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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열전 (刺客列傳)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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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팔십육(卷八十六) 열전제이십육(列傳第二十六)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 본질: 사마천은 자객열전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다섯 자객(조말·전제·예양·섭정·형가)은 성공과 실패가 엇갈렸지만, 사마천은 결과보다 “그들이 자신의 뜻을 속이지 않았다(其義或成或不成, 然其立意較然, 不欺其志)“는 순수한 결기를 찬양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는 동아시아 신뢰와 의리의 영원한 테제가 여기서 확립되었다.

1. 다섯 자객 심리 프로필 및 핵심 비교

섹션 제목: “1. 다섯 자객 심리 프로필 및 핵심 비교”
자객국적/시대대상수단/고사동기 / 명분결과 / 최후
조말 (曹沫)노나라 (춘추)제환공단도 협박 (가맹의 회)국가의 빼앗긴 영토 회복성공 & 생존: 3번 잃은 땅 모두 반환받음
전제 (專諸)오나라 (춘추)오왕 요생선 뱃속 비수 (어장검)공자 광(합려)의 신뢰와 정당한 왕위 계승성공 & 전사: 왕 암살 성공, 호위병에 피살
예양 (豫讓)진(晉)나라조양자옻칠로 문둥이 위장, 숯 삼켜 벙어리 됨지백(智伯)의 국사(國士) 대우에 대한 보은실패 & 자결: 조양자의 옷을 베고 자결
섭정 (聶政)위(衛)나라한나라 협루홀로 재상부에 난입하여 격살엄중자(嚴仲子)의 극진한 존중에 대한 보답성공 & 자결: 얼굴을 짓이기고 창자를 꺼내 자결
형가 (荊軻)제/연나라 (전국 말)진시황 (영정)지도 속에 비수를 숨김 (도궁비현)연나라 태자 단의 의뢰 및 천하 폭정 저지실패 & 피살: 거사 실패 후 두 다리 잘려 피살

2. 핵심 멘탈 모델 및 실존적 교훈

섹션 제목: “2. 핵심 멘탈 모델 및 실존적 교훈”

①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예양의 인정(Recognition) 욕구

섹션 제목: “①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예양의 인정(Recognition) 욕구”
  • 예양은 범씨와 중행씨 밑에 있을 때는 평범하게 살았으나, 지백이 자신을 ‘국사(國士, 나라의 으뜸 인재)‘로 대우해주자 지백을 위해 몸을 바침.
  • “범씨와 중행씨는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우했기에 나도 평범하게 보답했고, 지백은 나를 국사로 대우했기에 나도 국사로 보답한다.”
  • 교훈: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지기(知己)‘에 대한 헌신이다.

② 얼굴을 짓이긴 섭정과 누이 섭영 — 신념과 명예의 극한

섹션 제목: “② 얼굴을 짓이긴 섭정과 누이 섭영 — 신념과 명예의 극한”
  • 섭정은 거사 후 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얼굴가죽을 찢고 눈을 파내며 자결함.
  • 그러나 누이 섭영은 시신을 찾아와 통곡하며 “이 사람이 내 동생 섭정이다! 어찌 내 목숨을 아끼려 동생의 이름을 묻히게 하겠는가!”라며 곁에서 자결함.
  • 교훈: 약자들의 목숨을 건 용기와 명예는 권력자들의 사리사욕보다 역사 속에서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난다.

③ 불기기지(不欺其志) — 사마천의 인간 평가 기준

섹션 제목: “③ 불기기지(不欺其志) — 사마천의 인간 평가 기준”
  • 형가의 암살은 실패했고 진나라는 결국 천하를 통일했다.
  • 그러나 사마천은 “그 뜻이 명백하여 자신의 의지를 속이지 않았다”며 영원히 기억될 장엄한 비장미로 기록함.
  • 교훈: 결과주의의 잣대로만 세상을 평가할 수 없다. 과정의 진정성과 신념의 일관성이 역사의 영혼을 구성한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이 열전에는 다섯 자객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이유로 칼을 품었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된 정신이 흐른다: 자기를 알아준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 사마천은 이 다섯 이야기를 한데 묶어 ‘의(義)‘라는 개념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성공한 자객(조말), 성공했지만 죽은 자객(전제), 두 번 도전한 자객(예양),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얼굴을 훼손한 자객(섭정), 그리고 가장 유명하지만 실패한 자객(형가). 이들의 이야기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1절: 조말(曹沫) —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자객

섹션 제목: “제1절: 조말(曹沫) —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자객”

曹沫者,鲁人也,以勇力事鲁庄公。庄公好力。曹沫为鲁将,与齐战,三败北。鲁庄公惧,乃献遂邑之地以和。犹复以为将。

번역: 조말은 노나라 사람으로, 용기와 힘으로 노장공을 섬겼다. 장공은 힘을 좋아했다. 조말은 노나라 장수가 되어 제나라와 싸웠으나 세 번 패배했다. 노장공이 두려워하여 수읍(遂邑)의 땅을 바치고 화평을 청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말을 장수로 삼았다.

齐桓公许与鲁会于柯而盟。桓公与庄公既盟於坛上,曹沫执匕首劫齐桓公,桓公左右莫敢动,而问曰:“子将何欲?“曹沫曰:“齐强鲁弱,而大国侵鲁亦甚矣。今鲁城坏即压齐境,君其图之。“桓公乃许尽归鲁之侵地。既已言,曹沫投其匕首,下坛,北面就群臣之位,颜色不变,辞令如故。桓公怒,欲倍其约。管仲曰:“不可。夫贪小利以自快,弃信於诸侯,失天下之援,不如与之。“於是桓公乃遂割鲁侵地,曹沫三战所亡地尽复予鲁。

번역: 제환공이 노나라와 가(柯) 땅에서 회맹하기를 허락했다. 환공과 장공이 단 위에서 이미 맹세를 마쳤을 때, 조말이 비수를 잡아 제환공을 협박했다. 환공의 좌우 신하 중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환공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조말이 말했다: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하며, 대국이 노나라를 침략한 것이 심히 심합니다. 지금 노나라의 성이 무너지면 제나라의 경계에 닿을 지경이니, 폐하게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환공이 마침내 노나라의 빼앗긴 땅을 모두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이미 말을 마치자, 조말은 비수를 던지고 단 아래로 내려와 북쪽을 향해 신하들의 자리에 섰다.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말투도 여전했다. 환공이 노하여 약속을 어기려 하자, 관중이 말했다: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여 스스로 즐기려고 제후들에게 신의를 버리면 천하의 지원을 잃습니다. 차라리 주는 것이 낫습니다.” 이에 환공이 마침내 노나라 침략지를 돌려주었고, 조말이 세 번 싸워 잃은 땅이 모두 노나라에 돌아갔다.

其后百六十有七年而吴有专诸之事。

번역: 그로부터 167년 후에 오나라에 전제(专诸)의 일이 일어났다.

조말은 작은 나라 노(魯)의 장군으로, 강한 나라 제(齊)와의 전쟁에서 세 번 패했다. 그런데도 노나라의 군주는 조말을 계속 장군으로 썼다. 조말은 그 신뢰를 갚아야 했다. 전장에서 잃은 것을 되찾아야 했다.

그는 방법을 바꿨다. 전투가 아니라 협박으로 승부를 걸었다. 제나라 군주가 주변국 군주들과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조말은 비수로 그를 위협했다. 살해가 목적이 아니라, 전쟁에서 빼앗긴 땅을 돌려받기 위한 협박이었다.

제나라 군주가 약속하자 조말은 곧바로 칼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제나라 군주는 분노해 약속을 어기려 했다. 이때 그의 측근 관중(管仲)이 말렸다: “여기서 약속을 어기면 주변 모든 나라의 신뢰를 잃습니다.”

관중은 분노보다 국제적 신뢰라는 장기적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조언이 받아들여졌다. 빼앗겼던 땅이 돌아왔다. 조말은 살아서 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공개적 장면의 위력이다. 조말은 한적한 곳이 아니라 국제 회의장에서 행동했다. 약속을 어기면 다른 모든 나라가 알게 되는 구조가 오히려 협박을 성공시켰다.

둘째, 협박의 방식이다. 조말은 “죽이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다. 대신 “노나라가 완전히 무너지면 제나라가 그 변경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현실적 결과를 제시했다. 상대의 분노를 최소화하는 방식이었다.

셋째, 두 사람의 합작이다. 조말 혼자서 이룬 성공이 아니다. 협박자(조말)가 기회를 만들고, 측근(관중)이 실행을 도왔다. 협박이 성공하려면 상대방 측에도 냉정한 조언자가 있어야 한다는 역설이다.

이 이야기는 이어지는 네 편의 자객 이야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조말은 유일하게 살아 돌아갔고, 유일하게 피를 흘리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 성공 사례를 먼저 배치함으로써, 이후 전개될 비극의 깊이를 더한다.

🎬 스토리텔링 해석: 단 위의 협박

섹션 제목: “🎬 스토리텔링 해석: 단 위의 협박”

조말은 노나라 장수로 제나라와 세 번 싸워 모두 졌다. 패장이었다. 그런데도 노장공은 그의 장수 자리를 유지시켰다 — 조말은 그 신뢰를 갚아야 했다.

제나라 환공과 노장공이 가(柯) 땅에서 회맹을 열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외교적 만남이었다. 단 위에서 두 임금이 맹세를 마칠 무렵, 조말이 비수를 꺼내 환공 앞에 섰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 모두가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공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합니다. 지금 노나라의 성이 무너지면 제나라의 경계에 닿을 지경입니다. 폐하께서는 그 결과를 생각하소서.”

조말은 칼로 위협하는 대신 현실적 결과를 제시했다. 노나라가 붕괴하면 제나라가 변경의 방위와 행정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실용적 논리였다. 환공은 빼앗은 땅을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약속을 받아낸 직후, 조말은 비수를 내던지고 단 아래로 내려와 신하의 자리에 섰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했다.

환공은 분노했다. 속은 셈이었다. 약속을 어기려 했다. 그러나 재상 관중이 그를 막았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신의를 버리면 천하 제후의 지지를 잃습니다. 차라리 주는 것이 낫습니다.”

환공은 관중의 말을 들었다. 조말이 세 번 싸워 잃었던 땅이 모두 돌아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루어낸 성공이었다.


제2절: 전제(专诸) — 물고기 뱃속의 비수, 오왕 합려(闔闾)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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专诸者,吴堂邑人也。伍子胥之亡楚而如吴也,知专诸之能。伍子胥既见吴王僚,说以伐楚之利。吴公子光曰:“彼伍员父兄皆死於楚而员言伐楚,欲自为报私雠也,非能为吴。“吴王乃止。伍子胥知公子光之欲杀吴王僚,乃曰:“彼光将有内志,未可说以外事。“乃进专诸於公子光。

번역: 전제는 오나라 당읍(堂邑) 사람이다. 오자서(伍子胥)가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갈 때, 전제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 오자서가 오왕 료(僚)를 만나 초나라 정벌의 이익을 설득했다. 오나라 공자 광(光)이 말했다: “저 오원(伍员)은 부형이 초나라에서 죽었기에 초 정벌을 말하는 것이니, 자신의 사적 원한을 갚으려는 것일 뿐 오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왕이 그만두게 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오왕 료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저 공자 광은 안에 뜻이 있을 뿐, 외부 일로는 설득할 수 없다.” 하고는 전제를 공자 광에게 천거했다.

