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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열전 (伯夷列傳)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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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육십일(卷六十一) 열전제일(列傳第一)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섹션 제목: “🏛️ 제1부: 마스터 가이드 & 핵심 통찰”

💡 본질: 사마천이 70편의 열전 중 맨 첫머리에 백이열전을 배치한 것은, 이 글이 단순한 두 형제의 전기가 아니라 “《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철학적 총론(Manifesto)“이기 때문이다. 상나라에 충성을 지키며 주나라의 곡식을 거부하고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숙제의 비극을 통해, 사마천은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 편에 선다(天道無親 常與善人)“는 전통적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의로운 안회와 백이는 요절하고 굶어 죽었으며, 날마다 사람의 간을 씹은 대도(大盜) 도척은 천수를 누렸다. “천도(天道)는 과연 옳은가, 그른가(天道是邪 非邪)?”라는 그의 절규는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역사서를 써야만 했던 궁극의 실존적 동기다.

1. 백이·숙제의 4단계 생애와 선택

섹션 제목: “1. 백이·숙제의 4단계 생애와 선택”
단계역사적 사건백이·숙제의 선택현대적 의미
1단계 (양보)고죽국 왕위 계승 문제부왕이 셋째 숙제를 후계로 지목하자, 백이는 부왕의 뜻을 존중해 떠나고 숙제는 장자 명분을 지켜 함께 도망침세속 권력과 지위보다 형제간의 도덕적 신의를 우선시함
2단계 (간언)주나라 무왕의 은나라 토벌“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이 어찌 어짊인가(以臣弑君 可謂仁乎)“라며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직언함현실적 힘과 승리보다 문명적 질서와 대의명분을 질문함
3단계 (저항)주나라의 천하 통일“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首陽山)으로 은둔새로운 불의의 체제에 협조하지 않는 비폭력 불복종 저항
4단계 (아사/불멸)채미가(採薇歌)를 부르며 굶어 죽음고사리를 캐먹다가 마침내 굶어 죽음타협 없는 원칙주의의 극한과 역사적 상징으로의 승화

2. 백이열전의 3대 핵심 멘탈 모델

섹션 제목: “2. 백이열전의 3대 핵심 멘탈 모델”

① 천도시야 비야 (天道是邪 非邪) — 세상의 근본적 부조리

섹션 제목: “① 천도시야 비야 (天道是邪 非邪) — 세상의 근본적 부조리”
  •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면, 안회는 왜 요절했고 백이·숙제는 왜 굶어 죽었는가? 반면 도척은 왜 천수를 누렸는가?”
  • 교훈: 역사는 도덕적 권선징악의 동화가 아니다. 냉혹한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왜 도덕과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② 이신시기 (以暴易暴) — 수단의 정당성

섹션 제목: “② 이신시기 (以暴易暴) — 수단의 정당성”
  • 주왕(폭군)을 제거하기 위해 무왕이 군사를 일으키자,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면서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라고 한탄함.
  • 교훈: 선한 목적을 위해 불의한 수단(쿠데타·폭력)을 정당화하는 순간, 새로운 체제 역시 동일한 폭력의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③ 지식인의 불멸과 역사의 역할

섹션 제목: “③ 지식인의 불멸과 역사의 역할”
  • “백이·숙제가 비록 현인이었으나 공자의 칭찬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졌겠는가?”
  • 교훈: 세상의 정의가 현실에서 보상받지 못할 때,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올바른 평가를 후세에 남기는 ‘기록자(역사가)‘의 존재가 인간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섹션 제목: “📜 제2부: 원문 상세 대역 (Full Reference)”

제1절: 서론 — 고대 전승의 신뢰성 문제

섹션 제목: “제1절: 서론 — 고대 전승의 신뢰성 문제”

夫学者载籍极博,犹考信於六?。诗书虽缺,然虞夏之文可知也。尧将逊位,让於虞舜,舜禹之间,岳牧咸荐,乃试之於位,典职数十年,功用既兴,然後授政。 示天下重器,王者大统,传天下若斯之难也。而说者曰尧让天下於许由,许由不受,耻之逃隐。 及夏之时,有卞随、务光者。此何以称焉?太史公曰:余登箕山,其上盖有许由冢云。 孔子序列古之仁圣贤人,如吴太伯、伯夷之伦详矣。余以所闻由、光义至高,其文辞不少概见,何哉?

