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안열전 (管晏列傳) 원문과 번역
사기(史記) 권육십이(卷六十二) 열전제이(列傳第二)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본질: 관중과 안영은 같은 제(齊)나라의 재상이지만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난세를 평정했다. 관중은 현실적 경제 성장과 부국강병(창름실이지예절 → 춘추 첫 패자)을 추구했고, 안영은 도덕적 청렴과 검소(식불중육 → 흔들림 없는 신뢰)를 무기로 삼았다. 사마천이 이 둘을 한 열전에 묶은 이유는 국가를 지탱하는 두 가지 바퀴 — 창조적 경제 팽창과 도덕적 수호 — 를 대비해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마천은 안영에게 “그를 위해 말채찍을 잡고 싶다(執鞭所忻)“는 사기 전체에서 유일무이한 극찬을 보냈다.
1. 관중(管仲) vs 안영(晏嬰) 핵심 대조
섹션 제목: “1. 관중(管仲) vs 안영(晏嬰) 핵심 대조”| 항목 | 관중 (管仲) | 안영 (晏嬰) |
|---|---|---|
| 활동 시대 | 기원전 ?~645년 (제 환공 시대) | 기원전 ?~500년 (제 영공·장공·경공 삼조 50년+) |
| 출신 배경 | 영상(颍上) — 비천하고 가난한 출신 | 내(萊)나라 귀족 가문 |
| 통치 철학 | 실용주의·경제 중심주의·시장 친화적 부국강병 | 도덕주의·검소주의·상황별 유연한 원칙(유가+묵가 조화) |
| 핵심 성과 | 제 환공을 춘추시대 초대 패자(覇主)로 완성 | 제나라 쇠퇴기 속에서도 50년간 국가를 파멸에서 방어 |
| 사마천 평 | 공자의 “그릇이 작다”는 비판 소개 (객관적 실용가 평가) | “내가 그를 위해서라면 말채찍을 잡고 모시겠다” (무한한 흠모) |
| 핵심 유산 | 관포지교(절대적 신뢰), 창름실이지예절(경제기반론) | 안자사초(외교의 품격), 월석보(죄수 속 인재 발탁), 식불중육 |
2. 관중의 핵심 멘탈 모델: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
섹션 제목: “2. 관중의 핵심 멘탈 모델: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倉廩實而知禮節,衣食足而知榮辱)
- 2천 년 전의 매슬로 욕구단계설 & 경제주의:
- 도덕과 법률 이전에 백성의 기본적 생존과 경제적 풍요가 선행되어야 함을 갈파.
- 소금과 철의 국가 전매(鹽鐵專賣) 및 해상 무역 장려로 막대한 국부를 축적.
- 관포지교(管鮑之交) — 단 한 명의 절대적 이해자가 만든 기적:
-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知我者鮑子也).”
- 장사에서 이익을 더 챙겨도, 전쟁에서 도망쳐도, 벼슬에서 쫓겨나도 그 진가를 알아보고 목숨을 건 천거를 해준 포숙아가 있었기에 패업의 뇌관이 당겨졌다.
3. 안영의 핵심 멘탈 모델: “상황에 따라 균형을 잡다”
섹션 제목: “3. 안영의 핵심 멘탈 모델: “상황에 따라 균형을 잡다””“나라에 도가 있으면 명을 따르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명의 무게를 저울질한다.” (國有道即順命,無道即衡命)
- 유연한 원칙주의:
- 암군(暗君) 밑에서도 무모하게 순교하지 않고, 지혜롭게 임금의 결함을 교정하며 백성을 보호함.
- 안자사초(晏子使楚) — 체면과 자존감을 지키는 외교적 위트:
- 키가 작다고 개구멍으로 들어오라 하자 “개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이 아니니 정문으로 가겠다”며 초나라 왕의 오만을 꺾음.
-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는 비유로 초나라의 풍토와 법치를 꼬집음.