光之父曰吴王诸樊。诸樊弟三人:次曰馀祭,次曰夷眛,次曰季子札。诸樊知季子札贤而不立太子,以次传三弟,欲卒致国于季子札。诸樊既死,传馀祭。馀祭死,传夷眛。夷眛死,当传季子札;季子札逃不肯立,吴人乃立夷眛之子僚为王。公子光曰:“使以兄弟次邪,季子当立;必以子乎,则光真適嗣,当立。“故尝阴养谋臣以求立。

번역: 광의 아버지는 오왕 제번(諸樊)이었다. 제번에게는 세 동생이 있었다: 둘째 여제(餘祭), 셋째 이매(夷眛), 넷째 계자찰(季子札). 제번은 계자찰이 현명함을 알고 태자를 세우지 않고 차례로 세 동생에게 왕위를 전하여 결국 계자찰에게 나라를 주려 했다. 제번이 죽으니 여제에게 전했다. 여제가 죽으니 이매에게 전했다. 이매가 죽었을 때 계자찰에게 전해야 했으나 계자찰이 도망쳐 왕이 되기를 거부하자, 오나라 사람들은 이매의 아들 료(僚)를 왕으로 세웠다. 공자 광이 말했다: “만약 형제의 차례로 한다면 계자가 마땅히 서야 하고, 반드시 아들에게 전한다면 나 광이 진정한 적통 후계자로서 마땅히 서야 한다.” 그래서 은밀히 모사를 기르며 왕위를 노렸다.

光既得专诸,善客待之。九年而楚平王死。春,吴王僚欲因楚丧,使其二弟公子盖馀、属庸将兵围楚之灊;使延陵季子於晋,以观诸侯之变。楚发兵绝吴将盖馀、属庸路,吴兵不得还。於是公子光谓专诸曰:“此时不可失,不求何获!且光真王嗣,当立,季子虽来,不吾废也。“专诸曰:“王僚可杀也。母老子弱,而两弟将兵伐楚,楚绝其後。方今吴外困於楚,而内空无骨鲠之臣,是无如我何。“公子光顿首曰:“光之身,子之身也。”

번역: 광이 전제를 얻은 후 손님으로 잘 대우했다. 9년 후 초평왕이 죽었다. 봄에 오왕 료가 초나라의 상사를 틈타 그의 두 동생 공자 개여(蓋餘)와 촉용(屬庸)을 보내 병사로 초나라의 섬(灊)을 포위하게 하고, 연릉계자(延陵季子)를 진나라에 보내 제후들의 동향을 살피게 했다.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오나라 장수 개여와 촉용의 길을 끊었고, 오나라 군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에 공자 광이 전제에게 말했다: “이때를 놓칠 수 없다. 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얻겠는가! 또 나 광은 진정한 왕의 후계자로서 마땅히 서야 한다. 계자가 오더라도 나를 폐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제가 말했다: “왕 료는 죽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늙고 아들은 약하며, 두 동생은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정벌하느라 초나라가 그들의 후방을 끊었습니다. 지금 오나라는 밖으로는 초나라에 곤란을 겪고 안으로는 강직한 신하가 없으니,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공자 광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광의 몸이 곧 그대의 몸입니다.”

四月丙子,光伏甲士於窟室中,而具酒请王僚。王僚使兵陈自宫至光之家,门户阶陛左右,皆王僚之亲戚也。夹立侍,皆持长铍。酒既酣,公子光详为足疾,入窟室中,使专诸置匕首鱼炙之腹中而进之。既至王前,专诸擘鱼,因以匕首刺王僚,王僚立死。左右亦杀专诸,王人扰乱。公子光出其伏甲以攻王僚之徒,尽灭之,遂自立为王,是为阖闾。阖闾乃封专诸之子以为上卿。

번역: 4월 병자일, 공자 광이 지하실에 무사를 매복시키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오왕 료를 초청했다. 오왕 료는 궁중에서부터 광의 집까지 병사를 늘어세우고, 문과 계단 좌우에는 모두 왕 료의 친척들을 배치했다. 그들은 양쪽에 서서 모두 긴 창을 들고 있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공자 광은 거짓으로 발병이 난 체하여 지하실로 들어갔다. 전제가 비수를 구운 물고기 배 속에 넣어 올리게 했다. 왕 앞에 이르러 전제가 물고기를 쪼개고, 그 비수로 왕 료를 찔렀다. 왕 료는 즉사했다. 좌우 신하들도 전제를 죽였다. 왕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공자 광이 매복한 무사를 출동시켜 왕 료의 무리를 공격해 전멸시키고, 마침내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이가 곧 합려(闔閭)다. 합려는 전제의 아들을 상경(上卿)에 봉했다.

其后七十馀年而晋有豫让之事。

번역: 그로부터 70여 년 후에 진(晋)나라에 예양(豫让)의 일이 일어났다.

전제의 이야기는 조말과 완전히 다른 유형이다. 조말이 외교 회의장에서 나라 대 나라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전제는 한 나라 안의 왕위 다툼에 휘말린 암살자였다. 목표는 적국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왕이었다.

이 암살은 세 가지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첫째, 이중적 동기의 교차다. 전제는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야망을 가진 두 사람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지점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초(楚)나라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고 오(吳)나라로 망명해온 오자서(伍子胥)였다. 그는 오나라의 힘을 빌려 초나라에 복수하려 했다. 다른 한 사람은 현 국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오나라의 왕자 공자 광(公子光)이었다. 오자서는 광의 야망을 알아채고 전제를 그에게 소개했다.

둘째, 계승의 모호성이 암살의 명분을 제공했다. 오나라는 선왕이 동생들에게 차례로 왕위를 전한 뒤 최종적으로 막내동생에게 나라를 주려는 독특한 계승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막내동생이 왕위를 거절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 동생이 아닌 다른 왕자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 공자 광은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이 명분이 없었다면 광은 신하들을 설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 암살 자체는 완벽에 가까웠다. 전제의 계획은 정교했다 — 왕의 경계를 뚫기 위해 지하실에 병사를 숨기고, 술자리에서 거짓 발병으로 이탈했으며, 구운 물고기 배 속에 비수를 숨겼다. 왕은 친위병을 빼곡히 배치했지만, 생선을 쪼개는 순간의 허를 찔렸다. 암살 후 매복 병사가 왕의 세력을 전멸시킨 것까지 포함해, 실행은 완벽했다.

조말이 성공하고 살아 돌아간 반면, 전제는 성공했지만 죽었다. 그의 아들은 높은 벼슬을 받았지만, 전제 자신은 생선 쪼개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성공하되 죽음’이라는 자객열전의 첫 번째 비극적 패턴이 여기서 시작된다.

🎬 스토리텔링 해석: 생선 뱃속의 비수

섹션 제목: “🎬 스토리텔링 해석: 생선 뱃속의 비수”

전제는 오(吳)나라의 평범한 백성이었다. 그를 역사의 무대로 끌어올린 사람은 오자서(伍子胥)였다.

오자서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아버지와 형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오나라로 도망쳐왔다. 그는 오나라의 군사력을 빌려 초나라에 복수하려 했다. 오자서가 오나라 왕 료(僚)에게 초나라를 공격하자고 제안했을 때, 왕자 공자 광(公子光)이 반대했다: “오자서는 사적인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이용하려는 것뿐입니다.”

오자서는 이 말에서 광이 왕에게 충성하지 않음을 읽었다. 광은 현왕 료를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오자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제를 광에게 소개했다.

광이 전제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다: “오나라의 왕위는 본래 막내동弟弟에게 전해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내동생이 사양하고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이 왕이 되었다. 나야말로 정당한 후계자다.”

때가 왔다. 초나라의 군주가 죽자 오왕 료가 틈을 타 초나라를 공격하게 했고, 오나라 주력군이 초나라 땅에 묶여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광이 전제에게 말했다: “지금이다. 왕의 군대는 멀리 있고, 그의 곁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

4월, 광이 지하실에 병사를 숨기고 오왕 료를 술자리에 초대했다. 왕은 궁중에서부터 광의 집까지 병사를 줄줄이 세우고 문과 계단마다 친위 친척을 배치했다. 경계는 완벽해 보였다.

술이 오를 무렵, 광이 거짓으로 발병을 핑계삼아 자리를 떴다. 전제가 구운 생선 쟁반을 들고 왕 앞으로 나아갔다. 생선 배 속에는 비수가 들어 있었다. 왕 앞에 이르러, 전제가 생선을 쪼갰다. 순간 비수가 드러나 왕의 가슴을 꿰뚫었다. 왕은 즉사했다.

좌우 신하들이 전제를 죽였다. 그러나 광이 지하실의 병사를 풀어 왕의 세력을 전멸시켰다. 광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전제의 아들을 높은 벼슬에 봉했다.

전제는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한 국가의 통치자를 바꾸었다.


제3절: 예양(豫让) — 국사(國士)로 대접했기에 국사(國士)로 보답한다

섹션 제목: “제3절: 예양(豫让) — 국사(國士)로 대접했기에 국사(國士)로 보답한다”

豫让者,晋人也,故尝事范氏及中行氏,而无所知名。去而事智伯,智伯甚尊宠之。及智伯伐赵襄子,赵襄子与韩、魏合谋灭智伯,灭智伯之後而三分其地。赵襄子最怨智伯,漆其头以为饮器。豫让遁逃山中,曰:“嗟乎!士为知己者死,女为说己者容。今智伯知我,我必为报雠而死,以报智伯,则吾魂魄不愧矣。“乃变名姓为刑人,入宫涂厕,中挟匕首,欲以刺襄子。襄子如厕,心动,执问涂厕之刑人,则豫让,内持刀兵,曰:“欲为智伯报仇!“左右欲诛之。襄子曰:“彼义人也,吾谨避之耳。且智伯亡无後,而其臣欲为报仇,此天下之贤人也。“卒醳去之。

번역: 예양은 진(晋)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겼으나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그만두고 지백(智伯)을 섬겼는데, 지백이 그를 매우 존중하고 총애했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정벌하자, 조양자가 한(韩)·위(魏)와 합모하여 지백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조양자가 지백을 가장 원망하여 그 머리에 옻칠을 하여 술그릇으로 만들었다. 예양이 산속으로 도망쳐 탄식하며 말했다: “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준 이를 위해 단장한다. 지금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나는 반드시 복수하고 죽어 지백에게 보답할 것이다. 그래야 내 넋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에 이름과 성을 바꾸고 죄수로 가장해 궁중에 들어가 변소를 닦았다. 옷 속에 비수를 감추고 조양자를 찌르려 했다. 조양자가 변소에 들었다가 마음이 동하여 변소를 닦는 죄수를 잡아 심문하니, 곧 예양이었다. 옷 속에 칼을 품고 있었고 말했다: “지백을 위해 복수하려 한다!” 좌우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 조양자가 말했다: “그는 의인(義人)이다. 내가 삼가 피할 뿐이다. 또한 지백은 후사 없이 죽었는데, 그의 신하가 복수하려 하니 이는 천하의 현인이다.” 마침내 풀어주었다.

居顷之,豫让又漆身为厉,吞炭为哑,使形状不可知,行乞於市。其妻不识也。行见其友,其友识之,曰:“汝非豫让邪?“曰:“我是也。“其友为泣曰:“以子之才,委质而臣事襄子,襄子必近幸子。近幸子,乃为所欲,顾不易邪?何乃残身苦形,欲以求报襄子,不亦难乎!“豫让曰:“既已委质臣事人,而求杀之,是怀二心以事其君也。且吾所为者极难耳!然所以为此者,将以愧天下後世之为人臣怀二心以事其君者也。”

번역: 얼마 후 예양은 다시 온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자처럼 만들고 숯을 삼켜 목을 쉬게 하여 모양새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시장에서 구걸했는데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했다. 가다가 그의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알아보고 말했다: “너는 예양이 아니냐?” 예양이 말했다: “나는 예양이다.” 친구가 울며 말했다: “그대의 재주로 조양자를 섬긴다면 조양자가 반드시 그대를 가까이하고 총애할 것이다. 그러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몸을 상하게 하고 괴로운 모습으로 지내며 조양자에게 복수하려 하는가? 너무 어렵지 않은가!” 예양이 말했다: “이미 남을 섬기기로 하고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임금을 섬기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천하 후세에 두 마음을 품고 임금을 섬기는 신하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다.”

