린 것이다. 한나라가 일어나 사각(술잔)을 깨뜨려 둥글게 하고 조각을 깎아 소박하게 하여, 배를 삼킬 만한 고기도 빠져나갈 수 있는 그물을 만들었으나 관리의 다스림은 왕성하여 간사함에 이르지 않았고 백성은 평안했다. 이로써 보건대, 그것(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덕)에 있는 것이다.

해설: 사마천은 공자와 노자의 말을 인용해 이 열전 전체의 주제를 연다 — 법만으로는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법이 촘촘할수록 오히려 간사함은 자란다. 한나라 초기의 ‘느슨한 법’(통크기의 고기도 빠져나가는 그물)이 가장 잘 다스려졌다는 역설. 이는 무제 시대의 가혹한 법치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1절: 郅都(질도) — 맹금(蒼鷹)이라 불린 최초의 가혹한 관리

섹션 제목: “1절: 郅都(질도) — 맹금(蒼鷹)이라 불린 최초의 가혹한 관리”

원문:

郅都者,杨人也。以郎事孝文帝。孝景时,都为中郎将,敢直谏,面折大臣於朝。
尝从入上林,贾姬如厕,野彘卒入厕。上目都,都不行。
上欲自持兵救贾姬,都伏上前曰:
"亡一姬复一姬进,天下所少宁贾姬等乎?陛下纵自轻,柰宗庙太后何!"
上还,彘亦去。太后闻之,赐都金百斤,由此重郅都。
都为人勇,有气力,公廉,不发私书,问遗无所受,请寄无所听。
常自称曰:"已倍亲而仕,身固当奉职死节官下,终不顾妻子矣。"

번역:

질도(郅都)는 양현(杨县) 사람이다. 낭(郎)으로 문제를 섬겼다. 경제 때 질도는 중랑장(中郎将)이 되어 감히 직간하고 조정에서 대신들을 면전에서 꺾었다. 일찍이 상림원(上林苑)에 갔을 때 가희(贾姬)가 측간에 갔는데 갑자기 멧돼지가 측간에 들어갔다. 황제가 질도를 보았으나 질도는 가지 않았다. 황제가 손수 병기를 잡고 가희를 구하려 하자 질도가 앞에 엎드려 말했다: “한 명의 희비(姬)가 죽으면 또 한 명이 들어옵니다. 천하에 어찌 가희 한 사람이 부족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시더라도 종묘와 태후를 어찌하시렵니까!” 황제가 돌아오고 멧돼지도 갔다. 태후가 듣고 질도에게 금 백 근을 하사했으며, 이로부터 질도를 중히 여겼다. 질도는 용맹하고 기력이 있었으며 공평하고 청렴하여, 사사로운 편지를 받지 않았고, 선물을 받지 않았으며, 청탁을 듣지 않았다. 항상 스스로 말했다: “이미 친척을 떠나 벼슬에 나갔으니, 몸은 마땅히 직분을 받들어 관직에서 죽을지언정 끝내 처자를 돌보지 않겠다.”

원문:

济南瞷氏宗人三百馀家,豪猾,二千石莫能制,於是景帝乃拜都为济南太守。
至则族灭瞷氏首恶,馀皆股栗。居岁馀,郡中不拾遗。
郅都迁为中尉。丞相条侯至贵倨也,而都揖丞相。
是时民朴,畏罪自重,而都独先严酷,致行法不避贵戚,
列侯宗室见都侧目而视,号曰"苍鹰"。

번역:

제남(济南)의 간씨(瞷氏) 종족 300여 집이 교활하고 횡포하여 2천석(二千石)의 수령도 제어할 수 없었다. 이에 경제가 질도를 제남태수로 임명했다. 도착하자마자 간씨의 주범을 족멸(族灭)하니 나머지는 모두 다리가 떨렸다. 1년여가 지나자 군내에서 도둑이 사라졌다. 질도가 중위(中尉)로 승진했다. 승상 조후(条侯)는 지극히 귀하고 오만했으나 질도는 승상에게 읍(揖)만 했다. 이때 백성은 순박하여 죄를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삼갔으나, 질도는 홀로 먼저 엄격하고 가혹하여 법을 집행함에 귀척을 피하지 않았다. 열후와 종실이 질도를 보면 눈을 흘겼고, 그를 “창응(蒼鷹, 푸른 매)“이라 불렀다.

원문 (임강왕 사건):

临江王徵诣中尉府对簿,临江王欲得刀笔为书谢上,而都禁吏不予。
魏其侯使人以间与临江王。临江王既为书谢上,因自杀。
窦太后闻之,怒,以危法中都,都免归家。
孝景帝乃使使持节拜都为雁门太守,而便道之官,得以便宜从事。
匈奴素闻郅都节,居边,为引兵去,竟郅都死不近雁门。
匈奴至为偶人象郅都,令骑驰射莫能中,见惮如此。
匈奴患之。窦太后乃竟中都以汉法。
景帝曰:"都忠臣。"欲释之。窦太后曰:"临江王独非忠臣邪?"
於是遂斩郅都。

번역:

임강왕(临江王)이 중위부(中尉府)에 불려가 대질하게 되었다. 임강왕이 붓을 얻어 글을 써서 황제께 사례하려 했으나 질도가 관리를 시켜 주지 못하게 했다. 위기후(魏其侯) 두영이 사람을 시켜 몰래 임강왕에게 붓을 전했다. 임강왕이 글을 써서 황제께 사례한 뒤 자살했다. 두태후가 듣고 노하여 위험한 법으로 질도를 고발하게 해 질도는 파면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경제가 사자를 보내 부절(符节)을 가지고 질도를 안문태수(雁门太守)로 임명하며 편도(便道)로 부임하게 하고 편의대로 처리할 권한을 주었다. 흉노가 평소 질도의 명성을 듣고 변방에 질도가 있자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으며, 결국 질도가 죽을 때까지 안문(雁门)에 가까이 오지 않았다. 흉노는 심지어 질도를 닮은 인형을 만들어 기병들이 달려가며 쏘았으나 명중시키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했다. 흉노가 그것을 근심했다. 두태후가 마침내 한나라 법으로 질도를 중상(中伤)했다. 경제가 말했다: “질도는 충신이다.” 풀어주려 했다. 두태후가 말했다: “임강왕이 어찌 충신이 아니었습니까?” 이에 마침내 질도를 참수했다.

해설: 사마천은 가혹한 관리들의 원형으로 질도를 제시한다. 그는 공평하고 청렴했으나(不发私书, 不受馈赠), 법 앞에서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창응”이라는 별명은 그의 가차 없는 법 집행을 상징한다. 그러나 질도의 최후는 모순적이다 — 충신이었으나 정치적 갈등(임강왕 자살 사건)에 휘말려 처형되었다. 경제는 그를 살리려 했으나 두태후가 막았다. 사마천은 여기서 법의 집행과 정치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질도가 흉노를 물리친 공로와 태후의 개인적 원한 사이에서 법이 어떻게 왜곡되는지가 이 열전 전체의 주제를 예고한다.


2절: 宁成(녕성) — 이리 같은 관리

섹션 제목: “2절: 宁成(녕성) — 이리 같은 관리”

원문:

宁成者,穰人也。以郎谒者事景帝。好气,为人小吏,必陵其长吏;
为人上,操下如束湿薪。滑贼任威。
武帝即位,徙为内史。外戚多毁成之短,抵罪髡钳。
是时九卿罪死即死,少被刑,而成极刑,自以为不复收,
於是解脱,诈刻传出关归家。
称曰:"仕不至二千石,贾不至千万,安可比人乎!"
乃贳贷买陂田千馀顷,假贫民,役使数千家。数年,会赦。
致产数千金,为任侠,持吏长短,出从数十骑。其使民威重於郡守。

번역:

녕성(宁成)은 양현(穰县) 사람이다. 낭알자(郎谒者)로 경제를 섬겼다. 성격이 강해서 아랫사람일 때는 반드시 윗사람을 능멸했고, 윗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을 마치 젖은 장작을 묶듯 다루었다. 교활하고 잔학했으며 위엄을 믿었다. 무제가 즉위하자 내사(内史)로 옮겼다. 외척들이 많이 녕성의 단점을 헐뜯어 죄를 받아 곤견(髡钳, 머리 깎고 칼 쓰는 형벌)을 당했다. 이때 구경(九卿)은 죽을죄를 지으면 곧 죽을 뿐 형벌을 받는 일이 드물었는데, 녕성은 극형(极刑, 중형)을 받았다. 스스로 다시는 쓰이지 못할 것이라 여겨 형구를 풀고 관문 통행증을 위조해 집으로 도망갔다. 말했다: “벼슬이 2천석에 이르지 못하고, 장사로 천만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이에 돈을 빌려 언덕 밭 천여 경을 사서 가난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수천 가를 부려먹었다. 몇 년 후 사면을 만났다. 재산 수천 금을 모으고 협객(任侠) 행세를 하며 관리들의 장단점을 쥐고 흔들었고, 출타할 때 수십 기가 따랐다. 그가 백성을 부리는 위엄이 군수보다 무거웠다.

해설: 녕성은 질도의 청렴함은 없었으나 오히려 더 오래 살았다. 그는 법의 망을 빠져나와 사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향후 권력을 행사했다. 그의 말 “仕不至二千石,贾不至千万,安可比人乎”(벼슬이 2천석도 못 되고 돈이 천만도 안 되면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는 당시 권력과 부의 상관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마천은 녕성을 통해 법의 모순을 그린다 — 법으로 처벌했으나 오히려 그는 더 강력한 사적 권력자가 되었다.


