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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무안후열전 (魏其武安侯列傳)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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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일백칠(卷一百七) 열전제사십칠(列傳第四十七)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 본질: 위기무안후열전은 전한 경제(景帝)~무제(武帝) 전환기에 벌어진 외척(外戚) 세력 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암투를 다룬 “사기 최고의 궁정 정치·법정 스릴러”다. 오초칠국의 난을 진압한 공신이자 두태후의 조카인 위기후 두영(竇嬰), 새롭게 떠오른 왕태후의 동생 무안후 전분(田蚡), 그리고 강직하지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맹장 관부(灌夫) 세 사람의 운명이 한 뙈기의 밭(城南田)과 결혼식 피로연의 술잔 하나로 인해 요참형과 정신적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소름 끼치도록 치밀하게 묘사한다.

1. 두영 vs 전분 vs 관부 3인 대조표

섹션 제목: “1. 두영 vs 전분 vs 관부 3인 대조표”
비교 항목위기후 두영 (竇嬰)무안후 전분 (田蚡)장군 관부 (灌夫)
외척 배경두태후(경제 모친)의 조카왕태후(무제 모친)의 동생평민 출신 무장 (두영의 절친)
권력의 정점오초칠국의 난 대장군, 제후 통솔무제 즉위 후 승상, 국정 독점오초칠국의 난 돌파 영웅
성격 및 기질원칙적, 의협심, 시대 변화에 둔감교활, 오만, 극단적 권력 지향강직, 불의를 못 참음, 주벽(술주정)
치명적 약점두태후 사후 보호막 상실, 황제 유조 위조 논란황제의 의심을 사는 월권, 보복 심리술자리에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함
비극적 최후기시형(요참형) 처형두영·관부의 원혼에 시달리다 피를 토하고 급사체포 후 가문 멸족 및 처형

2. 핵심 멘탈 모델 및 정치적 교훈

섹션 제목: “2. 핵심 멘탈 모델 및 정치적 교훈”

① 염량세태 (炎凉世態) — 권력의 냉혹한 속성

섹션 제목: “① 염량세태 (炎凉世態) — 권력의 냉혹한 속성”
  • 두영이 실각하자 수천 명에 달하던 식객들이 하루아침에 전분의 문전으로 몰려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두영의 집에는 오직 관부 한 사람만 남음.
  • 교훈: 권력과 지위를 보고 모여든 인간관계는 권력이 사라지는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오직 위기 속에서 끝까지 남는 자만이 진정한 동지다.

② 동조정변 (東朝廷辯) — 사기 최고의 법정 드라마

섹션 제목: “② 동조정변 (東朝廷辯) — 사기 최고의 법정 드라마”
  • 무제 앞에서 두영과 전분이 관부의 처벌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임.
  • 대신들은 왕태후의 보복이 두려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기권함 (“신은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 교훈: 독재 권력과 외척의 위세 앞에서는 사법 정의와 관료제의 공정성이 완전히 마비된다.

③ 부지시변 (不知時變) —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한 자의 최후

섹션 제목: “③ 부지시변 (不知時變) —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한 자의 최후”
  • 사마천의 총평: “두영은 재능과 충성심이 있었으나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했고(不知時變), 전분은 권세를 믿고 교만했으며, 관부는 지혜가 부족하고 불손했다.”
  • 교훈: 과거의 공훈과 정통성만 믿고 새로운 권력 구도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리더는 가장 참혹하게 도태된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1절: 窦婴(두영) — 황실의 충신, 시대에 뒤진 영웅

섹션 제목: “1절: 窦婴(두영) — 황실의 충신, 시대에 뒤진 영웅”

원문:

魏其侯窦婴者,孝文后从兄子也。父世观津人。喜宾客。孝文时,婴为吴相,病免。孝景初即位,为詹事。
梁孝王者,孝景弟也,其母窦太后爱之。梁孝王朝,因昆弟燕饮。是时上未立太子,酒酣,从容言曰:
"千秋之後传梁王。"太后驩。窦婴引卮酒进上,曰:"天下者,高祖天下,父子相传,此汉之约也,
上何以得擅传梁王!"太后由此憎窦婴。窦婴亦薄其官,因病免。太后除窦婴门籍,不得入朝请。
孝景三年,吴楚反,上察宗室诸窦毋如窦婴贤,乃召婴。婴入见,固辞谢病不足任。太后亦惭。
於是上曰:"天下方有急,王孙宁可以让邪?"乃拜婴为大将军,赐金千斤。婴乃言袁盎、栾布诸名将贤士
在家者进之。所赐金,陈之廊庑下,军吏过,辄令财取为用,金无入家者。窦婴守荥阳,监齐赵兵。
七国兵已尽破,封婴为魏其侯。诸游士宾客争归魏其侯。孝景时每朝议大事,条侯、魏其侯,诸列侯
莫敢与亢礼。

번역:

위기후 두영은 문제(孝文帝) 황후 두씨의 사촌형 아들이다. 대대로 관진(观津) 사람이며 빈객을 좋아했다. 문제 때 오(吴)의 재상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했다. 경제(孝景帝) 즉위 초에 첨사(詹事, 태자부 관리)가 되었다. 양효왕(梁孝王)은 경제의 아우로, 어머니 두태후가 그를 사랑했다. 양효왕이 조현(朝见)하여 형제처럼 연회를 가졌다. 당시 태자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경제가 취한 김에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양왕에게 전하겠다.” 태후가 기뻐했다. 두영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천하란 고조의 천하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는 것이 한(汉)의 약속입니다. 폐하께서 어찌 함부로 양왕에게 전하겠다고 하십니까!” 태후가 이로부터 두영을 미워했다. 두영도 그 관직이 싫어져 병을 핑계로 사임했다. 태후가 두영의 출입증을 빼앗아 조정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경제 3년(BC 154), 오초칠국(吴楚七国)이 반란을 일으켰다. 경제는 종실과 두씨 가문 중 두영보다 나은 사람이 없음을 알고 그를 불렀다. 두영이 사양하며 병을 핑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태후도 부끄러워했다. 경제가 말했다: “천하가 급한데 왕손(王孙, 두영의 자)이 사양할 수 있겠는가?” 이에 두영을 대장군으로 삼고 금 천 근을 하사했다. 두영은 원앙(袁盎)과 난포(栾布) 등 집에 있는 명장과 현사를 천거했다. 하사받은 금은 낭무 아래 진열해 두고 군리들이 지나가면 편한 대로 가져다 쓰게 하여, 금이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두영은 형양(荥阳)을 지키며 제(齐)와 조(赵)의 군사를 감독했다. 칠국 군대가 완전히 격파되자, 두영은 위기후(魏其侯)에 봉해졌다. 모든 유세객과 빈객들이 다투어 위기후에게로 돌아갔다. 경제 때 조정에서 큰일을 논의할 때마다 조후(条侯, 주아부)와 위기후 앞에서는 누구도 감히 대등한 예를 갖추지 못했다.

