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열전 (李斯列傳) 원문과 번역
사기(史記) 권팔십칠(卷八十七) 열전제이십칠(列傳第二十七)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본질: 이사는 진(秦) 제국의 모든 제도(군현제·소전체·도량형)를 설계한 천재 관료였으나, 내면의 ‘두려움’을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 파멸한 인물이다. 화장실 쥐(비천함에 떨며 똥을 먹음)와 곳간 쥐(풍요 속에서 편안함)를 보며 결심한 그의 인생 출발점은 ‘지위와 안전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 동기는 그를 제국의 2인자로 끌어올렸지만, 진시황 사후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 조고의 밀실 음모(사구의 변)에 가담하게 만들었다. 결국 요참형(허리가 잘리는 형벌)을 앞두고 “아들과 함께 누런 개를 끌고 토끼 사냥을 가고 싶었으나 불가능하구나(牽黃犬俱出上蔡東門逐狡兔 豈可得乎)“라고 절규한 그의 탄식은 역사상 가장 서글픈 후회다.
1. 이사의 생애 3대 명문(名文)과 역사적 분기점
섹션 제목: “1. 이사의 생애 3대 명문(名文)과 역사적 분기점”| 시기 / 사건 | 명문 / 핵심 행동 | 주요 내용 및 의도 | 결과 |
|---|---|---|---|
| 상승기 (기원전 237) | 간축객서 (諫逐客書) | “태산은 흙을 가리지 않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외국인 인재 추방령 반대 | 진왕이 감탄하여 축객령 철회, 이사를 객경으로 중용 |
| 절정기 (기원전 213) | 분서(焚書) 건의 | 과거의 사상과 역사를 빌려 현재의 제도를 비판하는 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농학·의학을 제외한 서적 소각 | 지식 통제 및 사상 탄압, 제국 경직화 촉발 |
| 파멸기 (기원전 210~208) | 사구의 변 & 독책지술(督責之術) | 조고의 협박에 넘어가 부소를 죽이고 호해 옹립. 살아남기 위해 황제에게 신하들을 가혹하게 쥐어짜는 독책 건의 | 조고의 모함으로 체포되어 함양 저잣거리에서 요참형 |
2. 핵심 멘탈 모델 및 교훈
섹션 제목: “2. 핵심 멘탈 모델 및 교훈”① 곳간 쥐의 철학 (The Warehouse Rat Fallacy)
섹션 제목: “① 곳간 쥐의 철학 (The Warehouse Rat Fallacy)”- “사람의 어질고 못남은 쥐와 같아서 자기가 처한 위치(환경)에 달려 있을 뿐이다.”
- 교훈: 환경과 지위가 개인의 역량을 증폭시킬 수는 있지만, 환경에 대한 맹신과 기득권 집착이 도덕적 나침반을 마비시키면 지위 자체가 파멸의 덫이 된다.
② 손실 회피(Loss Aversion)와 악마와의 타협
섹션 제목: “② 손실 회피(Loss Aversion)와 악마와의 타협”- 사구의 변에서 조고는 “부소가 즉위하면 몽염이 승상이 될 것이고 당신은 실각한다”며 이사의 손실 공포를 자극함.
- 이사는 정의(태자 부소 계승)를 버리고 당장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거짓 유서를 작성함.
- 교훈: 잃을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내린 타협적 의사결정은, 당장은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파멸의 도화선이 된다.
③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방조자가 치른 대가
섹션 제목: “③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방조자가 치른 대가”- 이사는 동문 한비(韓非)를 시기하여 독살했고,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환관 조고의 시기와 모함에 걸려 삼족이 멸문당함.
- 교훈: 자신이 시스템을 조작하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쓴 칼날은, 시스템이 부패했을 때 반드시 자기 목을 겨눈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제1절: 쥐의 철학 — 이사의 출발 동기
섹션 제목: “제1절: 쥐의 철학 — 이사의 출발 동기”李斯者,楚上蔡人也。年少时,为郡小吏,见吏舍厕中鼠食不絜,近人犬,数惊恐之。斯入仓,观仓中鼠,食积粟,居大庑之下,不见人犬之忧。於是李斯乃叹曰:“人之贤不肖譬如鼠矣,在所自处耳!” 乃从荀卿学帝王之术。学已成,度楚王不足事,而六国皆弱,无可为建功者,欲西入秦。辞於荀卿曰:“斯闻得时无怠,今万乘方争时,游者主事。今秦王欲吞天下,称帝而治,此布衣驰骛之时而游说者之秋也。处卑贱之位而计不为者,此禽鹿视肉,人面而能彊行者耳。故诟莫大於卑贱,而悲莫甚於穷困。久处卑贱之位,困苦之地,非世而恶利,自讬於无为,此非士之情也。故斯将西说秦王矣。”
이사는 초(楚)나라 상채(上蔡) 사람이다. 젊었을 때 군의 작은 관리가 되었는데, 관청 창고의 화장실에 있는 쥐가 더러운 것을 먹고 사람과 개가 가까이 오면 여러 번 놀라는 것을 보았다. 이사가 곳간에 들어가 보니, 곳간의 쥐는 쌓인 곡식을 먹고 큰 처마 아래에 살면서 사람이나 개의 걱정이 없었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여 말했다: “사람이 현명하고 못난 것은 비유하자면 쥐와 같아서, 스스로 처한 곳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에 순경(荀卿, 순자)에게서 제왕의 술(帝王之術)을 배웠다. 학문이 이루어지자 초왕은 섬길 만하지 못하고, 여섯 나라는 모두 약해 공을 세울 곳이 없다고 판단하여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려 했다. 순자에게 작별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듣건대 때를 얻으면 게을리하지 말라 했습니다. 지금은 만승(萬乘)의 나라들이 다투는 때라, 유세하는 자가 주인이 됩니다. 지금 진왕은 천하를 삼키고 황제라 칭하며 다스리려 하니, 이야말로 포의(布衣)가 마음껏 달리고 유세가의 계절입니다. 천한 지위에 처하고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마치 고기를 보고도 먹지 않는 새나 짐승과 같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움 중에 천한 지위보다 큰 것이 없고, 슬픔 중에 곤궁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천하고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을 비판하고 이익을 싫어하는 척하며 스스로 무위(無爲)에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본심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서쪽으로 가서 진왕을 유세하겠습니다.”
① 두 종류의 쥐
이사 철학의 핵심이 이 한 문장에 압축된다. ‘인지현불초비여서의 재소자처이(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處耳)’ —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다. 선한 쥐와 악한 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 쥐와 곳간 쥐가 있을 뿐이다. 이 세계관은 이후 이사의 모든 결정을 관통한다: 그는 권력의 ‘곳간’에 들어가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그 ‘곳간’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버렸다.
② 순자에게 제왕술을 배우다
이사는 순자(荀子)에게서 배웠다.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며 성악설(性惡說) 을 주장한 사상가로, 인간은 교육과 법으로 교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사는 스승의 가르침 중 ‘법’과 ‘술’의 측면만을 선택적으로 흡수했다. 그는 순자에게 ‘때를 얻으면 게을리하지 말라(得時無怠)‘는 말로 작별 인사했는데, 이는 평생 그의 행동 원칙이 되었다.
또한 이 대목에서 이사는 ‘멸시와 빈곤’에 대한 공포를 고백한다: ‘고막대어비천, 비막심어빈곤(詬莫大於卑賤 悲莫甚於窮困)’. 이 공포가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말년에 이 공포가 오히려 그를 파멸로 이끈다 — 그는 귀족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 조고의 악행에 동참하고,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거짓 자백을 한다.