3절: 周阳由(주양유) — 가장 폭력적인 관리

섹션 제목: “3절: 周阳由(주양유) — 가장 폭력적인 관리”

원문:

周阳由者,其父赵兼以淮南王舅父侯周阳,故因姓周阳氏。
由以宗家任为郎,事孝文及景帝。景帝时,由为郡守。
武帝即位,吏治尚循谨甚,然由居二千石中,最为暴酷骄恣。
所爱者,挠法活之;所憎者,曲法诛灭之。所居郡,必夷其豪。
为守,视都尉如令。为都尉,必陵太守,夺之治。
由後为河东都尉,时与其守胜屠公争权,相告言罪。
胜屠公当抵罪,义不受刑,自杀,而由弃市。

번역:

주양유(周阳由)는 그 아버지 조겸(赵兼)이 회남왕의 외삼촌으로 주양(周阳) 땅에 봉해져 성을 주양씨라 했다. 주양유는 종실의 집안으로 낭(郎)에 천거되어 문제와 경제를 섬겼다. 경제 때 주양유는 군수였다. 무제 즉위 초에는 관리의 다스림이 오히려 삼가고 공손했으나, 주양유는 2천석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교만하며 방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법을 굽혀 살려주었고, 미워하는 사람은 법을 왜곡해 죽였다. 그가 있는 군에서는 반드시 호족을 없애버렸다. 군수가 되면 도위(都尉)를 현령처럼 보았고, 도위가 되면 반드시 태수를 능멸하고 그 통치권을 빼앗았다. 주양유는 나중에 하동도위(河东都尉)가 되었는데, 당시 태수 승도공(胜屠公)과 권력을 다투다가 서로 고발했다. 승도공은 마땅히 죄를 받아야 했으나 의리상 형벌을 받지 않겠다며 자살했고, 주양유는 시장에서 처형되었다.

해설: 주양유는 가장 단순하고 폭력적인 유형의 가혹한 관리다. 법을 자신의 사적 감정을 위한 도구로 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도 자신이 저지른 권력 다툼으로 처형된다. 사마천은 여기서 법의 잔혹함이 자기를 파멸시키는 역설을 보여준다.


4절: 赵禹(조우) — 가혹한 법의 설계자

섹션 제목: “4절: 赵禹(조우) — 가혹한 법의 설계자”

원문:

赵禹者,斄人。以佐史补中都官,用廉为令史,事太尉亚夫。
亚夫为丞相,禹为丞相史,府中皆称其廉平。
然亚夫弗任,曰:"极知禹无害,然文深,不可以居大府。"
今上时,禹以刀笔吏积劳,稍迁为御史。上以为能,至太中大夫。
与张汤论定诸律令,作见知,吏传得相监司。用法益刻,盖自此始。

번역:

조우(赵禹)는 태(斄县) 사람이다. 좌사(佐史)에서 중도관(中都官)을 보충했고, 청렴함으로 영사(令史)가 되어 태위 주아부(周亚夫)를 섬겼다. 주아부가 승상이 되자 조우는 승상사(丞相史)가 되었고, 관부에서 모두 그의 청렴하고 공평함을 칭찬했다. 그러나 주아부는 그를 중용하지 않으며 말했다: “매우 조우가 무해(无害, 능력 있다)함은 알지만 문장이 너무 깊어(文深, 법을 엄격히 적용하여 죄를 확장함) 큰 관부에 둘 수 없다.” 지금 황제(무제) 때, 조우는 도필리(刀笔吏, 문서 관리)로서 오랜 공로로 점차 승진해 어사(御史)가 되었다. 황제가 능력을 인정해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르렀다. 장탕(张汤)과 함께 모든 율령을 논의하고 결정하여 견지(见知, 관리가 서로 감시하게 한 법)를 만들었다. 법을 쓰는 것이 더 가혹해진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원문 (조우의 말년):

赵禹中废,已而为廷尉。始条侯以为禹贼深,弗任。
及禹为少府,比九卿。禹酷急,至晚节,事益多,吏务为严峻,
而禹治加缓,而名为平。禹以老,徙为燕相。数岁,乱悖有罪,免归。
後汤十馀年,以寿卒于家。

번역:

조우는 중간에 파면되었다가 후에 정위(廷尉)가 되었다. 처음에 조후(条侯 주아부)는 조우가 너무 엄격하고 깊다고 여겨 중용하지 않았다. 조우가 소부(少府)에 이르러 구경(九卿)에 나란히 했다. 조우는 가혹하고 급했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일이 많아지고 관리들이 엄격하고 가혹함을 힘쓰자, 조우의 다스림은 오히려 완화되어 공평하다는 평을 들었다. 조우는 나이 들어 연상(燕相)으로 옮겼다. 몇 년 후 정신이 혼미해져 죄를 짓고 파면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장탕이 죽은 지 10여 년 후, 나이 들어 집에서 편안히 죽었다.

해설: 조우는 주아부가 미리 간파한 인물이다 — “极知禹无害,然文深” — 아주 능력 있지만 법 적용이 너무 깊고 엄격하다. 그가 장탕과 함께 만든 견지법(见知法, 관리 상호 감시 제도)은 한나라 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의 말년 — 주변 관리들이 더 가혹해지자 오히려 그가 누그러졌다. 이는 사마천이 제시하는 잔혹함의 상대성을 보여준다.