-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월석보와 마부의 일화):
- 묶여 끌려가던 죄수 월석보의 비범함을 한눈에 보고 몸값을 치러 구출하여 빈객으로 대우함.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제1절: 관포지교(管鮑之交) —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
섹션 제목: “제1절: 관포지교(管鮑之交) —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管仲夷吾者,颍上人也。少时常与鲍叔牙游,鲍叔知其贤。管仲贫困,常欺鲍叔,鲍叔终善遇之,不以为言。已而鲍叔事齐公子小白,管仲事公子纠。及小白立为桓公,公子纠死,管仲囚焉。鲍叔遂进管仲。管仲既用,任政於齐,齐桓公以霸,九合诸侯,一匡天下,管仲之谋也。
번역: 관중(관이오)은 영상(颍上) 사람이다. 젊을 때 항상 포숙아(鮑叔牙)와 교류했는데, 포숙은 그가 현명함을 알았다. 관중이 가난하여 항상 포숙을 속였으나, 포숙은 끝까지 잘 대해주고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이후 포숙은 제나라 공자 소백(公子小白)을 섬겼고, 관중은 공자 규(公子糾)를 섬겼다. 소백이 즉위하여 환공(桓公)이 되고 공자 규가 죽자 관중은 포로가 되었다. 포숙이 관중을 천거했다. 관중이 등용되어 정사를 맡자, 제나라 환공이 패자가 되어 아홉 번 제후를 규합하고 천하를 바로잡았으니, 이는 모두 관중의 계략이었다.
비유: 관포지교는 “내가 널 속여도 넌 내 사정을 알아준다”는 우정이다. A가 B를 여러 번 이용해도 B가 “쟤는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계속 이해해주는 관계. 현대적으로 말하면, 카이스트 수석이 자꾸만 말썽을 피우는 친구를 “걔는 머리는 좋은데 환경이 안 좋아서 그래”라며 끝까지 밀어주는 것.
제2절: 관중이 직접 말하는 “포숙이 나를 알아준 다섯 가지”
섹션 제목: “제2절: 관중이 직접 말하는 “포숙이 나를 알아준 다섯 가지””管仲曰:“吾始困时,尝与鲍叔贾,分财利多自与,鲍叔不以我为贪,知我贫也。吾尝为鲍叔谋事而更穷困,鲍叔不以我为愚,知时有利不利也。吾尝三仕三见逐於君,鲍叔不以我为不肖,知我不遭时也。吾尝三战三走,鲍叔不以我怯,知我有老母也。公子纠败,召忽死之,吾幽囚受辱,鲍叔不以我为无耻,知我不羞小节而耻功名不显于天下也。生我者父母,知我者鲍子也。”
번역: 관중이 말했다: “내가 처음 곤궁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더 많이 가졌다.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가 가난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포숙을 위해 일을 꾀했다가 도리어 더 곤란해졌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때가 유리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했으나 세 번 쫓겨났다.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싸워 세 번 도망갔다.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게 노모가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배하자, 소홀(召忽)은 죽었고, 나는 갇혀 욕을 보았다.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가 작은 절개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이 천하에 드러나지 못함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해설: 이 다섯 가지 고백은 고대 우정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관중이 당당하게 자신의 약점(탐욕·우매·무능·겁·파렴치)을 나열하고, 포숙이 그 각각을 “그 상황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고 받아줬다는 것. 특히 마지막 다섯 번째가 핵심이다: “나는 작은 절개에 얽매이지 않는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공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에서 관중의 대국의(大局의) 성격이 드러난다.
역사적 맥락: 당시 제나라에서는 공자 소백(훗날 환공)과 공자 규가 왕위를 놓고 다투었다. 관중은 소백을 쏘아 허리에 화살을 맞혔고(갈고리에 맞아 살았다), 소홀은 자결했다. 보통 같으면 처형감이지만, 포숙이 “저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함께 천하를 다스릴 사람입니다”라고 구명한 것이다.
제3절: 포숙의 자세와 관중의 정치 철학
섹션 제목: “제3절: 포숙의 자세와 관중의 정치 철학”3-1. 포숙의 겸양
섹션 제목: “3-1. 포숙의 겸양”鲍叔既进管仲,以身下之。子孙世禄於齐,有封邑者十馀世,常为名大夫。天下不多管仲之贤而多鲍叔能知人也。
번역: 포숙이 관중을 천거한 뒤, 자신은 그 아래에 섰다(낮은 자리를 맡았다). 그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에서 녹을 받았고, 십여 대에 걸쳐 봉읍을 받았으며, 항상 이름난 대부가 되었다. 천하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 포숙이 사람을 알아볼 줄 앎을 더 칭송했다.