해설: 두영은 첫 장면에서 황실의 법도를 지키려는 충신으로 등장한다. 경제가 취중에 동생 양왕에게 황위를 전하겠다고 말하자, 두영이 “그것은 천하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막아선다. 이 ‘원칙’은 두영의 가장 큰 미덕이자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다. 그는 옳은 일을 하지만, 권력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칠국의 난 때는 완벽한 영웅이었다—하사금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군사들에게 나눠주는 청렴함, 형양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 그러나 이 시절의 영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몰락을 더 깊게 만든다.


원문:

孝景四年,立栗太子,使魏其侯为太子傅。孝景七年,栗太子废,魏其数争不能得。魏其谢病,
屏居蓝田南山之下数月,诸宾客辩士说之,莫能来。梁人高遂乃说魏其曰:
"能富贵将军者,上也;能亲将军者,太后也。今将军傅太子,太子废而不能争;争不能得,又弗能死。
自引谢病,拥赵女,屏间处而不朝。相提而论,是自明扬主上之过。有如两宫螫将军,则妻子毋类矣。"
魏其侯然之,乃遂起,朝请如故。
桃侯免相,窦太后数言魏其侯。孝景帝曰:"太后岂以为臣有爱,不相魏其?魏其者,沾沾自喜耳,多易。
难以为相,持重。"遂不用,用建陵侯卫绾为丞相。

번역:

경제 4년(BC 153), 율태자(栗太子)를 세우고 두영을 태자부(太子傅)로 삼았다. 경제 7년(BC 150), 율태자가 폐위되자 두영이 여러 번 간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영은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남전(蓝田) 남산 아래에 은거하며 수개월을 지냈다. 모든 빈객과 변사들이 권했지만 돌아오게 할 수 없었다. 양(梁) 사람 고수(高遂)가 두영을 설득했다: “장군을 부귀하게 할 수 있는 분은 위(상, 황제)입니다. 장군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는 분은 태후입니다. 지금 장군이 태자부가 되었으나 태자가 폐위되자 싸우지 못했고, 싸웠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죽지도 못했습니다. 스스로 병을 핑계로 조(赵)나라 여자들을 끌어안고 은거하며 조정에 나가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이 임금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만약 황제와 태후가 장군을 해친다면 처자식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두영이 옳게 여겨 일어나 예전처럼 조정에 나갔다. 도후(桃侯, 유사)가 재상에서 면직되자 두태후가 여러 번 두영을 추천했다. 경제가 말했다: “태후께서 신이 아까워서 위기후를 재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여기십니까? 위기후는 자만심이 강하고 경솔합니다. 재상으로 삼아 중책을 맡기기 어렵습니다.” 마침내 기용하지 않고 건릉후(建陵侯) 위관(卫绾)을 승상으로 삼았다.

해설: 두영의 첫 번째 추락이다. 태자의 스승이었으나 태자가 폐위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경제의 두영 평가 —“沾沾自喜耳,多易”(자만심 강하고 경솔하다)— 는 매우 날카롭다. 경제는 두영이 충성스럽고 유능하다는 건 알지만, 재상으로서의 무게감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이 평가는 두영이 권력의 미묘함을 읽지 못하는 본질적 한계를 정확히 지적한다.


3절: 田蚡(전분) — 비굴에서 오만으로

섹션 제목: “3절: 田蚡(전분) — 비굴에서 오만으로”

원문:

武安侯田蚡者,孝景后同母弟也,生长陵。魏其已为大将军後,方盛,蚡为诸郎,未贵,
往来侍酒魏其,跪起如子姓。及孝景晚节,蚡益贵幸,为太中大夫。蚡辩有口,学槃盂诸书,
王太后贤之。孝景崩,即日太子立,称制,所镇抚多有田蚡宾客计筴,蚡弟田胜,皆以太后弟,
孝景後三年封蚡为武安侯,胜为周阳侯。
武安侯新欲用事为相,卑下宾客,进名士家居者贵之,欲以倾魏其诸将相。

번역:

무안후 전분(田蚡)은 경제 황후 왕씨의 동복 동생으로 장릉(长陵)에서 태어났다. 두영이 대장군이 되어 세력이 왕성할 때, 전분은 낭(郎)에 불과했고 귀하지 않았다. 두영을 오가며 술자리를 받들고, 무릎 꿇고 일어서기를 마치 자식과 같이 했다. 경제 말년이 되자 전분은 점점 귀하게 되어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전분은 변설에 능하고 반우(槃盂) 제서(诸书)를 배워 왕태후가 그를 현명하게 여겼다. 경제가 붕어하자 즉일로 태자가 즉위하고 태후가 칭제(称制)했는데, 진무(镇抚)하는 일에 전분 빈객들의 계책이 많이 쓰였다. 전분의 동생 전승(田胜)도 모두 태후의 동생으로서 경제 후3년(BC 141)에 전분은 무안후(武安侯), 전승은 주양후(周阳侯)에 봉해졌다. 무안후는 새로 권력을 잡아 재상이 되고자 했다. 빈객들에게 낮은 자세로 대하고 집에 있는 명사들을 등용해 귀하게 만들어, 두영 등 장수와 재상들을 누르려 했다.

해설: 전분의 변신은 인상적이다. 두영이 전성기일 때는 ‘자식처럼’ 섬겼다. 그러나 경제가 죽고 무제(당시 태자)가 즉위하면서 왕태후가 실권을 쥐자, 전분은 급부상한다. 사마천은 이 대비를 통해 권력의 추태를 고발한다. 전분은 여기서 지혜로운 조언자(차분히 빈객을 모으고 명사를 천거하는)로 보이지만, 곧 그 본성이 드러난다.


4절: 籍福(적복)의 지혜 — 두영의 마지막 기회

섹션 제목: “4절: 籍福(적복)의 지혜 — 두영의 마지막 기회”

원문:

建元元年,丞相绾病免,上议置丞相、太尉。籍福说武安侯曰:"魏其贵久矣,天下士素归之。
今将军初兴,未如魏其,即上以将军为丞相,必让魏其。魏其为丞相,将军必为太尉。
太尉、丞相尊等耳,又有让贤名。"武安侯乃微言太后风上,於是乃以魏其侯为丞相,武安侯为太尉。
籍福贺魏其侯,因吊曰:"君侯资性喜善疾恶,方今善人誉君侯,故至丞相;然君侯且疾恶,恶人众,
亦且毁君侯。君侯能兼容,则幸久;不能,今以毁去矣。"魏其不听。

번역:

건원 원년(BC 140), 승상 위관이 병으로 면직되었다. 황제가 승상과 태위를 의논했다. 적복(籍福)이 무안후에게 말했다: “위기후는 귀해진 지 오래고 천하의 선비들이 평소 그에게 귀의합니다. 지금 장군은 이제 막 일어나 위기후만 못합니다. 만약 폐하께서 장군을 승상으로 삼으시면 반드시 위기후에게 양보하십시오. 위기후가 승상이 되면 장군은 태위가 될 것입니다. 태위와 승상의 존귀함은 같고, 또 현명에게 양보한다는 명성도 얻습니다.” 무안후가 이에 태후에게 은밀히 말해 황제에게 암시하게 하여, 마침내 위기후를 승상으로, 무안후를 태위로 삼았다. 적복이 위기후를 축하하면서도 조문(吊)했다: “군후(君侯)의 성품은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미워합니다. 지금 좋은 사람들이 군후를 칭송하여 승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군후가 나쁜 것을 미워하니 나쁜 사람이 많고 또한 군후를 헐뜯을 것입니다. 군후가 능력을 겸비하고 포용한다면 오래 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금의 헐뜯음으로 떠나게 될 것입니다.” 두영이 듣지 않았다.