5절: 张汤(장탕) — 가혹한 법의 화신

섹션 제목: “5절: 张汤(장탕) — 가혹한 법의 화신”

5-1. 쥐 재판 — 천재 소년의 탄생

섹션 제목: “5-1. 쥐 재판 — 천재 소년의 탄생”

원문:

张汤者,杜人也。其父为长安丞,出,汤为兒守舍。
还而鼠盗肉,其父怒,笞汤。
汤掘窟得盗鼠及馀肉,劾鼠掠治,传爰书,讯鞫论报,
并取鼠与肉,具狱磔堂下。
其父见之,视其文辞如老狱吏,大惊,遂使书狱。

번역:

장탕(张汤)은 두현(杜县)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가 장안승(长安丞)이었는데, 외출하자 장탕이 아이로서 집을 지켰다. 아버지가 돌아오니 쥐가 고기를 훔쳐갔고, 아버지가 노해 장탕을 때렸다. 장탕이 쥐구멍을 파서 도둑쥐와 남은 고기를 잡아, 쥐를 고발해 신문하고, 원서(爰书, 공문서)를 전달하고, 심문하고 논죄해 보고한 뒤, 쥐와 고기를 함께 가져와서 죄안을 완성해 당 아래에서 능지처참했다. 그의 아버지가 보고 그 문장이 늙은 옥리(狱吏)와 같음을 보고 크게 놀라, 이에 그에게 옥사(狱事)를 배우게 했다.

해설: 사기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어린 장탕이 쥐를 ‘재판’하는 장면 — 그는 이미 어릴 때부터 법 절차의 마스터였다. ‘고발→심문→공문서→판결→처형’이라는 완벽한 형사 절차를 쥐에게 적용했다. 이 일화는 장탕의 천재성과 동시에 그의 근본적인 특성 — 법을 완벽히 다루지만 그 대상이 ‘쥐’라는 우스꽝스러움 — 을 보여준다. 사마천의 아이러니가 빛나는 장면이다.

원문:

是时上方乡文学,汤决大狱,欲傅古义,乃请博士弟子治尚书、春秋补廷尉史,亭疑法。
奏谳疑事,必豫先为上分别其原,上所是,受而著谳决法廷尉,絜令扬主之明。
奏事即谴,汤应谢,乡上意所便,必引正、监、掾史贤者,
曰:"固为臣议,如上责臣,臣弗用,愚抵於此。"罪常释。
即奏事,上善之,曰:"臣非知为此奏,乃正、监、掾史某为之。"
其欲荐吏,扬人之善蔽人之过如此。
所治即上意所欲罪,予监史深祸者;即上意所欲释,与监史轻平者。
所治即豪,必舞文巧诋;即下户羸弱,时口言,虽文致法,上财察。
於是往往释汤所言。

번역:

이때 황제(무제)가 문학(儒学)을 좋아했다. 장탕이 큰 옥사를 결심할 때 고의(古义)를 붙이려 했다. 이에 박사(博士) 제자 중 상서(尚书)와 춘추(春秋)를 공부한 자를 청해 정위사(廷尉史)를 보충하게 하고 의심스러운 법률을 판결하게 했다. 의심스러운 일을 아뢸 때는 반드시 미리 황제를 위해 그 근원을 분석했고, 황제가 옳게 여기면 그것을 받들어 정위(廷尉)의 판결법으로 삼고 법령을 정리해 주상의 명철함을 드러냈다. 아뢴 일이 꾸지람을 받으면 장탕은 응대해 사죄하며 주상의 뜻에 편리한 대로 따르고, 반드시 정(正)·감(监)·연사(掾史) 중 현명한 자를 인용해 말했다: “참으로 신과 의논했으나 위에서 신을 꾸짖는 대로 신이 따르지 않아 어리석게도 이에 이르렀습니다.” 죄는 대개 풀렸다. 아뢴 일을 주상이 좋게 여기면 말했다: “신이 이 아뢰기를 알지 못했고, 이는 정·감·연사 아무개가 한 것입니다.” 그가 관리 천거를 원할 때는 이렇게 남의 선함을 드러내고 허물을 가렸다. 다스리는 일에 주상의 뜻이 죄주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감사(监史) 중 깊이 화를 입힐 자를 붙였고, 주상의 뜻이 석방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가볍고 공평한 감사를 붙였다. 다스리는 대상이 호족(豪族)이면 반드시 문구를 교묘히 꾸며 헐뜯었고, 가난하고 약한 백성이면 때로 말로만 하고 비록 법을 적용해도 주상이 살피게 했다. 이에 장탕이 말한 대로 자주 용서받았다.

해설: 이 구절은 장탕의 정치적 천재성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는 황제의 뜻을 읽고 법을 그에 맞추는 데 탁월했다. 자신의 공은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잘못은 자신이 뒤집어쓰는 척했다. 겉으로는 겸손했지만 실상은 법을 황제의 감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구부렸다. 이는 사마천이 이 열전에서 가장 깊이 파고드는 지점이다 — 법이란 무엇인가? 권력자의 의지를 합리화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정의의 기준인가?

원문 (장탕의 전성기):

汤每朝奏事,语国家用,日晏,天子忘食。丞相取充位,天下事皆决於汤。
百姓不安其生,骚动,县官所兴,未获其利,奸吏并侵渔,於是痛绳以罪。
则自公卿以下,至於庶人,咸指汤。汤尝病,天子至自视病,其隆贵如此。

번역:

장탕이 조정에 아뢰는 일마다 국가의 재정을 말하면 날이 저물도록 황제가 밥 먹는 것을 잊었다. 승상은 빈 자리만 채웠고, 천하의 일이 모두 장탕에게서 결정되었다. 백성은 그 생활이 불안해 소란스러웠고, 관청에서 일으킨 사업은 이익을 얻지 못했으며, 간사한 관리들이 함께 침탈했다. 이에 엄격히 죄를 다스렸다. 공경(公卿) 이하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탕을 손가락질했다. 장탕이 일찍이 병들자 황제가 직접 병문안을 갔을 정도로 그의 영화로움이 이와 같았다.