既去,顷之,襄子当出,豫让伏於所当过之桥下。襄子至桥,马惊,襄子曰:“此必是豫让也。“使人问之,果豫让也。於是襄子乃数豫让曰:“子不尝事范、中行氏乎?智伯尽灭之,而子不为报雠,而反委质臣於智伯。智伯亦已死矣,而子独何以为之报雠之深也?“豫让曰:“臣事范、中行氏,范、中行氏皆众人遇我,我故众人报之。至於智伯,国士遇我,我故国士报之。“襄子喟然叹息而泣曰:“嗟乎豫子!子之为智伯,名既成矣,而寡人赦子,亦已足矣。子其自为计,寡人不复释子!“使兵围之。豫让曰:“臣闻明主不掩人之美,而忠臣有死名之义。前君已宽赦臣,天下莫不称君之贤。今日之事,臣固伏诛,然原请君之衣而击之,焉以致报雠之意,则虽死不恨。非所敢望也,敢布腹心!“於是襄子大义之,乃使使持衣与豫让。豫让拔剑三跃而击之,曰:“吾可以下报智伯矣!“遂伏剑自杀。死之日,赵国志士闻之,皆为涕泣。

번역: 이미 떠난 후, 얼마 뒤 조양자가 나가려 할 때 예양이 그가 지나갈 다리 아래에 숨었다. 조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랐다. 조양자가 말했다: “이것은 반드시 예양이다.” 사람을 시켜 확인하니 과연 예양이었다. 이에 조양자가 예양을 꾸짖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느냐? 지백이 그들을 멸망시켰는데도 그대는 복수하지 않고, 도리어 지백을 섬겼다. 지백도 이미 죽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유독 그를 위해 이렇게 깊이 복수하려 하는가?” 예양이 말했다: “신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길 때, 그들은 모두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했기에 나도 보통 사람으로 보답했습니다.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했기에 나도 국사로 보답할 뿐입니다.” 조양자가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예양이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한 일로 그대의 명성은 이미 이루어졌다. 과인이 그대를 용서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그대 스스로 결정하라. 과인은 다시는 그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군사를 시켜 그를 포위했다. 예양이 말했다: “신은 듣건대 명군(明主)은 남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고, 충신(忠臣)은 죽음으로 명예를 완성하는 의리가 있다고 합니다. 전에 군께서 이미 신을 용서해 주셨으니 천하에 군의 어짐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오늘 일에 신은 마땅히 죽음을 받겠사오나, 원컨대 군의 옷을 주시어 그것을 찌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복수한 뜻을 이루고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에 조양자가 크게 의롭게 여겨 사람을 시켜 옷을 주었다. 예양이 칼을 빼어 세 번 뛰어오르며 그것을 찌르고 말했다: “이제야 지백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하고 마침내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 그가 죽은 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其后四十馀年而轵有聂政之事。

번역: 그로부터 40여 년 후에 즈(轵) 땅에 섭정(聂政)의 일이 일어났다.

예양의 이야기는 이 열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가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된 사례다.

조말이 나라의 신뢰에 반응하고 전제가 정치적 의뢰에 응했다면, 예양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움직인다. 그는 구체적인 관계의 질에 따라 행동했다.

예양은 진(晋)나라에서 세 명의 주인을 섬겼다. 처음 두 주인(범씨와 중항씨)은 그를 평범한 신하로만 대우했다. 예양도 평범하게 보답했다 — 충성했을 뿐, 목숨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주인인 지백(智伯)은 달랐다. 그는 예양을 ‘국사(國士)’ — 나라 전체를 걸 만한 인재 — 로 대우했다. 지백이 전쟁에서 죽고 조양자(趙襄子)가 그의 머리에 옻칠을 해 술그릇으로 만들자, 예양은 탄식했다: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나는 반드시 복수하고 죽어야 한다.”

그의 복수 시도는 세 번에 걸쳐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첫 번째, 변소를 닦는 죄수로 위장했다. 발각되었으나 조양자가 “의인이다”며 풀어주었다.

두 번째는 충격적이다. 예양은 온몸에 옻칠을 해 문둥병자처럼 만들고(漆身), 숯을 삼켜 목청을 태웠다(吞炭).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친구가 다른 길을 권했다: “조양자를 섬기는 척하다가 죽여라. 훨씬 쉽지 않은가?” 예양이 거절했다: “두 마음을 품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이렇게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후세에 두 마음을 품은 신하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 다리 아래에 숨었으나 조양자의 말이 놀라서 또 발각되었다. 조양자가 물었다: “너는 범씨와 중항씨도 섬겼다. 그들이 지백에게 망했을 때는 복수하지 않았다. 왜 유독 지백만을 위해 이토록 애쓰느냐?” 예양이 대답했다: “범씨와 중항씨는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으로 보답했습니다. 지백은 저를 국사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국사로 보답할 뿐입니다.”

이 문장이 예양의 윤리를 압축한다. 충성의 정도는 충성받는 자의 대우에 비례한다는 것, 의리는 절대적이 아니라 관계적이라는 발상이다.

조양자는 눈물을 흘렸지만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었다. 예양은 마지막 소원을 청했다: “군의 옷을 주시어 그것을 찌르게 하소서. 그래야 복수한 뜻을 이루고 죽겠나이다.” 옷을 받은 예양은 칼을 빼어 세 번 뛰어오르며 옷깃을 찔렀다. “이제야 지백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그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여기에 이 열전의 아이러니가 있다. 예양은 세 번 모두 실패했다. 그는 단 한 사람도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남긴 감동은 다른 어떤 자객보다 컸다. 실패한 자객이 가장 큰 이름을 남긴 것이다. 사마천은 이를 통해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 너머에 있는 무엇 — ‘자기를 속이지 않는 마음(不欺其志)’ — 의 가치를 보여준다.

🎬 스토리텔링 해석: 국사(國士)의 보답

섹션 제목: “🎬 스토리텔링 해석: 국사(國士)의 보답”

예양은 두 귀족 가문을 섬겼으나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다 지백(智伯)을 만났다. 진(晋)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었다. 지백은 예양을 보통 신하가 아닌 ‘국사(國士)’ — 나라를 걸고 믿을 만한 인재 — 로 대우했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와의 전쟁에서 패해 죽임을 당했다.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를 베어 술그릇으로 만들었다. 산속으로 숨은 예양은 이 말에 탄식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나는 반드시 복수하고 죽어야 한다.”

변소를 닦는 죄수로 위장한 첫 번째 시도는 발각되었다. 조양자는 오히려 그를 의인(義人)이라며 풀어주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예양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온몸에 옻칠을 해 피부를 썩히고, 숯을 삼켜 목청을 태웠다. 아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신한 뒤 시장에서 구걸하며 기회를 노렸다. 친구가 더 쉬운 길을 권했다: “조양자를 섬기는 척하다가 죽여라.” 예양이 거절했다: “두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이렇게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천하 후세의 두 마음 품은 신하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 시도에서 발각된 예양이 조양자 앞에 끌려나왔다. 조양자가 물었다: “너는 범씨와 중항씨도 섬겼다. 그들이 지백에게 망했을 때는 복수하지 않았다. 왜 지백만을 위해 이토록 애쓰느냐?”

예양의 대답이 이 열전의 핵심이다: “범씨와 중항씨는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으로 보답했습니다. 지백은 저를 국사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국사로 보답할 뿐입니다.”

조양자는 눈물을 흘렸지만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었다. 예양이 한 가지를 청했다: “군의 옷을 찌르게 하소서. 그래야 복수한 뜻을 이루고 죽겠나이다.” 조양자가 옷을 보냈다. 예양은 칼을 빼어 세 번 뛰어오르며 옷깃을 찔렀다. “이제야 지백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그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실패한 자객의 죽음이 가장 큰 감동을 남겼다.


제4절: 섭정(聂政) — 얼굴을 훼손한 자객, 누나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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聂政者,轵深井里人也。杀人避仇,与母、姊如齐,以屠为事。

번역: 섭정은 즈(轵) 땅 심정리(深井里)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고 원한을 피해 어머니, 누나와 함께 제나라로 가서 백정 일을 했다.

久之,濮阳严仲子事韩哀侯,与韩相侠累有卻。严仲子恐诛,亡去,游求人可以报侠累者。至齐,齐人或言聂政勇敢士也,避仇隐於屠者之间。严仲子至门请,数反,然後具酒自暢聂政母前。酒酣,严仲子奉黄金百溢,前为聂政母寿。聂政惊怪其厚,固谢严仲子。严仲子固进,而聂政谢曰:“臣幸有老母,家贫,客游以为狗屠,可以旦夕得甘毳以养亲。亲供养备,不敢当仲子之赐。“严仲子辟人,因为聂政言曰:“臣有仇,而行游诸侯众矣;然至齐,窃闻足下义甚高,故进百金者,将用为大人粗粝之费,得以交足下之驩,岂敢以有求望邪!“聂政曰:“臣所以降志辱身居市井屠者,徒幸以养老母;老母在,政身未敢以许人也。“严仲子固让,聂政竟不肯受也。然严仲子卒备宾主之礼而去。

번역: 오랜 시간이 지났다. 복양(濮阳)의 엄중자(严仲子)가 한애후(韩哀侯)를 섬겼는데, 한나라 재상 협루(侠累)와 사이가 틀어졌다. 엄중자는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도망쳐 다니며 협루에게 복수할 사람을 구했다. 제나라에 이르러, 어떤 사람이 섭정은 용감한 선비인데 원한을 피해 백정들 사이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엄중자가 그의 집에 가서 청했고 여러 번 왕복한 후, 술자리를 마련해 섭정의 어머니 앞에서 직접 술을 따랐다. 술이 거나해지자 엄중자가 황금 백 일(溢)을 내어 섭정의 어머니 장수를 축원했다. 섭정이 그 후한 대접에 놀라고 이상히 여겨 굳이 사양했다. 엄중자가 억지로 권했지만 섭정이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시고 가난하여 개백정으로 떠돌며 조석으로 맛있는 것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합니다. 어머니 봉양이 넉넉하오니 감히 중자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엄중자가 사람을 물리고 섭정에게 말했다: “신에게 원한이 있어 제후들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러나 제나라에 이르러 듣건대 족하의 의(義)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백금을 드리는 것은 장모님께 조촐한 선물을 올려 족하와 교분을 맺고자 함이지, 감히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섭정이 말했다: “신이 뜻을 낮추고 몸을 더럽혀 시장 백정이 된 것은 다만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정(政)은 제 몸을 남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엄중자가 굳이 양보했으나 섭정이 끝내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엄중자는 마침내 빈주의 예를 갖추고 떠났다.

久之,聂政母死。既已葬,除服,聂政曰:“嗟乎!政乃市井之人,鼓刀以屠;而严仲子乃诸侯之卿相也,不远千里,枉车骑而交臣。臣之所以待之,至浅鲜矣,未有大功可以称者,而严仲子奉百金为亲寿,我虽不受,然是者徒深知政也。夫贤者以感忿睚眦之意而亲信穷僻之人,而政独安得嘿然而已乎!且前日要政,政徒以老母;老母今以天年终,政将为知己者用。“乃遂西至濮阳,见严仲子曰:“前日所以不许仲子者,徒以亲在;今不幸而母以天年终。仲子所欲报仇者为谁?请得从事焉!“严仲子具告曰:“臣之仇韩相侠累,侠累又韩君之季父也,宗族盛多,居处兵卫甚设,臣欲使人刺之,终莫能就。今足下幸而不弃,请益其车骑壮士可为足下辅翼者。“聂政曰:“韩之与卫,相去中间不甚远,今杀人之相,相又国君之亲,此其势不可以多人,多人不能无生得失,生得失则语泄,语泄是韩举国而与仲子为雠,岂不殆哉!“遂谢车骑人徒,聂政乃辞独行。

번역: 오랜 시간이 지나 섭정의 어머니가 죽었다. 장례를 마치고 상복을 벗자 섭정이 말했다: “아! 나는 시장의 백정일 뿐인데, 엄중자는 제후의 경상(卿相)으로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수레를 타고 와서 나와 사귀었다. 내가 그에게 대접한 것은 지극히 보잘것없었다. 그럼에도 백금을 어머니 장수에 바쳤으니, 비록 받지는 않았지만 이는 깊이 나를 알아준 것이다. 현명한 이가 사소한 감정으로 가난하고 외진 사람을 친히 믿어주었는데, 내가 어찌 묵묵히 있을 수 있겠는가! 지난번 청탁을 거절한 것은 단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지금 어머니께서 천수를 다 하셨으니, 나는 자기를 알아준 이를 위해 쓰일 것이다.” 이에 서쪽 복양으로 가서 엄중자를 만나 말했다: “지난번答应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중자가 복수하려는 자가 누구입니까? 청컨대 일을 맡기소서!” 엄중자가 자세히 말했다: “나의 원수는 한나라 재상 협루다. 협루는 또한 한나라 군주의 작은아버지로 종족이 번성하고 거처에 병사와 호위가 매우 많다. 내가 사람을 시켜 찌르려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 지금 족하가 다행히 저를 버리지 않으셨으니, 수레와 기병, 장사를 더하여 족하를 돕도록 하겠다.” 섭정이 말했다: “한나라와 위나라 사이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지금 사람의 재상을 죽이려 하는데, 재상은 또한 국군의 친척입니다. 이 형세로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실수와 이탈이 없을 수 없고, 실수와 이탈이 생기면 말이 새고, 말이 새면 한나라는 온 나라가 중자와 원수가 될 것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이에 수레와 기병, 수행원을 사양하고 섭정은 홀로 떠났다.