3-2. 관중의 경제 정책
섹션 제목: “3-2. 관중의 경제 정책”管仲既任政相齐,以区区之齐在海滨,通货积财,富国彊兵,与俗同好恶。故其称曰:“仓廪实而知礼节,衣食足而知荣辱,上服度则六亲固。四维不张,国乃灭亡。下令如流水之原,令顺民心。“故论卑而易行。俗之所欲,因而予之;俗之所否,因而去之。
번역: 관중이 재상이 되어, 본래 변방의 작은 나라였던 제나라를 항구와 바다를 이용해 화물을 유통시키고 재화를 축적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백성들의 습속(관습)과 좋고 싫음을 같이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주가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군주가 법도를 지키면 육친이 굳건해진다. 예·의·염·치(四維)가 펼쳐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법령을 내릴 때는 물이 흐르듯 하여 백성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정책은 소박하고 알기 쉬우며 실행하기 쉬웠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주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은 없앴다.
해설: 이 구절은 “仓廪实而知礼节,衣食足而知荣辱” 이라는 유명한 명구를 포함한다. 관중의 철학은 경제적 기반이 도덕의 전제조건이라는 실용주의적 유물론에 가깝다. 공자가 “백성을 먼저 풍족하게 하고, 그 다음에 가르쳐야 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후대 유가의 “의(義)가 이(利)에 우선한다”는 입장과 긴장 관계를 이룬다. ^[역주: 이 구절은 나중에 사마천이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다시 인용하며 경제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삼는다.]
3-3. 화를 복으로 바꾸는 정치
섹션 제목: “3-3. 화를 복으로 바꾸는 정치”其为政也,善因祸而为福,转败而为功。贵轻重,慎权衡。桓公实怒少姬,南袭蔡,管仲因而伐楚,责包茅不入贡於周室。桓公实北征山戎,而管仲因而令燕修召公之政。於柯之会,桓公欲背曹沫之约,管仲因而信之,诸侯由是归齐。故曰:“知与之为取,政之宝也。”
번역: 그의 정치술은 재앙을 복으로 바꾸고 패배를 공적으로 전환하는 데 뛰어났다. 경중을 귀하게 여기고 저울질을 신중히 했다.
환공이 소희(少姬)에게 화가 나서 남쪽의 채(蔡)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관중은 기회를 이용해 초(楚)나라를 정벌하며 “주나라에 공물(포백)을 바치지 않았다”고 나무랐다. → 개인적 감정을 국제적 명분으로 전환
환공이 북쪽의 산융(山戎)을 정벌하자, 관중은 그 기회에 연(燕)나라가 소공(召公)의 정치를 닦도록 명령했다. → 군사 행동을 외교적 자산으로 전환
가(柯)의 회맹에서 환공이 조말(曹沫)과의 약속을 어기려 하자, 관중은 약속을 지키게 하여 제후들이 제나라를 따르게 했다. → 약속 위반을 신뢰 형성으로 전환
그래서 말했다: “주는 것이 취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
제4절: 관중의 사치와 죽음
섹션 제목: “제4절: 관중의 사치와 죽음”管仲富拟於公室,有三归、反坫,齐人不以为侈。管仲卒,齐国遵其政,常彊於诸侯。後百馀年而有晏子焉。
번역: 관중의 부귀는 공실(君主 집)에 견줄 만했다. 삼귀(三归)와 반점(反坫)의 사치를 누렸으나, 제나라 사람들은 그를 사치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이 죽자, 제나라는 그의 정책을 계속 따라 이웃 나라들보다 항상 강성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에 안자(晏子)가 나왔다.
비유: 관중의 사치는 마치 스타트업을 성공시킨 CEO가 회삿돈으로 요트를 사도 주주들이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회사가 지금 없었다”고 이해해주는 것과 같다. 관중이 제나라를 국제적 강자로 만든 공로가 워낙 컸기에 사치가 용인되었다.
제5절: 안영(晏嬰)의 검소함과 원칙
섹션 제목: “제5절: 안영(晏嬰)의 검소함과 원칙”晏平仲婴者,莱之夷维人也。事齐灵公、庄公、景公,以节俭力行重於齐。既相齐,食不重肉,妾不衣帛。其在朝,君语及之,即危言;语不及之,即危行。国有道,即顺命;无道,即衡命。以此三世显名於诸侯。
번역: 안영(안평중)은 내(萊)나라의 이유(夷維) 사람이다. 제나라의 영공·장공·경공 세 임금을 섬겼으며, 검소하고 실천을 중시하여 제나라에서 중시받았다. 재상이 되어서도 밥상에 고기를 두 가지 올리지 않았고, 첩에게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
조정에 있을 때, 임금이 말을 걸면 바르게 대답하고(危言), 말을 걸지 않으면 바르게 행동했다(危行). 나라에 도가 있으면 명령에 따랐고, 도가 없으면 명령을 저울질했다(衡命). 이렇게 세 임금 대에 걸쳐 이름이 제후들에게 드러났다.