해설: 승상이 빈자리만 채우고(丞相取充位), 천하의 일이 장탕에게서 결정되었다 — 이는 권력의 실제 이동을 생생히 묘사한다. 무제는 장탕에게 의존했고, 장탕은 그 신뢰를 바탕으로 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공경 이하 지어서인, 함지탕(自公卿以下,至於庶人,咸指汤)” — 모두가 그를 원망했다. 이는 권력의 정점과 여론의 밑바닥 사이의 극단적 괴리다. 황제가 병문안을 갈 정도로 총애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그의 편에 서지 않았다.

5-3. 적산(狄山) 논쟁 — 충신과 간신의 변증법

섹션 제목: “5-3. 적산(狄山) 논쟁 — 충신과 간신의 변증법”

원문:

匈奴来请和亲,群臣议上前。博士狄山曰:"和亲便。"
上问其便,山曰:"兵者凶器,未易数动。...
今自陛下举兵击匈奴,中国以空虚,边民大困贫。由此观之,不如和亲。"
上问汤,汤曰:"此愚儒,无知。"
狄山曰:"臣固愚忠,若御史大夫汤乃诈忠。
若汤之治淮南、江都,以深文痛诋诸侯,别疏骨肉,使蕃臣不自安。
臣固知汤之为诈忠。"
於是上作色曰:"吾使生居一郡,能无使虏入盗乎?"曰:"不能。"
曰:"居一县?"对曰:"不能。"复曰:"居一障间?"
山自度辩穷且下吏,曰:"能。"
於是上遣山乘鄣。至月馀,匈奴斩山头而去。
自是以後,群臣震慴。

번역:

흉노가 화친을 청해왔다. 여러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의논했다. 박사 적산(狄山)이 말했다: “화친이 편리합니다.” 황제가 그 이유를 묻자 적산이 말했다: “전쟁은 흉기(凶器)여서 쉽게 여러 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군사를 일으켜 흉노를 치니 중국이 텅 비고 변경 백성들이 크게 곤궁해졌습니다. 이로 보아 화친만 못합니다.” 황제가 장탕에게 물었다. 장탕이 말했다: “이 어리석은 유생이라 아는 게 없습니다.” 적산이 말했다: “신이 진실로 어리석은 충성(愚忠)을 다할 뿐이지만, 어사대부 장탕은 이른바 교활한 충성(诈忠)입니다. 장탕이 회남·강도를 다스린 것을 보면 깊은 문장(법)으로 제후들을 헐뜯고 골육을 이간질하여 번신(藩臣)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신이 알기로 장탕은 교활한 충성을 하는 자입니다.” 이에 황제가 안색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그대로 하여금 한 군을 맡게 하면, 노략질하는 적을 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적산이 말했다: “할 수 없습니다.” “한 현을 맡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한 봉화대 사이(一障间)를 맡으면?” 적산은 스스로 변론이 궁색해지고 옥리에 넘겨질 것을 헤아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황제가 적산을 보내 봉화대를 지키게 했다. 한 달여 만에 흉노가 적산의 목을 베고 갔다. 이후로 여러 신하들이 두려워 떨었다.

해설: 사기에서 가장 강력한 장면 중 하나다. 적산은 장탕을 공격했으나 자신의 무능을 증명하라는 황제의 압박에 밀려 결국 죽음으로 내몰린다. 이 장면은 무제 시대의 정치적 분위기 — 반대 의견을 제시한 자는 그 자신이 증명하라는 논리 — 를 생생히 보여준다. 또한 장탕의 방법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대를 “우둔한 유생(愚儒)“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제거를 정당화한다. 이는 후일 이릉(李陵) 사건에서 사마천 자신이 당한 일과도 닮아 있다.

5-4. 최후 — 법의 제조자가 법에 무너지다

섹션 제목: “5-4. 최후 — 법의 제조자가 법에 무너지다”

원문:

汤乃为书谢曰:"汤无尺寸功,起刀笔吏,陛下幸致为三公,无以塞责。
然谋陷汤罪者,三长史也。"遂自杀。
汤死,家产直不过五百金,皆所得奉赐,无他业。
昆弟诸子欲厚葬汤,汤母曰:
"汤为天子大臣,被汙恶言而死,何厚葬乎!"
载以牛车,有棺无椁。
天子闻之,曰:"非此母不能生此子。"
乃尽案诛三长史。丞相青翟自杀。出田信。上惜汤。稍迁其子安世。

번역:

장탕이 글을 써서 사죄하며 말했다: “장탕은 털끝만한 공로도 없이 도필리(刀笔吏)에서 일어나 폐하께서 감히 삼공(三公)에 이르게 하셨으나,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을 모함하여 죄에 빠뜨린 자는 세 장사(三长史, 주매신·왕조·변통)입니다.” 마침내 자살했다. 장탕이 죽자 집 재산이 겨우 500금을 넘지 않았고, 모두 받은 봉록과 하사품일 뿐 다른 재산이 없었다. 형제와 아들들이 후하게 장사 지내려 하자 장탕의 어머니가 말했다: “장탕이 천자의 대신이 되어 더러운 말을 뒤집어쓰고 죽었는데, 어찌 후장(厚葬)을 하겠느냐!” 소수레에 싣고 관은 있으나 곽(椁)이 없었다. 천자가 듣고 말했다: “이런 어머니가 아니면 이런 아들을 낳을 수 없다.” 이에 세 장사를 모두 조사하여 주살했다. 승상 청적(青翟)도 자살했다. 전신(田信)을 석방했다. 황제는 장탕을 아꼈다. 그의 아들 안세(安世)를 점차 승진시켰다.