해설: 적복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이다. 그는 전분에게 전략을 가르쳐 두영을 겉으로는 높이고 실속을 챙기게 한다. 동시에 두영에게는 그가 취약한 지점—“喜善疾恶”, 즉 선악을 지나치게 극명하게 나누는 성격—을 정확히 지적하며 경고한다. 두영이 이것을 들었다면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이는 사마천의 단적인 인물 평가다: 두영은 원칙은 있지만 지혜가 없다.


5절: 儒术(유술)의 좌절과 두 태후의 몰락

섹션 제목: “5절: 儒术(유술)의 좌절과 두 태후의 몰락”

원문:

魏其、武安俱好儒术,推毂赵绾为御史大夫,王臧为郎中令。迎鲁申公,欲设明堂,令列侯就国,
除关,以礼为服制,以兴太平。举適诸窦宗室毋节行者,除其属籍。时诸外家为列侯,列侯多尚公主,
皆不欲就国,以故毁日至窦太后。太后好黄老之言,而魏其、武安、赵绾、王臧等务隆推儒术,
贬道家言,是以窦太后滋不说魏其等。及建元二年,御史大夫赵绾请无奏事东宫。窦太后大怒,
乃罢逐赵绾、王臧等,而免丞相、太尉,以柏至侯许昌为丞相,武彊侯庄青翟为御史大夫。
魏其、武安由此以侯家居。
武安侯虽不任职,以王太后故,亲幸,数言事多效,天下吏士趋势利者,皆去魏其归武安,武安日益横。
建元六年,窦太后崩,丞相昌、御史大夫青翟坐丧事不办,免。以武安侯蚡为丞相,以大司农韩安国为
御史大夫。天下士郡诸侯愈益附武安。

번역:

두영과 전분은 모두 유학(儒术)을 좋아했다. 조관(赵绾)을 어사대부로, 왕장(王臧)을 낭중령으로 천거했다. 노(鲁)나라 신공(申公)을 맞이해 명당(明堂)을 세우려 하고, 제후들을 봉국(封国)으로 보내고, 관문을 철폐하며, 예(礼)로 복제(服制)를 정해 태평성대를 이루려 했다. 두씨 종실과 종친 중 품행이 없는 자들을 적발해 족적(属籍)을 빼앗았다. 그때 외척들이 열후였는데, 열후들은 대부분 공주와 혼인했고 모두 봉국으로 가기를 싫어해, 이로 인해 헐뜯는 말이 날마다 두태후에게까지 이르렀다. 태후는 황로(黄老)의 학설을 좋아했는데, 두영과 전분, 조관, 왕장 등은 유학을 높이고 도가를 깎아내려 두태후가 점점 그들을 싫어했다. 건원 2년(BC 139), 어사대부 조관이 동궁(동궁=태후)에 주무(奏事)하지 말 것을 청했다. 두태후가 크게 노하여 조관과 왕장 등을 파면하고 두영과 전분을 승상과 태위에서 면직했다. 백지후(柏至侯) 허창(许昌)을 승상으로, 무강후(武彊侯) 장청적(庄青翟)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두영과 전분은 이로부터 후작의 신분으로 집에 있었다. 무안후는 비록 직무는 없었으나 왕태후 덕분에 총애를 받고 여러 번 말한 일이 효과를 거두었다. 천하의 관리와 선비 중 세력 있는 쪽으로 따르는 자들은 모두 두영을 떠나 전분에게로 갔다. 전분은 날로 횡포해졌다. 건원 6년(BC 135), 두태후가 붕어하자 승상 허창과 어사대부 장청적이 상사(丧事)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 전분을 승상으로, 대사농 한안국(韩安国)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천하의 선비와 군(郡) 제후들이 더욱 전분에게 붙었다.

해설: 이 부분은 유학과 황로학의 이념 대립이 외척 정치와 얽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영이 이끄는 유학파는 이상주의적 개혁을 추진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힌다. 결정적 패착은 ‘동궁(태후)에 주무하지 말라’는 발언—이것은 두태후에게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두태후가 죽자 두영의 마지막 보호막도 사라졌다. 반면 전분은 왕태후라는 배경만으로 살아남아 오히려 승상이 된다. 사마천은 “天下吏士趋势利者”라는 한마디로 권력의 속성을 간명하게 꿰뚫는다.


원문:

武安者,貌侵,生贵甚。又以为诸侯王多长,上初即位,富於春秋,蚡以肺腑为京师相,
非痛折节以礼诎之,天下不肃。当是时,丞相入奏事,坐语移日,所言皆听。荐人或起家至二千石,
权移主上。上乃曰:"君除吏已尽未?吾亦欲除吏。"尝请考工地益宅,上怒曰:"君何不遂取武库!"
是後乃退。尝召客饮,坐其兄盖侯南乡,自坐东乡,以为汉相尊,不可以兄故私桡。
武安由此滋骄,治宅甲诸第。田园极膏腴,而市买郡县器物相属於道。前堂罗锺鼓,立曲旃;
後房妇女以百数。诸侯奉金玉狗马玩好,不可胜数。

번역:

전분은 용모가 초라했지만(貌侵), 태어나면서부터 매우 귀했다(생래 귀족이었다). 또 제후왕들이 대부분 연장자이고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젊었기 때문에, 자신이 외척으로 서울의 재상이 되었으니 혹독하게 예로써 그들을 꺾지 않으면 천하가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승상이 입궐해 주무(奏事)하면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해를 넘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다. 천거하는 사람 중 집에서 바로 2천석(二千石, 고위 관직)이 되는 자가 있어, 권력이 군주에게서 옮겨갔다. 황제가 말했다: “그대는 관리를 다 뽑았소? 나도 한 명 뽑으려 하오.” 일찍이 고공(考工)의 땅을 청원해 집을 넓히려 하자, 황제가 노하여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무고(武库)를 바로 가지지 않는가?” 그 후에야 물러났다. 일찍이 손님을 불러 술을 마실 때, 자기의 형 개후(盖侯)를 남향(南向, 손님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동향(東向, 주인 자리)에 앉았다. 한나라 승상의 존귀함은 형 때문에 사사로이 굽힐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분은 이로부터 더욱 교만해져, 집을 지을 때 제후들의 집보다 으뜸이 되게 했다. 전원은 매우 비옥한 땅이었고, 군현(郡县)에서 물건을 사들이는 수레가 도로에 이어졌다. 앞마당에는 종과 북을 진열하고 곡기(曲旃)를 세웠으며, 뒷방에는 부녀자들이 수백 명이었다. 제후들이 바치는 금·옥·개·말·완호(玩好)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해설: 전분의 오만이 극에 달하는 장면이다. 무제가 던진 “君除吏已尽未?吾亦欲除吏”(네가 관리 다 뽑았니? 나도 하나 뽑겠다)는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君何不遂取武库”(차라리 무기고를 가져가라)는 경고. 그럼에도 전분은 교만을 멈추지 않는다. 사마천은 전분의 용모를 ‘貌侵’(초라하다)이라고 짧게 적고, 바로 이어서 그의 귀족적 오만을 적는 대비를 통해 겉과 속의 괴리를 드러낸다.