번역: 학자가 기록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여전히 육예(六藝)에 근거하여 사실을 확인한다. 《시경》과 《서경》이 비록 결손되었지만, 우·순 시대의 기록은 알 수 있다. 요가 자리에서 물러나 순에게 양보했고, 순과 우 사이에는 사악과 구주목의 천거가 있었으며, 자리에서 시험하고 수십 년간 직무를 맡겨 공효가 일어난 후에야 정권을 넘겼다.

이는 천하가 중대한 그릇이고 왕자가 중대한 통치 체계임을 보여주며, 천하를 전수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임을 알게 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양보했고, 허유가 받지 않고 부끄러워하여 도망가 숨었다고 말한다.

하나라 때에 변수와 무광이 있었다. 이들은 무엇으로 칭해졌는가? 태사공이 말한다: 내가 기산에 올라보니 그 위에 허유의 무덤이 있었다.

공자가 고대의 인·성·현인들을 차례로 논할 때 오태백과 백이 같은 부류를 자세히 다루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허유와 무광의 의리는 지극히 높았지만, 그들에 관한 문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가?

해설: 사마천은 이 열전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료 비판(methodology of historiography)부터 논한다.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시경》《서경》 등 공인된 경전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허유·변수·무광 같은 고사는 경전에 나오지 않는다. 사마천은 직접 기산에 올라가 허유의 무덤을 확인했으면서도, 공자의 기록 체계(육예 기준)를 신뢰하는 태도를 보인다. ^[역주: 이는 사마천이 전설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론적 기준(육예)을 분명히 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전승은 유보적으로 다루겠다는 선언이다.]


제2절: 공자의 백이 평가와 사마천의 의문

섹션 제목: “제2절: 공자의 백이 평가와 사마천의 의문”

孔子曰:“伯夷、叔齐,不念旧恶,怨是用希。” “求仁得仁,又何怨乎?“余悲伯夷之意,睹轶诗可异焉。

번역: 공자가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옛 악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니, 원망이 적었다.”

“인(仁)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랴?” 나는 백이의 뜻을 가엾게 여기고,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시(익시)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해설: 공자는 백이·숙제를 ‘원망이 없는 인물’로 평가했다(“求仁得仁”). 그러나 사마천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 “余悲伯夷之意” (나는 백이의 뜻을 가엾게 여긴다). 이는 공자의 해석에 대한 미묘한 반론이다. 사마천은 이어서 그들이 굶어 죽으면서 남긴 노래를 보여주며, 과연 그들이 정말 원망이 없었는지 묻는다. ^[역주: 이 대목이 이 열전 전체의 핵심이다. 사마천은 ‘공자의 해석’이라는 권위 있는 프레임을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자신이 발견한 모순(익시의 존재, 백이의 실제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제3절: 백이·숙제의 고사 — 핵심 이야기

섹션 제목: “제3절: 백이·숙제의 고사 — 핵심 이야기”

其传曰:伯夷、叔齐,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齐,及父卒,叔齐让伯夷。伯夷曰:“父命也。“遂逃去。叔齐亦不肯立而逃之。 国人立其中子。於是伯夷、叔齐闻西伯昌善养老,盍往归焉。及至,西伯卒,武王载木主,号为文王,东伐纣。 伯夷、叔齐叩马而谏曰:“父死不葬,爰及干戈,可谓孝乎?以臣弑君,可谓仁乎?“左右欲兵之。 太公曰:“此义人也。“扶而去之。武王已平殷乱,天下宗周,而伯夷、叔齐耻之,义不食周粟,隐於首阳山,采薇而食之。 及饿且死,作歌。其辞曰:“登彼西山兮,采其薇矣。以暴易暴兮,不知其非矣。神农、虞、夏忽焉没兮,我安適归矣?于嗟徂兮,命之衰矣!“遂饿死於首阳山。

번역: 그들의 전기(傳)에 이렇게 쓰여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숙제를 후계자로 세우려 했는데, 아버지가 죽자 숙제가 백이에게 양보했다. 백이가 말했다: “아버님의 명령이다.” 그리고 도망쳐 버렸다. 숙제도 또한 즉위하기를 거부하고 도망쳤다.

나라 사람들은 가운데 아들을 세웠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로 가고자 했다. 도착했을 때 서백은 이미 죽었고, 무왕이 나무 신주에 ‘문왕’이라 쓰고 동쪽으로 주(紂)를 정벌하러 갔다.