제2절: 여불위를 거쳐 진시황을 만나다
섹션 제목: “제2절: 여불위를 거쳐 진시황을 만나다”至秦,会庄襄王卒,李斯乃求为秦相文信侯吕不韦舍人;不韦贤之,任以为郎。李斯因以得说,说秦王曰:“胥人者,去其几也。成大功者,在因瑕衅而遂忍之。昔者秦穆公之霸,终不东并六国者,何也?诸侯尚众,周德未衰,故五伯迭兴,更尊周室。自秦孝公以来,周室卑微,诸侯相兼,关东为六国,秦之乘胜役诸侯,盖六世矣。今诸侯服秦,譬若郡县。夫以秦之彊,大王之贤,由灶上骚除,足以灭诸侯,成帝业,为天下一统,此万世之一时也。今怠而不急就,诸侯复彊,相聚约从,虽有黄帝之贤,不能并也。“秦王乃拜斯为长史,听其计,阴遣谋士赍持金玉以游说诸侯。诸侯名士可下以财者,厚遗结之;不肯者,利剑刺之。离其君臣之计,秦王乃使其良将随其後。秦王拜斯为客卿。
진나라에 도착하니 마침 장양왕이 죽었다. 이사는 진나라 승상 문신후 여불위에게 사인(舍人)이 되기를 청했고, 여불위가 그를 현명하게 여겨 낭(郎)으로 임명했다. 이사는 이를 통해 진왕(시황제)을 만나 유세했다: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은 때를 놓칩니다. 큰일을 이루는 사람은 틈을 타서 용감하게 행동합니다. 옛날 진목공이 패업을 이루고도 끝내 동쪽으로 여섯 나라를 병합하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제후가 아직 많고 주나라의 덕이 아직 쇠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패(五霸)가 번갈아 일어나며 주실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진효공 이래로 주실은 미미해지고 제후들은 서로 병합하여 관동(關東)이 여섯 나라가 되었으며, 진이 승세를 타 제후를 부린 지가 대략 여섯 대(代)입니다. 지금 제후들이 진을 두려워함은 마치 군현과 같습니다. 진의 강함과 대왕의 현명함으로는 마치 부뚜막을 쓸 듯이 제후들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만세에 한 번 뿐인 기회입니다. 지금 게을리하여 서두르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해져 합종(合從)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황제의 현명함이 있더라도 병합할 수 없습니다.” 진왕이 이사를 장사(長史)로 임명하고 그의 계책을 따랐다. 은밀히 모사를 보내 금과 옥을 가지고 제후들을 유세하게 했다. 제후의 명사 중 재물로 매수할 수 있는 자는 후하게 주어 결탁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이익(利劍)으로 찔러 죽였다. 이렇게 군신 사이를 이간질한 후 진왕은 양장(良將)으로 그 뒤를 공격하게 했다. 진왕이 이사를 객경(客卿)으로 임명했다.
이사는 여불위의 식객으로 출발했다. 여불위가 자초를 기화가거(奇貨可居)로 삼아 승상이 된 것처럼, 이사도 여불위를 발판으로 출세했다.
진시황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사는 ‘새로운 때(萬世之一時)’ 를 역설한다. 진목공 시대에도 천하를 통일하지 못한 이유는 제후가 많고 주나라의 덕이 아직 쇠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조건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논리다. 이 이론은 진시황이 좋아했다.
이사가 제안한 구체적 방법은 가히 섬뜩하다: 돈으로 매수하거나, 칼로 죽이거나. 이 이중 전략 — 뇌물 아니면 암살 — 은 진나라의 동방 정벌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사는 자신의 커리어가 이 전략으로 시작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조고에게 무너진 방식은 자신이 개발한 방법의 변형이었다 — 돈과 칼 대신 말(言)로 이사를 무너뜨린 것뿐이다.
제3절: 간축객서(諫逐客書) — 이사의 명문
섹션 제목: “제3절: 간축객서(諫逐客書) — 이사의 명문”会韩人郑国来间秦,以作注溉渠,已而觉。秦宗室大臣皆言秦王曰:“诸侯人来事秦者,大抵为其主游间於秦耳,请一切逐客。“李斯议亦在逐中。斯乃上书曰: 臣闻吏议逐客,窃以为过矣。昔缪公求士,西取由余於戎,东得百里奚於宛,迎蹇叔於宋,来丕豹、公孙支於晋。此五子者,不产於秦,而缪公用之,并国二十,遂霸西戎。孝公用商鞅之法,移风易俗,民以殷盛,国以富彊,百姓乐用,诸侯亲服,获楚、魏之师,举地千里,至今治彊。惠王用张仪之计,拔三川之地,西并巴、蜀,北收上郡,南取汉中,包九夷,制鄢、郢,东据成皋之险,割膏腴之壤,遂散六国之从,使之西面事秦,功施到今。昭王得范睢,废穰侯,逐华阳,彊公室,杜私门,蚕食诸侯,使秦成帝业。此四君者,皆以客之功。由此观之,客何负於秦哉!向使四君卻客而不内,疏士而不用,是使国无富利之实而秦无彊大之名也。 今陛下致昆山之玉,有随、和之宝,垂明月之珠,服太阿之剑,乘纤离之马,建翠凤之旗,树灵鼍之鼓。此数宝者,秦不生一焉,而陛下说之,何也?必秦国之所生然後可,则是夜光之璧不饰朝廷,犀象之器不为玩好,郑、卫之女不充後宫,而骏良駃騠不实外厩,江南金锡不为用,西蜀丹青不为采。所以饰後宫充下陈娱心意说耳目者,必出於秦然後可,则是宛珠之簪,傅玑之珥,阿缟之衣,锦绣之饰不进於前,而随俗雅化佳冶窈窕赵女不立於侧也。夫击甕叩缶弹筝搏髀,而歌呼呜呜快耳者,真秦之声也;郑、卫、桑间、昭、虞、武、象者,异国之乐也。今弃击甕叩缶而就郑卫,退弹筝而取昭虞,若是者何也?快意当前,適观而已矣。今取人则不然。不问可否,不论曲直,非秦者去,为客者逐。然则是所重者在乎色乐珠玉,而所轻者在乎人民也。此非所以跨海内制诸侯之术也。 臣闻地广者粟多,国大者人众,兵彊则士勇。是以太山不让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择细流,故能就其深;王者不卻众庶,故能明其德。是以地无四方,民无异国,四时充美,鬼神降福,此五帝、三王之所以无敌也。今乃弃黔首以资敌国,卻宾客以业诸侯,使天下之士退而不敢西向,裹足不入秦,此所谓”藉寇兵而赍盗粮”者也。 夫物不产於秦,可宝者多;士不产於秦,而原忠者众。今逐客以资敌国,损民以益雠,内自虚而外树怨於诸侯,求国无危,不可得也。 秦王乃除逐客之令,复李斯官,卒用其计谋。官至廷尉。二十馀年,竟并天下,尊主为皇帝,以斯为丞相。夷郡县城,销其兵刃,示不复用。使秦无尺土之封,不立子弟为王,功臣为诸侯者,使後无战攻之患。
마침 한나라 사람 정국(鄭國)이 진나라에 간첩으로 와서 수로 공사를 지은 일이 발각되었다. 진나라 종실 대신들이 모두 진왕에게 말했다: “제후국에서 와서 진나라를 섬기는 자들은 대체로 그 주인을 위해 진나라에서 간첩질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모든 객(客)을 쫓아내소서.” 이사도 축객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사가 이에 상소를 올렸다:
“신하들은 관리들이 축객을 의논한 것을 듣고 감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목공(繆公)이 선비를 구하여 서쪽으로 융(戎)에서 유여(由余)를 얻고, 동쪽으로 완(宛)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고, 송(宋)에서 건숙(蹇叔)을 맞이하고, 진(晉)에서 비표(丕豹)·공손지(公孫支)를 불러들였습니다. 이 다섯 선비는 진나라 태생이 아니지만 목공이 그들을 등용해 스무 나라를 병합하고 마침내 서융(西戎)에서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효공(孝公)은 상앙(商鞅)의 법을 사용해 풍속을 개혁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하며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백성이 즐겨 부리고 제후가 친히 복종하게 했으며, 초·위의 군대를 사로잡고 천 리의 땅을 차지하여 지금까지 다스려져 강성합니다. 혜문왕(惠文王)은 장의(張儀)의 계책을 써서 삼천(三川)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 파·촉을 병합하고 북쪽으로 상군(上郡)을 거두고 남쪽으로 한중(漢中)을 취했으며, 구이(九夷)를 포용하고 언·영(鄢·郢)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성고(成皋)의 험을 차지해 기름진 땅을 획득했으며, 마침내 여섯 나라의 합종을 풀어 서쪽으로 진을 섬기게 했고 그 공이 지금까지 이릅니다. 소양왕(昭襄王)은 범수(范睢)를 얻어 양후(穰侯)를 폐하고 화양군(華陽君)을 쫓아내며 공실을 강화하고 사문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잠식해 진으로 하여금 제업을 이루게 했습니다. 이 네 군주는 모두 객(客)의 공로로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객이 진나라에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만약 네 군주가 객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선비를 멀리하여 등용하지 않았다면, 나라에 부유하고 이로운 실상이 없고 진나라에 강대한 이름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곤산(崑山)의 옥을 얻으시고 수후주(隨侯珠)와 화씨벽(和氏璧)을 소유하셨으며, 명월(明月)의 구슬을 드리우고 태아(太阿)의 검을 차시고, 섬리(纖離)의 말을 타고 취봉(翠鳳)의 깃발을 세우고 영타(靈鼉)의 북을 놓으셨습니다. 이 여러 보물은 진나라에서 하나도 나지 않는데 폐하께서 좋아하시니,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된 것만 써야 한다면, 야광(夜光)의 벽은 조정을 장식하지 못하고, 서상(犀象)의 그릇은 완상(玩好)이 되지 못하며, 정·위(鄭·衛)의 여자는 후궁을 채우지 못하고, 준량궐제(駿良駃騠)는 외마구를 채우지 못하며, 강남(江南)의 금과 주석은 쓰이지 못하고, 서촉(西蜀)의 단청(丹靑)은 채색되지 못할 것입니다. 