7절: 灌夫(관부) — 피로 쓴 용기, 술로 망친 인생

섹션 제목: “7절: 灌夫(관부) — 피로 쓴 용기, 술로 망친 인생”

원문:

灌将军夫者,颍阴人也。夫父张孟,尝为颍阴侯婴舍人,得幸,因进之至二千石,故蒙灌氏姓为灌孟。
吴楚反时,颍阴侯灌何为将军,属太尉,请灌孟为校尉。夫以千人与父俱。灌孟年老,颍阴侯彊请之,
郁郁不得意,故战常陷坚,遂死吴军中。军法,父子俱从军,有死事,得与丧归。灌夫不肯随丧归,
奋曰:"原取吴王若将军头,以报父之仇。"於是灌夫被甲持戟,募军中壮士所善原从者数十人。
及出壁门,莫敢前。独二人及从奴十数骑驰入吴军,至吴将麾下,所杀伤数十人。不得前,复驰还,
走入汉壁,皆亡其奴,独与一骑归。夫身中大创十馀,適有万金良药,故得无死。夫创少瘳,又复请将军曰:
"吾益知吴壁中曲折,请复往。"将军壮义之,恐亡夫,乃言太尉,太尉乃固止之。吴已破,灌夫以此名闻天下。

번역:

관장군 관부(灌夫)는 영음(颍阴)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장맹(张孟)은 일찍이 영음후 관영(灌婴)의 사인이었다가 총애를 받아 2천석에까지 올랐으므로, 장씨를 버리고 관씨(灌氏)의 성을 받아 관맹(灌孟)이 되었다. 오초(吴楚) 반란 때, 영음후 관하(灌何)가 장군이 되어 태위(주아부)의 휘하에 있었고, 관맹을 교위로 삼을 것을 청했다. 관부는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아버지와 함께 갔다. 관맹은 나이가 많았는데 영음후가 억지로 청한 터라 울적하게 지내다가, 항상 적진의 가장 험한 곳을 공격해 오(吴)나라 군대에서 전사했다. 군법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종군하여 전사자가 있으면 장사를 치르고 돌아갈 수 있었다. 관부는 시신을 따라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분연히 말했다: “오왕(吴王)이나 그 장군의 목을 베어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 이에 관부는 갑옷을 입고 창을 잡고, 군중의 장사 중 자원하는 수십 명을 모았다. 진영 문을 나서자 아무도 앞에 나서지 못했다. 오직 두 사람과 노복(奴仆) 10여 기(騎)가 오군(吳軍) 진영으로 돌진해 장수 휘하에 이르러 수십 명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 더 나아갈 수 없어 다시 달려 돌아와 한나라 진영으로 들어갔는데, 노복들은 모두 잃고 오직 한 기와 함께 돌아왔다. 관부는 십여 군데의 큰 부상을 입었지만 마침 만금(萬金)의 좋은 약이 있어 죽지 않았다. 상처가 조금 나은 후 다시 장군에게 청했다: “저는 이미 오나라 진영의 상황을 알았습니다. 다시 가게 해주십시오.” 장군은 그를 용감하고 의롭게 여겼으나 잃을까 두려워 태위에게 말하고, 태위가 마침내 그를 말렸다. 오(吴)가 격파된 후, 관부는 이 일로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해설: 관부의 첫 장면은 폭력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다. 열여섯 명으로 오군 진영을 돌파해 수십 명을 죽이고 돌아왔다. 몸에 10여 개의 큰 부상.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단순한 동기. 이 무모할 정도의 용기는 관부를 한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그의 비극의 씨앗이 된다.


8절: 灌夫(관부)의 성격 — 강직함이라는 독

섹션 제목: “8절: 灌夫(관부)의 성격 — 강직함이라는 독”

원문:

灌夫为人刚直使酒,不好面谀。贵戚诸有势在己之右,不欲加礼,必陵之;诸士在己之左,
愈贫贱,尤益敬,与钧。稠人广众,荐宠下辈。士亦以此多之。
夫不喜文学,好任侠,已然诺。诸所与交通,无非豪桀大猾。家累数千万,食客日数十百人。
陂池田园,宗族宾客为权利,横於颍川。颍川兒乃歌之曰:"颍水清,灌氏宁;颍水浊,灌氏族。"

번역:

관부는 성품이 강직하고 술기운을 빌려 행동했으며, 면전에서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귀척과 권세 있는 자들 중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게는 예를 갖추려 하지 않고 반드시 능멸했다. 자신보다 낮은 선비에게는 더욱 가난하고 천할수록 더욱 공경하며 동등하게 대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아랫사람을 천거하고 칭송했다. 선비들도 이로 인해 그를 따랐다. 관부는 문학(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고, 협의(任侠)를 좋아했으며, 약속을 지켰다. 사귀는 사람들은 모두 호걸이나 큰 교활한 자들뿐이었다. 집에는 수천만의 재산이 쌓여 있었고, 식객이 날마다 수십에서 백 명이었다. 연못과 전원이 있었고, 종족과 빈객이 권력을 휘둘러 영천(颍川)에서 횡포를 부렸다. 영천의 아이들이 노래했다: “영천물이 맑으면 관씨가 편안하고, 영천물이 흐리면 관씨가 멸망하리.”

해설: 관부의 성격은 극명히 대비된다. 위에 있는 자에게는 무례하다. 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지극히 공손하다. 이 ‘역차별’은 그의 ‘협객’ 기질의 핵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문벌을 키워 지방에서 횡포를 부린다. 영천의 동요 “颍水清,灌氏宁;颍水浊,灌氏族”은 민중의 시선을 대변한다—관씨 가문은 언젠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


9절: 魏其(위기)와 灌夫(관부)의 결합 — 동병상련

섹션 제목: “9절: 魏其(위기)와 灌夫(관부)의 결합 — 동병상련”

원문:

灌夫家居虽富,然失势,卿相侍中宾客益衰。及魏其侯失势,亦欲倚灌夫引绳批根生平慕之後弃之者。
灌夫亦倚魏其而通列侯宗室为名高。两人相为引重,其游如父子然。相得驩甚,无厌,恨相知晚也。

번역:

관부는 집에 있을 때 비록 부유했으나 세력을 잃자 경·상·시중 및 빈객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위기후도 세력을 잃자 평소 그를 따르다가 버린 자들을 바로잡기 위해 관부에게 의지하려 했다. 관부도 위기후에게 의지해 열후와 종실과 교류하며 명성을 높이려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주고 중히 여겼으며, 그 교유는 부자와 같았다. 서로 잘 맞아 기뻐함이 매우 심해 싫증이 없었고, 서로를 늦게 알게 된 것을 한스러워했다.