해설: 장탕의 최후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법을 무기로 남을 파멸시킨 자가 결국 법의 올무에 걸려 자살한다. 그러나 그의 청렴함(家产不过五百金)은 그의 모순적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 그는 부패하지 않았지만 잔혹했다. 어머니의 태도(薄葬)는 장탕의 인간적 면모를 보완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 그를 모함한 세 장사(주매신·왕조·변통)가 모두 처형되고 승상 청적이 자살한 반면, 장탕의 아들은 승진했다. 즉 황제는 장탕이 무고했음을 알았지만, 그가 죽은 후에야 복수해주었다. 이는 권력의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6절: 义纵(의종) — 도적에서 관리로, 하루 400명의 처형자

섹션 제목: “6절: 义纵(의종) — 도적에서 관리로, 하루 400명의 처형자”

원문:

义纵者,河东人也。为少年时,尝与张次公俱攻剽为群盗。
纵有姊姁,以医幸王太后。王太后问:"有子兄弟为官者乎?"
姊曰:"有弟无行,不可。"太后乃告上,拜义姁弟纵为中郎,补上党郡中令。
治敢行,少蕴藉,县无逋事,举为第一。
纵至,掩定襄狱中重罪轻系二百馀人,
及宾客昆弟私入相视亦二百馀人。
纵一捕鞠,曰"为死罪解脱"。
是日皆报杀四百馀人。其後郡中不寒而栗,猾民佐吏为治。

번역:

의종(义纵)은 하동(河东) 사람이다. 젊었을 때 장차공(张次公)과 함께 도적질하며 떼를 지어 약탈했다. 의종에게 누이 의후(姁)가 있었는데, 의술로 왕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왕태후가 물었다: “아들이나 형제 중에 벼슬할 사람이 있느냐?” 누이가 말했다: “동생이 있으나 행실이 없어서 안 됩니다.” 태후가 황제에게 말해 의후의 동생 의종을 중랑(中郎)으로 임명하고 상당군(上党郡)의 현령(县令)으로 보궐했다. 다스림에 과감하고 주저함이 없어 현에 미뤄진 일이 없었고, 가장 잘 다스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의종이 정양(定襄) 태수로 부임해 정양 옥중의 중죄수와 경범죄자 200여 명, 그리고 면회 온 빈객과 형제들 200여 명을 모두 체포했다. 한 번에 잡아다 신문하고 말했다: “사형수의 탈옥을 도왔다.” 그날 모두 400여 명을 처형했다. 이후 군내에서는 불안에 떨었고, 교활한 백성들이 도리어 관리를 도와 다스렸다.

해설: 의종은 한때 도적이었다가 관리가 된 인물이다. 그의 통치 방식은 공포에 의한 질서다. 하루에 400명을 처형하는 장면은 그 잔혹함의 극치다. 그러나 사마천이 더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그 결과 — “其後郡中不寒而栗,猾民佐吏为治”(이후 군내에서 두려워 떨었고 교활한 백성들이 도리어 관리를 도왔다). 공포는 일시적으로 질서를 만들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회 질서가 아니다. 의종의 말로도 아이러니하다 — 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제의 미움을 사서 처형된다.


7절: 王温舒(왕온서) — “겨울이 한 달만 더 길었어도!”

섹션 제목: “7절: 王温舒(왕온서) — “겨울이 한 달만 더 길었어도!””

원문:

王温舒者,阳陵人也。少时椎埋为奸。
尽十二月,郡中毋声,毋敢夜行,野无犬吠之盗。
其颇不得,失之旁郡国,黎来,会春,温舒顿足叹曰:
"嗟乎,令冬月益展一月,足吾事矣!"
其好杀伐行威不爱人如此。

번역:

왕온서(王温舒)는 양릉(阳陵) 사람이다. 젊었을 때 도굴과 같은 간악한 짓을 했다. 12월이 다 가도록 군내에서 소리 하나 없었고, 감히 밤에 다니는 자가 없었으며, 들판에 개 짖는 소리조차 없었다. 그 중 잡지 못한 자가 있으면 근처 군국으로 도망가 붙잡혀 왔다. 그런데 봄을 만나자(겨울이 지나자) 왕온서가 발을 구르며 탄식했다: “아아, 겨울 달이 한 달만 더 길었어도 내 일을 끝마칠 텐데!” 그가 살육을 좋아하고 위엄을 행사하여 사람을 아끼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해설: 사기 전체에서 가장 섬뜩한 대사 중 하나다. 사형은 가을·겨울에만 집행된다. 왕온서는 봄이 와서 더 이상 죽일 수 없게 되자 “겨울이 한 달만 더 길었어도”라고 탄식한다. 이 한마디에 그의 인생관이 압축되어 있다 — 살육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법의 집행자가 아니라 살육에 중독된 자다.