후궁을 장식하고 아래 자리를 채우며 마음을 즐겁게 하고耳目을 기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와야 한다면, 완주(宛珠)의 비녀와 부기(傅璣)의 귀고리와 아고(阿縞)의 옷과 금수(錦繡)의 장식은 앞에 들어오지 못하고, 세속을 따라 우아하게 변하며 아리땁고 요조숙녀인 조(趙)나라 여자는 곁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질항(擊甕)·구부(叩缶)·쟁(彈箏)·박비(搏髀)하며 노래 불러 우우(嗚嗚)하게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참으로 진나라 음악입니다. 정·위(鄭·衛)·상간(桑間)·소우(昭虞)·무상(武象)은 이국(異國)의 음악입니다. 지금 질항구부를 버리고 정위를 취하며, 탄쟁을 물리치고 소우를 취하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눈앞의 쾌락을 위해 보기에 맞출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취함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부를 묻지 않고 곡직을 논하지 않은 채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내쫓고 객이면 쫓아냅니다. 그렇다면 이는 중하게 여기는 것이 색·악·주·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이 인민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천하를 제압하고 제후를 통제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은 들으니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용사가 용감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태산(泰山)은 흙을 가리지 않아 그렇게 클 수 있었고, 황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아 그렇게 깊을 수 있었으며, 왕자는 백성을 배척하지 않아 그 덕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사방이 없고 백성에 나라가 달라지지 않아 사시가 풍성하고 아름다우며 귀신이 복을 내리니, 이것이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이 무적이었던 이유입니다. 지금 백성을 버려 적국을 돕고, 빈객을 쫓아 제후들의 일을 이루게 하며, 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서쪽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어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주는 것(藉寇兵而赍盗糧)‘입니다.
무릇 물건이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어도 보배로운 것이 많고, 선비가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어도 충성하고자 하는 자가 많습니다. 지금 객을 쫓아 적국을 돕고 인민을 손상시켜 원수를 이롭게 하며, 안으로는 스스로 허약해지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한을 세우니, 나라에 위험이 없기를 바란들 얻을 수 없습니다.”
진왕이 마침내 축객령을 거두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켰으며, 마침내 그의 계책을 사용했다. 이사는 정위(廷尉)까지 승진했다. 군현의 성을 평탄히 하고 병기를 녹여 다시 쓰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진나라에 한 자의 땅도 봉하지 않고 자제를 왕으로 세우지 않았으며 공신을 제후로 삼지 않아 이후로 전쟁의 근심이 없게 했다. 20여 년 후, 마침내 천하를 병합하고 황제를 높여 승상으로 삼았다.
① 논지의 핵심 — 신하들의 축객론을 반박하다
간축객서의 배경: 한나라는 정국(鄭國)이라는 기술자를 보내 진나라에 대규모 관개 수로(정국거)를 짓게 했다. 이는 한나라가 진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키려는 전략이었다. 발각되자 진나라 귀족들은 모든 외국인을 쫓아내자고 주장했다 — 이사도 초나라 출신이라 대상이었다. 이 상소가 중국 고문(古文) 2천 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글 중 하나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② 진목공·효공·혜문왕·소양왕 — 네 군주의 예
이사의 논증 방법: 역사적 사례를 열거해 ‘객이 진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입증한다. 유여·백리해·건숙·비표·공손지 → 상앙 → 장의 → 범수까지, 진나라의 전성기는 모두 외국인 인재 덕분이었다는 논리다.
③ 실물과 사람의 불일치 — 전략적 비유
이 부분은 천재적이다: 진시황이 수집한 보물(곤산옥·수후주·화씨벽·태아검)은 모두 외국산인데, 왜 그것들은 좋아하면서 사람은 출신지로 차별하는가? — 소비는 세계적이면서 고용은 폐쇄적인 모순을 지적한다.
④ 태산과 하해의 비유 — 최고의 명문장
‘태산불양토양(太山不讓土壤) · 하해부쟁세류(河海不擇細流)’ — 이 문장은 2천 년간 반복되어온 중국 최고의 명문장 중 하나다. 관용과 포용의 중요성을 자연의 비유로 표현한 압축적 아름다움이 압도적이다. 현대에도 다문화주의·글로벌 인재 영입을 논할 때 인용된다.
⑤ 결과 — 축객령 철회
간축객서는 이사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이 한 편의 글로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진나라의 인재 정책을 바꾸었다. 이후 이사는 천하 통일의 핵심 설계자가 된다 — 군현제·도량형 통일·문자 통일 등.
제4절: 분서갱유(焚書坑儒) — 지식의 말살
섹션 제목: “제4절: 분서갱유(焚書坑儒) — 지식의 말살”始皇三十四年,置酒咸阳宫,博士仆射周青臣等颂始皇威德。齐人淳于越进谏曰:“臣闻之,殷周之王千馀岁,封子弟功臣自为支辅。今陛下有海内,而子弟为匹夫,卒有田常、六卿之患,臣无辅弼,何以相救哉?事不师古而能长久者,非所闻也。今青臣等又面谀以重陛下过,非忠臣也。“始皇下其议丞相。丞相谬其说,绌其辞,乃上书曰:“古者天下散乱,莫能相一,是以诸侯并作,语皆道古以害今,饰虚言以乱实,人善其所私学,以非上所建立。今陛下并有天下,别白黑而定一尊;而私学乃相与非法教之制,闻令下,即各以其私学议之,入则心非,出则巷议,非主以为名,异趣以为高,率群下以造谤。如此不禁,则主势降乎上,党与成乎下。禁之便。臣请诸有文学诗书百家语者,蠲除去之。令到满三十日弗去,黥为城旦。所不去者,医药卜筮种树之书。若有欲学者,以吏为师。“始皇可其议,收去诗书百家之语以愚百姓,使天下无以古非今。明法度,定律令,皆以始皇起。同文书。治离宫别馆,周遍天下。明年,又巡狩,外攘四夷,斯皆有力焉。
시황제 34년, 함양궁에서 주연이 베풀어졌다. 박사복사 주청신(周靑臣) 등이 시황제의 위덕을 칭송했다. 제나라 사람 순우월(淳于越)이 나아가 간언했다: “신은 듣건대 은나라와 주나라는 천 년을 이어갔는데, 그들은 자제와 공신을 제후로 봉해 스스로의 지지 기반을 삼았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차지하셨으나 자제들은 평민일 뿐입니다. 갑자기 전상(田常)·육경(六卿)의 화가 발생한다면 누가 폐하를 구하겠습니까?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시황제가 그의 논의를 승상(이사)에게 내렸다. 승상이 그의 말을 그르다고 보고 상소했다: “옛날 천하가 산란하여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기에 제후들이 각기 일어나 말로는 옛것을 들어 지금을 해치고, 허위를 꾸며 현실을 혼란시켰으며,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사사로운 학문을 좋아하여 윗사람이 세운 것을 비난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병합하시고 흑백을 가려 하나의 존귀한 기준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사로운 학문이 서로 법과 가르침을 비판하고, 명령이 내려지면 각자 자기 학문으로 논평하며 들어서는 마음으로 비난하고 나가서는 길거리에서 수군거리며, 임금을 비방하여 명성을 얻고 다른 취향을 추구하여 높은 체하며 무리를 이끌어 비방을 만듭니다. 이를 금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세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형성됩니다. 금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청컨대 시(詩)·서(書)·제자백가의 말을 가지고 있는 자는 모두 없애버리소서. 명령이 도착한 지 30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으면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성단(城旦)에 처하소서. 없애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의약·복서·종수의 책뿐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는 관리(吏)를 스승으로 삼게 하소서.” 시황제가 그의 의견을 옳게 여겨, 시·서·제자백가의 말을 거두어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었다. 천하로 하여금 옛것으로 지금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법도를 밝히고 법령을 정하여 모두 시황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문자를 통일했다.