해설: 이 ‘정의’ 못지않게 중요한 장면은 없다. 두영과 관부는 각각 실각한 후 서로에게 의지한다. “游如父子然(서로 놀기 부자와 같았다)” —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냈다. 그러나 이 ‘정’이 오히려 두 사람을 함께 파멸로 이끈다. 사마천은 우정의 숭고함과 비극성을 동시에 그린다.


10절: 갈등의 도화선 — 무시당한 초대와 농지 분쟁

섹션 제목: “10절: 갈등의 도화선 — 무시당한 초대와 농지 분쟁”

원문:

灌夫有服,过丞相。丞相从容曰:"吾欲与仲孺过魏其侯,会仲孺有服。"灌夫曰:
"将军乃肯幸临况魏其侯,夫安敢以服为解!请语魏其侯帐具,将军旦日蚤临。"武安许诺。
灌夫具语魏其侯如所谓武安侯。魏其与其夫人益市牛酒,夜洒埽,早帐具至旦。平明,令门下候伺。
至日中,丞相不来。魏其谓灌夫曰:"丞相岂忘之哉?"灌夫不怿,曰:"夫以服请,宜往。"
乃驾,自往迎丞相。丞相特前戏许灌夫,殊无意往。及夫至门,丞相尚卧。於是夫入见,曰:
"将军昨日幸许过魏其,魏其夫妻治具,自旦至今,未敢尝食。"武安鄂谢曰:"吾昨日醉,
忽忘与仲孺言。"乃驾往,又徐行,灌夫愈益怒。及饮酒酣,夫起舞属丞相,丞相不起,
夫从坐上语侵之。魏其乃扶灌夫去,谢丞相。丞相卒饮至夜,极驩而去。

번역:

관부가 상중(服喪)에 재상(전분)을 방문했다. 전분이 느긋이 말했다: “내가 중유(仲孺, 관부의 자)와 함께 위기후를 방문하려 했는데, 마침 중유가 상중이구나.” 관부가 말했다: “장군께서 선뜻 위기후를 찾아주신다면 제가 어찌 상복을 이유로 마다하겠습니까! 제가 위기후에게 말씀드려 상을 차리게 하고 장군께서 내일 아침 일찍 오십시오.” 전분이 승낙했다. 관부가 전분의 말을 그대로 위기후에게 전했다. 두영은 부인과 함께 쇠고기와 술을 더 사고 밤새 청소하며, 새벽부터 상을 차려 아침까지 기다렸다. 날이 밝자 문에 사람을 세워 기다리게 했다. 정오가 되도록 재상이 오지 않았다. 두영이 관부에게 말했다: “재상이 잊은 것은 아닐까?” 관부가 불쾌하게 말했다: “제가 상중임에도 초대를 청했으니 가봐야 합니다.” 마차를 타고 직접 전분을 맞으러 갔다. 전분은 처음에 농담으로 관부에게 허락한 것뿐이었고, 갈 뜻이 전혀 없었다. 관부가 문에 이르렀을 때 전분은 아직 누워 있었다. 관부가 들어가 인사하며 말했다: “장군께서 어제 위기후를 방문하겠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위기후 부부가 상을 차리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감히 맛보지 못했습니다.” 전분이 놀라 사과하며 말했다: “내가 어제 취하여 갑자기 중유와의 약속을 잊었구나.” 이에 마차를 타고 갔는데 또 천천히 갔다. 관부는 더욱 화가 났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관부가 춤추며 전분에게 권했지만 전분이 일어나지 않았다. 관부가 자리에서 말로 전분을 모욕했다. 두영이 관부를 끌어내며 전분에게 사과했다. 전분은 결국 밤까지 술을 마시고 매우 즐겁게 돌아갔다.

해설: 이 장면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전분이 두영을 농락한다—방문을 약속해 놓고 잠자코 있고, 겨우 오면서도 일부러 천천히 간다. 관부의 분노가 폭발 직전까지 간다. 그런데도 전분은 “极驩而去”—매우 즐겁게 돌아간다. 이는 그가 두영과 관부를 이미 놀잇감으로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마천은 이 초라한 한 장면으로 세 인물의 관계 역학을 완벽히 보여준다.


11절: 城南(성남)의 밭 — 결정적 균열

섹션 제목: “11절: 城南(성남)의 밭 — 결정적 균열”

원문:

丞相尝使籍福请魏其城南田。魏其大望曰:"老仆虽弃,将军虽贵,宁可以势夺乎!"不许。
灌夫闻,怒,骂籍福。籍福恶两人有郄,乃谩自好谢丞相曰:"魏其老且死,易忍,且待之。"
已而武安闻魏其、灌夫实怒不予田,亦怒曰:"魏其子尝杀人,蚡活之。蚡事魏其无所不可,
何爱数顷田?且灌夫何与也?吾不敢复求田。"武安由此大怨灌夫、魏其。

번역:

재상(전분)이 일찍이 적복(籍福)을 시켜 두영의 성남(城南) 밭을 요구했다. 두영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늙은 신하가 비록 버림받았으나 장군이 비록 귀하더라도 어찌 권세로 빼앗을 수 있겠는가!” 허락하지 않았다. 관부가 듣고 노하여 적복을 꾸짖었다. 적복은 두 사람(두영·전분)이 틀어질까 걱정되어 거짓으로 좋게 전분에게 사과했다: “위기후는 늙어 곧 죽을 테니 참기 쉬우니, 잠깐 기다리십시오.” 이후 전분이 두영과 관부가 실제로 화내며 밭을 주지 않은 것을 듣고 또한 노하여 말했다: “위기후의 아들이 일찍이 사람을 죽였는데 내가 살려주었다. 내가 위기후를 섬김에 불가능한 것이 없었거늘 어찌 몇 경(頃)의 밭을 아끼는가? 게다가 관부가 무슨 상관이냐? 나는 다시는 밭을 구하지 않겠다.” 전분이 이로부터 관부와 두영에게 크게 원한을 품었다.

해설: 밭 한 조각이 비극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전분은 두영을 구해준 적이 있다고 주장하며 은혜를 갚으라고 요구한다. 두영은 자존심을 지킨다. 여기에 관부가 끼어들어 상황을 악화시킨다. 적복이라는 중재자가 있지만, 그가 거짓말로 얼버무린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 이 작은 이해관계가 골육상쟁으로 번진다.