杖剑至韩,韩相侠累方坐府上,持兵戟而卫侍者甚卫。聂政直入,上阶刺杀侠累,左右大乱。聂政大呼,所击杀者数十人,因自皮面决眼,自屠出肠,遂以死。

번역: 검을 짚고 한나라에 도착했다. 한나라 재상 협루가 마침 부중에 앉아 있었는데, 병기와 창을 든 호위병이 매우 많았다. 섭정이 곧바로 들어가 섬돌 위로 올라가 협루를 찔러 죽였다. 좌우가 크게 혼란에 빠졌다. 섭정이 크게 외치며 수십 명을 죽이고, 스스로 얼굴의 피부를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어 죽었다.

韩取聂政尸暴於市,购问莫知谁子。於是韩县之,有能言杀相侠累者予千金。久之莫知也。

번역: 한나라가 섭정의 시체를 시장에 내걸고 누구인지 물었으나 아는 자가 없었다. 이에 한나라가 현상했다: 재상 협루를 죽인 자를 말하는 자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알지 못했다.

政姊荣闻人有刺杀韩相者,贼不得,国不知其名姓,暴其尸而县之千金,乃於邑曰:“其是吾弟与?嗟乎,严仲子知吾弟!“立起,如韩,之市,而死者果政也,伏尸哭极哀,曰:“是轵深井里所谓聂政者也。“市行者诸众人皆曰:“此人暴虐吾国相,王县购其名姓千金,夫人不闻与?何敢来识之也?“荣应之曰:“闻之。然政所以蒙污辱自弃於市贩之间者,为老母幸无恙,妾未嫁也。亲既以天年下世,妾已嫁夫,严仲子乃察举吾弟困污之中而交之,泽厚矣,可柰何!士固为知己者死,今乃以妾尚在之故,重自刑以绝从,妾其柰何畏殁身之诛,终灭贤弟之名!“大惊韩市人。乃大呼天者三,卒於邑悲哀而死政之旁。

번역: 섭정의 누나 섭영(荣)이 사람이 한나라 재상을 암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범인을 잡지 못했고 나라에서도 그 이름을 몰라 시체를 내걸고 천금을 걸었다고 했다. 이에 목메어 말했다: “그것은 내 아우일 것이다. 아, 엄중자가 내 아우를 알아보았구나!” 즉시 일어나 한나라로 가 시장에 이르렀다. 죽은 자가 과연 섭정이었다. 시체에 엎드려 울며 매우 슬프게 말했다: “이는 즈 땅 심정리의 섭정입니다.” 시장의 행인들이 모두 말했다: “이 사람이 우리 재상을 죽였는데 왕께서 천금을 걸었소. 부인은 듣지 못했소? 어찌 감히 와서 알아보시오?” 섭영이 대답했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우가 몸을 더럽혀 시장 백정이 된 것은 늙은 어머니가 무사하시고 내가 아직 시집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이미 돌아가시고 나도 이미 시집갔습니다. 엄중자가 아우를 곤궁하고 더러운 속에서 찾아내 사귀었으니 은혜가 두터웠습니다. 선비는 마땅히 자기를 알아준 이를 위해 죽는 법입니다. 그런데 아우가 아직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스스로 형벌을 가해 흔적을 없앤 것입니다. 내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아우의 이름을 영원히 묻어두겠습니까!” 한나라 시장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세 번 하늘을 부르짖고 마침내 목메어 울며 섭정의 곁에서 죽었다.

晋、楚、齐、卫闻之,皆曰:“非独政能也,乃其姊亦烈女也。乡使政诚知其姊无濡忍之志,不重暴骸之难,必绝险千里以列其名,姊弟俱僇於韩市者,亦未必敢以身许严仲子也。严仲子亦可谓知人能得士矣!”

번역: 진(晋)·초·제·위(卫)에서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말했다: “섭정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누나 또한 열녀(烈女)다. 만약 섭정이 누나에게 참고 견디는 뜻이 없고 시체가 버려지는 어려움을 개의치 않고 반드시 험한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이름을 드러낼 것을 알았다면, 아우와 누나가 함께 한나라 시장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았다면, 감히 몸을 엄중자에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중자 또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선비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할 만하다.”

其后二百二十馀年秦有荆轲之事。

번역: 그로부터 220여 년 후에 진(秦)나라에 형가(荆轲)의 일이 일어났다.

섭정은 이 열전에서 가장 인간적인 자객이다. 다른 자객들이 비교적 단순한 동기(의리, 정치적 의뢰)로 움직인 반면, 섭정의 선택에는 두 가지 핵심 가치 — 효(孝)와 의(義) — 가 시간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효가 의보다 먼저다. 한나라의 고위 관리 엄중자(严仲子)가 재상 협루(侠累)에게 복수하려고 백정 섭정을 찾아왔을 때, 섭정은 거절했다. 이유는 단 하나: 어머니가 살아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계신 동안 제 몸을 남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엄중자는 신분이 경상(卿相)이고 섭정은 개백정이었다. 그럼에도 엄중자가 천 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황금을 어머니 생신에 바친 것은, 섭정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섭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 상복을 벗자 그는 엄중자를 찾아갔다: “어머니께서 천수를 다 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자기를 알아준 이를 위해 쓰일 것입니다.” 효의 의무가 다 끝난 후에야 의의 의무가 시작된 것이다.

암살의 실행은 완벽했다. 엄중자가 병사와 수행원을 붙여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섭정은 거절했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새고, 말이 새면 나라 전체가 원수가 됩니다.” 그는 홀로 검 하나만 들고 한나라 재상의 집으로 들어갔다. 호위병이 빽빽한 가운데, 곧바로 섬돌 위로 올라가 협루를 찔러 죽이고 수십 명을 더 해치웠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암살 직후 섭정은 스스로 얼굴의 피부를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냈다. 자신의 정체를 지워 엄중자와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해(自害)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소거(自己消去)였다.

그러나 이 계산은 빗나갔다. 누나 섭영(聂荣)이 시체 확인을 자청하고 나섰다. 행인들이 “죽을 일이다”고 만류했지만, 섭영이 말했다: “아우가 얼굴을 훼손한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아우의 이름을 영원히 묻어두겠는가!” 세 번 하늘을 부르짖고 섭정의 곁에서 죽었다.

아우는 입을 막기 위해 몸을 지웠고, 누나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 두 형제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리를 완성한 셈이다. 이 소문이 사방에 퍼져 사람들이 말했다: “섭정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누나 또한 열렬했다. 엄중자 또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 스토리텔링 해석: 얼굴을 지운 자객

섹션 제목: “🎬 스토리텔링 해석: 얼굴을 지운 자객”

섭정은 사람을 죽이고 원한을 피해 어머니와 누나를 데리고 제나라로 도망쳐 백정이 되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엄중자(严仲子) — 한나라의 고위 관리였다. 그의 원수는 한나라 재상 협루(侠累)였다. 엄중자는 황금 백 일을 내어 섭정의 어머니 장수를 축원했다. 섭정이 사양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제 몸을 남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상복을 벗자 섭정이 엄중자를 찾아갔다: “지난번 거절한 것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 나는 자기를 알아준 이를 위해 쓰일 것입니다.”

엄중자가 병사와 수레를 더해주겠다고 했다. 섭정이 말렸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새고, 말이 새면 한나라 전체가 원수가 됩니다.” 홀로 검을 짚고 떠났다.

한나라 재상 협루의 집에 도착했다. 호위병이 빽빽했다. 섭정은 곧바로 섬돌 위로 올라가 협루를 찔러 죽이고 수십 명을 더 해치웠다. 그리고 스스로 얼굴의 피부를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죽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나라는 시체를 시장에 내걸고 천금을 걸었다. 누나 섭영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시체를 확인했다. 행인들이 “목숨이 위태롭다”고 만류했다. 섭영이 말했다: “아우가 얼굴을 훼손한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아우의 이름을 영원히 묻어두겠는가!” 세 번 하늘을 부르짖고 섭정의 곁에서 죽었다.

이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 사람들이 말했다: “섭정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누나 또한 열렬했다. 엄중자 또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제5절: 형가(荆轲) — 지도가 끝나고 비수가 드러나다

섹션 제목: “제5절: 형가(荆轲) — 지도가 끝나고 비수가 드러나다”

荆轲者,卫人也。其先乃齐人,徙於卫,卫人谓之庆卿。而之燕,燕人谓之荆卿。 荆卿好读书击剑,以术说卫元君,卫元君不用。其後秦伐魏,置东郡,徙卫元君之支属於野王。

번역: 형가는 위나라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제나라 사람으로 위나라로 이주했으며, 위나라 사람들은 그를 경경(庆卿)이라 불렀다. 연나라에 가자 연나라 사람들은 형경(荆卿)이라 불렀다. 형경은 글 읽기와 검술을 좋아했고, 위원군(卫元君)에게 자신의 학술을 유세했으나 위원군이 등용하지 않았다. 그 후 진나라가 위나라를 정벌하고 동군(东郡)을 설치하여 위원군의 지족(支属)들을 야왕(野王)으로 옮겼다.

荆轲尝游过榆次,与盖聂论剑,盖聂怒而目之。荆轲出,人或言复召荆卿。盖聂曰:“曩者吾与论剑有不称者,吾目之;试往,是宜去,不敢留。“使使往之主人,荆卿则已驾而去榆次矣。使者还报,盖聂曰:“固去也,吾曩者目摄之!” 荆轲游於邯郸,鲁句践与荆轲博,争道,鲁句践怒而叱之,荆轲嘿而逃去,遂不复会。 荆轲既至燕,爱燕之狗屠及善击筑者高渐离。荆轲嗜酒,日与狗屠及高渐离饮於燕市,酒酣以往,高渐离击筑,荆轲和而歌於市中,相乐也,已而相泣,旁若无人者。荆轲虽游於酒人乎,然其为人沈深好书;其所游诸侯,尽与其贤豪长者相结。其之燕,燕之处士田光先生亦善待之,知其非庸人也。