① 순우월의 직언 — 회고주의의 주장
분서갱유의 발단은 이 짧은 말에서 시작된다. 순우월은 주나라의 봉건제를 예시로 들어 군현제를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역사 논쟁이 아니라 진시황의 통치 방식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② 이사의 답변 — 분서의 제안
이사의 논리는 간단하다: 지식 통제 없는 통일 천하는 불가능하다. 과거 각국은 각각의 학문 전통(私學)을 가지고 있고, 이 ‘사학’이 있는 한 법제의 통일은 항상 비판에 직면한다. ‘사학’을 없애고 ‘이사(以吏爲師)’ — 관리를 스승으로 삼게 하여 사상의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③ 시황제의 채택
‘수거시서백가지어이우백성(收去詩書百家之語以愚百姓)’ — 이사의 분서 제안은 백성을 의도적으로 어둡게 하려는(愚民) 목적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상앙도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어리석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사는 그것을 국가 정책으로 공식화했다.
분서갱유는 이사가 진시황에게 바친 가장 파괴적인 선물이었다. 이 결정으로 이사는 역사에서 ‘지식 말살의 아이콘’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사 자신이 순자(荀子), 즉 제자백가의 한 갈래에서 배운 학자였다는 점이다.
제5절: 극에 달하면 쇠한다 — 승상의 불안
섹션 제목: “제5절: 극에 달하면 쇠한다 — 승상의 불안”斯长男由为三川守,诸男皆尚秦公主,女悉嫁秦诸公子。三川守李由告归咸阳,李斯置酒於家,百官长皆前为寿,门廷车骑以千数。李斯喟然而叹曰:“嗟乎!吾闻之荀卿曰’物禁大盛’。夫斯乃上蔡布衣,闾巷之黔首,上不知其驽下,遂擢至此。当今人臣之位无居臣上者,可谓富贵极矣。物极则衰,吾未知所税驾也!”
이사의 큰아들 이유가 삼천수(三川守)가 되었다. 모든 아들은 진나라 공주를 맞이했고, 딸들은 모두 진나라 공자들에게 시집갔다. 삼천수 이유가 귀향하여 이사가 집에서 주연을 베풀자, 백관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앞에 나와 축수(祝壽)했다. 문 앞에는 수레와 말이 천(千) 단위로 늘어섰다. 이사가 탄식하여 말했다: “아! 내가 순경에게 들으니 ‘물건은 성대함을 금한다(物禁大盛)’ 고 했다. 나는 상채의 포의(布衣)에 지나지 않았는데, 위에서 나의 용렬함을 모르고 이 자리까지 올렸다. 지금 신하 중에 나 위에 있는 자가 없으니, 부귀가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극에 달하면 쇠퇴하니(物極則衰), 나는 장차 어디에 수레를 멈출지 모르겠다! ”
이 장면은 열전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아이러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이사가 자신의 몰락을 예감한다. 모든 아들은 공주와 결혼하고, 딸들은 공자에게 시집가고, 천 대의 수레가 집 앞에 늘어서는 순간,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물극즉쇠(物極則衰), 오미지소세가야(吾未知所稅駕也).’
이때까지만 해도 이사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예감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권력의 맛이 너무 달았고, ‘치욕은 천한 데 있고 슬픔은 가난한 데 있다’는 그의 출발 신념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세가(稅駕, 수레를 멈춤)’ — 언제 그만둘 것인가? 그는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
제6절: 사구의변(沙丘之變) — 명운의 갈림길
섹션 제목: “제6절: 사구의변(沙丘之變) — 명운의 갈림길”始皇三十七年十月,行出游会稽,并海上,北抵琅邪。丞相斯、中车府令赵高兼行符玺令事,皆从。始皇有二十馀子,长子扶苏以数直谏上,上使监兵上郡,蒙恬为将。少子胡亥爱,请从,上许之。馀子莫从。 其年七月,始皇帝至沙丘,病甚,令赵高为书赐公子扶苏曰:“以兵属蒙恬,与丧会咸阳而葬。“书已封,未授使者,始皇崩。书及玺皆在赵高所,独子胡亥、丞相李斯、赵高及幸宦者五六人知始皇崩,馀群臣皆莫知也。李斯以为上在外崩,无真太子,故祕之。置始皇居辒辌车中,百官奏事上食如故,宦者辄从辒辌车中可诸奏事。 胡亥既然高之言,高曰:“不与丞相谋,恐事不能成,臣请为子与丞相谋之。“高乃谓丞相斯曰:“上崩,赐长子书,与丧会咸阳而立为嗣。书未行,今上崩,未有知者也。所赐长子书及符玺皆在胡亥所,定太子在君侯与高之口耳。事将何如?“斯曰:“安得亡国之言!此非人臣所当议也!“高曰:“君侯自料能孰与蒙恬?功高孰与蒙恬?谋远不失孰与蒙恬?无怨於天下孰与蒙恬?长子旧而信之孰与蒙恬?“斯曰:“此五者皆不及蒙恬,而君责之何深也?“高曰:“高固内官之厮役也,幸得以刀笔之文进入秦宫,管事二十馀年,未尝见秦免罢丞相功臣有封及二世者也,卒皆以诛亡。皇帝二十馀子,皆君之所知。长子刚毅而武勇,信人而奋士,即位必用蒙恬为丞相,君侯终不怀通侯之印归於乡里,明矣。高受诏教习胡亥,使学以法事数年矣,未尝见过失。慈仁笃厚,轻财重士,辩於心而诎於口,尽礼敬士,秦之诸子未有及此者,可以为嗣。君计而定之。“斯曰:“君其反位!斯奉主之诏,听天之命,何虑之可定也?“高曰:“安可危也,危可安也。安危不定,何以贵圣?“斯曰:“斯,上蔡闾巷布衣也,上幸擢为丞相,封为通侯,子孙皆至尊位重禄者,故将以存亡安危属臣也。岂可负哉!夫忠臣不避死而庶几,孝子不勤劳而见危,人臣各守其职而已矣。君其勿复言,将令斯得罪。“高曰:“盖闻圣人迁徙无常,就变而从时,见末而知本,观指而睹归。物固有之,安得常法哉!方今天下之权命悬於胡亥,高能得志焉。且夫从外制中谓之惑,从下制上谓之贼。故秋霜降者草花落,水摇动者万物作,此必然之效也。君何见之晚?“斯曰:“吾闻晋易太子,三世不安;齐桓兄弟争位,身死为戮;纣杀亲戚,不听谏者,国为丘墟,遂危社稷:三者逆天,宗庙不血食。斯其犹人哉,安足为谋!“高曰:“上下合同,可以长久;中外若一,事无表里。君听臣之计,即长有封侯,世世称孤,必有乔松之寿,孔、墨之智。今释此而不从,祸及子孙,足以为寒心。善者因祸为福,君何处焉?” 斯乃仰天而叹,垂泪太息曰:“嗟乎!独遭乱世,既以不能死,安讬命哉!“於是斯乃听高。 於是乃相与谋,诈为受始皇诏丞相,立子胡亥为太子。更为书赐长子扶苏曰:”…扶苏为人子不孝,其赐剑以自裁!将军恬…其赐死,以兵属裨将王离。” 使者至,发书,扶苏泣,入内舍,欲自杀。蒙恬止扶苏曰:“陛下居外,未立太子,使臣将三十万众守边,公子为监,此天下重任也。今一使者来,即自杀,安知其非诈?请复请,复请而後死,未暮也。“使者数趣之。扶苏为人仁,谓蒙恬曰:“父而赐子死,尚安复请!“即自杀。蒙恬不肯死,使者即以属吏,系於阳周。 使者还报,胡亥、斯、大喜。至咸阳,发丧,太子立为二世皇帝。以赵高为郎中令,常侍中用事。
시황제 37년 10월, 회계(會稽)로 순수(巡狩)를 떠나 해안을 따라 북쪽 낭야(琅邪)에 이르렀다. 승상 이사·중사부령(中車府令) 조고·부새령(符璽令)이 모두 수행했다. 시황제에게는 2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 부소(扶蘇)는 여러 번 직언하다가 상군(上郡)의 병영 감독으로 보내져 있었고 몽염(蒙恬)이 장수였다. 막내 호해(胡亥)만이 따르기를 청했고 시황제가 허락했다. 그해 7월, 시황제가 사구(沙丘)에 이르러 병이 심해져 조고에게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 했다: “병권을 몽염에게 맡기고, 장례를 함양에서 치르라.” 편지가 봉해졌으나 사자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시황제가 죽었다. 편지와 부새가 모두 조고에게 있었고, 호해·이사·조고 및 측근 환관五六명만이 시황제의 죽음을 알았으며 나머지 신하들은 아무도 몰랐다. 이사는 황제가 밖에서 죽었고 확정된 태자가 없으므로 이를 비밀로 했다. 시황제의 시신을 온량거(輒辌車)에 안치하고 백관이 평소처럼 일을 아뢰고 음식을 올리게 했다.