백이와 숙제가 말을 붙잡고 간언했다: “아버지가 죽어 장사도 지내지 않고 무기를 휘두르니, 이를 효라 할 수 있습니까? 신하가 임금을 죽이니, 이를 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무왕의 측근이 그들을 해치려 했다.

태공(강태공)이 말했다: “이 분들은 의인(義人)이다.” 그들을 부축하여 물러나게 했다. 무왕이 은의 난을 평정하고 천하가 주나라를 천자로 섬기게 되자,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기로 하고,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았다.

굶어 죽게 되자 노래를 지었다. 그 노래는 이러했다: “저 서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니,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우·순이 갑자기 사라지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아, 돌아가리라, 내 운명이 다했구나!”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해설: 백이·숙제 이야기의 핵심은 세 가지 거절이다. 첫째, 형제가 서로 왕위를 거절했다(부귀 거절). 둘째, 무왕의 주 정벌이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정치적 거절). 셋째,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그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다(생명까지 거절). 세 번의 거절을 통해 그들은 완전한 도덕적 순수를 추구했다.

“以暴易暴兮,不知其非矣” — 이 한 구절이 그들의 입장을 요약한다. 무왕이 주를 친 것은 단지 ‘폭력을 폭력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무왕의 혁명(방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입장이다.

태공(강태공)이 “此义人也”라고 말하며 그들을 보호한 대목은 중요한 반전이다. 주나라의 최고 공신이 주나라에 반대하는 자들을 ‘의인’으로 인정하고 보호했다는 아이러니. ^[역주: 이 대목은 후대의 문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도연명, 이백, 왕유 등 수많은 시인들이 백이·숙제의 고사를 읊었다.]


제4절: 천도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 사마천의 가장 유명한 질문

섹션 제목: “제4절: 천도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 사마천의 가장 유명한 질문”

由此观之,怨邪非邪?或曰:“天道无亲,常与善人。“若伯夷、叔齐,可谓善人者非邪? 积仁絜行如此而饿死!且七十子之徒,仲尼独荐颜渊为好学。然回也屡空,糟糠不厌,而卒蚤夭。 天之报施善人,其何如哉?盗蹠日杀不辜,肝人之肉,暴戾恣睢,聚党数千人横行天下,竟以寿终。 是遵何德哉?此其尤大彰明较著者也。若至近世,操行不轨,专犯忌讳,而终身逸乐,富厚累世不绝。 或择地而蹈之,时然後出言,行不由径,非公正不发愤,而遇祸灾者,不可胜数也。 余甚惑焉,傥所谓天道,是邪非邪?

번역: 이로부터 보건대, 원망한 것인가, 아닌가? 어떤 이가 말한다: “하늘의 도(天道)는 친함이 없이 항상 선인(善人)과 함께한다.” 백이와 숙제처럼, 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토록 인(仁)을 쌓고 행실을 닦았는데 굶어 죽었다! 게다가 공자의 칠십 제자 중 안회(顔淵)만을 배움을 좋아한다고 추천했다. 그러나 안회는 항상 빈궁하여 거친 음식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결국 일찍 죽었다.

하늘이 선인에게 갚아주는 것이 이렇다면, 도척(盗蹠)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먹으며 포악하고 방자하여 수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했으나 결국 장수했다.

이는 무슨 덕을 따른 것인가? 이것은 특히 명백하고 뚜렷한 경우다. 가까운 세상에 이르러서는, 행실이 바르지 않고 금기를 일부러 범하면서도 종신토록 편안하고 즐거우며 부귀가 대대로 끊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땅을 가려 밟고, 때가 되어서야 말하며,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분발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경우를 끝없이 헤아릴 수 없다.

나는 매우 혼란스럽다. 이른바 천도(天道)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해설: 이 대목은 사마천의 글 전체에서 가장 강력하고 개인적인 고백이다. 표면적으로는 백이·숙제에 대한 논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규로 읽힌다. 사마천은 이릉(李陵)의 일로 무고하게 궁형(宮刑)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선인’이며 충성했음에도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백이·숙제와 안회는 ‘선인’인데 고통받고, 도척과 간사한 자들은 잘 먹고 잘 산다.