번역: 형가가 일찍이 유차(榆次)를 지나다가 개섭(盖聂)과 검술을 논했다. 개섭이 노하여 눈을 부라리자 형가가 나갔다. 어떤 사람이 개섭에게 형경을 다시 부르라고 말했다. 개섭이 말했다: “아까 내가 그와 검술을 논하는데 맞지 않는 점이 있어 내가 눈을 부라렸다. 가서 보아라, 아마 떠났을 것이니 감히 머물지 못할 것이다.” 사람을 시켜 주인에게 가보니, 형경은 이미 수레를 타고 유차를 떠난 후였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개섭이 말했다: “당연히 떠났을 것이다. 내가 눈으로 이미 제압했기 때문이다!” 형가가 한단(邯郸)에서 노구천(鲁句践)과 격구(博)를 하다가 길을 다투게 되었다. 노구천이 노하여 꾸짖자 형가는 잠자코 도망가 버렸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형가가 연나라에 이르러, 연나라의 개백정과 축(筑)을 잘 타는 고점리(高渐离)를 좋아했다. 형가는 술을 즐겨 날마다 개백정 및 고점리와 연나라 시장에서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해지면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맞춰 시장에서 노래했다. 함께 즐기다가는 서로 울기도 했는데, 곁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형가가 비록 술꾼들과 어울렸지만, 그의 사람됨은 깊고 침착하며 글 읽기를 좋아했다. 그가 두루 다닌 제후국들마다 그곳의 현명하고 호탁한 덕망 있는 이들과 모두 사귀었다. 연나라에 이르러 연나라의 은사 전광(田光) 선생도 그를 잘 대우하며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居顷之,会燕太子丹质秦亡归燕。燕太子丹者,故尝质於赵,而秦王政生於赵,其少时与丹驩。及政立为秦王,而丹质於秦。秦王之遇燕太子丹不善,故丹怨而亡归。归而求为报秦王者,国小,力不能。其後秦日出兵山东以伐齐、楚、三晋,稍蚕食诸侯,且至於燕,燕君臣皆恐祸之至。太子丹患之,问其傅鞠武。武对曰:“秦地遍天下,威胁韩、魏、赵氏,北有甘泉、谷口之固,南有泾、渭之沃,擅巴、汉之饶,右陇、蜀之山,左关、殽之险,民众而士厉,兵革有馀。意有所出,则长城之南,易水以北,未有所定也。柰何以见陵之怨,欲批其逆鳞哉!“丹曰:“然则何由?“对曰:“请入图之。”

번역: 얼마 후 연나라 태자 단(丹)이 진나라에서 인질로 있다가 도망쳐 연나라로 돌아왔다. 태자 단은 일찍이 조나라에서 인질로 있었는데, 진왕 정(政)이 조나라에서 태어나 어릴 적 단과 친했다. 정이 진왕이 되고 단이 진나라에서 인질로 있을 때 진왕의 대우가 좋지 않았다. 이에 단이 원망하여 도망쳐 돌아왔다. 돌아와서 진왕에게 복수할 방도를 구했으나 나라가 작고 힘이 부족했다. 그 후 진나라가 날마다 산동(山东)에서 출병하여 제·초·삼진(三晋)을 정벌하며 점차 제후들을 잠식해 마침내 연나라에까지 미치자, 연나라 군신이 모두 화가 닥칠까 두려워했다. 태자 단이 이를 근심하여 그의 스승 국무(鞠武)에게 물었다. 국무가 대답했다: “진나라의 땅이 천하에 가득하고, 위협이 한·위·조에 미치고 있으며, 북쪽으로 감천(甘泉)·곡구(谷口)의 견고함이 있고, 남쪽으로 경수(泾)·위수(渭)의 비옥함이 있으며, 파(巴)·한(汉)의 풍요를 독점하고, 오른쪽으로 농(陇)·촉(蜀)의 산이 있고, 왼쪽으로 관(关)·효(殽)의 험함이 있습니다. 백성은 많고 병사는 정예하며 무기가 충분합니다. 뜻을 두는 바가 있으면 장성 이남, 역수 이북도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모욕당한 원한으로 그 역린(逆鳞)을 건드리려 하십니까!” 단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대답했다: “자세히 계획하게 해주십시오.”

居有间,秦将樊於期得罪於秦王,亡之燕,太子受而舍之。鞠武谏曰:“不可。夫以秦王之暴而积怒於燕,足为寒心,又况闻樊将军之所在乎?是谓’委肉当饿虎之蹊’也,祸必不振矣!虽有管、晏,不能为之谋也。原太子疾遣樊将军入匈奴以灭口。请西约三晋,南连齐、楚,北购於单于,其後乃可图也。“太子曰:“太傅之计,旷日弥久,心惛然,恐不能须臾。且非独於此也,夫樊将军穷困於天下,归身於丹,丹终不以迫於彊秦而弃所哀怜之交,置之匈奴,是固丹命卒之时也。原太傅更虑之。“鞠武曰:“夫行危欲求安,造祸而求福,计浅而怨深,连结一人之後交,不顾国家之大害,此所谓’资怨而助祸’矣。夫以鸿毛燎於炉炭之上,必无事矣。且以雕鸷之秦,行怨暴之怒,岂足道哉!燕有田光先生,其为人智深而勇沈,可与谋。“太子曰:“原因太傅而得交於田先生,可乎?“鞠武曰:“敬诺。“出见田先生,道”太子原图国事於先生也”。田光曰:“敬奉教。“乃造焉。

번역: 얼마 후 진나라 장수 번장기(樊於期)가 진왕의 노여움을 사 연나라로 망명해왔다. 태자가 그를 받아들여 머물게 했다. 국무가 간했다: “안 됩니다. 진왕의 포악함으로 진노가 연나라에 쌓였는데, 더욱이 번 장군이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는 ‘굶주린 호랑이 앞길에 고기를 놓는 것’입니다. 화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관중(管仲)·안영(晏婴)이 있다 해도 계책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태자께서는 급히 번 장군을 흉노(匈奴)로 보내 입을 막으소서. 청컨대 서쪽으로 삼진과 약속하고, 남쪽으로 제·초와 연합하며, 북쪽으로 선우(单于)와 화친하소서. 그런 후에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태부의 계책은 날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려 마음이 아득합니다. 잠시도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번 장군은 천하에 곤궁하여 내게 몸을 의탁했는데, 내가 어찌 진나라가 두렵다고 가엾이 여기는 벗을 버리고 흉노에 보내겠습니까? 이는 나의 운명이 다하는 때일 뿐입니다. 원컨대 태부께서는 다른 계책을 생각해 주십시오.” 국무가 말했다: “위험한 행동으로 평안을 구하고 화를 내면서 복을 구하며 계획은 얕고 원한은 깊어, 한 사람의 뒤늦은 사귐을 위해 국가의 큰 해를 돌보지 않는 것, 이것이 이른바 ‘원한을 돕고 화를 키우는 것’입니다. 털을 화로 숯불 위에 태우는 격이니 아무 일도 없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매처럼 사나운 진나라가 원한과 포악한 노여움을 행하는 것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연나라에 전광(田光) 선생이 있습니다. 그의 사람됨은 지혜가 깊고 용기가 침착하니 함께 도모할 수 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원컨대 태부를 통해 전 선생과 사귀게 해주십시오.” 국무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가서 전 선생을 만나 “태자께서 선생과 국사를 도모하려 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전광이 말했다: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이에 태자를 찾아갔다.

太子逢迎,卻行为导,跪而蔽席。田光坐定,左右无人,太子避席而请曰:“燕秦不两立,原先生留意也。“田光曰:“臣闻骐骥盛壮之时,一日而驰千里;至其衰老,驽马先之。今太子闻光盛壮之时,不知臣精已消亡矣。虽然,光不敢以图国事,所善荆卿可使也。“太子曰:“原因先生得结交於荆卿,可乎?“田光曰:“敬诺。“即起,趋出。太子送至门,戒曰:“丹所报,先生所言者,国之大事也,原先生勿泄也!“田光俯而笑曰:“诺。“偻行见荆卿,曰:“光与子相善,燕国莫不知。今太子闻光壮盛之时,不知吾形已不逮也,幸而教之曰’燕秦不两立,原先生留意也’。光窃不自外,言足下於太子也,原足下过太子於宫。“荆轲曰:“谨奉教。“田光曰:“吾闻之,长者为行,不使人疑之。今太子告光曰:‘所言者,国之大事也,原先生勿泄’,是太子疑光也。夫为行而使人疑之,非节侠也。“欲自杀以激荆卿,曰:“原足下急过太子,言光已死,明不言也。“因遂自刎而死。

번역: 태자가 맞이하여 물러서며 길을 안내하고, 무릎 꿇고 자리를 쓸었다. 전광이 자리를 잡고 좌우에 사람이 없자,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청했다: “연나라와 진나라는 함께 설 수 없습니다. 원컨대 선생께서 유념하소서.” 전광이 말했다: “신은 듣건대 천리마(骐骥)가 한창 젊을 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지만 늙고 쇠하면 둔한 말도 앞선다고 합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제가 젊고 한창일 때를 들으셨지만, 신의 정력이 이미 다했음을 모르십니다. 그렇지만 감히 국사를 도모할 수 없사오니, 제가 잘 아는 형경(荆卿)을 부리실 수 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원컨대 선생을 통해 형경과 사귀게 해주십시오.” 전광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즉시 일어나 빠르게 나갔다. 태자가 문까지 전송하며 당부했다: “단(丹)이 말씀드린 것과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오니, 원컨대 선생께서는 누설하지 마소서!” 전광이 고개 숙여 웃으며 말했다: “그러겠습니다.” 구부정하게 걸어 형경을 만나 말했다: “광(光)이 그대와 서로 좋게 지내는 것을 연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소. 지금 태자께서 내가 젊고 한창일 때를 들으셨지만, 내 몸이 이미 쇠했음을 모르시고, ‘연나라와 진나라는 함께 설 수 없으니 유념해 달라’고 말씀하셨소. 내가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그대를 태자께 말씀드렸소. 원컨대 그대는 궁중으로 태자를 찾아가시오.” 형가가 말했다: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전광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장자(长者)의 행실은 남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소. 지금 태자가 내게 ‘말씀드린 것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니 누설하지 마소서’라고 한 것은 나를 의심하는 것이오. 행실로 남을 의심하게 하는 것은 절협(节侠)이 아니오.” 자살하여 형가를 격려하려 하며 말했다: “원컨대 그대는 급히 태자를 찾아가서, 광은 이미 죽었으니 말하지 않았음을 밝힌다고 전하시오.” 이에 마침내 스스로 목을 그어 죽었다.

荆轲遂见太子,言田光已死,致光之言。太子再拜而跪,膝行流涕,有顷而后言曰:“丹所以诫田先生毋言者,欲以成大事之谋也。今田先生以死明不言,岂丹之心哉!“荆轲坐定,太子避席顿首曰:“田先生不知丹之不肖,使得至前,敢有所道,此天之所以哀燕而不弃其孤也。今秦有贪利之心,而欲不可足也。非尽天下之地,臣海内之王者,其意不厌。今秦已虏韩王,尽纳其地。又举兵南伐楚,北临赵;王翦将数十万之众距漳、鄴,而李信出太原、云中。赵不能支秦,必入臣,入臣则祸至燕。燕小弱,数困於兵,今计举国不足以当秦。诸侯服秦,莫敢合从。丹之私计愚,以为诚得天下之勇士使於秦,闚以重利;秦王贪,其势必得所原矣。诚得劫秦王,使悉反诸侯侵地,若曹沫之与齐桓公,则大善矣;则不可,因而刺杀之。彼秦大将擅兵於外而内有乱,则君臣相疑,以其间诸侯得合从,其破秦必矣。此丹之上原,而不知所委命,唯荆卿留意焉。“久之,荆轲曰:“此国之大事也,臣驽下,恐不足任使。“太子前顿首,固请毋让,然後许诺。於是尊荆卿为上卿,舍上舍。太子日造门下,供太牢具,异物间进,车骑美女恣荆轲所欲,以顺適其意。