조고가 이사에게 말했다: “황제가 붕어하셨소. 장자에게 준 편지와 부새가 호해에게 있소. 태자를 정하는 것은 군후와 저의 입에 달렸소. 어떻게 하시겠소?” 이사가 말했다: “어찌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말을 하는가! 이것은 신하가 논의할 바가 아니다!” 조고가 말했다: “군후께서 스스로 헤아리소서: 재능이 몽염보다 나은가? 공로가 몽염보다 높은가? 계책이 몽염보다 뛰어난가? 천하에 원한이 몽염보다 적은가? 장자와의 오랜 신뢰가 몽염보다 나은가?” 이사가 말했다: “이 다섯 가지 모두 몽염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깊이 나를 꾸짖는 것이오?” 조고가 말했다: “저는 본래 내관의 천한 일을 하는 자에 불과하나, 다행히 문서로 진궁에 들어와 20여 년을 일했소. 이제껏 진나라에서 파면된 승상이나 공신 중 2대까지 봉작이 이어진 경우를 본 적이 없소. 모두 죽임을 당했소. 장자 부소는 강직하고 무용하며 사람을 믿고 선비를 분발시키니, 즉위하면 반드시 몽염을 승상으로 삼을 것이며, 군후께서는 통후의 인장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명백하오. 저는 조서를 받들어 호해를 가르쳐 법률 일을 배우게 한 지 여러 해인데, 그에게 과실을 본 적이 없소. 자애롭고 돈후하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선비를 중하게 여기니, 뒤를 이을 만하오. 군후께서 결정하시오.”
이사가 말했다: “그대는 물러가라! 나는 주군의 조서를 받들고 하늘의 명을 들을 뿐이다!” 조고가 말했다: “편안함이 위태로울 수 있고 위태로움이 편안해질 수 있소. 안위를 정하지 못하고 어찌 성인이라 하겠소?” 이사가 말했다: “나는 상채의 포의로 주상의 은혜로 승상이 되고 통후에 봉해져 자손이 모두 지위와 녹을 누리게 되었소. 주상께서 나라의 존망安危를 나에게 맡기셨는데 어찌 저버릴 수 있겠소! 충신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각기 그 직분을 지킬 뿐이오. 그대는 다시 말하지 말라, 내가 죄를 얻게 될 것이오.” 조고가 말했다: “성인은 옮기고 바뀜이 없이 변화에 따라 때를 좇소. 지금 천하의 권력과 명이 호해에게 달려 있소, 내가 뜻을 얻을 수 있소. 무릇 밖에서 안을 제압하는 것을 미혹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압하는 것을 도둑이라 하오. 그러므로 가을 서리가 내리면 풀과 꽃이 지고, 물이 흔들리면 만물이 일어나니, 이것이 필연적인 이치요. 어찌 보는 것이 더딘 것이오?” 이사가 말했다: “내 듣건대 진(晉)나라가 태자를 바꾸자 삼대가 불안했고, 제(齊)나라 환공이 형제끼리 다투다가 몸이 죽고 치욕을 당했고, 주왕(紂王)이 친척을 죽이고 간언을 듣지 않아 나라가 언덕더미가 되고 사직이 위태로워졌다. 이 세 가지는 하늘을 거스른 일이다.” 조고가 말했다: “위와 아래가 합심하면 오래갈 수 있고, 안팎이 하나가 되면 일에 표리가 없소. 내 계책을 따르면 길이 제후가 되어 대대로 칭고(稱孤)하며 죽지 않는 수명을 누릴 것이오. 지금 이를 따르지 않으면 화가 자손에게 미칠 것이니 마음을 차갑게 하기에 족하오. 결정하시오.”
이사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슬프다! 홀로 난세를 만났으니, 이미 죽을 수도 없어 내가 어디에 목숨을 의탁한단 말인가!” 마침내 조고의 말을 따랐다.
이에 함께 모의하여 거짓으로 시황제의 조서를 꾸며 호해를 태자로 세웠다. 다시 편지를 고쳐 부소에게 썼다: “부소는 아들된 도리를 다하지 않았으니, 칼을 주어 자결하게 하라. 장군 몽염도 함께 죽어라, 병권은 편장 왕리(王離)에게 맡겨라.” 사자가 도착하자 부소가 울며 자살하려 했다. 몽염이 말렸다: “폐하께서 외부에 계시고 태자를 세우지 않으셨소. 신이 30만 군을 지키고 공자가 감독하는 것은 천하의 중임이오. 갑자기 한 사자가 왔다고 자살한다면, 그것이 가짜인지 어찌 알겠소? 다시 청해보고 죽어도 늦지 않소.” 사자가 여러 번 재촉했다. 부소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죽음을 주시는데, 어찌 다시 청할 수 있겠소!” 하고 자살했다. 몽염은 죽지 않아 옥에 갇혔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호해와 이사가 크게 기뻐했다. 함양에 도착해 발상하고 태자가 즉위하여 이세황제가 되었다. 조고를 낭중령으로 삼아 항상 가까이에서 일을 보게 했다.
① 사구에서 진시황이 죽다
사구(沙丘, 오늘날 하북성 광종현) — 이곳은 진시황이 죽은 장소다. 편지는 이미 쓰였으나(부소를 후계자로 지정), 아직 발송되지 않았다. 이 몇 시간의 차이가 천하의 운명을 바꾸었다.
② 조고의 설득 — ‘오불여몽염(五不如蒙恬)’
조고는 이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찔렀다. 부소가 즉위하면 몽염이 승상이 될 것이고, 이사는 모든 것을 잃는다 — 이것이 ‘오불여몽염(五不如蒙恬)‘의 논리다. 이사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 확실한 것은 자신의 불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③ 이사의 선택 —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
이사는 거절했다. 세 번 거절했다. “안국지언(亡國之言)이다!” “신하가 논의할 바가 아니다!” “신은 황제의 조서를 받들 뿐이다!” 그러나 조고가 ‘오불여몽염’의 논리와 함께 협박하자, 이사는 마침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仰天而歎 垂淚太息).’ 이 말은 이사 생애의 모든 모순을 드러낸다: 그는 원칙을 알았지만, 그 원칙을 위해 죽을 용기가 없었다.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은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사는 명예보다 삶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그를 더 비참한 죽음으로 이끌었다.
④ 부소의 죽음 — 순수한 비극
부소의 죽음은 이 열전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다. 몽염이 ‘의심하라’고 말렸지만, 부소는 ‘부차자사(父賜子死)‘라는 유교적 효(孝)의 원칙을 따랐다. 이로써 이사와 조고의 음모는 성공했고, 호해가 즉위했다.