원문 (왕온서의 최후):

岁馀,会宛军发,诏徵豪吏,温舒匿其吏华成,
及人有变告温舒受员骑钱,他奸利事,罪至族,自杀。
其时两弟及两婚家亦各自坐他罪而族。
光禄徐自为曰:"悲夫,夫古有三族,而王温舒罪至同时而五族乎!"

번역:

1년여 후, 완(大宛) 정벌군이 출발하게 되어 조칙으로 호리(豪吏)를 징발했다. 왕온서가 그 관리 화성(华成)을 숨겼다. 이에 사람이 왕온서가 원기(员骑)의 돈을 받고 다른 간사한 일로 이익을 보았다고 변고(변고)를 고했다. 죄가 족멸(族灭)에 해당해 자살했다. 이때 그의 두 동생과 두 처갓집도 각각 다른 죄로 족멸되었다. 광록(光禄) 서자위(徐自为)가 말했다: “슬프다! 옛날에는 삼족(三族)이 있다고 했는데, 왕온서는 죄가 동시에 오족(五族)에 이르렀구나!”

해설: 남을 족살(族杀)하던 관리가 자신의 집안이 오족(五族)으로 멸족당한다 — 잔혹함의 잔혹한 귀결. 서자위의 “고유삼족(古有三族), 이왕온서취지동시이오족호(而王温舒罪至同时而五族乎)“는 신랄한 풍자다. 사마천은 이 한마디로 가혹한 법이 집행자 자신을 파멸시키는 역설을 압축한다.


8절: 杜周(두주) — 법은 무엇인가?

섹션 제목: “8절: 杜周(두주) — 법은 무엇인가?”

원문:

杜周者,南阳杜衍人。义纵为南阳守,以为爪牙,举为廷尉史。
事张汤,汤数言其无害,至御史。
其治与宣相放,然重迟,外宽,内深次骨。
宣为左内史,周为廷尉,其治大放张汤而善候伺。
上所欲挤者,因而陷之;上所欲释者,久系待问而微见其冤状。
客有让周曰:"君为天子决平,不循三尺法,专以人主意指为狱。狱者固如是乎?"
周曰:"三尺安出哉?前主所是著为律,後主所是疏为令,当时为是,何古之法乎!"

번역:

두주(杜周)는 남양 두연(南阳杜衍) 사람이다. 의종이 남양태수였을 때 그의 앞잡이로 삼아 정위사(廷尉史)로 천거했다. 장탕을 섬겼는데, 장탕이 여러 번 그의 능력을 칭찬해 어사(御史)에 이르렀다. 그의 다스림은 감선(减宣)과 비슷했으나, 무겁고 느리며 겉은 너그럽고 속은 뼛속까지 깊었다. 감선이 좌내사(左内史)일 때 두주는 정위(廷尉)였다. 그 다스림은 크게 장탕을 본받았으며 상황 관찰을 잘했다. 황제가 배척하려는 자는 따라서 함정에 빠뜨렸고, 황제가 석방하려는 자는 오래 가두어 두고 기다리다가 조용히 그 원통함을 드러내게 했다. 객(客)이 두주를 나무랐다: “그대는 천자를 위해 공평한 판결을 하는 사람이다. 삼척법(三尺法, 법전)을 따르지 않고 오직 인주(人主)의 뜻과 지시로만 옥사를 판단한다. 옥사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인가?” 두주가 말했다: “삼척법(三尺法)이 어디서 나왔는가? 전대의 주상이 옳게 여긴 것을 기록한 것이 율(律)이 되고, 후대의 주상이 옳게 여긴 것을 기록한 것이 영(令)이 된다. 시대에 맞게 옳게 하는 것이지, 어찌 옛날 법이 있겠는가!”

해설: 이 한 마디 — “三尺安出哉?前主所是著为律,後主所是疏为令” — 는 법철학의 정수를 관통한다. 법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권력자의 의지가 기록된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선언. 두주는 장탕의 방법론을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인물이다. 황제의 뜻을 읽고 법을 그에 맞추는 기술을 아버지에게서 배운 아들들도 모두 가혹한 관리가 되었다.


원문:

太史公曰:自郅都、杜周十人者,此皆以酷烈为声。
然郅都伉直,引是非,争天下大体。
张汤以知阴阳,人主与俱上下,时数辩当否,国家赖其便。
赵禹时据法守正。杜周从谀,以少言为重。
自张汤死後,网密,多诋严,官事浸以秏废。
九卿碌碌奉其官,救过不赡,何暇论绳墨之外乎!
然此十人中,其廉者足以为仪表,其污者足以为戒,
方略教导,禁奸止邪,一切亦皆彬彬质有其文武焉。
虽惨酷,斯称其位矣。
至若蜀守冯当暴挫,广汉李贞擅磔人,东郡弥仆锯项,
天水骆璧推咸,河东褚广妄杀,京兆无忌、冯翊殷周蝮鸷,
水衡阎奉朴击卖请,何足数哉!何足数哉!