번역: 형가가 마침내 태자를 만나 전광이 이미 죽었음을 알리고 전광의 말을 전했다. 태자가 두 번 절하고 무릎 꿇어 기어가며 눈물을 흘리다가 잠시 후 말했다: “제가 전 선생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은 큰일을 이루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전 선생이 죽음으로써 말하지 않았음을 밝혔으니, 어찌 제 뜻이었겠습니까!” 형가가 자리를 잡자,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전 선생은 저를 못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제가 나아가 감히 말씀드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늘이 연나라를 가엾이 여겨 그 고아를 버리지 않음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모릅니다. 천하의 땅을 다 차지하고 해내(海内)의 왕들을 모두 신하로 만들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이미 한왕(韩王)을 사로잡고 그 땅을 모두 차지했으며, 또 군사를 일으켜 남으로 초나라를 정벌하고 북으로 조나라에 임박했습니다. 왕전(王翦)이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장(漳)·업(鄴)을 막고 있고, 이신(李信)이 태원(太原)·운중(云中)으로 나왔습니다. 조나라는 진나라를 당해내지 못해 반드시 항복할 것이고, 항복하면 화가 연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연나라는 작고 약하며 군사에 여러 번 곤란을 겪었습니다. 지금 온 나라를 다해도 진나라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여 감히 합종(合从)하지 못합니다. 단(丹)의 개인적인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진실로 천하의 용사를 얻어 진나라에 보내 중한 이익으로 유혹한다면, 진왕이 탐욕스러우니 형세상 반드시 우리 뜻을 따를 것입니다. 진실로 진왕을 협박하여 모든 침략지를 돌려주게 한다면, 이는 조말이 제환공에게 한 것과 같아 가장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찔러 죽이십시오. 저 진나라의 대장은 밖에서 병권을 잡고 있고 안에 내란이 있으면 군신이 서로 의심할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제후들이 합종하면 진나라를 반드시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단의 지극한 소원이며, 누구에게 명을 맡길지 몰라 오직 형경께서 유념해 주소서.” 한참 있다가 형가가 말했다: “이는 국가의 큰일입니다. 신은 노둔하여 감히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태자가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굳이 사양하지 말라고 청하자, 그제야 허락했다. 이에 형경을 상경(上卿)으로 높이고 상등의 관사에 머물게 했다. 태자가 날마다 문하에 찾아와 태뢰(太牢)의 음식을 제공하고 진기한 것을 수시로 들여보냈으며, 수레·말·미녀를 형가가 원하는 대로 주어 그의 뜻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久之,荆轲未有行意。秦将王翦破赵,虏赵王,尽收入其地,进兵北略地至燕南界。太子丹恐惧,乃请荆轲曰:“秦兵旦暮渡易水,则虽欲长侍足下,岂可得哉!“荆轲曰:“微太子言,臣原谒之。今行而毋信,则秦未可亲也。夫樊将军,秦王购之金千斤,邑万家。诚得樊将军首与燕督亢之地图,奉献秦王,秦王必说见臣,臣乃得有以报。“太子曰:“樊将军穷困来归丹,丹不忍以己之私而伤长者之意,原足下更虑之!”

번역: 한참 형가가 떠날 뜻이 없었다. 진나라 장수 왕전(王翦)이 조나라를 격파하고 조왕을 사로잡아 그 땅을 모두 차지하고, 군사를 북으로 옮겨 연나라 남쪽 경계까지 이르렀다. 태자 단이 두려워하며 형가에게 청했다: “진나라 군대가 아침저녁으로 역수를 건널 터인데, 비록 길이 족하를 모시고자 하나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형가가 말했다: “태자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제가 가겠다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지금 가더라도 신용을 줄 물건이 없으면 진왕을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 번 장군은 진왕이 천금과 만 호의 읍으로 현상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번 장군의 목과 연나라 독항(督亢)의 지도를 얻어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이 반드시 기뻐하며 저를 만날 것이고, 그제야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자가 말했다: “번 장군은 곤궁하여 나에게 의탁했는데, 내가 차마 사사로운 일로 장자의 뜻을 상하게 할 수 없소. 원컨대 족하께서는 다른 방도를 생각해 주시오!”

荆轲知太子不忍,乃遂私见樊於期曰:“秦之遇将军可谓深矣,父母宗族皆为戮没。今闻购将军首金千斤,邑万家,将柰何?“於期仰天太息流涕曰:“於期每念之,常痛於骨髓,顾计不知所出耳!“荆轲曰:“今有一言可以解燕国之患,报将军之仇者,何如?“於期乃前曰:“为之柰何?“荆轲曰:“原得将军之首以献秦王,秦王必喜而见臣,臣左手把其袖,右手揕其匈,然则将军之仇报而燕见陵之愧除矣。将军岂有意乎?“樊於期偏袒搤捥而进曰:“此臣之日夜切齿腐心也,乃今得闻教!“遂自刭。太子闻之,驰往,伏尸而哭,极哀。既已不可柰何,乃遂盛樊於期首函封之。

번역: 형가가 태자가 차마 그러지 못함을 알고는 마침내 사사로이 번장기를 만나 말했다: “진나라가 장군을 대우한 것이 참으로 가혹했습니다. 부모와 종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 장군의 목에 천금과 만 호의 읍이 걸려 있는데, 어찌하려 하십니까?” 번장기가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마다 뼛속까지 아프지만, 도리어 계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형가가 말했다: “지금 한 마디로 연나라의 근심을 풀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떠십니까?” 번장기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어찌해야 합니까?” 형가가 말했다: “원컨대 장군의 목을 얻어 진왕에게 바치겠습니다. 진왕이 반드시 기뻐하며 저를 만날 것이고, 제가 왼손으로 그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면, 장군의 원수가 갚아지고 연나라의 모욕이 씻길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뜻이 있으십니까?” 번장기가 한쪽 팔을 걷어붙이고 손목을 움켜쥐며 나아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고 마음이 썩던 일이었으니, 지금에서야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고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렀다.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체에 엎드려 통곡하며 매우 슬퍼했다. 이미 어찌할 수 없게 되자, 번장기의 머리를 함에 넣어 봉인했다.

於是太子豫求天下之利匕首,得赵人徐夫人匕首,取之百金,使工以药焠之,以试人,血濡缕,人无不立死者。乃装为遣荆卿。燕国有勇士秦舞阳,年十三,杀人,人不敢忤视。乃令秦舞阳为副。荆轲有所待,欲与俱;其人居远未来,而为治行。顷之,未发,太子迟之,疑其改悔,乃复请曰:“日已尽矣,荆卿岂有意哉?丹请得先遣秦舞阳。“荆轲怒,叱太子曰:“何太子之遣?往而不返者,竖子也!且提一匕首入不测之彊秦,仆所以留者,待吾客与俱。今太子迟之,请辞决矣!“遂发。

번역: 이에 태자가 미리 천하의 날카로운 비수를 구했다. 조나라 사람 서부인(徐夫人)의 비수를 얻어 백금을 주고, 공장으로 하여금 약물로 담금질하게 했다. 사람을 시험해 보니 피가 실에라도 묻으면 죽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장비를 갖추어 형경을 보낼 준비를 했다. 연나라에 용사 진무양(秦舞阳)이 있었는데, 나이 열세 살에 사람을 죽여 사람들이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에 진무양을 부사(副)로 삼았다. 형가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함께 가고자 했다. 그 사람은 멀리 있어 아직 오지 않았으나 행장을 꾸렸다. 얼마 후 출발하지 않자 태자가 이를 더디게 여겨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에 다시 청했다: “날짜가 이미 다 되었습니다. 형경께서는 뜻이 없으십니까? 단이 청컨대 먼저 진무양을 보내겠습니다.” 형가가 노하여 태자를 꾸짖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고도 돌아오지 못할 것은 어린애나 하는 짓입니다! 게다가 비수 하나를 들고 헤아릴 수 없는 강한 진나라에 들어가는데, 제가 머문 것은 제 일행과 함께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태자께서 더디게 여기시니, 작별하고 떠나겠습니다!” 이에 마침내 출발했다.

太子及宾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至易水之上,既祖,取道,高渐离击筑,荆轲和而歌,为变徵之声,士皆垂泪涕泣。又前而为歌曰:“风萧萧兮易水寒,壮士一去兮不复还!“复为羽声慷慨,士皆瞋目,发尽上指冠。於是荆轲就车而去,终已不顾。

번역: 태자와 빈객 중 그 일을 아는 자들은 모두 흰 옷과 흰 관(상복)을 입고 전송했다. 역수(易水) 가에 이르러 길을 떠나는 제사를 지낸 후,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맞춰 노래했다. 변치(变徵)의 음조로 노래하자, 선비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또 앞으로 나아가 노래했다: “바람은 쓸쓸히 불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다시 우렁찬 우성(羽声)으로 노래하자 선비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곤두서서 관을 찔렀다. 이에 형가는 수레에 올라 떠났고,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遂至秦,持千金之资币物,厚遗秦王宠臣中庶子蒙嘉。嘉为先言於秦王曰:“燕王诚振怖大王之威,不敢举兵以逆军吏,原举国为内臣,比诸侯之列,给贡职如郡县,而得奉守先王之宗庙。恐惧不敢自陈,谨斩樊於期之头,及献燕督亢之地图,函封,燕王拜送于庭,使使以闻大王,唯大王命之。“秦王闻之,大喜,乃朝服,设九宾,见燕使者咸阳宫。荆轲奉樊於期头函,而秦舞阳奉地图柙,以次进。至陛,秦舞阳色变振恐,群臣怪之。荆轲顾笑舞阳,前谢曰:“北蕃蛮夷之鄙人,未尝见天子,故振慴。原大王少假借之,使得毕使於前。“秦王谓轲曰:“取舞阳所持地图。“轲既取图奏之,秦王发图,图穷而匕首见。因左手把秦王之袖,而右手持匕首揕之。未至身,秦王惊,自引而起,袖绝。拔剑,剑长,操其室。时惶急,剑坚,故不可立拔。荆轲逐秦王,秦王环柱而走。群臣皆愕,卒起不意,尽失其度。而秦法,群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诸郎中执兵皆陈殿下,非有诏召不得上。方急时,不及召下兵,以故荆轲乃逐秦王。而卒惶急,无以击轲,而以手共搏之。是时侍医夏无且以其所奉药囊提荆轲也。秦王方环柱走,卒惶急,不知所为,左右乃曰:“王负剑!“负剑,遂拔以击荆轲,断其左股。荆轲废,乃引其匕首以擿秦王,不中,中桐柱。秦王复击轲,轲被八创。轲自知事不就,倚柱而笑,箕踞以骂曰:“事所以不成者,以欲生劫之,必得约契以报太子也。“於是左右既前杀轲,秦王不怡者良久。已而论功,赏群臣及当坐者各有差,而赐夏无且黄金二百溢,曰:“无且爱我,乃以药囊提荆轲也。”

번역: 마침내 진나라에 도착했다. 천금의 자금과 예물을 가지고 진왕의 총신 중서자(中庶子) 몽가(蒙嘉)에게 후하게 선물했다. 몽가가 먼저 진왕에게 말했다: “연왕(燕王)은 진실로 대왕의 위엄에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일으켜 맞서지 못하고, 원컨대 나라 전체를 바쳐 신하가 되고 제후의 대열에 참여하여 군현처럼 공물과 직역을 바치며 선왕의 종묘를 받들어 지키려 합니다. 두려워하여 감히 스스로 아뢰지 못하고, 삼가 번장기의 목과 연나라 독항의 지도를 베어 함에 넣어 봉하고, 연왕이 조정에서 절하며 보내 사자를 통해 대왕께 아룁니다. 오직 대왕의 명을 기다릴 뿐입니다.” 진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조복(朝服)을 입고 구빈(九宾)의 예를 갖추고 함양궁(咸阳宫)에서 연나라 사자를 만났다. 형가가 번장기의 머리 함을 받들고, 진무양이 지도 상자를 받들어 차례로 나아갔다. 섬돌에 이르러 진무양의 얼굴색이 변하고 떨며 두려워하자, 신하들이 이상히 여겼다. 형가가 돌아보며 진무양을 웃고 앞으로 나아가 사과했다: “북쪽 오랑캐의 비루한 사람이라 천자를 본 적이 없어 두렵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 조금 너그럽게 용서하시어 그로 하여금 사명을 마치게 하소서.” 진왕이 형가에게 말했다: “무양이 가진 지도를 가져오라.” 형가가 지도를 가져다 펴 바치자, 진왕이 지도를 열었다. 지도가 끝나자 비수가 드러났다. 이에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찔렀으나 몸에 닿지 않았다. 진왕이 놀라 스스로 몸을 일으키니 소매가 찢어졌다. 칼을 빼려 했으나 칼이 길어 칼집 쥔 부분만 잡혔다. 당시 급하고 당황하여 칼이 단단히 차 있어 곧바로 빼지 못했다. 형가가 진왕을 쫓고, 진왕이 기둥을 돌아 달아났다. 신하들이 모두 어쩔 줄 몰라 했다. 진나라 법에는 전상에서 모시는 신하는 한 치의 병기도 가질 수 없었다. 낭중(郎中)들은 병기를 들고 모두 전하 아래에 늘어서서 있어 조서(诏书)가 없으면 올라올 수 없었다. 급한 때에 아래 병사를 부를 수 없어 형가가 감히 진왕을 쫓을 수 있었다. 당황하고 급하여 형가를 칠 도리가 없어 손으로 함께 맞섰다. 이때 시의(侍医) 하무구(夏无且)가 가지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진왕이 기둥을 돌아 달아나고 있었는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좌우에서 말했다: “왕이여 칼을 등에 지소서!” 칼을 등에 지고 마침내 빼어 형가를 쳐서 그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형가는 불구가 되어 비수를 던져 진왕을 맞혔으나 맞지 않고 동기둥에 맞았다. 진왕이 다시 형가를 치니 형가가 여덟 군데나 창을 입었다. 형가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기둥에 기대어 웃고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욕했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내가 살아서 협박하여 반드시 약속을 받아내 태자에게 보답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좌우가 앞으로 나아가 형가를 죽였다. 진왕이 오랫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미 지난 후에 공을 논하여 여러 신하와 죄에 해당한 자들을 각각 차등 있게 상을 주거나 처벌했고, 하무구에게 황금 이백 일(溢)을 내리며 말했다: “무구가 나를 사랑하여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於是秦王大怒,益发兵诣赵,诏王翦军以伐燕。十月而拔蓟城。燕王喜、太子丹等尽率其精兵东保於辽东。秦将李信追击燕王急,代王嘉乃遗燕王喜书曰:“秦所以尤追燕急者,以太子丹故也。今王诚杀丹献之秦王,秦王必解,而社稷幸得血食。“其後李信追丹,丹匿衍水中,燕王乃使使斩太子丹,欲献之秦。秦复进兵攻之。後五年,秦卒灭燕,虏燕王喜。