제7절: 독서지간(督責之諫) — 이사의 변질 완성
섹션 제목: “제7절: 독서지간(督責之諫) — 이사의 변질 완성”二世燕居,乃召高与谋事,谓曰:“夫人生居世间也,譬犹骋六骥过决隙也。吾既已临天下矣,欲悉耳目之所好,穷心志之所乐,以安宗庙而乐万姓,长有天下,终吾年寿,其道可乎?” 李斯数欲请间谏,二世不许。而二世责问李斯曰:“吾有私议而有所闻於韩子也,曰’尧之有天下也,堂高三尺,采椽不斫,茅茨不翦,虽逆旅之宿不勤於此矣。冬日鹿裘,夏日葛衣,粢粝之食,藜藿之羹,饭土匭,啜土鉶,虽监门之养不觳於此矣。禹凿龙门,通大夏,疏九河,曲九防,决渟水致之海,而股无胈,胫无毛,手足胼胝,面目黎黑,遂以死于外,葬於会稽,臣虏之劳不烈於此矣。‘然则夫所贵於有天下者,岂欲苦形劳神,身处逆旅之宿,口食监门之养,手持臣虏之作哉?此不肖人之所勉也,非贤者之所务也。彼贤人之有天下也,专用天下適己而已矣,此所贵於有天下也。夫所谓贤人者,必能安天下而治万民,今身且不能利,将恶能治天下哉!故吾原赐志广欲,长享天下而无害,为之柰何?” 李斯恐惧,重爵禄,不知所出,乃阿二世意,欲求容,以书对曰: 夫贤主者,必且能全道而行督责之术者也。督责之,则臣不敢不竭能以徇其主矣。此臣主之分定,上下之义明,则天下贤不肖莫敢不尽力竭任以徇其君矣。是故主独制於天下而无所制也。能穷乐之极矣,贤明之主也,可不察焉!故申子曰”有天下而不恣睢,命之曰以天下为桎梏”者,无他焉,不能督责,而顾以其身劳於天下之民,若尧、禹然,故谓之”桎梏”也。夫不能修申、韩之明术,行督责之道,专以天下自適也,而徒务苦形劳神,以身徇百姓,则是黔首之役,非畜天下者也,何足贵哉!夫以人徇己,则己贵而人贱;以己徇人,则己贱而人贵。故徇人者贱,而人所徇者贵,自古及今,未有不然者也。凡古之所为尊贤者,为其贵也;而所为恶不肖者,为其贱也。而尧、禹以身徇天下者也,因随而尊之,则亦失所为尊贤之心矣,夫可谓大缪矣。谓之为”桎梏”,不亦宜乎?不能督责之过也。故韩子曰:“慈母有败子而严家无格虏”者,何也?则能罚之加焉必也。故商君之法,刑弃灰於道者。夫弃灰,薄罪也,而被刑,重罚也。彼唯明主为能深督轻罪。夫罪轻且督深,而况有重罪乎?故民不敢犯也。是故韩子曰”布帛寻常,庸人不释,铄金百溢,盗跖不搏”者,非庸人之心重,寻常之利深,而盗跖之欲浅也;又不以盗跖之行,为轻百镒之重也。搏必随手刑,则盗跖不搏百镒;而罚不必行也,则庸人不释寻常。是故城高五丈,而楼季不轻犯也;泰山之高百仞,而跛牧其上。夫楼季也而难五丈之限,岂跛者也而易百仞之高哉?峭堑之势异也。明主圣王之所以能久处尊位,长执重势,而独擅天下之利者,非有异道也,能独断而审督责,必深罚,故天下不敢犯也。今不务所以不犯,而事慈母之所以败子也,则亦不察於圣人之论矣。夫不能行圣人之术,则舍为天下役何事哉?可不哀邪!且夫俭节仁义之人立於朝,则荒肆之乐辍矣;谏说论理之臣间於侧,则流漫之志诎矣;烈士死节之行显於世,则淫康之虞废矣。故明主能外此三者,而独操主术以制听从之臣,而修其明法,故身尊而势重也。凡贤主者,必将能拂世磨俗,而废其所恶,立其所欲,故生则有尊重之势,死则有贤明之谥也。是以明君独断,故权不在臣也。然後能灭仁义之涂,掩驰说之口,困烈士之行,塞聪揜明,内独视听,故外不可倾以仁义烈士之行,而内不可夺以谏说忿争之辩。故能荦然独行恣睢之心而莫之敢逆。若此然後可谓能明申、韩之术,而脩商君之法。法脩术明而天下乱者,未之闻也。故曰”王道约而易操”也。唯明主为能行之。若此则谓督责之诚,则臣无邪,臣无邪则天下安,天下安则主严尊,主严尊则督责必,督责必则所求得,所求得则国家富,国家富则君乐丰。故督责之术设,则所欲无不得矣。群臣百姓救过不给,何变之敢图?若此则帝道备,而可谓能明君臣之术矣。虽申、韩复生,不能加也。 书奏,二世悦。於是行督责益严,税民深者为明吏。二世曰:“若此则可谓能督责矣。“刑者相半於道,而死人日成积於市。杀人众者为忠臣。二世曰:“若此则可谓能督责矣。”
이세황제가 한가히 있을 때 조고와 일을 의논하며 말했다: “인간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여섯 마리 준마가 틈새를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이미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으니,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을 다하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극진히 하고파라. 오래도록 천하를 누리며 내 수명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세황제가 이사에게도 이 뜻을 물었다. 이사가 두려워하고 작록(爵祿)을 중히 여겨, 이세황제의 뜻에 아첨하며 상소로 답했다: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도(道)를 온전히 하여 독서(督責)의 술을 행해야 합니다. 독서하면 신하가 감히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어 그 군주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천하에 홀로 제어함이 있어 제어받는 바가 없게 됩니다. 능히 즐거움의 극치를 다할 수 있으니, 이것이 현명한 군주입니다. 신자(申子)가 말했습니다: ‘천하를 차지하고도 제멋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일러 천하를 차꼬로 삼는다(以天下爲桎梏)’ 고 했습니다. 신자·한비자의 밝은 술을 닦지 않고 독서의 도를 행하지 않은 채, 애(堯)·우(禹)처럼 몸을 수고롭게 하여 천하의 백성을 따르는 것은 창두(黔首)의 역에 불과할 뿐, 천하를 기르는 자가 아닙니다. 사람이 나를 따르면 나는 귀하고 남은 천하며, 내가 남을 따르면 나는 천하고 남은 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천하고 따르는 바가 되는 자는 귀합니다. 그런데 요·우처럼 몸으로 천하를 따르는 자를 따라 높인다면, 그것은 현자를 높이는 본뜻을 잃는 것이니 크게 그릇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차꼬(桎梏)’ 라 한들 어찌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한비자가 말했습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실패한 자식이 있고 엄격한 집에는 거역하는 노비가 없다’ — 어째서입니까? 벌을 더하기를 반드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앙의 법은 길에 재를 버린 자까지도 형벌했습니다. 재를 버리는 것은 가벼운 죄이지만 형벌을 받는 것은 무거운 벌입니다. 가벼운 죄도 엄중히 다스리는데 무거운 죄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백성이 감히 범하지 않습니다. 한비자가 말했습니다: ‘베와 비단 몇 자는 평범한 사람도 놓지 않지만, 달군 금 백 익은 도척도 움키지 않는다’ — 잡으면 반드시 손이 상하기에 도척도 백 익의 금을 움키지 않고, 벌이 반드시 따르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도 몇 자의 베를 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 높이가 오장(五丈)이면 누계(樓季)도 감히 넘지 못하지만, 태산(泰山)의 높이가 백인(百仞)이면 절름발이도 그 위에서 양을 칩니다. 누계도 오장의 높이는 어려워하는데, 어찌 절름발이가 백 인의 높이를 쉽게 여기겠습니까? 낭떠러지와 비탈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명군과 성왕이 오래도록 존귀한 자리에 있고 길게 중대한 권세를 잡으며 홀로 천하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능히 독단하고 독서를 살펴 행하며 반드시 깊이 벌하기에 천하가 감히 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릇 검소하고 절약하며 인의(仁義)로운 사람이 조정에 서면 방탁하고 사치한 즐거움은 그치게 됩니다. 간쟁하고 이치를 논하는 신하가 곁에 있으면 방탕한 뜻이 꺾이게 됩니다. 죽음을 맞서 절개를 행하는 선비가 세상에 나타나면 음란하고 편안한 즐거움의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군은 이 세 가지를 물리치고 홀로 군주의 술을 잡아 복종하는 신하를 제어하며 밝은 법을 닦아 몸이 높아지고 권세가 무거워집니다. 그런 뒤에야 인의의 길을 없애고 변설의 입을 막으며 열사의 행동을 곤란하게 하고 귀와 눈을 막아 안에서 홀로 보고 들음으로써 밖에서는 인의·열사의 행동에 기울지 않고 안에서는 간쟁·분쟁의 변론에 빼앗기지 않습니다. 능히 홀로 제멋대로 하는 마음을 행하여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게 합니다. 이렇게 한 뒤에야 신자·한비자의 술을 밝히고 상앙의 법을 닦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이 닦이고 술이 밝아졌는데 천하가 어지러워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독서(督責)의 술이 제대로 시행되면 신하에게 간사함이 없고, 간사함이 없으면 천하가 안정되고, 천하가 안정되면 군주가 엄숙하고 존귀해지며, 군주가 엄숙하고 존귀하면 독서가 확실히 행해지고, 독서가 확실히 행해지면 구하는 것을 얻고, 구하는 것을 얻으면 나라가 부유해지고, 나라가 부유해지면 군주의 즐거움이 풍성해집니다. 신하와 백성이 허물을 쫓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무슨 변란을 감히 꾀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제왕의 도가 갖추어진 것입니다. 비록 신자·한비자가 다시 태어나도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소가 올라가자 이세황제가 기뻐했다. 이에 독서를 더욱 엄격히 시행하여 세금을 많이 거둔 자가 명리(明吏)가 되었다. 이세황제가 말했다: “이래야 독서라 할 수 있다.” 형벌 받는 자가 길에 절반을 차지하고, 죽은 사람이 날마다 시장에 쌓였다. 사람을 많이 죽인 자가 충신이 되었다.