해설: 관중의 호화로움과 대비되는 안영의 검소함. “食不重肉,妾不衣帛” — 두 가지 고기 반찬을 안 하고 첩에게 비단을 안 입힌 것은 고대 재상으로서 극단적인 검소다. “衡命” —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명령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고 적절히 조절했다. 이는 《논어》의 “用之則行,舍之則藏”과 같은 지혜다.
제6절: 안영의 두 가지 일화
섹션 제목: “제6절: 안영의 두 가지 일화”6-1. 월석보(越石父)를 구하다
섹션 제목: “6-1. 월석보(越石父)를 구하다”越石父贤,在縲绁中。晏子出,遭之涂,解左骖赎之,载归。弗谢,入闺。久之,越石父请绝。晏子戄然,摄衣冠谢曰:“婴虽不仁,免子於戹,何子求绝之速也?“石父曰:“不然。吾闻君子诎於不知己而信於知己者。方吾在縲绁中,彼不知我也。夫子既已感寤而赎我,是知己;知己而无礼,固不如在縲绁之中。“晏子於是延入为上客。
번역: 월석보(越石父)라는 현명한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 안자가 외출했다가 길에서 만나 자신의 수레 왼쪽 말을 풀어주고 그를 구해주어 수레에 태워 돌아왔다. 그런데 안자가 인사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래 후 월석보가 절교를 청했다. 안자가 놀라 의관을 정리하고 사과했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당신을 고난에서 구해주었는데, 어찌 이토록 빨리 절교를 청하십니까?”
석보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듣건대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는 곤혹스럽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당당하다고 합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는 그들이 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선생께서 이미 나를 알아보고 구해주셨으니, 이는 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알아주면서도 무례하다면, 차라리 감옥에 있는 것이 낫습니다.”
안자가 이에 그를 맞아들여 상객(최고 손님)으로 삼았다.
해설: 이 일화는 두 가지를 말한다: (1) 안영이 인재를 발굴하는 데 아낌없음(좌변 말까지 풀어줌), (2) 월석보의 자존심 — “알아주면서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차라리 몰라주는 게 낫다.” 이는 지식인의 자존심에 대한 고전적 선언이다.
6-2. 마부의 아내
섹션 제목: “6-2. 마부의 아내”晏子为齐相,出,其御之妻从门间而闚其夫。其夫为相御,拥大盖,策驷马,意气扬扬甚自得也。既而归,其妻请去。夫问其故。妻曰:“晏子长不满六尺,身相齐国,名显诸侯。今者妾观其出,志念深矣,常有以自下者。今子长八尺,乃为人仆御,然子之意自以为足,妾是以求去也。“其後夫自抑损。晏子怪而问之,御以实对。晏子荐以为大夫。
번역: 안자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외출할 때,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을 엿보았다. 그녀의 남편은 재상의 마부로서, 큰 수레 덮개를 받치고 네 마리 말을 몰며 의기가 양양하여 매우 뽐내고 있었다.
돌아와서 그의 아내가 떠나겠다고 청했다. 남편이 이유를 묻자, 아내가 말했다: “안자는 키가 6자도 안 되는데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제후들에게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뜻과 생각이 깊고 항상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자나 되면서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도 의기양양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 후 마부는 스스로를 낮추고 조심했다. 안자가 이상하게 여겨 묻자, 마부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안자는 그를 천거하여 대부로 삼았다.
해설: 이 일화는 반전이 두 번 있는 단편 소설이다. 첫 반전: 아내가 “너 자랑하는 꼴이 창피하다”고 이혼 요구. 두 번째 반전: 부끄러움을 느껴 개과천선한 마부를, 안자가 오히려 대부로 천거. 즉,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인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
제7절: 태사공왈 — 사마천의 평가
섹션 제목: “제7절: 태사공왈 — 사마천의 평가”太史公曰:吾读管氏牧民、山高、乘马、轻重、九府,及晏子春秋,详哉其言之也。既见其著书,欲观其行事,故次其传。至其书,世多有之,是以不论,论其轶事。
번역: 태사공이 말한다: 내가 관씨의 《목민》·《산고》·《승마》·《경중》·《구부》와 《안자춘추》를 읽었는데, 내용이 매우 상세했다. 그 책을 읽고 그들이 실제로 행한 일을 보고자 하여 이 열전을 지었다. 그 책들은 세상에 많이 퍼져 있으므로 다루지 않고, (책에 안 나오는) 그들의 일화(轶事)만 논한다.