번역: 이에 진왕이 크게 노하여 더욱 군사를 조나라로 보내고 왕전의 군대에 조하여 연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10월에 계성(蓟城)을 함락했다. 연왕 희(喜)와 태자 단 등은 정예병을 이끌고 동쪽 요동(辽东)으로 보존했다. 진나라 장수 이신(李信)이 연왕을 급히 추격하자, 대왕(代王) 가(嘉)가 연왕 희에게 편지를 보냈다: “진나라가 유독 연나라를 급히 추격하는 이유는 태자 단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진실로 단을 죽여 진왕에게 바치면, 진왕이 반드시 풀려 사직이 다행히 제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 이신이 단을 추격하자 단이 연수(衍水) 가에 숨었다. 연왕이 사람을 시켜 태자 단을 죽여 진나라에 바치고자 했다. 진나라가 다시 군사를 내어 공격했다. 5년 후 진나라가 마침내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연왕 희를 사로잡았다.

其明年,秦并天下,立号为皇帝。於是秦逐太子丹、荆轲之客,皆亡。高渐离变名姓为人庸保,匿作於宋子。久之,作苦,闻其家堂上客击筑,傍徨不能去。每出言曰:“彼有善有不善。“从者以告其主,曰:“彼庸乃知音,窃言是非。“家丈人召使前击筑,一坐称善,赐酒。而高渐离念久隐畏约无穷时,乃退,出其装匣中筑与其善衣,更容貌而前。举坐客皆惊,下与抗礼,以为上客。使击筑而歌,客无不流涕而去者。宋子传客之,闻於秦始皇。秦始皇召见,人有识者,乃曰:“高渐离也。“秦皇帝惜其善击筑,重赦之,乃矐其目。使击筑,未尝不称善。稍益近之,高渐离乃以铅置筑中,复进得近,举筑朴秦皇帝,不中。於是遂诛高渐离,终身不复近诸侯之人。

번역: 그 이듬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의 칭호를 세웠다. 이에 진나라가 태자 단과 형가의 객(客)들을 추격하니 모두 도망쳤다. 고점리가 이름을 바꾸고 고용살이가 되어 송자(宋子)에 숨어 일했다. 오래되어 고역에 시달리다가, 그의 집 주인 댁에서 손님이 축을 타는 소리를 듣고 서성이며 떠나지 못했다. 매번 나가 말하기를 “저 부분은 좋고 저 부분은 좋지 않다”고 했다. 따라가는 자가 주인에게 말했다: “저 고용살이가 음률을 알아서 은밀히 좋고 나쁨을 말합니다.” 주인이 불러 앞에서 축을 타게 하니, 좌중이 모두 잘한다고 칭찬하며 술을 내렸다. 고점리가 오래 숨으며 두려워하고 근신하는 것이 끝이 없음을 생각하고, 물러나 his 상자 속의 축과 좋은 옷을 꺼내어 용모를 바꾸고 앞에 나섰다. 좌중 손님들이 모두 놀라며 자리에서 내려와 맞잡고 예를 갖추어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축을 타며 노래하게 하니, 손님 중 눈물을 흘리지 않고 떠나는 이가 없었다. 송자에서 여러 집이 번갈아 접대하여 마침내 시황제(秦始皇)에게 들렸다. 시황제가 불러보니 사람 중 알아보는 자가 있어 말했다: “고점리입니다.” 시황제가 그의 축타는 솜씨를 아껴 거듭 용서하고, 대신 그의 두 눈을 멀게 했다. 축을 타게 하면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조금씩 가까워지자, 고점리가 납(铅)을 축 속에 넣었다. 다시 나아가 가까이 갈 기회를 얻어 축을 들어 시황제를 내리쳤으나 맞히지 못했다. 이에 마침내 고점리를 처형했다. 이후로 시황제는 평생 제후의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鲁句践已闻荆轲之刺秦王,私曰:“嗟乎,惜哉其不讲於刺剑之术也!甚矣吾不知人也!曩者吾叱之,彼乃以我为非人也!”

번역: 노구천(鲁句践)이 형가가 진왕을 찌른 일을 듣고 사사로이 말했다: “아, 애석하구나! 그가 검술을 더 연마하지 않았음이여! 심하도다, 내가 사람을 알지 못했음이여! 지난번 내가 그를 꾸짖었을 때, 그는 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太史公曰:世言荆轲,其称太子丹之命,“天雨粟,马生角”也,太过。又言荆轲伤秦王,皆非也。始公孙季功、董生与夏无且游,具知其事,为余道之如是。自曹沫至荆轲五人,此其义或成或不成,然其立意较然,不欺其志,名垂後世,岂妄也哉!

번역: 태사공이 말한다: 세상에서 형가를 말할 때, 태자 단의 명을 받들어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리고 말에 뿔이 났다(天雨粟,马生角)‘는 전설을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또한 형가가 진왕을 상처 입혔다고 하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 처음에 공손계공(公孙季功)·동생(董生)이 하무구(夏无且)와 사귀어 그 일을 자세히 알았고, 나에게 이와 같이 이야기해주었다. 조말에서 형가까지 다섯 사람, 그 의(義)는 이루어졌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으나, 그 뜻을 세움이 분명하고 그 마음을 속이지 않았으니 이름을 후세에 전하지 않음이 어찌 있겠는가!

曹沫盟柯,返鲁侵地。专诸进炙,定吴篡位。彰弟哭市,报主涂厕。刎颈申冤,操袖行事。暴秦夺魄,懦夫增气。

번역: 조말은 가(柯)에서 맹세하여 노나라 침략지를 돌려받았다. 전제는 구운 고기를 올려 오나라의 왕위 찬탈을 단행했다. 섭정은 누나가 시장에서 울며 아우의 이름을 드러냈다. 예양은 주인을 위해 변소에서 복수했다. 형가는 목을 그어 원한을 풀고 소매를 붙잡고 일을 꾀했다. 포악한 진나라의 넋을 빼앗아 겁쟁이도 기운을 더하게 했다.

형가의 이야기는 이 열전에서 가장 길고 복잡한 비극이다. 다른 네 자객이 개인적 의리나 정치적 의뢰로 움직인 반면, 형가는 국가의 존망, 거대한 제국의 팽창, 오랜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세 사람의 죽음(전광·번장기·자신)이 겹겹이 쌓인 거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독립된 영웅 서사다.

무대는 전국시대 말기, 진(秦)나라가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연(燕)나라는 약소국이었다. 연나라 태자 단(丹)은 어릴 적 진왕 정(후일 진시황)과 함께 조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정이 진왕이 되고 단이 다시 인질로 가자, 진왕의 태도는 냉혹하게 변했다. 단은 모욕을 참지 못해 도망쳐 돌아왔다. 진나라가 날로 강성해져 연나라까지 위협하자, 태자 단은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다 — 자객을 보내 진왕을 협박하거나 죽이는 것.

형가는 이 계획의 칼날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자객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가의 캐릭터는 의도적으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사마천은 그를 단순한 무사가 아니라 지식인에 가까운 인물로 그린다. 그는 글 읽기를 좋아했고(好書), 깊고 침착했다(沈深). 개섭(蓋聂)과 검술을 논하다 눈총을 받자 아무 저항 없이 말을 타고 떠났다. 한단(邯郸)에서 노구천(鲁句践)과 격구를 하다 꾸짖음을 받자 잠자코 도망갔다. 이런 태도는 비겁해 보인다. 그러나 연나라에서 그는 개백정과 음악가 고점리(高渐离)를 친구로 사귀었다. 셋이 시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고점리가 축(筑)을 타면 형가가 맞춰 노래했고, 함께 즐기다가 서로를 보며 울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이. 이 모순 — 도망가는 겁쟁이 같은 면모와 광적인 우정, 침착함과 감격의 공존 — 이 형가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형가가 함양궁에 도착하기까지 세 사람의 죽음이 선행된다.

첫 번째는 전광(田光)이다. 연나라의 은사로, 태자 단의 스승 국무(鞠武)가 추천한 인물이다. 태자 단이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자 전광은 자신은 늙었다며 형가를 천거했다. 태자가 문까지 배웅하며 당부했다: “국가의 중대한 일이니 누설하지 마소서.” 이 말 한마디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전광은 형가를 만나 “장자(长者)는 남을 의심하게 하지 않는다. 태자가 나를 의심했으니 나는 절협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형가가 태자를 만나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 것이다. 형가는 이 죽음을 전하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계약에 묶인다.

두 번째는 번장기(樊於期)다. 진나라 장수였으나 진왕에게 멸족을 당하고 연나라로 망명해온 인물이다. 형가가 태자 단에게 암살 계획을 제안할 때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번장기의 목과 연나라의 독항(督亢) 지도.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진왕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태자는 번장기를 차마 죽이지 못했다. 형가가 직접 번장기를 찾아가 말했다: “장군의 부모와 종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장군의 목을 진왕에게 바친다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의 근심도 풀 수 있습니다.” 번장기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던 일이다.” 스스로 목을 찔렀다. 복수의 의지가 자신의 목숨보다 강했던 것이다.

형가의 칼에는 이미 두 사람의 생명이 얹혀 있었다.

역수(易水)의 이별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며, 중국 문학사 전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별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태자 단과 일을 아는 빈객들이 모두 흰 상복(喪服)을 입고 역수 가에서 형가를 전송했다. 모두가 이것이 장례임을 알고 있었다. 고점리가 축을 타자 형가가 노래했다:

“바람은 쓸쓸히 불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이 노래에 선비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머리카락이 곤두서서 관을 찔렀다. 형가는 수레에 올라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終已不顧(종이불고)” —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이 한마디가 형가의 결의를 압축한다.

암살의 현장은 생생하게 묘사된다. 함양궁에서 진왕이 구빈(九宾)의 최고 예절로 연나라 사자를 맞았다. 형가가 번장기의 머리 함을 받들고, 진무양(秦舞阳) — 열세 살에 사람을 죽인 연나라의 용사 — 이 지도 상자를 받들고 나아갔다. 그런데 진무양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떨렸다. 신하들이 수상히 여겼다. 형가가 웃으며 변명했다: “북방 오랑캐 사람이라 천자를 뵌 적이 없어 두렵습니다.”