① 이세황제의 질문 — 향락의 정당화 요청
이세황제 호해는 향락의 정당화를 이사에게 요구한다. ‘육기과결극(六驥過決隙)’ — 인생은 짧으니 즐기자는 논리. 이사가 처음에 만났던 진시황은 ‘만세일시(萬世一時)‘를 위해 움직였지만, 호해는 ‘만세일락(萬世一樂)‘을 원했다.
② 이사의 답변 — 독서지술(督責之術)
‘독서(督責)’ — 감독하고 질책한다. 이사는 이세황제에게 ‘옳고 그름을 통제하는 절대 군주의 기술’ 을 가르친다. 그는 법가 이론 — 특히 스승 순자의 제자인 한비자의 이론 — 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전제 군주의 향락을 정당화한다.
이 상소는 이사 생애의 최대 오점이다. 그는 이미 사구의변에서 원칙을 버렸고, 여기서는 학문(법가)마저 타락시켰다. 한비자는 ‘군주는 법으로 다스리고 술(術)로 통제한다’고 했지만, ‘마음껏 즐기라’고 한 적이 없다. 이사는 스승 한비자의 가르침을 자기 이익을 위해 왜곡했다.
③ 결과 — 공포 정치의 극대화
‘형자상반어도, 사인일성적어시(刑者相半於道 死人日成積於市)’ — 이 한 문장으로 이사 상소의 결과가 요약된다. 이사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천하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사마천은 이것을 잊지 않았다.
제8절: 조고의 함정 — 이사의 몰락
섹션 제목: “제8절: 조고의 함정 — 이사의 몰락”初,赵高为郎中令,所杀及报私怨众多,恐大臣入朝奏事毁恶之,乃说二世曰:“天子所以贵者,但以闻声,群臣莫得见其面,故号曰’朕’。…” 高闻李斯以为言,乃见丞相曰:“关东群盗多,今上急益发繇治阿房宫,聚狗马无用之物。臣欲谏,为位贱。此真君侯之事,君何不谏?” 於是赵高待二世方燕乐,妇女居前,使人告丞相:“上方间,可奏事。“丞相至宫门上谒,如此者三。二世怒曰:“吾常多间日,丞相不来。吾方燕私,丞相辄来请事。丞相岂少我哉?且固我哉?” 赵高因曰:“如此殆矣!夫沙丘之谋,丞相与焉。今陛下已立为帝,而丞相贵不益,此其意亦望裂地而王矣。且陛下不问臣,臣不敢言。丞相长男李由为三川守,楚盗陈胜等皆丞相傍县之子,以故楚盗公行,过三川,城守不肯击。高闻其文书相往来,未得其审,故未敢以闻。且丞相居外,权重於陛下。” 二世以为然。欲案丞相,恐其不审,乃使人案验三川守与盗通状。李斯闻之。
조고가 이세황제에게 말했다: “천자가 귀한 이유는 다만 소리만 들릴 뿐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니, 이에 호(號)를 짐(朕)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사가 이에 대해 말한 것을 듣고, 조고가 이사를 찾아가 말했다: “관동(關東)에 도적이 많은데, 지금 폐하께서 더욱 급히 요역을 발하여 아방궁을 짓고 개·말 등 쓸데없는 것을 모으고 계십니다. 신은 간하고 싶으나 지위가 천합니다. 이 일은 참으로 군후께서 하실 일이니, 어찌 간하지 않으십니까?” 이사가 말했다: “내가 듣기에 폐하께서 항상 한가하지 않으시다. 승상이 문에 이르렀으나 만나주지 않으셨다.” 조고가 말했다: “내가 군후를 위해 기약하겠소.”
조고가 이세황제가 한창 연회를 즐기고 여인들이 앞에 있을 때를 골라, 사람을 보내 이사에게 알렸다: “폐하께서 한가하시니 일을 아뢰소서.” 이사가 궁문에 이르러 알현을 청했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했다. 이세황제가 노하여 말했다: “내가 평소에 한가한 날이 많을 때는 승상이 오지 않더니, 내가 한창 즐길 때면 승상이 일을 청하러 온다. 승상이 나를 얕보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인가?” 조고가 이에 말했다: “이렇게 되어서야 위태롭습니다. 사구의 모의에 승상이 참여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이미 황제가 되셨으나 승상의 귀함이 더해지지 않으니, 그 뜻은 땅을 나누어 왕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상의 큰아들 이유가 삼천수인데 초나라 도적 진승 등은 모두 승상의 고향 이웃 고을의 자제들입니다. 그래서 초나라 도적들이 삼천을 공공연히 지나가도 성을 지키며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에 문서가 왕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승상은 밖에 있으면서 폐하보다 권력이 무겁습니다.” 이세황제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승상을 조사하려 했으나, 확실하지 않아 사람을 보내 삼천수와 도적의 내통을 확인하게 했다.
이사가 이 말을 듣고 조고를 고발했다: “조고는 사성자한(司城子罕)처럼 송나라를 전제했고, 전항(田常)처럼 제나라를 찬탈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세황제가 말했다: “조고는 환관으로서 뜻을 방탁하게 하지 않았고, 위험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나는 그를 현명하게 여긴다.” 이사가 다시 반박했다: “조고는 본래 천한 사람입니다. 이치를 알지 못하고, 탐욕이 끝이 없으며, 이익을 구함에 그침이 없습니다.” 이세황제는 이미 조고를 믿고 있었고, 이사의 고발을 조고에게 알렸다. 조고가 말했다: “승상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저뿐입니다. 제가 죽으면 승상은 곧 전항이 하려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세황제가 이사를 조고에게 넘겼다. 이사는 옥에 갇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 슬프다! 도가 없는 군주여! 걸주가 관룡봉(關龍逢)을 죽이고 주왕(紂王)이 비간(比干)을 죽이고 부차(夫差)가 오자서(伍子胥)를 죽였다. 이 세 신하는 어찌 충성스럽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내 지혜가 그 세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데 이세황제의 무도함이 걸주·부차보다 심하니, 내가 충성으로 죽는 것이 당연하다.” 조고가 이사를 곤장으로 천여 대를 때렸다. 이사는 참을 수 없어 거짓으로 자복했다. 옥중에서 상소를 올려 자신의 ‘일곱 가지 죄’ 를 반어적으로 열거했다: “신의 죄 1: 신이 음모로 금과 옥을 써서 제후들을 유세했습니다. 죄 2: 북으로 흉노를 몰아내고 남으로 백월을 정복했습니다. 죄 3: 장수를 귀하게 하고 투항하는 자에게 후하게 대우했습니다. 죄 4: 사직을 위해 제후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죄 5: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를 통일했습니다. 죄 6: 법을 만들어 천하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죄 7: 형벌을 늦추고 세금을 줄여 주인의 덕을 드러냈습니다. — 신이 죄가 이러하니, 오래도록 죽지 못한 것이 다행입니다.” 이는 각각 자신의 공로였으나 조고가 상소를 가로채 말했다: “죄수가 어찌 상소를 올리는가!” 조고가 여러 차례 가짜 심문관을 보내 이사를 심문했다. 이사가 사실대로 말할 때마다 다시 곤장을 때렸다. 결국 이세황제가 사람을 보내 확인할 때도 이사는 감히 다시 변명하지 못하고 죄를 인정했다.