해설: 이 구절은 사마천의 역사 서술 방법론을 직접 드러낸다. 그는 저작보다는 실제 행적을 중요시했고, 이미 알려진 내용(그들의 저서)은 생략하고 새롭게 알려진 일화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7-2. 관중에 대한 평가
섹션 제목: “7-2. 관중에 대한 평가”管仲世所谓贤臣,然孔子小之。岂以为周道衰微,桓公既贤,而不勉之至王,乃称霸哉?语曰”将顺其美,匡救其恶,故上下能哙亲也”。岂管仲之谓乎?
번역: 관중은 세상에서 이른바 현신(賢臣)이지만, 공자는 그를 작게 보았다(孔子小之). 아마도 주나라 왕도가 쇠퇴했는데, 환공이 현명했으면서도 (관중이) 왕도(王道)로 이끌지 않고 오직 패도(覇道)에 만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길 “그 아름다움을 따라 이루게 하고, 그 악을 바로잡아 고치게 하여, 위아래가 화목하게 한다”고 했으니, 어찌 관중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해설: 사마천은 공자의 “관중은 협소하다(管仲之器小哉)“는 평가를 인용하며 관중의 한계를 지적한다. 관중은 제나라를 패자(覇者)로 만드는 데 그쳤고, 주나라 왕실을 완전히 부흥시키는 왕도(王道)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역주: 이는 유가의 전형적인 패왕(覇王) 변별 — 왕도는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고, 패도는 힘으로 제후를 통솔하는 것이다. 관중은 패도에 머물렀다는 게 공자의 비판이다.]
7-3. 안영에 대한 평가 — 사마천의 개인적 고백
섹션 제목: “7-3. 안영에 대한 평가 — 사마천의 개인적 고백”方晏子伏庄公尸哭之,成礼然後去,岂所谓”见义不为无勇”者邪?至其谏说,犯君之颜,此所谓”进思尽忠,退思补过”者哉!假令晏子而在,余虽为之执鞭,所忻慕焉。
번역: 안자가 장공(莊公)의 시체에 엎드려 곡하고 예를 마친 뒤에 떠난 것은, 이른바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에 부끄럽지 않은 자였도다. 그의 간언과 설득은 임금의 안색을 범했으니, 이른바 “조정에 나가면 충성을 다하고 물러나면 허물을 보완한다”는 사람이었도다! 만약 안자가 지금 다시 살아 계신다면, 내가 그를 위해 말채찍을 잡는 마부가 되어도 기꺼이 그리하겠노라.
해설: 여기서 사마천은 개인적 감정을 폭로한다. “假令晏子而在,余虽为之执鞭,所忻慕焉(만약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내가 말채찍을 잡아도 좋겠다)” — 이는 사마천이 자기 시대의 어떤 인물에게도 하지 않은 극찬이다.
안영은 세 임금을 섬겼고, 검소하고 지혜로웠으며, 임금의 잘못을 간언했다. 사마천은 자신이 경험한 한무제(원래 섬기던 임금이 그를 거세형에 처함)와 대비되는 이상적 군신 관계를 안영에게서 본 것이다. 안영은 간언하다가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끝까지 지켜졌다. 사마천은 그게 부러웠다.
7-4. 송시(頌詩)
섹션 제목: “7-4. 송시(頌詩)”夷吾成霸,平仲称贤。 粟乃实廪,豆不掩肩。 转祸为福,危言获全。 孔赖左衽,史忻执鞭。 成礼而去,人望存焉。
번역: 이오(관중)는 패업을 이루고, 평중(안영)은 현명함으로 칭송받았다. (관중은) 창고를 곡식으로 가득 채웠고, (안영은) 고기 한 그릇도 겨우 놓았을 뿐이었다. 화를 복으로 돌리고, 간언으로 몸을 보전했다. 공자는 관중이 없었다면 오랑캐(左衽)가 되었을 것이라 했고, 사마천은 안영의 마부가 되길 기뻐했다. 예를 마치고 떠나니, 사람들의 희망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