12절: 결혼식 참사 — 灌夫(관부)의 최후 폭발

섹션 제목: “12절: 결혼식 참사 — 灌夫(관부)의 최후 폭발”

원문:

夏,丞相取燕王女为夫人,有太后诏,召列侯宗室皆往贺。魏其侯过灌夫,欲与俱。夫谢曰:
"夫数以酒失得过丞相,丞相今者又与夫有郄。"魏其曰:"事已解。"彊与俱。
饮酒酣,武安起为寿,坐皆避席伏。已魏其侯为寿,独故人避席耳,馀半膝席。灌夫不悦。
起行酒,至武安,武安膝席曰:"不能满觞。"夫怒,因嘻笑曰:"将军贵人也,属之!"
时武安不肯。行酒次至临汝侯,临汝侯方与程不识耳语,又不避席。夫无所发怒,
乃骂临汝侯曰:"生平毁程不识不直一钱,今日长者为寿,乃效女兒呫嗫耳语!"
武安谓灌夫曰:"程李俱东西宫卫尉,今众辱程将军,仲孺独不为李将军地乎?"
灌夫曰:"今日斩头陷匈,何知程李乎!"坐乃起更衣,稍稍去。
魏其侯去,麾灌夫出。武安遂怒曰:"此吾骄灌夫罪。"乃令骑留灌夫。
灌夫欲出不得。籍福起为谢,案灌夫项令谢。夫愈怒,不肯谢。
武安乃麾骑缚夫置传舍,召长史曰:"今日召宗室,有诏。"劾灌夫骂坐不敬,系居室。
遂按其前事,遣吏分曹逐捕诸灌氏支属,皆得弃市罪。
魏其侯大媿,为资使宾客请,莫能解。武安吏皆为耳目,诸灌氏皆亡匿,夫系,遂不得告言武安阴事。

번역:

여름, 전분이 연(燕)나라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태후의 조서가 있어 열후와 종실들을 불러 모두 가서 축하하게 했다. 위기후가 관부를 찾아가 함께 가자고 했다. 관부가 사양했다: “제가 여러 번 술주정으로 재상에게 잘못을 저질렀고, 재상이 지금 또 저와 틈이 있습니다.” 두영이 말했다: “일은 이미 풀렸다.” 억지로 함께 갔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전분이 일어나 축수(축배)를 돌렸다. 좌중이 모두 자리를 피해 엎드렸다. 이어 두영이 축수를 돌리자 옛 친구들만 자리를 피했고, 나머지 절반은 무릎만 꿇었다. 관부가 불쾌했다. 일어나 술을 돌리며 전분에게 이르렀다. 전분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잔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 관부가 노하여,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장군은 귀인이십니다! 마시오!” 전분이 따르지 않았다. 술을 돌려 임여후(临汝侯)에게 이르렀는데, 임여후가 정불식(程不识)과 귀엣말을 하고 있었고 또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관부가 분노를 참지 못해 임여후를 꾸짖었다: “평소 정불식을 한 푼도 안 되는 놈이라고 욕하더니, 오늘 어른이 축수를 드는데 계집애처럼 소곤거리느냐!” 전분이 관부에게 말했다: “정(程)과 이(李, 이광)는 각각 동서궁의 위위(卫尉)다. 오늘 대중 앞에서 정장군을 모욕하니 중유는 이장군을 위해서라도 좀 봐주지 않는가?” 관부가 말했다: “오늘은 목이 잘리고 가슴이 뚫려도, 정이고 이고 무슨 상관이냐!” 좌중이 일어나 옷을 고친다(자리를 피한다)며 슬슬 떠나기 시작했다. 두영이 떠나며 관부에게 나가자고 손짓했다. 전분이 드디어 노하여 말했다: “이것은 내가 관부를 너무 방탕하게 만든 죄다.” 이에 기병(騎兵)을 시켜 관부를 붙잡게 했다. 관부가 나가려 했으나 나가지 못했다. 적복이 일어나 사과하며 관부의 목을 눌러 사과하게 했다. 관부가 더욱 노하여 사과하지 않았다. 전분이 기병을 시켜 관부를 묶어 전사(傳舍)에 가두고 장사(长史)를 불러 말했다: “오늘 종실을 소집한 것은 조서(诏書)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부가 ‘좌중 모독’(骂坐不敬)으로 탄핵되어 구사(居室)에 감금되었다. 이어 그의 전과(前事)를 들추어 관리들을 나누어 보내 관씨 일족을 추포하게 하여, 모두 시장에서 참수하는 형(弃市)에 처했다. 위기후가 매우 부끄러워하며 돈을 써서 빈객들을 통해 청탁했으나 풀리지 않았다. 전분의 관리들이 모두 눈과 귀가 되어 관씨들은 모두 도망쳐 숨었고, 관부는 감금되어 전분의 은밀한 일을 고발할 수 없었다.

해설: 사기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다. 결혼식 잔치라는 공개적 장소에서, 전분이 일부러 관부를 도발한다—“不能满觞”이라고 하면서 잔을 다 비우지 않는다. 관부는 넘어간다. 임여후에게 욕설을 퍼붓고(과거 그가 정불식을 헐뜯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전분과 정면충돌한다. “今日斩头陷匈,何知程李乎!”—오늘은 목이 잘려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주목할 점: 전분은 이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관부를 가둔 후 즉시 ‘조서가 있었는데 불경했다’는 구실을 만들어 법적 절차를 밟는다. 즉, 이 모든 것이 전분이 계획한 함정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3절: 東朝廷辨(동조정변) — 법정 드라마

섹션 제목: “13절: 東朝廷辨(동조정변) — 법정 드라마”

원문:

魏其锐身为救灌夫。夫人谏魏其曰:"灌将军得罪丞相,与太后家忤,宁可救邪?"
魏其侯曰:"侯自我得之,自我捐之,无所恨。且终不令灌仲孺独死,婴独生。"
乃匿其家,窃出上书。立召入,具言灌夫醉饱事,不足诛。上然之,赐魏其食,曰:"东朝廷辩之。"
魏其之东朝,盛推灌夫之善,言其醉饱得过,乃丞相以他事诬罪之。武安又盛毁灌夫所为横恣,
罪逆不道。魏其度不可柰何,因言丞相短。武安曰:"天下幸而安乐无事,蚡得为肺腑,
所好音乐狗马田宅。蚡所爱倡优巧匠之属,不如魏其、灌夫日夜招聚天下豪桀壮士与论议,
腹诽而心谤,不仰视天而俯画地,辟倪两宫间,幸天下有变,而欲有大功。臣乃不知魏其等所为。"
於是上问朝臣:"两人孰是?"
御史大夫韩安国曰:"魏其言灌夫父死事,身荷戟驰入不测之吴军,身被数十创,名冠三军,
此天下壮士,非有大恶,争杯酒,不足引他过以诛也。魏其言是也。丞相亦言灌夫通奸猾,
侵细民,家累巨万,横恣颍川,凌轹宗室,侵犯骨肉,此所谓'枝大於本,胫大於股,
不折必披',丞相言亦是。唯明主裁之。"
主爵都尉汲黯是魏其。内史郑当时是魏其,後不敢坚对。馀皆莫敢对。
上怒内史曰:"公平生数言魏其、武安长短,今日廷论,局趣效辕下驹,吾并斩若属矣。"
即罢起入,上食太后。太后亦已使人候伺,具以告太后。太后怒,不食,曰:"今我在也,
而人皆藉吾弟,令我百岁後,皆鱼肉之矣。且帝宁能为石人邪!此特帝在,即录录,
设百岁後,是属宁有可信者乎?"上谢曰:"俱宗室外家,故廷辩之。不然,此一狱吏所决耳。"
是时郎中令石建为上别言两人事。

번역:

두영이 몸을 아끼지 않고 관부를 구하려 했다. 부인이 간했다: “관장군이 재상에게 죄를 얻어 태후 집안과 거슬렸는데, 어찌 구할 수 있겠습니까?” 두영이 말했다: “후작(爵位)은 내가 얻었고, 내가 버리니 후회 없습니다. 또한 결코 관중유(관부)만 죽게 하고 두영이 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집을 나와 몰래 글을 올렸다. 즉시 불려 들어가 관부가 술에 취한 일은 죽일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상세히 말했다. 황제가 옳게 여겨 두영에게 음식을 내리며 말했다: “동조(东朝)에서 조정 변론하라.” 두영이 동조에 나아가 관부의 장점을 극구 칭송하고 술 취한 과실일 뿐이며 재상이 다른 일로 무고해 죄를 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전분은 관부가 횡포하고 방자하며 죄가 불도(不道, 용서할 수 없는 죄)에 이른다고 극력 헐뜯었다. 두영이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전분의 단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분이 말했다: “천하가 다행히 안락하고 일이 없어 신(전분)이 폐하의 외척이 되어 음악과 개와 말과 집과 밭을 좋아할 뿐입니다. 신이 좋아하는 것은 창우(倡优, 광대)나 교묘한 장인 등입니다. 그러나 위기후와 관부는 밤낮으로 천하의 호걸과 장사를 모아 의논하며, 마음속으로 비방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땅을 가리키기도 하며, 두 궁(동궁=태후, 서궁=황제) 사이를 엿보며 천하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큰 공을 세우려 합니다. 신은 위기후들의 소행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황제가 조신들에게 물었다: “두 사람 중 누가 옳은가?” 어사대부 한안국이 말했다: “위기후는 관부가 아버지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오군에 돌진해 수십 개의 부상을 입고 이름을 삼군에 떨쳤으니 천하의 장사이며, 큰 악이 없고 다툼은 술잔 하나로 인한 것이니 다른 허물을 끌어들여 죽일 수 없다고 합니다. 위기후의 말이 옳습니다. 재상은 관부가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과 통하고 백성들을 침해하며 가산이 거만(巨万)이고 영천에서 횡포를 부리며 종실을 능멸하고 골육을 침범했으니 ‘가지가 뿌리보다 크면 꺾이지 않으면 갈라진다’는 말과 같아 재상의 말도 옳습니다. 오직 명철한 폐하께서 재결하소서.” 주작도위(主爵都尉) 급암(汲黯)은 두영을 지지했다. 내사(内史) 정당시(郑当时)는 두영을 지지하다가도 뒤에는 감히 확고히 대답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모두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황제가 내사에게 노하여 말했다: “그대는 평소 두영과 전분의 장단점을 말하더니, 오늘 조정 변론에서는 수레에 맨 망아지처럼 움츠러드는구나! 내가 너희들을 다 베어버리겠다.” 즉시 일어나 들어가 태후께 식사를 올렸다. 태후도 이미 사람을 시켜 엿듣게 해두었다가 그대로 태후에게 알렸다. 태후가 노하여 식사를 들지 않고 말했다: “지금 내가 살아 있는데도 사람들이 내 동생을 이렇게 짓밟는다. 내가 죽은 후에는 모두가 그를 고기처럼 썰어버릴 것이다. 폐하가 차라리 돌사람(石人, 무감각한 사람)일 수 있느냐! 폐하께서 계시기에 이렇게 눈치만 보고 있지만, 내가 죽은 후에 이 무리들이 믿을 만한 자가 있겠느냐?” 황제가 사과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다 종실 외가이기 때문에 조정에 변론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는 한 옥리(獄吏)가 결단할 일입니다.” 이때 낭중령 석건(石建)이 황제를 위해 두 사람의 일을 따로 아뢰었다.

해설: 사기에서 가장 긴 법정 장면이다. 세 인물의 캐릭터가 완벽히 드러난다:

  • 두영: 이상주의적이고 순진하다. 관부의 선행만을 강조하고, 전분이 무고했다고 주장한다. 논리가 부족하지만 정직하다.
  • 전분: 간교하다. 자신은 패악질하지 않는다고 포장하며, 두영과 관부를 반역자로 몰아간다. “招聚天下豪桀壮士与论议”(호걸을 모아 의논한다)는 중대한 정치적 고발이다.
  • 한안국: 전형적인 신중파. 양쪽 말이 다 옳다고 하고 결정은 황제에게 미룬다. 전분에게는 뒤에서 “왜 두영이 너를 공격한 기회를 역이용하지 않았느냐”고 가르친다.
  • 왕태후: 결정적 변수다. 그녀의 존재가 전분에게 면죄부를 준다. “今我在也,而人皆藉吾弟(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사람들은 모두 내 동생을 짓밟는다)“—내가 살아있는데도 내 동생을 짓밟는다! 이 말 한마디가 두영의 운명을 결정한다. 급암(汲黯)만이 홀로 두영을 지지한다. 정당시는 지지했다가 겁을 먹고 물러선다—황제가 “吾并斩若属矣(내가 너희들을 다 베어버리겠다)“라고 화낼 정도다. 이 장면에서 사마천은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고발한다.

14절: 偽詔書(위조서) — 두영의 최후

섹션 제목: “14절: 偽詔書(위조서) — 두영의 최후”

원문:

於是上使御史簿责魏其所言灌夫,颇不雠,欺谩。劾系都司空。孝景时,魏其常受遗诏,
曰"事有不便,以便宜论上"。及系,灌夫罪至族,事日急,诸公莫敢复明言於上。
魏其乃使昆弟子上书言之,幸得复召见。书奏上,而案尚书大行无遗诏。
诏书独藏魏其家,家丞封。乃劾魏其矫先帝诏,罪当弃市。
五年十月,悉论灌夫及家属。魏其良久乃闻,闻即恚,病痱,不食欲死。
或闻上无意杀魏其,魏其复食,治病,议定不死矣。乃有蜚语为恶言闻上,
故以十二月晦论弃市渭城。

번역:

이에 황제가 어사를 시켜 두영이 관부에 대해 말한 것을 문서로 조사하게 했는데, 많이 맞지 않아 속임수와 거짓말이 드러났다. 탄핵하여 도사공(都司空)에 감금했다. 경제 때 두영이 일찍이 유조(遗诏)를 받았는데, “일이 불편하면 편의대로 아뢰라”는 내용이었다. 관부가 감금되고 죄가 족멸(族滅)에 이르러 일이 날로 급해지자, 여러 공(公)들 중 감히 황제에게 다시 밝히는 자가 없었다. 두영이 조카를 시켜 글을 올리게 하여 다시 불려가길 바랐다. 글이 올라갔지만 상서(尚书)에서 대행(大行, 선황의 장례) 기록을 조사하니 유조가 없었다. 조서는 오직 두영의 집에만 있었고, 가승(家丞)이 봉인했다. 이에 두영이 선제(先帝)의 조서를 위조했다고 탄핵되어, 죄는 시장 참수(弃市)에 해당했다. 5년 10월, 관부와 그 가족이 모두 처형되었다. 두영은 오랜 후에야 이 소식을 듣고, 듣자마자 성내고 병이 나서 먹지 않고 죽으려 했다. 어떤 이가 황제가 두영을 죽일 의사가 없다는 말을 전하자, 두영은 다시 먹고 병을 치료했으며, 의논이 죽이지 않는 쪽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헛소문(蜚语)에 악의적인 말이 황제에게 들렸다. 이에 12월 그믐날(晦) 위성(渭城)에서 시장 참수형에 처해졌다.