① 조고의 이간질 — 이사에 대한 의심 주입
조고는 단순히 이사를 모함한 것이 아니라 이사의 고향·아들·권력이라는 세 가지 취약점을 동시에 공격했다. ‘초나라 출신’이라는 이사의 약점은 이미 간축객서 때 드러난 바 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반역의 증거로 재구성되었다.
② 이사의 상소 — 조고를 고발하다
이사가 조고를 고발했지만, 이세황제는 이미 조고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이사의 충고는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르는 증거가 되었다.
③ 이사의 투옥과 자백
이사의 옥중 상소 — 이른바 ‘칠죄(七罪)’ — 는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한 자기 변호다. 각각의 ‘죄’는 실은 자신이 천하 통일을 위해 기울인 공로의 목록이다. 그러나 조고는 이 상소조차 황제에게 전달되지 못하게 막았다.
제9절: 이사의 최후 — 누런 개와 함께
섹션 제목: “제9절: 이사의 최후 — 누런 개와 함께”二世二年七月,具斯五刑,论腰斩咸阳市。斯出狱,与其中子俱执,顾谓其中子曰:“吾欲与若复牵黄犬俱出上蔡东门逐狡兔,岂可得乎!“遂父子相哭,而夷三族。 李斯已死,二世拜赵高为中丞相,事无大小辄决於高。高自知权重,乃献鹿,谓之马。二世问左右:“此乃鹿也?“左右皆曰”马也”。二世惊,自以为惑,乃召太卜,令卦之… …(高 弑二世, 子婴立, 子婴杀高) 子婴立三月,沛公兵从武关入,至咸阳,群臣百官皆畔,不適。子婴与妻子自系其颈以组,降轵道旁。沛公因以属吏。项王至而斩之。遂以亡天下。
이세황제 2년 7월, 이사에게 오형(五刑)을 적용하고 함양 시장에서 요참(腰斬)에 처했다. 이사가 옥에서 나와 가운데 아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며 돌아보며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런 개를 끌고 상채 동문 밖으로 나가 토끼를 쫓을 수 있을까(吾欲與若復牽黃犬俱出上蔡東門逐狡兔 豈可得乎)! ” 마침내 부자가 함께 울었고, 삼족이 몰살되었다. 이사가 죽자 이세황제는 조고를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다. 조고가 자신의 권세가 막강함을 알고, 사슴을 가져와 ‘말’이라고 불렀다(指鹿爲馬). 이세황제가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말했지만, 좌우 신하들은 모두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조고가 이세황제를 죽이고 자영(子嬰)을 세웠다. 자영이 조고를 죽였다. 자영이 즉위한 지 3개월 만에 유방(沛公)의 군대가 함양에 입성했다. 자영은 항복했고, 항우가 와서 그를 죽였다.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① 요참형 — “누런 개와 함께 토끼를 쫓을 수 있을까”
‘견황구(牽黃犬)’ — 이 말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최후의 말 중 하나다. 가난한 관리 시절 상채에서 누런 개를 끌고 토끼 사냥을 하던 평범한 날들이 이사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승상의 자리, 천금의 재산, 천 대의 수레 — 이 모든 것이 ‘견황구’ 하나만 못했다.
② 역사의 아이러니 — 조고의 최후와 진나라의 멸망
‘지록위마(指鹿爲馬)’ — 이사가 죽은 후의 이야기지만, 사마천은 이 열전 안에 포함시켰다. 이는 이사가 없으면 조고를 막을 사람이 없고, 조고가 날뛰면 진나라가 망한다는 인과 관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고와 손잡았지만,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진나라 자체를 파멸시켰고, 자신의 모든 업적(통일·군현제·문자 통일)도 함께 무너뜨렸다.
제10절: 태사공왈(太史公曰) — 사마천의 평가
섹션 제목: “제10절: 태사공왈(太史公曰) — 사마천의 평가”太史公曰:李斯以闾阎历诸侯,入事秦,因以瑕衅,以辅始皇,卒成帝业,斯为三公,可谓尊用矣。斯知六蓺之归,不务明政以补主上之缺,持爵禄之重,阿顺苟合,严威酷刑,听高邪说,废適立庶。诸侯已畔,斯乃欲谏争,不亦末乎!人皆以斯极忠而被五刑死,察其本,乃与俗议之异。不然,斯之功且与周、召列矣。 鼠在所居,人固择地。斯效智力,功立名遂。置酒咸阳,人臣极位。一夫诳惑,变易神器。国丧身诛,本同末异。
태사공이 말한다: 이사는 이문(閭閻, 마을)에서 출발하여 제후국을 거쳐 진나라에 들어섰고, 틈을 타 진시황을 보좌하여 마침내 천하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 이사는 삼공(三公)의 자리에 올랐으니, 존귀하게 쓰였다고 할 만하다. 이사는 육예(六蓺)·육경(六經)의 귀결을 알면서도 정치를 밝혀 군주의 결점을 보충하는 데 힘쓰지 않고, 작록(爵祿)을 붙잡아 아첨하며 영합하고, 엄혹한 형벌을 가하고, 조고의 간사한 말을 들어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다. 제후들이 이미 배반했는데 이사가 비로소 간쟁하려 했으니, 때늦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 지극히 충성하다가 오형을 당해 죽었다고 하지만, 그 본질을 살펴보면 세속의 논의와는 다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사의 공로는 주공(周公)이나 소공(召公)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재소거, 인고택지(鼠在所居, 人固擇地) — 쥐는 사는 곳에 달려 있고, 사람은 본래 터전을 선택한다. 이사는 지혜와 힘을 바쳐 공을 세우고 이름을 이루었다. 함양에서 잔치를 열어 신하의 지극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한 사람(조고)의 미혹에 넘어가 천하의 보배를 바꾸었다. 나라는 망하고 몸은 죽었으니, 시작과 끝이 같지 않았다.
사마천의 이사 평가는 ‘아쉬움’ 이다. 그는 ‘이사는 정직한 충신이 아니라(與俗議之異)‘고 못 박으면서도, 그의 능력이 주공이나 소공과 같았다(斯之功且與周·召列矣) 면서 더 잘할 수 있었음을 안타까워한다.
핵심 비판 세 가지:
- ‘작록을 붙잡았다(持爵祿之重)’: 이사는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 원칙을 버렸다
- ‘아첨하며 영합했다(阿順苟合)’: 독서지간이 대표적
- ‘조고의 말을 들었다(聽高邪說)’: 사구의변에서 결정적 굴복
만약 이사가 자신의 원칙(법가)을 지키며 진시황 사후에도 정도를 걸었다면, 그의 공로는 주공이나 소공에 비견될 수 있었다 — 그러나 그는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역사의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
종합 해설
섹션 제목: “종합 해설”이사의 생애 구조 — 대칭의 아이러니
섹션 제목: “이사의 생애 구조 — 대칭의 아이러니”| 시기 | 출발 (젊은 시절) | 절정 (승상) | 몰락 (최후) |
|---|---|---|---|
| 비유 | 화장실 쥐 → 곳간 쥐 | 곳간 쥐의 정점 | 쥐가 쥐덫에 걸리다 |
| 태도 | “때를 얻으면 게을리 말라” | “물극즉쇠, 어디에 멈출까” | “死不能死, 安託命哉” |
| 핵심 행동 | 순자에게 배움, 간축객서 | 분서갱유, 독서지간 | 사구음모, 거짓 자백 |
| 말 | “인지현불초비여서의” | “물극즉쇠” | “견황구, 부득호!” |
사마천이 말하려 한 것
섹션 제목: “사마천이 말하려 한 것”이사의 비극은 재능(ability)과 인격(character)의 불일치에 있다. 그는 천하를 설계할 지적 능력이 있었지만, 그 천하를 지킬 도덕적 용기가 없었다. 사마천은 이사 열전을 통해 묻는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 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는가?”
답은 이 열전에 세 번 반복된다:
- 출발의 동기가 ‘두려움(천함과 가난에 대한 공포)‘이었기에
- 그 두려움이 결정적 순간(사구)에 그를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었기에 이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쥐의 논리’ 에 갇혀 있었다. 더 나은 곳간을 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곳간의 주인이 바뀔 때 어떻게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곳간이 무너질 때, 그는 가장 먼저 깔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