“余甚惑焉,傥所谓天道,是邪非邪?” — 이 질문은 유가의 기본 전제(하늘은 선인을 돕는다)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사마천은 공자의 권위를 존중하면서도(“求仁得仁”) 자신의 체험과 관찰이 가르쳐주는 현실(악인이 흥하고 선인이 망함) 사이의 모순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역주: 이는 사마천 개인의 발분(發憤) — 억울한 형벌을 당한 자의 하늘에 대한 항변으로 읽어야 한다. ‘天道無親’는 《노자》 79장의 구절로, 도가(道家)의 영향을 보여준다.]


제5절: 각자 자신의 뜻을 따를 뿐

섹션 제목: “제5절: 각자 자신의 뜻을 따를 뿐”

子曰:“道不同不相为谋”,亦各从其志也。 故曰:“富贵如可求,虽执鞭之士,吾亦为之。如不可求,从吾所好”。 “岁寒,然後知松柏之後凋”。举世混浊,清士乃见。岂以其重若彼,其轻若此哉? “君子疾没世而名不称焉。”

번역: 공자가 말했다: “도(道)가 같지 않으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 또한 각각 자신의 뜻을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부귀가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든 하인이라도 하겠다.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 세상이 혼탁할 때 청렴한 선비가 드러난다. 어찌 그(백이)를 그토록 중히 여기고, 이(부귀)를 그토록 가벼이 여겼겠는가?

“군자는 세상을 마치도록 이름이 칭송되지 않음을 근심한다.”

해설: 이 절에서 사마천은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내리지 않고,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각자 자신의 뜻을 따를 뿐” 이라고 결론 내린다. 천도가 공정한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岁寒然後知松柏之後凋” — 이 구절은 《논어》의 인용으로, 어려운 상황에서야 진정한 인품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백이·숙제가 바로 그 ‘송백’이었다.


제6절: 명성과 후세의 평가 — 결론

섹션 제목: “제6절: 명성과 후세의 평가 — 결론”

贾子曰:“贪夫徇财,烈士徇名,夸者死权,众庶冯生。” “同明相照,同类相求。” “云从龙,风从虎,圣人作而万物睹。“伯夷、叔齐虽贤,得夫子而名益彰。 颜渊虽笃学,附骥尾而行益显。岩穴之士,趣舍有时若此,类名堙灭而不称,悲夫! 闾巷之人,欲砥行立名者,非附青云之士,恶能施于後世哉?

번역: 가의(賈誼)가 말했다: “탐욕한 자는 재물을 위해 죽고, 열사(烈士)는 명예를 위해 죽으며, 자랑하는 자는 권력을 위해 죽고, 대중은 삶을 위해 몸부림친다.”

“같은 밝음은 서로 비추고, 같은 유형은 서로 구한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며,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우러러 본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현명했지만, 공자를 만나 그 명성이 더욱 빛났다.

안회가 비록 학문을 독실히 했지만, 성인의 꼬리에 붙어 그 행실이 더욱 드러났다. 동굴과 바위 틈에 사는 선비들은 때를 만나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여, 이름이 묻혀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슬플 따름이다!

마을의 평범한 사람이 행실을 갈고 닦아 이름을 세우려 해도, 높은 구름 같은 인물(권력자/명사)에게 붙지 않는다면, 어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해설: 사마천은 결론에서 놀라운 현실주의를 드러낸다. 백이·숙제는 그 자체로 고귀했지만, 공자라는 ‘청운지사(권위자)‘가 그들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름이 후세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현명함 자체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권위가 필요하다.

“闾巷之人,欲砥行立名者,非附青云之士,恶能施于後世哉?” — 이 말은 사마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한다. 그가 이토록 방대한 《사기》를 쓴 이유도, 바로 자신이 ‘청운지사’(기록자)가 되어 무수히 묻힌 선비들의 이름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백이열전의 구조적 의미: 이 편은 열전 70편의 첫머리로서, 사마천의 역사 철학 전체를 예고하는 서곡(prélude) 역할을 한다. 사마천은 이 첫 편에서 (1) 역사 서술의 방법론, (2) 선과 악의 현실적 보상 문제, (3) 명성과 후세 평가의 메커니즘을 모두 다룬다. 이후 69편의 열전은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다양한 사례 연구가 된다.


  • 종합 척추: 인간 조건과 사상의 향연
  • 사기 총론: 사기(史記) 총론
  • 관련 개념: 상나라(商), 주나라(周)
  • 관련 인물: 사마천(司馬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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