진왕이 형가에게 지도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형가가 지도를 펼쳤다. 지도가 끝나자 — 비수가 드러났다. 이 장면이 바로 ‘도궁비수현(圖窮匕首見)‘이다.

형가가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찔렀다. 그러나 진왕의 몸에 닿지 않았다. 진왕이 놀라 몸을 일으키며 소매가 찢어졌다. 진왕이 허리의 칼을 빼려 했으나 칼이 길어 칼집만 잡혔다. 형가가 쫓고 진왕이 기둥을 돌았다. 신하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 진나라 법에는 신하가 전상에서 병기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 하무구(夏无且)가 약주머니를 던져 형가를 막았다. “왕이여 칼을 등에 지소서!” 진왕이 칼을 등에 지고 마침내 뽑았다. 형가의 왼쪽 다리가 잘렸다. 형가는 비수를 던졌으나 동기둥에 맞았다.

기둥에 기대어 형가가 웃으며 말했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내가 살아서 약속을 받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후 수많은 해석을 낳는다. 형가는 죽이려 했다면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말처럼 살아서 진왕을 협박해 약속을 받아내려 했다. 그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죽이려는 자와 협박하려는 자의 차이, 그 순간의 망설임이 역사를 바꾸었다.

사마천은 형가의 실패에 대해 여러 단서를 남긴다. 첫째, 협박하려는 의도(生劫) —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둘째, 검술의 부족 — 이야기 초반 개섭과 노구천과의 에피소드는 복선이었다. 노구천이 형가의 소식을 듣고 탄식한다: “애석하구나, 그가 검술을 더 익히지 않았음이여!” 셋째, 조연 진무양의 실수 — 경계심을 유발한 것도 실패에 한몫했다.

형가의 실패는 연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진왕이 분노해 군대를 보내 연나라를 정벌했다. 태자 단은 결국 아버지 연왕에게 죽임을 당해 진나라에 바쳐졌다. 5년 후 연나라는 완전히 멸망했다. 형가의 자객 임무는 국가 단위의 재앙으로 끝난 셈이다.

에필로그는 우정의 완성이다. 고점리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도 살아 있었다. 진시황이 그의 음악을 아껴 두 눈을 멀게 하고 곁에 두었다. 고점리는 축(筑) 속에 납(鉛)을 숨겼다. 어느 날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얻어 축을 들어 진시황을 내리쳤다. 맞히지 못했다. 처형당했다.

이는 형가의 실패한 계획을 친구가 마저 완성하려는 시도였다. 형가의 이야기는 단독자의 비극이 아니라,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비극이다 — 전광의 자결, 번장기의 자결, 형가의 실패, 고점리의 최후, 연나라의 멸망. 하나의 계획이 다섯 명의 죽음과 한 국가의 소멸을 불러온 것이다.

형가는 다섯 자객 중 유일하게 임무를 완전히 실패했다. 진왕을 죽이지도 못했고, 협박하지도 못했고, 연나라는 멸망했다. 그러나 다섯 자객의 이야기 중 가장 긴 분량을 할애받았고, 그 이름은 가장 널리 알려졌다. 도궁비수현의 이미지, 역수 가의 노래, 기둥에 기대어 웃는 모습 — 이 장면들은 실패가 어떻게 이름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사마천의 결론대로, 중요한 것은 성공 여부가 아니라 “그 뜻이 분명하고 마음을 속이지 않았는가(不欺其志)“이다.

🎬 스토리텔링 해석: 지도가 끝나고 비수가 드러나다

섹션 제목: “🎬 스토리텔링 해석: 지도가 끝나고 비수가 드러나다”

형가는 검을 찼지만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자객이었다. 위(衛)나라에서 태어나 검술과 글 읽기를 좋아했지만,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유차(榆次)에서는 개섭(蓋聂)에게 눈총을 받고 말을 타고 도망쳤다. 한단(邯郸)에서는 노구천(鲁句践)에게 꾸짖음을 받고 잠자코 사라졌다. 그는 싸움을 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연(燕)나라에 이르러 개백정과 축(筑)의 명수 고점리(高渐离)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셋은 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고점리가 축을 타면 형가가 노래했으며, 취해서 함께 울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광기와 우정. 형가를 알아본 사람은 연나라의 은사 전광(田光)뿐이었다.

“호랑이의 역린을 건드리지 마소서” — 태자 단의 무모한 선택

연나라 태자 단(丹)은 진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하다 도망쳐 돌아왔다. 어릴 적 함께 인질이던 진왕 정(후일 진시황)에게 모욕을 당했고, 진나라는 날로 강성해져 연나라를 위협했다. 단은 자객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의 스승 국무(鞠武)는 극력 말렸지만, 단은 듣지 않았다. 국무는 대신 전광을 추천했고, 전광은 자신의 나이를 이유로 형가를 천거한다. 이때부터 형가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다. 전광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자신을 보증했기에, 형가는 이미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전광의 죽음 — 신뢰라는 이름의 덫

태자 단이 전광을 배웅하며 “국가의 중대한 일이니 누설하지 마소서”라고 당부했다. 전광은 이 말을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형가를 찾아가 “장자의 행실은 남을 의심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스스로 목을 찔렀다. 자신의 죽음으로 형가를 태자에게 묶어버린 것이다. 전광의 자결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형가가 이 계획에서 물러날 수 없게 만든 심리적 장치였다. 형가가 이 소식을 태자에게 전하는 순간,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 묶여 있었다.

번장기의 자결 — 복수는 목숨보다 무겁다

형가는 두 가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번장기(樊於期)의 목과 연나라 독항(督亢)의 지도. 진왕이 탐낼 두 가지였다. 번장기는 진나라 장수로 가족이 몰살당하고 연나라로 망명해온 사람이다. 태자가 차마 죽이지 못하자, 형가가 직접 번장기를 찾아갔다. 형가는 번장기에게 말했다: 장군의 목을 빌려 진왕을 속이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도 구할 수 있다고. 번장기는 “이것이 바로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던 일”이라며 그 자리에서 목을 찔렀다. 복수의 의지가 목숨보다 강했다. 형가의 계획은 이미 두 사람의 생명 위에 세워져 있었다.

역수(易水)의 노래 —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형가가 기다리는 사람을 기다리며 출발을 늦추자 태자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형가가 노했다: “비수 하나 들고 헤아릴 수 없는 진나라에 들어가는데, 준비 없이 가란 말입니까!” 마침내 떠났다. 역수(易水) 가에서 태자와 빈객들은 모두 흰 상복을 입고 전송했다. 모두가 이것이 장례임을 알고 있었다.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노래했다: “바람은 쓸쓸히 불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선비들은 눈물을 흘렸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형가는 수레에 올라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면 흔들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꼽힌다.

도궁비수현(圖窮匕首見) — 지도가 끝나는 순간

함양궁. 형가가 번장기의 머리 함을 들고, 연나라 용사 진무양(秦舞阳)이 지도 상자를 들고 나아갔다. 그런데 진무양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떨렸다. 신하들이 수상히 여겼다. 형가가 웃으며 둘러댔다: “북방 오랑캐라 천자를 처음 뵈와 두렵습니다.” 진왕이 지도를 올리라고 명했다. 형가가 펼쳤다. 지도가 끝까지 말리자 — 비수가 드러났다. 순간이었다. 형가가 왼손으로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찔렀지만 닿지 않았다. 진왕이 몸을 일으키며 소매가 찢어졌다. 왕이 칼을 빼려 했으나 칼이 길어 칼집만 잡혔다. 형가가 쫓고 진왕이 기둥을 돌았다. 신하들은 어쩔 줄 몰랐다 — 진나라 법에는 전상에서 병기를 가질 수 없었다. 의사 하무구(夏无且)가 약주머니를 던졌다. “왕이여 칼을 등에 지소서!” 진왕이 칼을 등에 지고 드디어 뽑아 형가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형가는 비수를 던졌으나 기둥에 맞았다. 기둥에 기대어 형가가 웃으며 말했다: “일이 안 된 것은, 내가 살아서 협박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후 수많은 논쟁을 낳는다. 죽이려 했다면 죽일 수 있었지만, 그는 조말처럼 살아서 약속을 받아내려 했다. 그 선택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에필로그 — 실패한 자객, 가장 오래 남은 이름

진왕이 분노해 연나라를 정벌했다. 태자 단은 아버지 연왕에게 죽임을 당해 진나라에 바쳐졌고, 5년 후 연나라는 멸망했다. 하나의 계획이 다섯 명의 죽음과 한 국가의 소멸을 불러온 셈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가의 친구 고점리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도 살아 있었다. 진시황이 그의 음악을 아껴 두 눈을 멀게 하고 곁에 두었지만, 고점리는 악기 속에 납을 숨겼다. 어느 날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얻어 축을 들어 진시황을 내리쳤다. 빗나갔지만, 형가의 실패를 친구가 마저 완성하려 한 시도였다. 노구천이 형가의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검술을 더 닦지 않은 것이 한이다.” 사마천의 결론: 다섯 자객,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뜻을 세움이 분명하고 마음을 속이지 않았다.” 실패한 자객의 이야기가 가장 큰 울림을 남긴 이유다.


종합 해설 — 다섯 자객, 하나의 정신

섹션 제목: “종합 해설 — 다섯 자객, 하나의 정신”
자객대상동기방법결과사후
조말제환공국가적 의분비수 협박성공 (땅 반환)무사귀환
전제오왕 료정치적 의뢰어복 비수성공 (왕 교체)현장 사망
예양조양자지백에 대한 의리3차 암살 시도실패 (자결)이름을 남김
섭정한상 협루은혜에 대한 보답단독 급습성공 (암살)자해 후 누나도 사망
형가진시황연나라 구원도궁비수현실패고점리·연나라 멸망

열전의 구성은 네 가지 축으로 읽힌다:

  1. 길이의 확장: 조말(6행) → 전제(14행) → 예양(24행) → 섭정(32행) → 형가(72행+). 이야기는 거듭될수록 길어지고 정교해진다.

  2. 시간의 거리: 167년 → 70여 년 → 40여 년 → 220여 년. 시간적 거리는 각 이야기를 분리하면서도 하나의 연속된 전통으로 묶는다.

  3. 공간의 이동: 노(산동) → 오(동남) → 진(산서) → 한(하남) → 연(북방). 중원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며, 마지막 형가의 이야기는 진(秦)이라는 새로운 중심에서 끝을 맺는다.

  4. 비극성의 고조: 조말은 웃으며 퇴장하지만, 섭정은 얼굴을 훼손하고 누나와 함께 죽으며, 형가의 실패는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악보가 점점 높아지듯 비극의 강도는 다섯 이야기를 거치며 확대된다.

사마천이 말하려 한 것: ‘不欺其志’

섹션 제목: “사마천이 말하려 한 것: ‘不欺其志’”

사마천의 결론은 단순하다: 성공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뜻이 분명하고, 그 마음을 속이지 않았는가(其立意较然,不欺其志)” 이다.

열전 전체를 관통하는 가치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자기를 알아준 이를 위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이 보여주는 것은 이 문장이 훨씬 더 복잡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 조말은 나라가 자신을 신뢰했기에(패장임에도 장수 자리를 유지) 나라를 위해 칼을 품었다.
  • 전제는 은혜(공자 광의 후대)와 정치적 기회가 만난 지점에서 죽었다.
  • 예양은 ‘국사(國士)의 대우’에 ‘국사의 보답’으로 응답했다.
  • 섭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가, 효가 완료된 후에 의를 실행했다.
  • 형가는 가장 복잡했다 — 국가의 명, 친구의 죽음(전광), 그리고 자신의 사적인 관계(고점리)가 얽혔다.

사마천 자신이 이릉(李陵)을 변호했다가 궁형을 당한 인물임을 기억할 때, 이 ‘기의군연 불기의지’는 결코 허명이 아니다. 그는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견뎌냈다. 자객열전은 다른 시대, 다른 방식으로 ‘뜻을 위해 몸을 바친’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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