해설: 이 장면은 인간 두영의 비극을 완성한다. 유조(遺詔)가 없었다는 것—진짜 위조였을까, 아니면 왕태후-전분 세력이 조작했을까? 사마천은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다만 “詔书独藏魏其家”만을 기록한다. 그리고 두영의 마지막이 극적이다: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다시 먹고 치료하다가, 갑자기 헛소문(蜚语)으로 처형된다. 권력은 법이 아니라 소문과 모함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고발이다.


원문:

其春,武安侯病,专呼服谢罪。使巫视鬼者视之,见魏其、灌夫共守,欲杀之。竟死。
淮南王安谋反觉,治。王前朝,武安侯为太尉,时迎王至霸上,谓王曰:"上未有太子,大王最贤,
高祖孙,即宫车晏驾,非大王立当谁哉!"淮南王大喜,厚遗金财物。
上自魏其时不直武安,特为太后故耳。及闻淮南王金事,上曰:"使武安侯在者,族矣。"

번역:

그 이른 봄, 무안후 전분이 병들어 오직 ‘죄를 용서해달라’고 부르짖으며 사죄했다. 무당(巫) 중 귀신을 보는 자를 시켜 보게 했더니, 두영과 관부가 함께 지키며 그를 죽이려 한다고 했다. 결국 죽었다. 회남왕(淮南王) 안(安)이 모반한 것이 발각되어 다스려졌다. 회남왕이 일찍이 조현했을 때, 전분이 태위로서 왕을 패상(霸上)에서 맞으며 말했다: “황제께 아직 태자가 없습니다. 대왕께서 가장 현명하시고 고조의 손자이십니다. 만약 황제의 수레가 갑자기 움직이면(붕어하면) 대왕이 아니면 누가 서겠습니까!” 회남왕이 크게 기뻐하며 후한 금과 재물을 선물했다. 황제는 두영 사건 때부터 전분을 옳게 여기지 않았고, 다만 태후 때문이었다. 회남왕의 금(金) 이야기를 듣고 황제가 말했다: “무안후가 살아 있었다면 족멸되었을 것이다.”

해설: 사마천은 초자연적 심판을 도입한다. 전분이 죽기 직전 두영과 관부의 귀신에 시달리며 “죄를 용서해 달라”고 외친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사마천의 도덕적 판단이다. 그리고 비꼬듯, 사후에 회남왕 모반 사건으로 전분이 회남왕에게 황제가 되라고 말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무제는 “살아 있었으면 족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전분이 죽인 두영은 억울한 죽음을, 전분 자신도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원문:

太史公曰:魏其、武安皆以外戚重,灌夫用一时决筴而名显。魏其之举以吴楚,武安之贵在日月之际。
然魏其诚不知时变,灌夫无术而不逊,两人相翼,乃成祸乱。武安负贵而好权,杯酒责望,陷彼两贤。
呜呼哀哉!迁怒及人,命亦不延。众庶不载,竟被恶言。呜呼哀哉!祸所从来矣!
窦婴、田蚡,势利相雄。咸倚外戚,或恃军功。灌夫自喜,引重其中。意气杯酒,?辟睨两宫。
事竟不直,冤哉二公!

번역:

태사공이 말한다: “위기후와 무안후는 모두 외척으로 중용되었고, 관부는 한 순간의 결단(칠국 난 때의 용기)으로 이름을 떨쳤다. 위기후의 발탁은 오초의 난 때문이었고, 무안후의 귀함은 태후라는 시절의 인연(日月之际)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기후는 진실로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했고, 관부는 술책(术)이 없고 공손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이 서로 도운 것이 도리어 화란(祸乱)을 만들었다. 무안후는 귀함에 힘입고 권력을 좋아하여, 술잔 하나로 원한을 품고 그 두 현명한 사람(두영·관부)을 빠뜨렸다. 아, 슬프다!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 생명도 오래가지 못했다. 뭇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나쁜 말에 빠졌다. 아, 슬프다! 재앙이 온 곳을 알겠구나! (贊曰) 두영과 전분, 세력과 이해로 서로 다투었네. 모두 외척에 의지하거나, 혹은 군공(軍功)을 믿었네. 관부는 자만심에 차서 그 사이에 끼어 서로를 끌어올렸네. 의기(意气)는 술잔에 있고, 두 궁(동궁·서궁)을 흘낏 보았네. 일은 끝내 올바르지 못했으니, 원통하다 두 분이여!”

해설: 태사공왈은 세 인물에 대한 사마천의 최종 평결이다. 두영은 “不知时变”(시대의 흐름을 모른다), 관부는 “无术而不逊”(술책 없고 불손하다), 전분은 “负贵而好权”(귀함에 기대고 권력을 좋아한다). 그리고 결정적 표현: “杯酒责望,陷彼两贤(술잔 하나로 원한을 품어 두 현인을 함정에 빠뜨렸다)“—두 현인을 함정에 빠뜨렸다. 하나의 술잔에서 시작된 비극이 세 사람의 인생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맨 마지막 “冤哉二公(원통하다 두 분이여)!”—이라는 외침은 사마천의 진심을 드러낸다. 외척 정치라는 시스템이 만든 비극. 그 속에서 인간은 그저 운명에 휩쓸릴 뿐이다. 사마천 자신의 경험(이릉 화)이 이 평가에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물출신핵심 장점결정적 약점최후
窦婴 (두영)태후 두씨의 친족청렴·원칙·충성시대 변화를 읽지 못함위조 유조로 처형
田蚡 (전분)태후 왕씨의 동생정치적 수완·말재주오만·권력욕·복수심두영·관부의 귀신에 시달려 병사
灌夫 (관부)평민 출신 장수무용·강직·의협심무식·주벽·무례함주정으로 모독죄→요참
  1. 두영이 일어나고(칠국의 난) → 전분이 그를 섬긴다
  2. 전분이 일어나고(왕태후의 등장) → 두영이 기울기 시작한다
  3. 관부가 두영의 유일한 동맹이 된다
  4. 전분이 두영의 밭을 요구 → 거절 → 갈등 시작
  5. 결혼식 잔치에서 관부가 술주정 → 체포
  6. 조정 변론 → 왕태후의 압력으로 두영 패배
  7. 관부 처형, 두영 처형
  8. 전분, 귀신에 시달려 죽음
  9. (사후) 전분의 반역 발각

이 열전은 단순한 인물 열전이 아니라, 외척 정치(外戚政治)에 대한 가장 신랄한 고발이다. 두영과 전분, 한 사람은 의롭고 한 사람은 간사하지만, 둘 다 외척 신분으로 출세했다가 권력의 게임에서 추락한다. 사마천은 누가 옳고 그른가보다, 이런 시스템이 왜 비극을 낳는가를 묻는다.

이 열전의 백미는 동조정변(东朝廷辩) 장면으로, 법정 드라마로서 중국 고전 문학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종합 척추: 인간 조건과 사상의 향연
  • 사기 총론: 사기(史記) 총론
  • 관련 열전: 혹리열전, 위장군표기열전
  • 관련 인물: 사마천(司馬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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