번역:

태사공이 말한다: 질도(郅都)에서 두주(杜周)까지 열 사람은 모두 잔혹하고 엄격한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질도는 강직하고 곧았으며 옳고 그름을 따져 천하의 대체(大体)를 다투었다. 장탕은 음양(阴阳)을 알아 인주(人主)와 함께 오르내리며 때로 여러 번 옳고 그름을 변론해 국가가 그 편리를 입었다. 조우(赵禹)는 때로 법을 지켜 바르게 했다. 두주(杜周)는 아첨을 따르며 말수가 적은 것을 중히 여겼다. 장탕이 죽은 후부터 법망이 촘촘해지고 헐뜯고 엄격함이 많아져 관청 일이 점차 피폐해졌다. 구경(九卿)들은 그저 그들의 관직을 채우며 잘못을 면하기에도 부족해 어찌 법의 테두리 밖을 논할 겨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 열 명 중에서 그 청렴한 자는 족히 법도(仪表)가 되고 그 더러운 자는 족히 경계가 된다. 방략(方略)으로 가르쳐 간사함을 막고 사악함을 그치게 함에 있어, 모든 이 또한 모두 우아하고 질박하며 문무(文武)를 갖추었다. 비록 잔혹했으나 그 직위에 합당했다고 할 수 있다. 촉군(蜀郡) 태수 풍당(冯当)의 폭력적인 참혹함, 광한(广汉) 이정(李贞)이 함부로 인종(磔人)한 것, 동군(东郡) 미복(弥仆)이 목을 톱질한 것, 천수(天水) 낙벽(骆璧)이 추함(推咸)한 것, 하동(河东) 저광(褚广)이 함부로 죽인 것, 경조(京兆) 무기(无忌)와 풍익(冯翊) 은주(殷周)의 독사 같은 잔혹함, 수형(水衡) 염봉(阎奉)이 때리고 팔아먹은 것 — 어찌 셀 가치가 있겠는가! 어찌 셀 가치가 있겠는가!

해설: 사마천의 최종 평결은 놀라울 정도로 균형 잡혀 있다. 그는 이 열 명의 가혹한 관리들을 모두 나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도는 강직하고 대체를 다투었으며, 장탕은 국가에 이익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조우는 법을 지켰고, 두주만이 아첨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 — “虽惨酷,斯称其位矣”(비록 잔혹했으나 그 직위에 합당했다) — 에서 사마천의 복잡한 시각이 드러난다. 그는 가혹한 법 집행이 무제 시대에는 불가피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마지막의 열거 — 풍당·이정·미복 등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며 이 열전을 마친다. 이는 그들이 너무 잔혹해서 오히려 역사에 기록할 가치도 없다는 냉소적인 결론이다.


인물출신/배경주요 특징최후
郅都(질도)양현, 낭(郎) 출신청렴·강직·공평, ‘창응’이라는 별명두태후의 원한으로 처형
宁成(녕성)양현, 낭알자교활·잔학, 법망을 빠져나감, ‘宁见乳虎’자연사(?)
周阳由(주양유)종실 출신가장 폭력적·자의적 법 집행권력 다툼으로 처형
赵禹(조우)태현, 좌사 출신법 체계 설계자, 말년에 완화됨노후에 편안히 죽음
张汤(장탕)두현, 관리 집안법의 천재, 조정의 실권자, 청렴모함으로 자살
义纵(의종)하동, 도적 출신하루 400명 처형, 공포 통치길 관리 태만으로 처형
王温舒(왕온서)양릉, 도굴범 출신‘겨울을 연장하자’, 오족 멸족죄로 자살, 오족 멸족
尹齐(윤제)동군, 도필리무뚝뚝하고 잔혹병사
减宣(감선)양현, 좌사 출신세밀한 잔혹함대역죄로 자살
杜周(두주)남양, 의종의 앞잡이‘법은 군주의 의지’, 외유내강자연사(영화 누림)
  1. 법과 덕의 변증법: 서문에서 제기된 주제 — 법이 지나치면 오히려 간사함이 자란다. 한나라 초기의 ‘느슨함’이 가장 잘 다스려졌다는 역설.

  2. 잔혹함의 스펙트럼: 질도의 원칙 있는 법 집행에서 두주의 기회주의적 법 왜곡까지. 가혹한 관리들이 모두 동일하지 않다 — 청렴한 자(질도·조우)와 부패한 자(녕성·두주)의 차이가 있다.

  3. 법의 아이러니: 법으로 남을 처벌하던 자가 법으로 파멸한다. 장탕은 법을 무기로 삼았지만 결국 법의 올무에 걸려 자살한다. 왕온서는 남을 족살하던 자가 오족 멸족을 당한다.

  4. 권력과 법의 관계: 두주의 “전주소시저위률, 후주소시소위령(前主所是著为律,后主所是疏为令)” — 법은 권력자의 의지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진실.

  5. 사마천의 자기 투영: 장탕이 적산을 ‘우둔한 유생’으로 몰아 죽인 장면은 이릉 사건에서 사마천이 당한 일과 유사하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법의 잔혹함과 정치적 탄압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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